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위한 일본소설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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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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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초, 알람처럼 문자가 온다. 세대 내 가스 검침을 해서 문자로 회신 달라고. 처음에는 이런 걸 왜 고객에게 하라고 하느냐고 생각했는데, 당연하게도 가스계량기가 세대 내에 있으니 검침원이 방문하기 어려웠겠구나 싶다. 바로 확인하면 문자 받고 바로 회신하지만, 나도 깜빡하고 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이틀 후 다시 문자가 온다. 기한 내에 검침 숫자를 입력해 달라고 말이다. 어김없이 이번 달 초, 마침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쯤 도착한 문자였다. 책 읽던 것을 멈추고 바로 가스 검침 숫자를 입력했다. 그동안에는 번거롭다고만 생각했던 것이, 내가 직접 가스 검침하는 것이 전혀 번거로운 일이 아닌 게 됐다. 중간착취의 피해자가 된 가스 검침원의 일과를 알게 돼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들에게는 하루에 몇 가구를 돌고 몇 시간을 노동하면서도 제대로 받지 못할 임금이었다고 알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분명 잘못된 것인데,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현실에 막막함은 배가 됐다. 많은 노동자가 겪는 중간착취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사의 연재를 몇 편 봤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의아하면서도 제대로 다 챙겨보지 못하고, 시간도 흘렀기에 잊고 있었다. 아직 나의 일이 아니었기에 그 관심에서 멀어진 거다. 그러다가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바로 읽게 됐다. 물론 기사를 찾아보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같이 듣는 게 보다 정확하고 넓게 접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내가 느낀 이 책은 기사 이면의 이야기까지 더해져서인지 중간착취의 생생함은 더 컸다. 346만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떼인 돈은 그냥 돈이 아니었다. 그들의 생계였고, 미래였다. 오늘을 더 보람있게 살았다는 증거였다. 그런 노동자에게 직접 고용이 아닌 간접고용, 용역이나 파견의 형식은 어떻게 합법적으로 되었나 궁금했다. 그동안에도 비정규직, 계약직은 있었다. 이런 고용 방식이 낯설지 않게 되었던 건 IMF 영향이 크다고 한다.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면서 도입한 방식이었고, 노동자의 권리는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용자로서도 굳이 정규직을 두는 것보다 비용도 절감하고 아무 때나 해고할 수 있는 용역이 더 나은 일일 테다. 중간착취가 합법적으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면서 노동자를 좌절시킨다. 미래를 보지 못하게 한다. 이보다 더 악질적인 고용 방식이 있을까?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너는 나와 계약한 사이이고, 나는 원청과 계약한 사이이고, 나는 원청에 노동자를 보내야 하는 게 임무고, 너는 원청으로 가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계약을 이행하는 거고.’ 뭐 이런 취지였겠지? 그리고 너(노동자)와 나(하청의 대표) 사이에 존재하는 수수료의 문제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이 간단한 문제가 간단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선을 넘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넘어갈 적정선이라는 게 있다. 그 선을 지켰다면 착취라는 말이 나오지도 않았겠지. 이 책에서 만난 노동자의 이야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기에 울분을 토하고야 만다. 내가 받는 금액이 왜 그 금액으로 책정되었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한데도, 누구도 그걸 설명해주지 않는다. 투명한 계산을 보여주지 않는다. 닥치고 그 돈 받고 일을 하던지, 아니면 그만두든지. 흔하면서도 두려운 그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당신 아니고도 일할 사람 널렸어.


처음 기자들이 이 주제로 노동자를 취재하고 업체를 파헤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정도일 거로 생각하진 않았을 것 같다. 여러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의심을 확인해야 했고, 그 확인 과정에서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피눈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을 거다. 간접 고용된 노동자들이 도급계약서를 보여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었고,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일 출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내 권리를 찾는 건 당연한데, 그 당연한 게 너무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해마다 최저임금은 오르는데 왜 급여는 그대로인지 물어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앞에서 가스 검침원 이야기를 가장 먼저 떠올렸는데, 주변에 봐도 전기검침이나 가스 검침을 다니시는 분 중에 여성분을 많이 봤다. 막연하게 여자들도 할 수 있는 육체노동의 강도인가 보다 생각했다. 아니었다. 정규직으로 고용될 수 없는 상황,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일을 해야 했기에 그나마 시간 활용이 좋다는 이유로 시작한 분도 많았다. 과연 그럴까. 막상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의 얘기를 들어보면 시간 절약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몇천 가구를 혼자 다니면서 검침해야 했고, 비대면 시대에 그 검침도 쉽지 않았다. 각 가정을 돌면서 확인하는 일도 시간이 꽤 소요됐다. 절대 놀면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화폐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의 시간이 많았던 거다. 업체 대표가 그걸 몰랐을까? 아니다. 노동자들의 고충은 무시하고 급여를 쥐어짜면서 그들은 주머니를 채웠다. 앉아서 착복했다. 건물에서 청소하시는 분, 급식실의 조리사, 아파트 관리실의 직원이나 경비, 대기업의 하청 직원, 위험한 현장에서 몸을 다쳐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위치에 있는 많은 노동자가 간접고용의 피해자였다.


이들이 버는 돈은 얼마나 될까. 저자들이 인터뷰한 간접고용 노동자 100여 명 중 절반은 월급이 백만 원대였다. 이백만 원을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파견직 사무보조원, 국립해양박물관의 청소 노동자, 국립해양박물관 주차관리원, 아파트 경비원,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상담사, 신입 IT 개발자,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 파견 노동자, 건설 현장의 노동자 등 겨우 최저임금 수준만 맞춰놓은 급여였다. 연차가 쌓여도 똑같았다. 숙련된 경험이 있어도 마찬가지. 보통의 우리 삶은 이런 것이지 않은가. 열심히 일하고 땀 흘리며 버는 돈으로 우리 삶을 누리는 거, 하루하루 일하면서 쌓이는 경험만큼 월급도 오를 거라는 바람.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금액의 월급을 받으면서 사는 이들이 생각하는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최저시급이 오른다고 좋아하지 못하는 이유다. 오른 시급만큼 삭감되는 기본급 외의 항목들이 눈물 난다. 저자들이 인터뷰한 100여 명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간접고용으로 같은 고통을 겪는 노동자 346만 명의 모습이다.


사실, 이렇게 분노하면서 얘기하고 있지만, 내가 여기에서 몇 마디로 말하는 것보다 직접 이 책을 읽고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많은 이야기를 여기에 다 옮길 수도 없고, ‘중간착취의 지옥도라는 말이 얼마나 잘 표현한 일인지 알게 될 거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뿌듯하게 채우고 싶은데, 현실은 내가 피··눈물을 흘리며 일한 대가를 떼가는 사람들 때문에 내 땀이 제값을 못 받는다면, 나의 노동이 얼마나 자존감 떨어지는 일이 되는지. 이대로 계속 일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현실이 얼마나 구차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저자들은 묻는다. 나의 노동의 대가를, 수십에서 수백만 원을 늘 떼어간다면 어떨 것 같은지. 그 질문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중간착취의 현실이 지옥도였음을 보여준다. 매체에서 여러 번 접한 상황들, 현장 근로자로 일하면서 다치거나 죽는 일이 생겨도 열악한 근로 환경만 드러나면서 그 고용 구조에 대해서는 금세 묻히고야 마는 반복적인 결과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간접고용의 피해자가 된 그들과 언제 우리의 일이 될지 모를 이 부조리한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경험과 숙련도가 화폐가치가 되지 못하는 노동자-하청업체-원청이라는 피라미드 구조의 변화로 가능한 일을 어떻게 이뤄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처음 신문 기사로 접했던 몇 가지보다 훨씬 크고 많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공공기업 포함)도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문득 업체의 위장 폐업을 보니 이런 생각도 들더라. 진화하는 보이스 피싱이 여기에도? 노동자의 퇴직금과 잔여 임금까지 착취하는 모양새가, 참으로 그 수법이 참신하고 교묘하고 뻔뻔했다. 더 슬펐던 건, 을이 을을 착취하는 방식이었다. 원청()은 그 자리에서 손끝으로 휘두르는 권력에, 밑의 을은 또 다른 을을, 병을, 정을 쥐어짜는 구조가 지독하게 절망적이었다. 이 악행은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분명 달라져야 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희망적이라고 웃어야 할지, 이렇게까지 해야 바위를 두드릴 수 있는 것인지 울고 싶을 정도로, 저자들의 노력은 끝이 없었다. 사실 보도 이상을 해내고 있었다. 도급비 산출 내역서를 확인하면서 착취의 근거를 파헤쳤다. 노동자에게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떼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찾아냈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착취가 그 돈이 모이는 곳이었으며, 이런 흐름을 용인하는 것 중의 하나가 법이었다. 그래서 법 제정에까지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 저자들이었다. 관련 법 개정과 기존 법 개정안을 요구한다. 용역업체가 노동자의 임금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파견 수수료는 정해진 만큼만 받게 하면서, 원청도 사용자임을, 간접고용 노동자를 위한 보호법을 만들자고 외친다. 이대로 그냥 침묵하고 머물러 있다면, 떼이고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면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길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법 제정(개정)이 우리의 바람처럼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지도, 생각보다 오랜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계속 소리치고 부딪혀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는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고,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래서 저자들의 입법을 위한 외침이 고맙다.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이 작은 시작이, 끈질긴 노력이 가져다줄 변화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더 확실히 알게 된 사실, 중간착취 피해의 중심에 내 남편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차마 그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없었다. 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했으나, 잘 안 되더라. 부디, 열심히 자기 몫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 이상의 부당함이 없도록, 법 제정(개정)과 사용자의 태도가 변화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중간착취의지옥도 #한국일보 #남보라박주희전혼잎 #노동자

#노동자의피라미드구조 #용역 #중간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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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9-08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사 지은 농작물은 거치는 곳이 많아서 농사 지은 사람은 돈을 얼마 받지 못하기도 하는군요 갑자기 이게 생각나다니... 일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가운데서 돈을 떼어가다니, 그런 건 조금 낼 수 있겠지만 조금이 아니고 아주 많은가 봅니다 일을 하고 해가 가면 월급이 오르리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도 별로 없다니...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구단씨 2021-09-12 20:02   좋아요 0 | URL
그들의 인권, 노동환경을 위해 약간의 수수료(?)의 의미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착취라는 표현 말고는 다른 게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방식이라면 문제가 많은 거겠죠.
굉장히 아픈 이야기였어요.
 


르완다 카베자, 부룬디 기호로로, 에디오피아 예가체프 두메르소, 엘살바도르 아파네카 이사벨, 콜롬비아 아스무까에스 톨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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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9-04 17: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루완다 가자신줄 알았어요 ㅎㅎ

구단씨 2021-09-04 17:4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지금 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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