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평온을 아껴주세요 - 마인드풀tv 정민 마음챙김 안내서
정민 지음 / 비채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이 어지러움을 느끼는 순간들. 나에게만 찾아오는 불안의 순간은 아니지? 누구에게나 한 번은 찾아오는 불안과 초조의 느낌이 아닐까 싶다. 한번 그러고 지나가면 그만일 텐데, 이상하게도 무슨 고질병처럼 한번이 아니라 수시로 찾아오곤 한다. 마음이 편하지 못하니 자꾸 불안함은 커지고, 빨리 해결하지 못 하는 일 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잠을 깊이 자는 건 더 어려워진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낮의 시간이 무너져 내린다. 이대로 일상을 무너뜨리고 계속 불안한 시간을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기에, 우리는 그 불안의 순간을 물리칠 방법을 생각한다. 끊임없이 이 위기를 떨치고 싶어 한다. 휴대전화에 집중하며 현실의 문제를 잊고 싶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 감정의 문제를, 내가 찾아야 할 평온을 현실에서 해결해야 한다. 저자의 명상은 그런 의미로 우리를 평온하게 하기 위한,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며 일상의 불안을 떨칠 방법이 된다.

 

초등학교 때의 여름방학을 기억하시나요? 마음 놓고 쉬다가 개학일이 가까워지면 그제서야 헐레벌떡 방학 숙제를 하던 그때 말입니다. 후회와 걱정 사이를 널뛰기하듯 옮겨 다니지 않고 매 순간을 살았기에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았던, 참 좋은 나날이었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본성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본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134페이지)

 

생각을 중단하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 가장 우선이다. 이 책은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문장으로 옮겨온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막연하게 알던 명상을 차분하게 알려준다. 명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상으로 우리는 어떤 평온을 맞이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얼핏 명상은 종교적인 의미가 강하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명상 그 자체에 빠져들면서 내 마음의 평온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게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닐까 한다.

 

명상은 어떻게 하는 걸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명상을 굉장히 멀리 있는 것으로 여겼다. 특정한 자세로 있어야 하고, 고요하고 또 고요한 장소가 필요하며, 어디로 가서 뭘 배우는 명상의 특정 장소로 찾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옷차림도 정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말을 듣다 보면, 명상은 그 어떤 물리적인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은 가장 편하고 가장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의 안정이었다.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지 않으며, 내가 가장 편한 복장으로 임하면 된다. 결가부좌(가부좌의 자세로 앉는 좌법)로 있는 것도 좋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반가부좌여도 괜찮다. 내가 편하게 앉아서 마음을 비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결가부좌를 먼저 말하는 건 그 자세가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주기 때문인데, 누구나 그 자세로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더 어려운 자세이기도 하기에 그냥 의자에 앉아서 명상해도 괜찮은 거다. 자세가 불안하고 불편하면 마음을 평온은 어려워지기 때문에, 꼭 자세에 대한 강요는 의미 없어 보인다.

 

그렇게 자세를 알게 되고, 이제는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면 된다.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주변의 소음에 무감각해지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한다. 이렇게 되면 생각을 안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싶겠지만, 명상은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명상은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생각이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면서 살아가지 못하기에 언제나 그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며 사는 게 익숙했을 텐데, 명상하면서 우리가 그 감정이나 억누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감정과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데, 이는 또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만은 없기에 명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존재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게 함으로써 외부 자극과 무관하게 맑은 마음과 머리로 매일 행복하고 상쾌하게 살아가게 하는 명상을 강조하는 게 저자의 말이다.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는 것. 내 마음의 평온으로 가는 길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면 좋지만, 그게 또 쉬운 일은 아니기에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시간에 꾸준히 하면 된다. 하루 10분이어도 좋고, 시간이 된다면 점점 명상의 시간을 늘려가면 된다. 보통 하루에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마음을 맑게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명상을 했다면, 저녁에는 오늘 하루의 돌아봄과 내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생각으로 명상을 마무리한다. 특히 1부에는 명상을 소개하고 명상 준비를 말해주면서 명상의 시작을 열었다면, 2부에서는 각 상황에 맞는 명상의 방법과 마음가짐을 언급한다. 그냥 앉아서 눈을 감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만일 것 같았는데, 우리가 부딪히는 온갖 감정의 순간을 나누어 정리하면서 그 불안과 마음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명상을 소개한다. 통증 완화를 위한 셀프 힐링, 과거의 상처를 돌보기 위한, 원망하고 미운 사람을 용서하려는 마음, 수시로 찾아오는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는 나무 명상, 나를 마주하며 비우기 위한 명상 등 우리의 일상을 차지하는 거의 모든 순간의 마음을 다스린다. 결국 내 삶의 주도권이 나의 것임을 알게 하는 시간이다.

 

3부에서 소개하는 묻고 답하기의 시간은 명상을 더 안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명상하면서 바뀌는 감정의 변화가 또 다른 불안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느낄 때 답을 찾게 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애쓰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을 묻기도 한다. 좋은 생각만 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얻고 싶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질투와 열등감으로 괴로운데 마음을 다잡기는 힘들고, 때로는 무기력한 일상을 어떻게 떨쳐야 하는지 묻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찾아오는 생각들에 놀라거나 저항하지 않고 호흡을 이어간다고 한다.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 일어나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내면이 고요해졌다고 느껴질 때까지 이어간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마음이 비워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결국은 시간의 문제라고 말한다.

 

자꾸 정답을 얻으려 하는 마음은 내재된 불안에서 시작됩니다. 사실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나면 생각지도 못했던 자유를 얻게 되죠. 어떤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편안하게 하는지, 어떤 것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를 관찰하고 내 안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보는 것이 정말로 평온해지는 비결입니다. (14페이지)

 

내 삶의 주도권이 내게 있음을 깨닫는 길이 명상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내 마음과 생각을 내 뜻대로 하지 못할 때 평온이 깨지는 것 같다. 그 평온을 만들고 유지하는 게 명상이라고 생각하면, 명상은 나를 안정되게 만드는 더없는 방법이리라. 무엇보다 마음을 비우고 나를 평온하게 만드는 명상에 빠져들게 하는 시간이었다. 명상이 우리 일상의 불안과 부정적인 것들을 한 번에 사라지게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명상으로 나를 비우며 일상의 안정을 찾아가려는 시도는 가능하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이제까지 명상의 벽을 가졌던 이들에게 명상의 길을 열어주는 좋은 지침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눈팔기 을유세계문학전집 1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고 해서 더 궁금한 작품이기도 했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에 더 관심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 겐조는 해외 유학에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한다.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그의 성장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는 지식인이 되어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간다. 고급 관료의 딸인 아내와 결혼도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친정에서의 생활과 결혼 이후의 삶이 다른 것을 비교하곤 한다. 남편이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내는 남편을 돈벌이에 관심 없는 괴짜로 보기도 한다. 어느 날 그에게 예전 양부가 찾아오면서 그는 과거의 망령에 시달린다. 그의 주변 사람들, 양부와 누나 형, 심지어 그의 장인까지 그에게 찾아와 경제적 도움을 요청한다. 이제 그의 모든 일상은 돈과 연결되어 있었고, 아내와의 갈등도 커진다. 그렇다고 주변인의 도움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의 형편에 겨우 돈을 마련해서 그들의 요구를 해결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을까? 돈이 없어서 병원 문턱에도 못 가보고 죽은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돈으로 인간의 목숨까지 주관할 수 있다는 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테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인간의 감정에 얽힌, 사랑과 우정, 가족과 같은 문제는 돈과 연관이 없다고, 돈으로 계산하거나 돈이 끼어들 이유가 없는 관계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미 어린 시절에 돈으로 거래되는 인간관계를 경험했다. 돈 때문에 자식을 입양하고 파양하고, 다시 또 돈 때문에 파양한 자식에게 찾아오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을 보면 인간관계가 금전 관계에 지배당하기도 한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주인공 겐조는 이러한 돈이 중심이 되는 관계에서 고민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가진 삶의 방향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부자가 되는 것과 위대해지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사실 나는 읽으면서 이 부분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위대해진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는 자기 삶의 위대함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돈이 휘두르는 인간의 삶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듯하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면 되는 일인데, 실상 현실에서 마주치는 돈 문제는 그 인간다움을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기억할 테지. 그러니 돈 앞에서 추해지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느니 자기 명예를 가진 삶을 누리고자 한 것은 아닐까. 그는 자기가 추구하는 문학이나 글쓰기, 강의하는 것을 위대한 삶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난에 허덕이는 오늘이 현실인데도 그가 추구하는 삶을 바라보기만 하는 거였다. 그런 그를 보고 아내는 남편의 시원찮은 돈벌이를 한탄하고, 남편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한다. 현실을 보지 못하고 그가 바라는 이상향만 추구하는 남편에게 아는 어떤 관계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지.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이 바라는 아내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누가 누굴 탓할 수는 없으니까.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에 어려웠던 작품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흔히 말하는 염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인간이기에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었는데, 겐조가 경험한 인간다움은 돈 앞에서 한없이 무너져내린다.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겐조 앞에 나타난 양부나 누나, , 장인과 같은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겐조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해질 때, 누구에게 손을 벌려야만 할 때가 생긴다면 한때의 인연으로 비빌 언덕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인연을 빌려와서, 그것도 가슴에 멍을 들게 한 잔인함을 기억할 대상에게 기대야 한다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건 아마도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겐조가 볼 때 누구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인생이 없을 것이다. 필요에 따라 키우고 버리는 양부의 행태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인제 와서 손을 내미는 것은 양부의 추레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학교수의 누나이면서도 문맹인 누나는 기침을 달고 살며 수다가 끊이지 않는 여자다. 불량한 남편을 생각하면 누나가 안쓰럽지만 동시에 창피하다. 두루뭉술 자존감 없이 살아가는 겐조의 형 역시 그는 한심하게 여긴다. 가진 게 많을 때는 그를 무시하는 듯하다가 사위에게 돈을 빌리러 오는 장인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다른 시선을 보게 되기도 한다. 나는 나로 살며 나의 인생을 바라보지만, 타인 역시 자기 삶을 누리며 자기 모습을 본다. 각자의 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그저 그뿐이라는 진리를 얻은 건 아니었을까. 결국, 각자 자기에게 맞게 살아가며 자기 행복을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 각자의 삶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의 삶에 찾아와 존중을 망각해버린 인물들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기의 실제 이야기를 소설에 담으면서 자기 행복을 더 강조하게 되는 건 아니었을까 싶다. 끊기 어려운 인간관계로 비롯한 불행의 시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게 한다.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건 한 개인의 문제로 머물지 않는 사회적 관습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한다. 가족이니까, 형이고 누나니까, 너를 키웠으니까, 아내의 아버지니까. 개인의 삶을 존중하기보다는 공동체이니까 강요되는 것들을 중시하던 사회에서 개인을 위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의 시간을 담아낸 것 같다.


겐조는 오로지 금전상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 욕심을 한참 못 따라가는 유치한 잔머리를 최대한 굴리고 있는 노인을 차라리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움푹 들어간 눈을 지금 반투명 유리 덮개에 갖다 대고 연구라도 하는 것처럼 어둑신한 등불을 응시하고 있는 그가 가엾어 보였다.

그는 이렇게 늙었다.’

시마다의 평생을 압축한 듯한 한마디를 눈앞에 떠올린 겐조는 자신이 과연 어떻게 늙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는 신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하지만 그때 그의 마음엔 분명 신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만약 그 신이 그의 일생을 통찰한다면 이 탐욕스러운 노인의 일생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136~137)


원작의 제목을 풀이하면 길가의 풀이라고 하는데, 인생에서 길가의 풀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담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삶의 방향을 보고 가는데, 누구에게나 바라는 삶의 목적지가 있을 텐데, 그 길을 그대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인지도. 그 방해 요소의 대부분은 돈이겠지만, 돈을 품은 인간의 이기심이 체념과 예의를 넘어서는 것일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쉽게도, 젊은 시절의 탐정 사와자키를 모른다. 그가 와타나베와 함께 꾸려간 탐정사무실의 분위기나 그들에게 찾아온 의뢰인들의 사정, 사건의 모습, 해결 과정에서 나올 탄식의 감동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한 번은 만나야 할 시리즈이자 작가 하라 료의 작품들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기회에 50대에 들어선 사와자키를 먼저 만나게 될 줄이야. 그래도 어색하지 않았다. 나이를 따지지도 않고, 전작의 사와자키 활약을 모른다고 해도, 이 작품을 읽는 일에 큰 문제는 없다. 그저, 그의 젊은 시절 활약을 모른 채로 읽었기에 지금의 감동이 전부는 아닐 거라는 아쉬움이 클 뿐이다.


150만 독자가 열광했다는 하라 료의 하드보일드 문학, 평생 한 시리즈만 집필해왔다는 작가의 끈기를 더 눈여겨보게 하는 사와자키 시리즈. 일본 하드보일드 역사이자 전설로 새겨졌다는 시리즈의 작품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작품이 세상에 태어나는 데 1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떤 작품이기에 그 오랜 세월을 담아내야 했는지 궁금했다. 막상 읽어보니 시리즈의 연장선이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작품으로만 만나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사와자키는 또 다른 작품으로 독자에게 다가오겠지만, 이 작품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봐도 모자랄 것 없다.


신주쿠 뒷골목의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역시 세월의 색을 입었다. 이제 50대에 접어든 탐정 사와자키. 어느 날 중년의 신사가 그의 사무실을 찾는다. 은행의 지점장이라고 말하는 그의 의뢰는 은행의 어느 고객 뒷조사를 해달라는 것. 상당한 수수료를 받고 의뢰에 착수한 사와자키는 곧 뒷조사의 대상이 사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에 따른 진행 상황을 의뢰인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의뢰인은 연락이 닿지 않고, 오히려 의뢰인을 만나러 간 은행에서 복면강도와 마주치는 일이 발생한다. 사와자키가 의뢰인을 만난 건 의뢰인이 처음 탐정사무실로 찾아왔던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을 마주하면서 그는 도대체 누구인지 모를 의뢰인의 정체를 찾아내야만 했다.


읽으면서 이 작품의 주된 사건은 무엇인가 파헤쳐야만 했다. 의뢰인은 의뢰를 맡기고 사라졌고, 갑자기 은행에 나타난 복면강도는 허무하게 붙잡혔다. 누구인지 정말 알 수 없는 이의 집에서는 욕실에서 사람이 사망한 채로 있었고, 연관도 없어 보이는 야쿠자는 그를 찾아와 귀찮게 하기까지 한다. 서로 연결될 게 없는 두 개의 상황이 그를 복잡하게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이 소설을 읽는 나의 시선일 뿐이다. 막상 이 사건을 대하는 사와자키의 머릿속은 간단하지 않았을까? ^^ 이미 죽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그를 뒤쫓는 야쿠자의 발자국들은 돈에 얽힌 다른 이야기를 채워간다. 그리고 그 주변에 존재하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써 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버지를 찾고 싶은 청년의 세상살이는 사와자키를 만나면서 삶의 자세 하나를 배웠을 테지. 사와자키 역시 젊은이의 바람과 인생을 한 번 더 엿보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그러면서 지나온 자기 삶을 반추하게 될지도 모르지. 어쨌든 예고 없이 찾아온 사건과 사람들에게서, 사건과 연관되었지만 사건과 상관없이도 채워가는 마음이 있었다.


굉장히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이는 탐정 캐릭터였다. 물론 의뢰인의 맡긴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주관적이어서도 안 되고, 탐정 개인의 감정이 담겨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이기에 보일 수 있는 어떤 틈이 생기기 마련인데, 사와자키는 맺고 끊는 게 분명하게 보이는 한 사람의 캐릭터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면서 무심하게 내뱉는 한마디는 가슴에 꽂히기 일쑤였다.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담담하게 보고 부딪혔다. 때로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 뛰어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더라. 어떤 계산이 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문장 곳곳에서 보이는 그의 활약은 정의를 바탕에 둔 그 자체였다. 꼬리를 물 듯 이어지는 사건 앞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그의 심장은 뭐로 만들어졌을지 궁금할 정도였다. 이야기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고, 이 시대에 휴대전화 없이 탐정 활동을 한다는 아날로그적 방식도 매력적이다.


전작에 관해 살펴보면서 이 책을 읽었다. 사와자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을 읽는데 그를 더 잘 알고 싶기도 해서다. 이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신주쿠 경찰서의 니시고리, 다지마, 야쿠자인 하시즈메, 사가라, 그가 이용하는 전화 응답 서비스의 허스키 보이스 여성, 르포라이터 나오키. 전작들에서 꾸준히 함께해온 인물들이었으리라. 이번에도 그들의 협조로 탐정 사와자키는 차분하게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그의 머릿속에 담긴 사건의 해결 방식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막상 어느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의 철저한 계획이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싶은. 냉소적이고 무관심해 보이던 시선까지 그의 일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 그런 것을 보다 보니 전작이 더 궁금해진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 그의 활약은 분명 더 흥미롭고 활동적이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 일본어학개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황별로 배우는 일본어 경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