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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딱지 ㅣ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12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이경혜 옮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0년 10월
평점 :
출간 당시에 읽어보고 싶었는데, 보관함에 넣어두고 잊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이웃님의 리뷰로 기억이 났다. 말썽쟁이 꼬맹이 조카 때문에 더 기억하던 책이기도 하다. 조카가 5~6살 때쯤이었나. 정말 말을 안 듣는 아이 때문에 언니가 힘들어했다. 자기 자식이 그러는 거, 어느 정도 감안하고 본다고 해도 좀 심한 듯했다.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하면서도 보통의 기준을 넘어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계속 아이를 지켜보기만 하던 형부가 조카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너, 자꾸 그렇게 말을 안 들으면, 엄마 머리에 흰머리가 난다. 흰머리가 나면 죽어."
뭐, 이런 말을 했었는데, 그때 조카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금 멍해 보이기는 했으나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엄마와는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던 걸까. 흰머리는 할머니처럼 나이를 많이 드신 분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라고 생각했을까? 그때, 딱히 조카의 입에서 어떤 말을 듣지는 못했다. 아이가 아무 말이 없었으니 그저 잘 알아들었으려니 하고 그 순간을 넘겼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말 언니의 머리에 새치가 생겼다. 하나둘, 이제 막 새치가 나기 시작한 거 같은데, 그때 조카는 엄마의 머리를 보고 이런 말을 했더랬지.
"엄마, 여기 흰머리가 있어요. 그럼 이제, 엄마 죽어요?"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서로 눈도 못 마주쳤고, 그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고, 웃고 떠들며 놀던 그 자리의 분위기는 갑자기 싸해졌다. 아, 정말... 뭐라고 대답해줘야 맞는 거지? 흰머리가 났으니까 죽는다고? 그때는 니가 하도 말을 안 들어서 그냥 해본 말이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야 했던 걸까? 지금 떠올려본 그때 그 순간에 우리가 조카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 별말 못했던 것 같다. 다만, 그때 나는 조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제 엄마에게 흰머리가 났으니 곧 죽는다고 믿고 있을까?
자기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에게 흰머리가 났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자기가 말을 잘 들으면 엄마의 머리에서 흰머리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때 조카의 생각이 궁금했는데 차마 묻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든지 내가 대꾸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묻기조차 겁났기 때문이다. 지금 조카는 초등학생이고, 또 여전히 말도 안 듣는 말썽쟁이지만, 가끔은 엄마와 대화하고 엄마와 싸우고 엄마를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다. 엄마가 흰머리가 났는데 죽지 않았다고, 어른들의 거짓말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의 공포가 이 아이에게 뭔가 다른 생각 하나를 심어주지는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러면서, 늘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그렇게 또 자라나겠지.
그림책 『무릎 딱지』는 첫 페이지부터 심장이 쿵! 하고 울리는 듯 시작하는 이야기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죽었다. 어젯밤에 죽었지만, 아이에게는 엄마가 오늘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엄마가 저세상으로 떠났다고 했지만, 아이는 안다. 엄마가 어딘가로 떠난 게 아니라 죽은 거라는 걸. 사람들이 엄마를 관에 넣고 땅에 묻었다는 걸. 이제 엄마를 보지 못한다는 걸.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이는 안다. 이제 아빠와 아이 둘만 남은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엄마의 부재는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아빠는 엄마처럼 빵을 발라주지도 않고, 울기만 한다. 아이는 자기가 아빠를 돌봐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엄마의 냄새가 날아갈까 봐 뜨거운 여름날인데도 온 집안의 창문을 다 걸어 닫는 걸 보니, 눈물이 핑 돈다. 그렇게 하면 엄마가 떠나지 않은 것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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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로 들려온다. "괜찮아, 우리 아들. 누가 우리 착한 아들을 아프게 해? 넌 씩씩하니까 뭐든지 이겨 낼 수 있단다." 아이는 눈을 감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아픈 게 다 나아버린다. 어느 날, 아이는 마당을 뛰다가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생겼다. 아프지만 참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또 들려오는 게 좋았으니까. 그렇게 무릎에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손톱으로 긁어서 뜯어내는 아이의 목적은 단 하나. 다시 상처가 생기고 또 피가 나면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아, 어떡해... 얼마나 그리웠으면 딱지를 떼어 그 자리에 피가 흐르기를 반복하느냔 말이야. ㅠㅠ 그만큼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라도 간절했던 거겠지. 엄마가 죽은 걸 머리로는 알지만, 엄마가 아이 곁을 떠난 걸 마음은 아직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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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찾아온 할머니는 아이의 가슴에 대고 말한다. 엄마가 여기 있다고, 엄마는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나는 정말 무섭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엄마를 완전히 잊게 될까 봐.
그래서 나는 달린다,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온몸이 흐늘흐늘해질 때까지, 내 심장이 쿵쿵 뛰어서 숨 쉬는 게 아플 때까지,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그러면 꼭 엄마가 내 가슴 속에서 아주 세게 북을 치고 있는 것만 같다. (본문 중에서)
할머니는 아빠에게 빵에 지그재그로 꿀을 바라는 걸 가르쳐 주고, 아이와 아빠는 엄마와 함께였던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온다. 아침에 나는 커피 향기, 하루를 열어주는 라디오 소리, 식탁 위의 빵과 신문을 보는 아빠. 아이는 아빠를 보고 활짝 웃는다. 그렇게 아빠에게 달려가는 아이 귓가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아빠한테 가서 안겨. 내 아들아……." 무릎을 만져보니 매끈매끈한 새살이 나 있었다. 어느 순간, 딱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딱지가 저절로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회복되는 걸까. 몸도 마음도, 슬픔을 겪고 나니 새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점점 차오르는 걸까. 엄마의 죽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엄마의 냄새가 날아가도 그게 끝이 아님을 알게 되고, 엄마와 똑같지 않지만 아빠가 대신해주는 엄마의 자리가 애틋해지는 감정을 알아간다. 남은 둘, 아빠와 아이는 그렇게 엄마 없는 오늘을 사는 법을 배운다. 또다시 찾아올지 모를 슬픔도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겪었고, 상처에 새살이 돋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제야 비로소 오늘 밤 편한 잠을 이루는 아이에게 내일은 어떤 날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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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배운다는 건 그런 것 같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대개 좋은 기분보다는 아픈 것을 알아가며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슬픔을 받아들이며 배워야 할 게 있다. 죽음도 마찬가지. 그 순간에는 무섭고 겁나지만, 또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인정하고 감당하는 시기를 건넌다. 언젠가 희미해질 기억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겪어야만 하는 순리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사람이 영원할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죽는다는 거, 그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겪어야 한다는 건 변함없다. 이미 훌쩍 자란 나도 죽음이 겁난다. 꼬맹이 조카처럼 나도, 엄마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어린 조카를 겁주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엄마의 머리는 이제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이고,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불안하고, 문득문득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누군가의 장례 소식도 자주 듣는다. 이제 언제 어디서든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인 거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죽음을 생각했다. 어른의 마음으로 겪는 죽음을 떠올렸다. 그 죽음 이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먼저 떠올리곤 했다. 장례식, 이런저런 정리, 찾아온 사람들에게 전할 인사 같은 것들. 그런데 죽음 그 기저에 있는 마음을 잊고 있었다는 걸 이 그림책으로 다시 찾았다. 죽음 이후의 일은 일이고, 그 바탕에 깔린 슬픔과 헤어짐, 감당해야 할 마음의 무게를 잊고 있던 거다. 아이가 겪는 엄마의 죽음과 부재는 어른이 겪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 슬픔을 겪고 삶의 다음 페이지를 열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빠가 울기만 했던 모습을 보고 아이는 아빠를 달래주려고 한다. 누군가의 눈물은 그런 건가 보다. 슬픔. 그런 슬픔에 필요한 건 위로와 공감. 어른인 아빠와 아이인 주인공의 모습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같은 크기로 다가온다는 걸 본다. 아이에게 엄마의 몫까지 해내야 하는 아빠의 삶은 더 무거워질지도 모른다. 아이는 엄마의 빈자리에 아빠의 모습을 채워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와 아빠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엄마의 빈자리가 더는 슬프지 않게 사는 방법을 배울 거니까. 무릎에서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나듯, 그런 날들을 살아갈 테니 말이다.
짧은 그림책 한 권을 읽은 것뿐인데 기분이 좀 멍하다. 자꾸 말썽쟁이 조카가 떠오른다. 그러면서 다음에 조카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엄마 머리에 흰머리가 하나씩 계속 생기고, 머리에 온통 흰머리가 가득했을 때가 오면, 엄마의 시간은 죽음에 가까워진 거라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고, 할머니도 죽고 엄마도 죽고 이모도 죽는 날이 올 거니까, 그때까지 우리 속상한 일 생기지 않게 서로서로 말 잘 듣는 사람이 되자고. 이모는 할머니 말 잘 듣고, 너는 너희 엄마 말 잘 듣고.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