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는 도시 - 세상 모든 사랑은 실루엣이 없다
신경진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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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랑이란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를 잊어야 하고, 나는 그녀를 잊어야 한다. 세상에 사랑은 단 하나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랑이 정말 하나일까? 사랑은 왜 꼭 하나여야 할까? (230페이지)


왜 연애의 끝은, 인생의 과정에 항상 결혼이 있어야 하는가. 궁금했다. 오랫동안 그래왔으니까, 보통 인간의 삶에 규정된 인식이 있었으니까 그러겠지. 세상은 변했고, 인간의 다양성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인생에서 결혼이 아닌 삶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닐까. 동시에 결혼이 누구도 아닌 본인의 행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건 당연하고, 주인공이 원하는 행복이 우선순위여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처럼, 로맨스의 해피엔딩이 반드시 결혼은 아니다.


영임은 상견례 자리에서 확실히 알았다. 남편 하욱이 쌍둥이 형 상욱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외모는 닮았지만,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신혼여행지에서 하욱은 영임에게 고백한다. 그의 인생 부족한 부분을 형이 채워졌음을. 거짓된 삶을 가진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임이 되어 생각해봤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사기 결혼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을 것 같은데, 영임은 달랐다. 이 결혼을 돌이키지 않았다. 하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결혼을 꾸려나갔다. 그녀 특유의 배포를 휘두르며 누구도 그 결혼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이끌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정우는 미팅 자리에서 태윤을 만난다. 재수생 태윤은 정우와 연애를 하지만 곧 정우에게 이별을 고한다. 방심하고 있다가 당한 정우는 곧 군에 입대하고, 어느 날 갑자기 정우의 부대로 은희가 면회를 온다. 은희는 정우가 나간 미팅 자리에 태윤과 함께 있던 여자다. 은희는 정우와 연애하고 동거한다. 곧 결혼을 바라면서 흔들리는 정우를 붙잡고 나은 삶을 그리지만, 태윤과 정우, 은희의 관계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미술계 큐레이터 한나는 자신에게 기회가 온 걸 의아해하면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여긴다. 그녀의 동거남 준희는 엄마의 입김에 의해 조종되는 인물이고, 한나는 준희 엄마의 미움을 사는 게 싫어서 그에게 엄마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한다. 이제 한나는 생활비에 더 연연해야 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준희 엄마의 간섭 없이, 준희 역시 자기 일상을 이뤄나갈 테니 이제 두 사람의 온전한 삶만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이어지고, 그녀는 큐레이터 일도 준희도 모두 버린다. 그렇게 마주한 현실은 쓰고 추웠다.


누구는 결혼해서 거짓을 만났고, 누구는 결혼을 향해 가지만 결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되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꾸역꾸역 결혼을 이어가는 이가 생기는 걸 보면, 결혼이 본인의 삶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에 더 심각한 질문이 이어진다. 왜 주변의 많은 이가 결혼을 연애의 목적으로 여기기 시작했는지 고민하게 된다.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겪었고, 주변의 시선으로 받은 상처가 컸기에 이 소설 속 인물들이 매번 처하는 상황이 남다르지 않았다. 연애가 오래 이어질 수도 있고, 그 연애가 결혼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누군가 불행해진다. 이상한 건, 왜 당사자의 연애 문제를 타인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는 일이 생기냐는 거다. ? 도대체 왜 누군가의 연애가 타인의 간섭과 조종을 받아야 하느냔 말이다.


주인공들은 행복을 바라며 하루하루 산다. 일하고 연애하고 결혼한다. 행복하겠다고 선택한 결혼이 완벽할 수만은 없다는 걸 뒤늦게 알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배울 수 있다면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문장에 장면이 그대로 묻어나서 읽는 생생함이 있다. 그만큼 더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다. 흥미만 생기는 게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직접 닿아 있는 이야기를 만나다 보니 더 실감이 난다. 거기에 더해져 우리 사회가 결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같이 고민하게 된다. 다양한 사람과 만남이 생기는 요즘 사회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 다양성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좀 다른 것 같다. 커밍아웃하거나, 자발적 비혼모가 되거나, 인생에서 결혼을 제외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 등, 기존의 당연하게 여긴 삶을 벗어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건 개인의 문제이고, 더 크게 보면 사회의 다양성일 뿐이다.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변하는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결혼은 사랑과는 또 다른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흔히들 두 대상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죠. 사랑의 종착점이 결혼이라고 여기는 생각 말이에요. 하지만 결혼은 연애와 달리 관습과 제도의 문제를 동반합니다. 반면, 사랑이 결혼의 필수 조건이 된 것은 불과 얼마 안 된 일이에요. 과거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남녀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현재의 결혼은 근대 낭만주의의 욕망이 만들어낸 사생아일지도 모르겠네요.” (263페이지)


어느 방송인의 자발적 비혼모 선택이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놓으며 한마디씩 했지만, 나는 그 상황이 이상했다. 언젠가 그런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은 아니지만, 아이와 둘이 살아가는 삶을 생각한 적이 있다.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결혼까지는 바라지 않았던 때가 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런 내 생각은 생각에 멈추고 말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이상한 눈으로 볼 게 아니라는 것은 진즉에 인정했다. 우리는 왜 결혼한 사람만이 아이를 낳는 당위성을 부여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다양한 연애와 결혼의 모습일 뿐인데 말이다. 인생에, 그 선택에 사랑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 법으로 정한 영역보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만족한 삶이 더 중요하다.


소설 속 다양한 사랑과 연애, 결혼을 보면서 아마 많은 독자가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들의 이야기 너머에 있는,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다양성과 사랑의 본질을. 시대는 달라도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사랑과 결혼으로 그 시대의 결혼이 어땠는지 보면서, 결혼은 선택의 문제이고 각자의 몫으로 만들면서 살아가면 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1960년대의 영임과 하욱, 태윤과 정우와 은희가 살아가는 1990년대, 그리고 한나와 태영이 만들어간 2000년대의 사랑과 결혼의 형태가 볼만하다. 거의 3세대가 흘러오면서 달라지는 결혼의 모습이 마치 현재의 혼란을 종식할 답처럼 보였다. 사랑하고 하나가 되는 방식이 꼭 한 가지만은 아니라는, 결혼이 이렇게 진화되어 오는 것인가 하는 물음의 답이 된다. 그저 기호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거다.


당연했던 취업이나 결혼이 간절히 이루고 싶은 소망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부정의 질문이 더 와닿는 요즘에 소설 속 주인공들이 더 이해가 되기도 할 테다. ‘영끌해야만 작은 집이라도 구경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일과 사랑을 이루는 일이 더 팍팍한 현실이다. 특히 한나와 태영이 보여주는 지금 사는 모습에 많이 공감할 수도 있겠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 박혔던 결혼관이 변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고, 사회가 변한 만큼 우리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는 걸 증명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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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손이 고민해결사무소 1 - 환혼석, 드디어 새 주인을 만나다 천년손이 고민해결사무소 1
김성효 지음, 정용환 그림 / 해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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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의 요정은 아니지만 당신의 고민을 들어주겠네. 이상한 검은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면 의심하지 말고 그 그림자를 한번 따라가봐도 좋겠지. 왕따 지우, 너무 어려진 신선 천년손이, 마지막 구미호족 수아. 이들의 활약이 이제 시작된다. 천년손이 탐정사무소의 문이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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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의 손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지음 / 내로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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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요술램프 결말이 뭐였더라? 마지막 소원이 얼마나 허무했는지 기억한다면, 원숭이의 손을 들고 함부로 외치지 못할 터이니. 차라리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에게 슬픔은 다가오지 않으리라. 인간의 호기심이란 기발하기도 하지만 어리석기도 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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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르와 장 창비세계문학 9
기 드 모파상 지음, 정혜용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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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이 뭔지 정말 궁금하긴 하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축하해주곤 하는데, 분명 축하할 일에 기쁜 것 맞는데, 그 축하와 함께 찾아오는 질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 상황의 질투는 비단 가족에게서만 생기는 건 아니다. 친구나 동료,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감정이라 더 궁금하다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며칠 전에 이 지역에서 정말 뜨거운 경쟁률의 아파트 청약이 있었는데, 주변에 당첨된 사람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남편의 직장 동료가 당첨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진짜? 잘 됐다, 식구도 많은데 작은 집에서 고생하더니, 이제 3년만 참으면 넓은 새집으로 이사하네? 근데 부럽다. ㅠㅠ 너무 좋은 일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면서 축하의 말을 남겼는데, 축하하는 내 마음도 진심인데, 부러운 건도 진심이라서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마음은 일상의 곳곳에서, 특히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하게 되면 더 속상하다. 나의 진심이 전하면서도 부러움 역시 소화해야만 하니까.


막연한 질투, 형제나 자매 사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거의 눈에 보이지 않게 점점 자라나다가 결혼식이나 상대방에게 우연처럼 찾아온 행복을 계기로 터져 나오고 마는 질투, 그처럼 가라앉아 있는 질투 때문에 두 형제는 우애와 뒤섞인 무해한 반감의 불씨를 서로에게 품고 있었다. 물론 둘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서로를 탐색했다. (37페이지)


롤랑의 두 아들, 삐에르는 의사이고 장은 법을 공부한다. 곧 변호사가 되겠지. 둘 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인 것 같은데, 이 가족의 삶은 그다지 여유롭지 못하다. 어느 날 아버지의 오래된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 친구는 가족이 없이 사망했는데, 그가 유언으로 장에게 이만 프랑의 돈을 남긴다. 왜 콕 찍어서 장일까? 가족이 없어서 롤랑에게 유산을 남길 정도면 그냥 롤랑 가족에게 남기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롤랑도 아니고, 롤랑의 두 아들도 아니고, 두 아들 중 하나인 장에게 유산을 남기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싶다. 하지만 롤랑은 자기 아들에게 갑자기 뚝 떨어진 돈에 흥분한 나머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죽은 친구를 잠깐 기억하는, 오래전에 만나고 못 봤는데 자기를 기억해주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그와의 인연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감탄 정도가 전부였다.


이때부터 각자의 생각에 바빠진 장의 가족이다. 장은 이 돈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돈을 받으면서 피어날 자기 인생을 생각한다. 롤랑은 자기 돈은 아니지만 자기 가족에게 생긴 돈에 같이 부자가 된 기분을 즐긴다. 자식이 부자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나쁠 일은 없겠지. 장의 어머니는 아들의 미래를 꿈꾸며 그 돈으로 변호사로 살아갈 장의 집 꾸미기에 푹 빠졌다. 단 한 사람 삐에르만이 이 상황을 마냥 즐길 수 없었다. 동생에게 질투도 났지만, 이 가족의 분위기가 한 번에 변한 게 더 화가 났다. 아름다운 미망인 로제미유 부인이 장에게 마음을 주는 것도 짜증이 난다. 장에게 돈이 생겼으니 더 매력적으로 보이겠지? 무엇보다 이 유산 상속의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보니 뭔가 꺼림칙하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부자연스럽고,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의문은 점점 의심으로 짙어지면서 삐에르는 이 유산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게 된다. 사실은 엄마의 정부가 장에게 유산을 물려준 것은 물론이고, 장은 그 정부의 아들이었던 거다.


그는 어머니가 이처럼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놓이고, 그러한 고통이 자신의 원한을 덜어주고 어머니의 타락으로 생긴 빚을 줄여준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사명에 만족한 판사처럼 어머니를 응시했다. (155페이지)


막장드라마는 한국에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프랑스에도 있었네그려. 이 모든 상황을 알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에게 따질까? 세상에 폭로하고 장의 유산이 더러운 돈이라고 떠벌릴까? 아버지에게 먼저 말하고 어머니와 장을 내칠까? 삐에르가 이 사건의 내막을 알아가기까지 굉장히 흥분하면서 읽었다. 이거 훤히 보이는구먼, 수상하다 수상해. 그 과정에서 조금씩 비치는 삐에르의 혼란스러운 마음은 이 소설이 막장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는 걸 말한다. 상황이 만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장에게 어머니의 비밀을 터트렸지만, 삐에르가 이 비밀을 알게 된 순간부터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점점 어머니의 목을 죄어오듯 하는 삐에르의 태도는 잔인하게 보이면서도 이해가 된다. 어머니의 불륜을 알고 난 후에 어머니를 어떻게 봐야 할까, 아무것도 모르고 새집을 구하고 꾸미기에 바쁜 장이 얼마나 미웠을까, 혼자 돈벼락 맞은 듯이 즐거워하는 아버지를 보는 마음은 또 어떻고. 잔잔하게 흐르면서 이 가족에게 떨어진 유산이 초반부의 흥분을 고조시켰다면, 소설의 중반 이후로는 삐에르가 느끼는 혼란을 중심으로 인간의 모든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묘한 심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슴 속에서 들끓는 것을 꺼낼 수도 없는데, 이걸 또 담아둘 수도 없다. , 나는 이럴 때가 가장 싫더라. 나쁜 결정을 했을 때보다 더 정신이 피폐해지곤 하는 이유가 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떤 선택과 결정도 쉽게 이뤄지지 않을 때 말이다. 그것도 가족을 상대로 끊임없이 이 상황에 휘둘리고 있으니 어쩌면 좋은가. 문제는 롤랑을 제외한 이 가족 모두가 괴롭다는 거다. 아들이 알아버린 어머니의 불륜을 서로가 수면 위로 올리지 못하고 받아들이고야 마는 결정 앞에서,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완벽한 해결은 아니니까. 어떤 식으로든 결론은 나기 마련이고,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그 해결의 주체가 장이 된다는 게 예상 밖의 흐름이었다. 순둥순둥해보이던 장에게도 인간의 본성이 있긴 했구나 싶다. 가진 것을 놓칠 수도 없고,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도 없으니, 뭐라도 해야 했겠지.


참 고약하지, 삶이란 건! 어쩌다가 거기에서 약간의 달콤함을 발견하면, 거기에 빠져드는 죄를 범하고 훗날 호된 댓가를 치르잖니.” (212페이지)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던 건 등장인물 모두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벼락 맞고 좋아하는 것도, 사랑을 선택하는 것도, 지켜야 할 것을 먼저 계산하는 것도.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음을 또 한 번 확인한다.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소설이다. 여담이지만, 차라리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돈벼락이 즐거운 롤랑이 되고 싶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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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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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카페에 가입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처음에는 이 동네 정보가 좀 필요해서 몇 가지 도움을 받고자 가끔 눈으로만 보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습관처럼 하루에 한 번은 카페에 접속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이 동네의 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누군가는 질문을 올리고 답변을 구한다. 한동안 나는 이 카페에서 올라오는 층간소음에 관한 글을 엄청나게 찾아 읽었다. 굳이 검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하루가 멀다고 층간소음 피해 호소 게시글이 등장한다. 아이들인데 뛰지 말라고 할 수 없어서 괴롭다, 조금만 움직여도 아래층에서 올라온다, 위층은 이 새벽에 공구를 사용한다는 등. 셀 수 없을 만큼의 이야기에 댓글을 남기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피해에 공감하는 마음이 넘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문제에 한 개의 댓글도 남기지 않았다. 댓글을 남기면 내가 사는 아파트가 노출될 거고, 나중에 이사해야 하는데 아파트 매매 글 올리면 우리 집이 층간소음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 테고, 그럼 사람들이 아니까 아파트가 잘 팔리지도 않겠지. 아니면 헐값에 내놓아야 조금 관심 가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웃기지만, 그랬다.


층간소음 문제 하나로 나는 몇 년 후가 될지 모를 문제를 지금부터 고민했다. 고충을 털어놓는 것도, 그 문제의 공감을 얻고 싶은 바람도 묻어둔 채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아파트에 사는 누가 이런 문제를 호소한다면 새겨듣는다. , 거기는 피해야지 하면서. 하지만 그건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일이다. 신축 아파트라고 층간소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건 사람의 문제고,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결론으로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게 뭐라고, 나는 내 마음을 돌보는 일보다 이 동네와 이 아파트의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것이 두려워 말을 못 했을까.


어느 집단이든 이기주의가 판을 치기 마련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존재이니까. 태어나서 처음 인연 맺은 가족이라는 집단도 자기 가족 우선의 이기심이 발동하곤 한다. 내 가족, 내 새끼가 먼저이고 중요하다. 세상의 많은 것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건 인정한다. 나도 그러니까. 그런데도 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보는 건 이기심을 넘어선 개인의 욕망 때문에 누군가 흘리는 눈물이었다. 배려와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알아도 나를 먼저 생각하면 그런 행동도 가능하다. 내가 덜 아프고 상처받기 위해서, 내가 조금 더 편하고 많이 가지려고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서 보는 양가감정을 우리 모두 느끼고 살아간다는 게 현실이다.


서영동 동아1차아파트의 입주자 카페에 글이 올라온다. ‘봄날아빠는 아파트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에 울분하고, 용산보다 여기가 못한 이유가 없다고 피력한다. 그에 사람들은 동조한다. 맞다고,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제 가격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옆의 아파트가 1년 사이 1억이 오를 동안 자기 아파트만 그대로라고. 이 사람 참, 말을 잘하네 싶은데, 한편으로는 의심도 된다. 이 사람 누구지?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이지만, 몇 마디만 쏟아내면 몇 동 몇 호의 누군지 아는 건 시간문제다. ‘은주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키우는 일에 집중한다. 그 동네에서 유명하고 오래되었다는 영어유치원에 보낸다. 내 아이에 최선을 다하는, 다른 아이들 보다 뒤지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희진은 전세 만기 때문에 집을 알아보던 중 살던 아파트와 같은 아파트를 무리해서 매매한다. 대출이 있지만, 그것도 갚아가면 다 재산이라고, 점점 부동산에 눈을 뜬 희진은 이제 15억짜리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산다. 행복하다, 고 생각했다. 서영동에서 대형 학원을 운영하는 경화는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아들을 무기로 보습학원에서 시작해 그 동네 제법 입소문을 탄 학원의 원장이다. 좀 더 좋은 곳으로 학원을 옮겼지만, 학원 확장 때문에 어려움에 부닥쳤다. 아들과의 사이는 멀어졌다. 경화 모자를 돌봐주던 엄마는 아프기 시작했다.


인상적인 인물이 안승복이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이면서, 시골에서 상경해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의 딸 보미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다가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한없이 다정하고 무조건 딸을 믿어주던 아버지, 아버지가 마련한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보미에게 이제 아버지는 어떤 인물로 비칠까.


그냥 우리 건물 학원들이 좋은 거죠, .”

서영동 학교들은 입시 성적이 좋지 않다. 서영동 아이들은 그런 서영동 학교를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백은빌딩 학원은 떠나지 못했고, 서영동 인근의 아이들은 백은빌딩으로 학원을 다니면서도 굳이 서영동을 우습게 생각하고 싶어 했다. 들어오고 싶은 욕망과 나가고 싶은 욕망이 섞여 부글부글 끓는 곳. 학원장이자 학부모이면서 서영동 주민인 경화는 종종 그 입장들이 자기 안에서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 (149페이지)


얼마나 가지게 되면 욕심부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들은 각자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면서도 타인이 가진 것을 부러워한다. 대부분 타인이 가진 것들은 내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으로, 나에게 결핍된 것들이다. 노력한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되지도 않는다. 이 지점에서 무엇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나는 불행하지 않은 쪽을 택하곤 했다. 완벽하게 마음을 채울 수도 없고 언제나 모자란 것들이 나를 아쉽게 할 테니,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욕망이더라. 그러니 이 정도도 괜찮다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나의 그런 마음도 다 위선인 것 같다. 집 안 팔릴까 봐 층간소음도 말하지 못하고, 나중에 더 오르면 좋지 뭐 하는 마음도 있고, 지금도 이 지역에 예정인 청약 소식을 듣느라 귀는 바쁘다. 너무 비싸서 청약이나 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도 신축으로 가고 싶은 이 마음이 조금 웃기다. 나에게 이 정도는 얼마만큼이었을까.


집마다 저마다의 계획과 사정이 있다.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안승복은 더 만족하기 위해 오늘도 1인 시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노인치매요양원이 내 영역 근처에서 웬 말이냐고 외치던 경화에게는 바뀐 상황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자꾸만 오르는 집값에도 넓은 집으로 갔던 희진에게 가족의 행복과 고마움은 여전할는지, 위대해 보이던 아버지의 투자 능력이 아직도 보미에게는 능력으로 보일지,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아파트 주인이 된 세훈과 유정 부부가 각자 본가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간 아영에게 편히 쉴 곳은 언제쯤 나타날까. ‘빚투영끌이란 말이 익숙해진 게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건지 불행을 쫓아가는 건지. 언제부터 부동산이라는 화두가 우리 인생에 계급을 만들고 이렇게 큰 논쟁거리가 되어 있었던가. 내릴 줄 모르는 집값과 내 집 마련의 꿈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사람들의 슬픔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지? 거기에 부모의 직업이 아이의 수준을 만들고,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대우로 구별되는 삶의 차이는 알고 있으면서도 읽는 게 불편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전하는 현실적인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 그곳은 어디이며 무엇인가. 내가 사는 곳이 나를 더 살게 해준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사는 이 작은 동네가 서영동이었다.


그걸 왜 원장 선생님이 고민하세요?”

그럼 모른 척해요?”

그럼요. 남 일인데.”

그런가? 내가 이러는 거 웃기는 일인가요?”

아영은 그냥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원장이 혼자 대답했다.

근데 남 일이기만 한 일은 세상에 없더라고요. 나이 먹을수록 더 그렇고요. 그게 맞는 거고.” (238페이지)


지난번에 읽은 세대주 오영선이 부린이의 내 집 마련 입문기 정도로 읽혔다면, 조남주의 연작소설 서영동 이야기는 아파트를 둘러싼 서영동 사람들의 욕망과 이기심을 말하면서, 우리에게 집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읽으면서도 어느 동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에 섬뜩해졌다. 살아가는 일이 사는 곳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 역시 다양해진 게 사실이다. ‘보금자리라고 불렸던 집은 이제 자산 증식의 수단이 되었고, 굳이 내 소유의 집이 아니어도 괜찮은 이유가 생기기도 한다. 내 소유의 집이 있다고 모두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순간 그 상황에 내가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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