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노 키즈 존’을 자주 보는 건 아니다. 여긴 시골이라 더 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우연처럼 ‘노 키즈 존’을 발견하면 약간 안도하는 마음으로 가게의 출입문을 연다. 이렇게 말하니 누군가는 내가 아이를 싫어하니까 그런 거라고 말하던데, 아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싫어하게 만드는 부모를 싫어하는 거였다. 실제로 며칠 전에 루프탑 베이커리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상당히 규모가 있는 곳인데,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위험이 있어 2층부터는 아이를 동반할 수 없다고 쓰여 있다. 한참 빵을 고르고 있는데, 계단 쪽에서 직원과 아이 엄마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이가 밖을 보고 싶어 하니 데리고 올라간다는 손님과 위험하니 규정상 안 된다고 말하는 직원 사이에 언쟁이 높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고, 아마 저마다의 기준으로 이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으리라.
글쎄, 이 상황에서 누가 잘못일까? 융통성(?) 없이 규정을 지키라는 직원이 일을 못하는 걸까, 아니면 가게 규정이 그러하다는데 자꾸 우기는 아이 엄마가 잘못한 걸까. 그때 드는 생각이, 만약에 아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아이가 난간 밖으로 떨어져서 무슨 사고라도 났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특히 식당에서, 펄펄 끓는 뚝배기를 든 직원이 테이블 사이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고 있는데, 아이가 막 뛰어다니게 내버려두는 부모들. 제발 그러지 마라. 혹시라도 그 뜨거운 게 쏟아져 아이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식당이나 직원을 탓할 거 아닌가. 그 상황에서 누구도 책임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음식점에서 아이를 뛰어다니게 내버려두는 부모의 태도도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너무 많은 것을 봐서 그런가, 할 말이 정말 많지만 이쯤에서 그만. 어쨌든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상에서 자주 봤던 이해하기 어려운 부모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감했다. 오전 시간에, 우연히 카페에서 아이 엄마들이 모여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걸 듣게 된 적이 있었는데, 진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 교육문제는 기본이었고(당연히 내 아이의 교육은 중요하다), 학원 얘기, 아이 아빠의 직업 얘기, 선생님 얘기 등등 끝이 없이 쏟아져 나오는 화제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 화제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그 화제를 중심으로 거기까지 얘기하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드는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내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기 위한 관심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도 같은데, 이건 어디까지 이해하고 허용해야 하는 문제까지 이어지는 느낌이다. 세상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개인 사정일 수도 있지만, 그 개인 사정에 타인의 강요와 희생이 따르고 있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문제만 들어도 서이초 사건이 계기가 된 듯하지만, 사실 그 사건은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는 게 더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학교 밖으로 새어나지 못하게 하는 많은 일이,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언급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교육의 심각한 위기를 넘어서서, 인간을 혐오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이게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저자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 홍콩의 이야기도 같이 들려주는데, 괴물 부모의 시작은 일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듣다보면 바로 알게 된다. 괴물 부모가 어느 나라에서 시작되었는가 하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이 문제가 우리 생활에서, 아이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만 아이의 올바른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는 거다.
몇 가지 사례를 들려주자면,
“내 아이 사진이 부족하니, 수학여행을 다시 다녀오세요.” (수학여행에서 선생님이 찍어준 아이들 사진 중에, 자기 아이 사진이 자기 마음에 차지 않을 정도의 수량이었나 보다)
“현장 학습을 가는 바람에 아이가 햇볕에 타서 왔으니, 우리 아이 피부를 원상 복구해 놓으세요.”(나 진짜 이거 이해 안 되던데, 그럼 현장학습 보내지 말고, 아이 방에 암막커튼으로 햇빛 차단하고 방에 있으라고 하던가)
“반 친구 중에 우리 아이와 맞지 않는 아이가 있어서 학교 가기 싫어하니, 그 아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 주세요.”(이것도 진짜 황당하긴 하다. 서로 맞지 않는 아이가 있으면 왜 그런지 이야기도 들어보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보고, 정 안 되면 굳이 친하게 지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마음을 설명해주던가 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이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진상 부모의 모습도 심각했다. 현직 교사들이 수집한 학부모 민원 사례(괴물 부모의 탄생, 37페이지)에서 들려준 이야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학교 폭력 사건을 처리하던 담임 교사에게, 자기 아이만 미워해서 이렇게 됐다고, 아동학대라고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도 있다. 부모가 일찍 출근해서 아이가 자고 있다며, 선생님 출근길에 자기 집에 들러서 초인종 누르고 아이를 깨워달라는 부모, 아이가 병가로 등교하지 못하자, 담임 교사한테 집에 와서 보충 지도를 해 달라는 부모, 하교 시간에 연락해서 아이를 학원까지 데려다 주라는 부모, 아이의 변 상태가 안 좋아서 기분이 별로니 아이 기분 맞춰 주라는 부모, 자기 아이가 매번 시험 못 봐서 속상해하니 자기가 만든 시험지로 문제를 내서 아이 기를 살려주라는 부모, 받아쓰기에서 틀린 것 표시하니 교장실로 찾아가서 아이 마음 다친다고 빗금 치지 말라는 부모, 아이가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교우 관계 지도하라는 부모, 자기 아이가 다툼의 원인을 제공했는데도 사과할 일이 없다고 말하는 부모, 담임 교사에게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지정해주는 부모, 학교생활기록부를 마음에 들게 수정해달라는 부모도 많았다고 한다.
듣고 있자면, 숨이 막힌다. 여기에서 소개된 내용은 일부분이다. 추측컨대, 정말 다 들을 시간이 없을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부모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거다. 궁극적으로 가정이나 학교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게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모의 태도에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저자가 지적한 문제도 이 부분인데, 아이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거나, 강한 충동성이 있을 수 있고, 책임감 부족이나, 심각한 부모 의존성을 보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은 크게 세 갈래 길을 간다고 하는데(괴물 부모의 탄생, 47페이지), 억압과 통제 속에서 이룬 가짜 성공과 성취 속에서 불안정하게 살아가는 ‘의존 인생’, 부모가 주는 경제적 혜택은 누리지만 반항적이고 일탈한 상태로 불안정하게 사는 ‘일탈 인생’, 괴물 부모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어른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탈출 인생’. 어떻게든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기에, 누구도 이 과정을 쉽게 통과하지는 못할 듯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책에서 소개하는 우리나라, 일본, 홍콩의 사회적 배경에 관심 둘 필요가 있다. 나라마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그 공통적 배경에는 몇 가지가 있다. 학교폭력 만연화에 학교를 불신하게 되고, 학부모의 고학력화, 사회의 학벌화, 교육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제공되는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 거기에 핵가족주의가 만들어지고, 자녀에 대한 개입과 과잉보호, 저출생으로 자녀의 희소성 또한 괴물 부모 탄생의 배경이 된다. 부모의 공동육아가 아닌, 한쪽 부모의 독박 육아는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만큼 자녀의 통제와 집착이 심해지는 것도 원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때로 아이는 부모에게 종교가 되고, 자기 아이의 신성함이 모독되고 붕괴되었을 때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며 면죄부를 찾기도 한다. 그 뒤에는 부모의 자기 증오와 자기 연민이 있고, 그 사랑과 기적을 바라면서 아이를 바라보기에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독이 되는 순간이다.
사회적 트라우마 전문가이고, 교사들의 지킴이, 아이들 마음의 통역사로 소개되는 저자의 이력을 듣고 읽으니, 얼마나 이 문제를 심각하고 깊게 바라보고 있는지,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고심하는 게 보인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3장이 ‘괴물 부모 현상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제언’이다. 높은 교육비와 주거비, 가부장적 문화의 더딘 변화, 이런 이유들로 앞서 말한 심각한 저출생 위기가 이 문제의 바탕에 있다. 여기에 그 밖의 사회문제가 더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사회의 괴물화는 이렇게 이루어져왔고, 그 해결을 위해 우리는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 이에 저자는 몇 가지를 제안한다. 괴물화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재발견하며, 괴물 부모 현상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책도 언급한다. 괴물 부모의 심리를 파고들면서도, 이는 개인의 일탈적 문제로만 보지 않고, 평범한 시민을 괴물 부모로 만들고 왜곡된 심리를 촉발시키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더 깊게 본다.
저자는 우리가 괴물화 과정에서 냉소주의를 얻고 진심을 잃었다고, 우리의 이기주의도 본성이지만 이타주의도 우리의 중요한 본성임을 재인식해야 한다고, 이는 공동체 회복의 과정이며, 우리가 진심과 공동체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한 사회가 생존하려면 개인과 집단이 함께 성장해야 하고, 자율과 연대가 동시에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부분 듣다 보니, 너무 익숙하다. 그렇게 익숙한데도 꾸준히 강조되는 걸 보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하고 필수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경쟁 앞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고 복원해야 하며, 협력과 소통, 공감의 가치를 믿고 사회를 새롭게 만들고자 애쓰는 많은 이와 함께 했을 때 내 아이가 잘 되는 결과를 얻는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시켜야 하는 체제는 왜곡되었으며, 우리의 정체성은 타인으로부터 오고 공동체로부터 형성된다고 한다. 진정 자신을 위하는 것은 타인을 위하는 것과 공존한다고. 거기에 사회적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이 더해진다. 괴물 부모에 대한 사회적 고발과 연구가 본격화 되어야 하고, 새로운 학부모 운동의 출현을 기대하며, 괴물 부모 자녀의 실태 및 괴물 부모의 양육에 의한 사건 사고에 관해 사회적 고발과 연구의 확대, 교육계의 효과적이고 새로운 대응책 활성화를 말한다.
괴물 부모의 탄생과 현상, 대책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들어왔던 건, 괴물 부모의 자녀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 속 어떤 아이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녀도 갖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던데, 그렇게 말하게 된 이유가 어느 정도 눈에 보이기도 한다. 부모와의 삶이 힘들었을 거다. 부모가 신처럼 받드는 자식이라는 대상을 갖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을 알 것 같다.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 많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듣고 나니, 이 문제 해결에 많은 이가 참여하고 관심 두어야 할 의미가 분명했다. 교실의 비통함이 학교의 문제로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해결과 공동체의 긍정적인 변화로 나아가길 바라는 저자의 간절함이 많은 독자, 부모에게 가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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