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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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몸에 해로워서도 아니고, 라면 끓이는 그 쉬운 것조차 귀찮아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라면을 안 먹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말하기 좀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라면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선뜻 내 기호식품 안으로 라면이 들어가지 못하는 거라고 해두자. 그런데도 가끔 동생이나 엄마와 같이 있을 때 먹는 라면이 있다. 너구리라면이다. 다른 라면보다 면발이 좀 두껍고, 순한 맛과 얼큰한 맛 두 가지 중 가끔 골라 먹는다. 뭐니 뭐니 해도 너구리라면의 매력은 그 안에 들어있는 다시마 조각 한 개. 라면이 다 끓어서 익을 때쯤이면 너구리라면 면발만큼이나 불어 오른 도톰한 다시마 한 조각이 맛있게 보인다. 한입에 꿀꺽. 좀 서운하다. 몇 개 더 들어있으면 안 되나? 가끔 라면 봉지를 뜯고 기쁨의 환호성이 나올 때도 있다. 다시마 조각이 두 개, 혹은 세 개가 들어있을 때. 길 가다 돈 주운 것 마냥 좋아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런 횡재(?)도 있어야 라면 맛이 배가 되지. ^^

 

그러려니 했었다. 기계가 실수해서 다시마가 한 개 더 들어갈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네. 김중혁의 공장 산책기를 들어보니 너구리 라면에 다시마를 넣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라면 한 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모두 기계가 하는 일인 줄 알았다. 요즘 대부분 제품이 기계화되어 만들어지는 거 아니었나? 그래서 몇 개의 한정판이나 수작업이 들어간 물건들이 가격이 비싼 거고, 라면이나 과자 같이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지는 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거로 생각했다. 인력으로 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장점으로 이루어진 공장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으니 다시마 한 조각을 넣는 것도 당연히 기계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하나의 가방이 만들어지려면 길고 지난한 작업 과정을 지나야 한다.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가죽을 자르는 일도, 가죽을 붙이는 일도, 가죽을 꿰매는 일도, 사람이 해야 한다. (87페이지 가방 공장 산책기)

 

가만히 둘러보니 일상을 영위하는 많은 것들이 공장에서 나온 것들이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노트북, 휘갈겨 쓰다 뜯어서 버리는 메모지,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게 무겁게 메고 다니는 가방, 춥다고 자꾸 파고드는 이불, 달달한 맛이 좋아 자꾸 손이 가는 봉지 커피, 질질 흘러나오는 콧물 닦느라 연신 뽑아대는 휴지까지. 어디에 눈을 두어도 똑같다. 재료가 다를지 몰라도 만들어져 나오는 과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다 확인하지도 못하고, 마냥 궁금하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곳을 김중혁이 다녀왔다. 물론 그마저도 극히 일부분이다. 더 탐방하고 싶은 공장이 많을 거다. (아마도?) 아마 호기심이 발동하는 우선순위로 해당 공장이 선택되지 않았을까(하는 건 나의 추측이고).

 

제품의 생산 공정을 자세하게 기록하지는 않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된 제품이 나오는지 큰 얼개만 보여주었다. 그 공간에서 직접 일하지 않은 다음에야 그 세세함을 다 이해하고 설명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공장의 모습과 그 안의 생산과정을 통해 사람, 생각, 이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은 조각 하나를 연신 재봉틀로 박으며 집중해야 완성되는 브래지어, 돈이 되지 않는데도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간절함에 오늘도 공장 문을 여는 엘피 사장님, 숙성을 거쳐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간장, 달콤한 향기에 취해 인생도 달콤해지길 바라게 하는 초콜릿, 지구의 어디쯤을 가리키며 마음을 향하게 하는 지구본, 소음처럼 들리던 소리가 왠지 아련해 보이는 대장간, 두 귀를 집중해서 소리의 세계로 빠져야만 완성되는 피아노, 많은 일화를 가지고 웃음부터 던져주는 콘돔, 작가와 바로 연결되어 떠올리게 하는 종이, 나를 더 단단하게 세워 전쟁터로 보내주는 것 같은 화장품, 꼬불꼬불 면발에서 느껴지는 속도의 아이러니인 라면,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함이 먼저 떠오르는 맥주, 섬세한 빛이 나는 아름다움인 도자기, 스스로 중독자임을 고백하며 실용성을 고민하게 하는 가방. 무엇 하나 일상과 뗄 수 없는 것들이면서, 때로는 쉽게 생각하며 지나치는 것들이기도 하다. 살면서 필요한 것이지만 ‘반드시’라는 수식어가 개인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므로,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려지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소소하다고 할 수 있는, 때로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만들어지는 곳, 공장이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공장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훔쳐보고 싶은 마음에, 물건을 만든 장소에 가서 만드는 모습을 보면 물건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공장 산책기를 시작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 궁금하고, 조금은 알고 싶잖아. 엄마의 자궁을 통해서 태어나는 아기처럼 하나의 물건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태어나고 세상에서 돌아다니게 되는지...

 

거기에 저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김중혁의 글 공장’이다. 책을 읽는 독자이기에 가끔 ‘이 책을 쓴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시작해서 마무리한 글’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작가마다 쓰는 장르가 다르고 글 쓰는 스타일이 달라서 김중혁만의 스타일이 모든 작가의 방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김중혁만의 글 쓰는 방식, 문장 하나의 사유, 재치 있는 그림을 알게 된 건 재밌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소설을 끝까지 읽은 게 없다. 늘 읽다 말았거나, 읽어야지 하면서 리스트에만 머물곤 했다. 그의 팟캐스트 수다는 좋아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와 소설로 온전히 만나지는 못했다. (단편은 몇 편 읽었다.) 그런데 그의 산문을 만나는 건 즐거웠다. 공장을 견학하고 보고서 제출하듯 들려주는 게 아니라, 그의 시선으로 보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따뜻하다고 해야 할까. 평범한 사람이 보는 편안한 느낌이다.

 

그를 통해 본 공장의 입체적인 모습이 생생하면서도 진중해진다. 그 안에는 우리를 채워주는 물건도 있지만,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공장을 관찰하며 적은 것이기도 하고 물건의 세계 여행 같기도 하고, 그와 함께하는 사람의 역사 같기도 하다. 물건 하나를 떠올리며 꺼내는 그의 추억 같은 이야기는 과거이며, 지금 공장 안을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건 현재다. 그 물건이 어떤 형태로 누구 손에 들어가 사용되고 있을지 상상하는 미래다. 사람의, 세상의 역사가 되는 과정이다. 그의 말마따나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속에서 비슷하게 살아가며 내 가슴 어디 한군데에 채워질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지. 아마 그도 바랄 것 같다. 그의 글이 누군가를 온전히 채워주는 것이 되길, 김중혁 글 공장이 그런 역할을 하길...

 

인간은 기계를 만들었다. 기계는 산업화를 만들었고, 산업화는 더 많은 공장을 만들었고, 또한 노동계급을 만들어냈다. 노동 계급은 더 많은 기계를 만들어냈고, 더 많은 기계는 더 나은 기계로 진보했으며, 더 많고 더 나은 기계는 노동계급을 감소시키고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기계와 로봇의 역습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기계가 생산해준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다시마만큼은 인간이 넣는 세상을 꿈꾸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기계는 더욱 진보할 것이다. (245페이지 라면 공장 산책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뜨거운 여름날 어느 날, 맥주 공장을 산책하고 싶다. 시원한 매주 들이키며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리고 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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