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혼하지 않는 도시 - 세상 모든 사랑은 실루엣이 없다
신경진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7월
평점 :
어쩌면 사랑이란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를 잊어야 하고, 나는 그녀를 잊어야 한다. 세상에 사랑은 단 하나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랑이 정말 하나일까? 사랑은 왜 꼭 하나여야 할까? (230페이지)
왜 연애의 끝은, 인생의 과정에 항상 결혼이 있어야 하는가. 궁금했다. 오랫동안 그래왔으니까, 보통 인간의 삶에 규정된 인식이 있었으니까 그러겠지. 세상은 변했고, 인간의 다양성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인생에서 결혼이 아닌 삶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닐까. 동시에 결혼이 누구도 아닌 본인의 행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건 당연하고, 주인공이 원하는 행복이 우선순위여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처럼, 로맨스의 해피엔딩이 반드시 결혼은 아니다.
영임은 상견례 자리에서 확실히 알았다. 남편 하욱이 쌍둥이 형 상욱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외모는 닮았지만,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신혼여행지에서 하욱은 영임에게 고백한다. 그의 인생 부족한 부분을 형이 채워졌음을. 거짓된 삶을 가진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임이 되어 생각해봤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사기 결혼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을 것 같은데, 영임은 달랐다. 이 결혼을 돌이키지 않았다. 하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결혼을 꾸려나갔다. 그녀 특유의 배포를 휘두르며 누구도 그 결혼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이끌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정우는 미팅 자리에서 태윤을 만난다. 재수생 태윤은 정우와 연애를 하지만 곧 정우에게 이별을 고한다. 방심하고 있다가 당한 정우는 곧 군에 입대하고, 어느 날 갑자기 정우의 부대로 은희가 면회를 온다. 은희는 정우가 나간 미팅 자리에 태윤과 함께 있던 여자다. 은희는 정우와 연애하고 동거한다. 곧 결혼을 바라면서 흔들리는 정우를 붙잡고 나은 삶을 그리지만, 태윤과 정우, 은희의 관계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미술계 큐레이터 한나는 자신에게 기회가 온 걸 의아해하면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여긴다. 그녀의 동거남 준희는 엄마의 입김에 의해 조종되는 인물이고, 한나는 준희 엄마의 미움을 사는 게 싫어서 그에게 엄마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한다. 이제 한나는 생활비에 더 연연해야 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준희 엄마의 간섭 없이, 준희 역시 자기 일상을 이뤄나갈 테니 이제 두 사람의 온전한 삶만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이어지고, 그녀는 큐레이터 일도 준희도 모두 버린다. 그렇게 마주한 현실은 쓰고 추웠다.
누구는 결혼해서 거짓을 만났고, 누구는 결혼을 향해 가지만 결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되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꾸역꾸역 결혼을 이어가는 이가 생기는 걸 보면, 결혼이 본인의 삶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에 더 심각한 질문이 이어진다. 왜 주변의 많은 이가 결혼을 연애의 목적으로 여기기 시작했는지 고민하게 된다.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겪었고, 주변의 시선으로 받은 상처가 컸기에 이 소설 속 인물들이 매번 처하는 상황이 남다르지 않았다. 연애가 오래 이어질 수도 있고, 그 연애가 결혼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누군가 불행해진다. 이상한 건, 왜 당사자의 연애 문제를 타인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는 일이 생기냐는 거다. 왜? 도대체 왜 누군가의 연애가 타인의 간섭과 조종을 받아야 하느냔 말이다.
주인공들은 행복을 바라며 하루하루 산다. 일하고 연애하고 결혼한다. 행복하겠다고 선택한 결혼이 완벽할 수만은 없다는 걸 뒤늦게 알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배울 수 있다면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문장에 장면이 그대로 묻어나서 읽는 생생함이 있다. 그만큼 더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다. 흥미만 생기는 게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직접 닿아 있는 이야기를 만나다 보니 더 실감이 난다. 거기에 더해져 우리 사회가 결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같이 고민하게 된다. 다양한 사람과 만남이 생기는 요즘 사회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 다양성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좀 다른 것 같다. 커밍아웃하거나, 자발적 비혼모가 되거나, 인생에서 결혼을 제외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 등, 기존의 당연하게 여긴 삶을 벗어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건 개인의 문제이고, 더 크게 보면 사회의 다양성일 뿐이다.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변하는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결혼은 사랑과는 또 다른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흔히들 두 대상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죠. 사랑의 종착점이 결혼이라고 여기는 생각 말이에요. 하지만 결혼은 연애와 달리 관습과 제도의 문제를 동반합니다. 반면, 사랑이 결혼의 필수 조건이 된 것은 불과 얼마 안 된 일이에요. 과거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남녀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현재의 결혼은 근대 낭만주의의 욕망이 만들어낸 사생아일지도 모르겠네요.” (263페이지)
어느 방송인의 자발적 비혼모 선택이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놓으며 한마디씩 했지만, 나는 그 상황이 이상했다. 언젠가 그런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은 아니지만, 아이와 둘이 살아가는 삶을 생각한 적이 있다.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결혼까지는 바라지 않았던 때가 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런 내 생각은 생각에 멈추고 말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이상한 눈으로 볼 게 아니라는 것은 진즉에 인정했다. 우리는 왜 결혼한 사람만이 아이를 낳는 당위성을 부여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다양한 연애와 결혼의 모습일 뿐인데 말이다. 인생에, 그 선택에 사랑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 법으로 정한 영역보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만족한 삶이 더 중요하다.
소설 속 다양한 사랑과 연애, 결혼을 보면서 아마 많은 독자가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들의 이야기 너머에 있는,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다양성과 사랑의 본질을. 시대는 달라도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사랑과 결혼으로 그 시대의 결혼이 어땠는지 보면서, 결혼은 선택의 문제이고 각자의 몫으로 만들면서 살아가면 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1960년대의 영임과 하욱, 태윤과 정우와 은희가 살아가는 1990년대, 그리고 한나와 태영이 만들어간 2000년대의 사랑과 결혼의 형태가 볼만하다. 거의 3세대가 흘러오면서 달라지는 결혼의 모습이 마치 현재의 혼란을 종식할 답처럼 보였다. 사랑하고 하나가 되는 방식이 꼭 한 가지만은 아니라는, 결혼이 이렇게 진화되어 오는 것인가 하는 물음의 답이 된다. 그저 기호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거다.
당연했던 취업이나 결혼이 간절히 이루고 싶은 소망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부정의 질문이 더 와닿는 요즘에 소설 속 주인공들이 더 이해가 되기도 할 테다. ‘영끌’해야만 작은 집이라도 구경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일과 사랑을 이루는 일이 더 팍팍한 현실이다. 특히 한나와 태영이 보여주는 지금 사는 모습에 많이 공감할 수도 있겠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 박혔던 결혼관이 변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고, 사회가 변한 만큼 우리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는 걸 증명하는 소설이다.
#결혼하지않는도시 #신경진 #마음서재 #문학 #소설 #한국문학 #한국소설
#결혼 #연애 #사랑 #선택 #사랑의완성 #결혼의진화 #책 #책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