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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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젊은 시절의 탐정 사와자키를 모른다. 그가 와타나베와 함께 꾸려간 탐정사무실의 분위기나 그들에게 찾아온 의뢰인들의 사정, 사건의 모습, 해결 과정에서 나올 탄식의 감동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한 번은 만나야 할 시리즈이자 작가 하라 료의 작품들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런 기회에 50대에 들어선 사와자키를 먼저 만나게 될 줄이야. 그래도 어색하지 않았다. 나이를 따지지도 않고, 전작의 사와자키 활약을 모른다고 해도, 이 작품을 읽는 일에 큰 문제는 없다. 그저, 그의 젊은 시절 활약을 모른 채로 읽었기에 지금의 감동이 전부는 아닐 거라는 아쉬움이 클 뿐이다.


150만 독자가 열광했다는 하라 료의 하드보일드 문학, 평생 한 시리즈만 집필해왔다는 작가의 끈기를 더 눈여겨보게 하는 사와자키 시리즈. 일본 하드보일드 역사이자 전설로 새겨졌다는 시리즈의 작품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작품이 세상에 태어나는 데 1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떤 작품이기에 그 오랜 세월을 담아내야 했는지 궁금했다. 막상 읽어보니 시리즈의 연장선이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작품으로만 만나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사와자키는 또 다른 작품으로 독자에게 다가오겠지만, 이 작품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봐도 모자랄 것 없다.


신주쿠 뒷골목의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역시 세월의 색을 입었다. 이제 50대에 접어든 탐정 사와자키. 어느 날 중년의 신사가 그의 사무실을 찾는다. 은행의 지점장이라고 말하는 그의 의뢰는 은행의 어느 고객 뒷조사를 해달라는 것. 상당한 수수료를 받고 의뢰에 착수한 사와자키는 곧 뒷조사의 대상이 사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에 따른 진행 상황을 의뢰인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의뢰인은 연락이 닿지 않고, 오히려 의뢰인을 만나러 간 은행에서 복면강도와 마주치는 일이 발생한다. 사와자키가 의뢰인을 만난 건 의뢰인이 처음 탐정사무실로 찾아왔던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을 마주하면서 그는 도대체 누구인지 모를 의뢰인의 정체를 찾아내야만 했다.


읽으면서 이 작품의 주된 사건은 무엇인가 파헤쳐야만 했다. 의뢰인은 의뢰를 맡기고 사라졌고, 갑자기 은행에 나타난 복면강도는 허무하게 붙잡혔다. 누구인지 정말 알 수 없는 이의 집에서는 욕실에서 사람이 사망한 채로 있었고, 연관도 없어 보이는 야쿠자는 그를 찾아와 귀찮게 하기까지 한다. 서로 연결될 게 없는 두 개의 상황이 그를 복잡하게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이 소설을 읽는 나의 시선일 뿐이다. 막상 이 사건을 대하는 사와자키의 머릿속은 간단하지 않았을까? ^^ 이미 죽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그를 뒤쫓는 야쿠자의 발자국들은 돈에 얽힌 다른 이야기를 채워간다. 그리고 그 주변에 존재하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써 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버지를 찾고 싶은 청년의 세상살이는 사와자키를 만나면서 삶의 자세 하나를 배웠을 테지. 사와자키 역시 젊은이의 바람과 인생을 한 번 더 엿보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그러면서 지나온 자기 삶을 반추하게 될지도 모르지. 어쨌든 예고 없이 찾아온 사건과 사람들에게서, 사건과 연관되었지만 사건과 상관없이도 채워가는 마음이 있었다.


굉장히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이는 탐정 캐릭터였다. 물론 의뢰인의 맡긴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주관적이어서도 안 되고, 탐정 개인의 감정이 담겨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이기에 보일 수 있는 어떤 틈이 생기기 마련인데, 사와자키는 맺고 끊는 게 분명하게 보이는 한 사람의 캐릭터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면서 무심하게 내뱉는 한마디는 가슴에 꽂히기 일쑤였다.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담담하게 보고 부딪혔다. 때로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 뛰어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더라. 어떤 계산이 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문장 곳곳에서 보이는 그의 활약은 정의를 바탕에 둔 그 자체였다. 꼬리를 물 듯 이어지는 사건 앞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그의 심장은 뭐로 만들어졌을지 궁금할 정도였다. 이야기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고, 이 시대에 휴대전화 없이 탐정 활동을 한다는 아날로그적 방식도 매력적이다.


전작에 관해 살펴보면서 이 책을 읽었다. 사와자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을 읽는데 그를 더 잘 알고 싶기도 해서다. 이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신주쿠 경찰서의 니시고리, 다지마, 야쿠자인 하시즈메, 사가라, 그가 이용하는 전화 응답 서비스의 허스키 보이스 여성, 르포라이터 나오키. 전작들에서 꾸준히 함께해온 인물들이었으리라. 이번에도 그들의 협조로 탐정 사와자키는 차분하게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그의 머릿속에 담긴 사건의 해결 방식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막상 어느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의 철저한 계획이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싶은. 냉소적이고 무관심해 보이던 시선까지 그의 일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 그런 것을 보다 보니 전작이 더 궁금해진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 그의 활약은 분명 더 흥미롭고 활동적이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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