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기 을유세계문학전집 1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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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고 해서 더 궁금한 작품이기도 했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에 더 관심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 겐조는 해외 유학에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한다.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그의 성장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는 지식인이 되어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간다. 고급 관료의 딸인 아내와 결혼도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친정에서의 생활과 결혼 이후의 삶이 다른 것을 비교하곤 한다. 남편이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내는 남편을 돈벌이에 관심 없는 괴짜로 보기도 한다. 어느 날 그에게 예전 양부가 찾아오면서 그는 과거의 망령에 시달린다. 그의 주변 사람들, 양부와 누나 형, 심지어 그의 장인까지 그에게 찾아와 경제적 도움을 요청한다. 이제 그의 모든 일상은 돈과 연결되어 있었고, 아내와의 갈등도 커진다. 그렇다고 주변인의 도움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의 형편에 겨우 돈을 마련해서 그들의 요구를 해결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을까? 돈이 없어서 병원 문턱에도 못 가보고 죽은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돈으로 인간의 목숨까지 주관할 수 있다는 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테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인간의 감정에 얽힌, 사랑과 우정, 가족과 같은 문제는 돈과 연관이 없다고, 돈으로 계산하거나 돈이 끼어들 이유가 없는 관계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미 어린 시절에 돈으로 거래되는 인간관계를 경험했다. 돈 때문에 자식을 입양하고 파양하고, 다시 또 돈 때문에 파양한 자식에게 찾아오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을 보면 인간관계가 금전 관계에 지배당하기도 한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주인공 겐조는 이러한 돈이 중심이 되는 관계에서 고민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가진 삶의 방향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부자가 되는 것과 위대해지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사실 나는 읽으면서 이 부분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위대해진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는 자기 삶의 위대함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돈이 휘두르는 인간의 삶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듯하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면 되는 일인데, 실상 현실에서 마주치는 돈 문제는 그 인간다움을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기억할 테지. 그러니 돈 앞에서 추해지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느니 자기 명예를 가진 삶을 누리고자 한 것은 아닐까. 그는 자기가 추구하는 문학이나 글쓰기, 강의하는 것을 위대한 삶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난에 허덕이는 오늘이 현실인데도 그가 추구하는 삶을 바라보기만 하는 거였다. 그런 그를 보고 아내는 남편의 시원찮은 돈벌이를 한탄하고, 남편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한다. 현실을 보지 못하고 그가 바라는 이상향만 추구하는 남편에게 아는 어떤 관계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지.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이 바라는 아내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누가 누굴 탓할 수는 없으니까.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에 어려웠던 작품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흔히 말하는 염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인간이기에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었는데, 겐조가 경험한 인간다움은 돈 앞에서 한없이 무너져내린다.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겐조 앞에 나타난 양부나 누나, , 장인과 같은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겐조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해질 때, 누구에게 손을 벌려야만 할 때가 생긴다면 한때의 인연으로 비빌 언덕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인연을 빌려와서, 그것도 가슴에 멍을 들게 한 잔인함을 기억할 대상에게 기대야 한다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건 아마도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겐조가 볼 때 누구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인생이 없을 것이다. 필요에 따라 키우고 버리는 양부의 행태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인제 와서 손을 내미는 것은 양부의 추레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학교수의 누나이면서도 문맹인 누나는 기침을 달고 살며 수다가 끊이지 않는 여자다. 불량한 남편을 생각하면 누나가 안쓰럽지만 동시에 창피하다. 두루뭉술 자존감 없이 살아가는 겐조의 형 역시 그는 한심하게 여긴다. 가진 게 많을 때는 그를 무시하는 듯하다가 사위에게 돈을 빌리러 오는 장인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다른 시선을 보게 되기도 한다. 나는 나로 살며 나의 인생을 바라보지만, 타인 역시 자기 삶을 누리며 자기 모습을 본다. 각자의 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그저 그뿐이라는 진리를 얻은 건 아니었을까. 결국, 각자 자기에게 맞게 살아가며 자기 행복을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 각자의 삶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의 삶에 찾아와 존중을 망각해버린 인물들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기의 실제 이야기를 소설에 담으면서 자기 행복을 더 강조하게 되는 건 아니었을까 싶다. 끊기 어려운 인간관계로 비롯한 불행의 시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게 한다.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건 한 개인의 문제로 머물지 않는 사회적 관습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한다. 가족이니까, 형이고 누나니까, 너를 키웠으니까, 아내의 아버지니까. 개인의 삶을 존중하기보다는 공동체이니까 강요되는 것들을 중시하던 사회에서 개인을 위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의 시간을 담아낸 것 같다.


겐조는 오로지 금전상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 욕심을 한참 못 따라가는 유치한 잔머리를 최대한 굴리고 있는 노인을 차라리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움푹 들어간 눈을 지금 반투명 유리 덮개에 갖다 대고 연구라도 하는 것처럼 어둑신한 등불을 응시하고 있는 그가 가엾어 보였다.

그는 이렇게 늙었다.’

시마다의 평생을 압축한 듯한 한마디를 눈앞에 떠올린 겐조는 자신이 과연 어떻게 늙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는 신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하지만 그때 그의 마음엔 분명 신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만약 그 신이 그의 일생을 통찰한다면 이 탐욕스러운 노인의 일생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136~137)


원작의 제목을 풀이하면 길가의 풀이라고 하는데, 인생에서 길가의 풀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담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삶의 방향을 보고 가는데, 누구에게나 바라는 삶의 목적지가 있을 텐데, 그 길을 그대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인지도. 그 방해 요소의 대부분은 돈이겠지만, 돈을 품은 인간의 이기심이 체념과 예의를 넘어서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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