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르와 장 창비세계문학 9
기 드 모파상 지음, 정혜용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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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이 뭔지 정말 궁금하긴 하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축하해주곤 하는데, 분명 축하할 일에 기쁜 것 맞는데, 그 축하와 함께 찾아오는 질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 상황의 질투는 비단 가족에게서만 생기는 건 아니다. 친구나 동료,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감정이라 더 궁금하다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며칠 전에 이 지역에서 정말 뜨거운 경쟁률의 아파트 청약이 있었는데, 주변에 당첨된 사람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남편의 직장 동료가 당첨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진짜? 잘 됐다, 식구도 많은데 작은 집에서 고생하더니, 이제 3년만 참으면 넓은 새집으로 이사하네? 근데 부럽다. ㅠㅠ 너무 좋은 일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면서 축하의 말을 남겼는데, 축하하는 내 마음도 진심인데, 부러운 건도 진심이라서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마음은 일상의 곳곳에서, 특히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하게 되면 더 속상하다. 나의 진심이 전하면서도 부러움 역시 소화해야만 하니까.


막연한 질투, 형제나 자매 사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거의 눈에 보이지 않게 점점 자라나다가 결혼식이나 상대방에게 우연처럼 찾아온 행복을 계기로 터져 나오고 마는 질투, 그처럼 가라앉아 있는 질투 때문에 두 형제는 우애와 뒤섞인 무해한 반감의 불씨를 서로에게 품고 있었다. 물론 둘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서로를 탐색했다. (37페이지)


롤랑의 두 아들, 삐에르는 의사이고 장은 법을 공부한다. 곧 변호사가 되겠지. 둘 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인 것 같은데, 이 가족의 삶은 그다지 여유롭지 못하다. 어느 날 아버지의 오래된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 친구는 가족이 없이 사망했는데, 그가 유언으로 장에게 이만 프랑의 돈을 남긴다. 왜 콕 찍어서 장일까? 가족이 없어서 롤랑에게 유산을 남길 정도면 그냥 롤랑 가족에게 남기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롤랑도 아니고, 롤랑의 두 아들도 아니고, 두 아들 중 하나인 장에게 유산을 남기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싶다. 하지만 롤랑은 자기 아들에게 갑자기 뚝 떨어진 돈에 흥분한 나머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죽은 친구를 잠깐 기억하는, 오래전에 만나고 못 봤는데 자기를 기억해주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그와의 인연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감탄 정도가 전부였다.


이때부터 각자의 생각에 바빠진 장의 가족이다. 장은 이 돈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돈을 받으면서 피어날 자기 인생을 생각한다. 롤랑은 자기 돈은 아니지만 자기 가족에게 생긴 돈에 같이 부자가 된 기분을 즐긴다. 자식이 부자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나쁠 일은 없겠지. 장의 어머니는 아들의 미래를 꿈꾸며 그 돈으로 변호사로 살아갈 장의 집 꾸미기에 푹 빠졌다. 단 한 사람 삐에르만이 이 상황을 마냥 즐길 수 없었다. 동생에게 질투도 났지만, 이 가족의 분위기가 한 번에 변한 게 더 화가 났다. 아름다운 미망인 로제미유 부인이 장에게 마음을 주는 것도 짜증이 난다. 장에게 돈이 생겼으니 더 매력적으로 보이겠지? 무엇보다 이 유산 상속의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보니 뭔가 꺼림칙하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부자연스럽고,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의문은 점점 의심으로 짙어지면서 삐에르는 이 유산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게 된다. 사실은 엄마의 정부가 장에게 유산을 물려준 것은 물론이고, 장은 그 정부의 아들이었던 거다.


그는 어머니가 이처럼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놓이고, 그러한 고통이 자신의 원한을 덜어주고 어머니의 타락으로 생긴 빚을 줄여준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사명에 만족한 판사처럼 어머니를 응시했다. (155페이지)


막장드라마는 한국에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프랑스에도 있었네그려. 이 모든 상황을 알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에게 따질까? 세상에 폭로하고 장의 유산이 더러운 돈이라고 떠벌릴까? 아버지에게 먼저 말하고 어머니와 장을 내칠까? 삐에르가 이 사건의 내막을 알아가기까지 굉장히 흥분하면서 읽었다. 이거 훤히 보이는구먼, 수상하다 수상해. 그 과정에서 조금씩 비치는 삐에르의 혼란스러운 마음은 이 소설이 막장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는 걸 말한다. 상황이 만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장에게 어머니의 비밀을 터트렸지만, 삐에르가 이 비밀을 알게 된 순간부터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점점 어머니의 목을 죄어오듯 하는 삐에르의 태도는 잔인하게 보이면서도 이해가 된다. 어머니의 불륜을 알고 난 후에 어머니를 어떻게 봐야 할까, 아무것도 모르고 새집을 구하고 꾸미기에 바쁜 장이 얼마나 미웠을까, 혼자 돈벼락 맞은 듯이 즐거워하는 아버지를 보는 마음은 또 어떻고. 잔잔하게 흐르면서 이 가족에게 떨어진 유산이 초반부의 흥분을 고조시켰다면, 소설의 중반 이후로는 삐에르가 느끼는 혼란을 중심으로 인간의 모든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묘한 심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슴 속에서 들끓는 것을 꺼낼 수도 없는데, 이걸 또 담아둘 수도 없다. , 나는 이럴 때가 가장 싫더라. 나쁜 결정을 했을 때보다 더 정신이 피폐해지곤 하는 이유가 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떤 선택과 결정도 쉽게 이뤄지지 않을 때 말이다. 그것도 가족을 상대로 끊임없이 이 상황에 휘둘리고 있으니 어쩌면 좋은가. 문제는 롤랑을 제외한 이 가족 모두가 괴롭다는 거다. 아들이 알아버린 어머니의 불륜을 서로가 수면 위로 올리지 못하고 받아들이고야 마는 결정 앞에서,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완벽한 해결은 아니니까. 어떤 식으로든 결론은 나기 마련이고,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그 해결의 주체가 장이 된다는 게 예상 밖의 흐름이었다. 순둥순둥해보이던 장에게도 인간의 본성이 있긴 했구나 싶다. 가진 것을 놓칠 수도 없고,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도 없으니, 뭐라도 해야 했겠지.


참 고약하지, 삶이란 건! 어쩌다가 거기에서 약간의 달콤함을 발견하면, 거기에 빠져드는 죄를 범하고 훗날 호된 댓가를 치르잖니.” (212페이지)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던 건 등장인물 모두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벼락 맞고 좋아하는 것도, 사랑을 선택하는 것도, 지켜야 할 것을 먼저 계산하는 것도.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음을 또 한 번 확인한다.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소설이다. 여담이지만, 차라리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돈벼락이 즐거운 롤랑이 되고 싶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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