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 경제의 미래
곽수종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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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바꾼다는 요즘입니다. 저자는 말하기를, 만약 집단 면역이 완성되면 미국 경제는 거의 원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과연 모든 것이 완전히 예전으로 회복되겠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소 조심스러운 몇 가지 조건들이 붙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 출현이 백신을 무력화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지 않아야 하고, 각종 경기부양책이 부작용 없이 연착륙할 수 있어야 하며, 중국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분명한 합의가 필요한 점 등입니다. 


저자는 사획과학과 자연과학에도 공통점이 있듯(p7), 정치와 경제 사이에도 일정 부분 닮은 점이 있으며 따라서 두 영역 사이에 순행적 연결고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p55, p57). 저자는 한국 헌법 119조를 거론하며, 경제권력이 어떤 독점적 욕구를 제한 없이 발휘하려 들 때 이 헌법 조항이 그를 비토하려 든다고 합니다. 규범적으로는 헌법이 이를 규율하며, 사실적으로는 국민 혹은 대중이 이에 대해 저항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겠죠. 


21세기의 첫 10년대는 누가 뭐래도 중국의 시기였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이 앞으로 세계 경제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를 두고 미-유럽-중국 사이에 의견이 크게 갈라지면, 세계 정세는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앞에서 저자는 경제 불황을 타개하는 가장 나쁜(그러나 종종 가장 확실할 수 있는) 방법이 전쟁이라고 했는데, 미-중 간의 대립 역시 그 돌파구를 전쟁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또하나의 미드웨이 대해전(p62)"이, 경제, 외교, 군사, 기후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질 조짐이 있다고 말합니다. "과연 새로운 시대는 중국이 주도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시대가 다시 백 년을 이어질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제3의 다른 나라가 패권국으로 떠오를 것인가."


저자는 이 대목에서 미디어나 대중이 놓치곤 하는 포인트를 짚습니다. 우선 중국이나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들을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 마냥 파악되기엔 부적절한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경제가 자생적이라기보다는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이유 때문이죠. 또 미국과 유럽(더 정확하게는 독일)은 서로 성장률의 차이가 있고, 둘은 달러와 유로라는 기축 통화를 보유한 나라이니만치 이들의 성장률 1%는 타국 성장률 10%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다고 합니다(p64).


코로나19 팬데믹 덕에 근근이 연명하는 중소기업이 많으며 이들은 가뜩이나 회계 문제, 후계 문제 등으로 내부가 곪아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들이 좀비 기업으로 화하여 거시경제 전반에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결코 경시하지 말라고 저자는 말합니다(p72). 한국에서 중소기업 문제는 언제나 잠재한 화약고 같은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그간 정면으로 환부가 조명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규모가 작다고 해서 다 좀비기업이라는 건 결코 아니며 내실 있고 양심적이며 기술력 위주의 경영을 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저자는 또 그간 빈곤층이나 소상공인들에게 풀었다고 하는 여러 자금이 과연 효과적으로 집행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습니다. 공적 기관의 지출이 늘어나면 민간의 수요가 급감하는데 이는 소득 양극화를 초래하고(p75), 정실배분(cronyism) 때문에 혜택을 본 기업이 기대보다 적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이는 주로 미국, 영국 등 외국의 예에서 근거를 찾은 주장입니다. 한국의 지원금 지급은 이와는 다른 형태(지역화폐 등)로 집행되었으므로 아마도 더 큰 효과를 내었을 듯합니다. 


기업은 R&D등에 실질적인 투자를 해야 하며 한 국가의 거시경제 역시 민간 경제주체의 이런 노력이 모이고 모여 그 근원적인 동력을 마련합니다. 저자는 지난 십여년 동안 한국 정부가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였으며 이를 구호에 그친 포퓰리즘 경제(p103)라고 비판합니다. 성장과 발전의 정의도 달라질 것이며, 효율과 능률만을 냉혹히 추구하는 사회 체제가 뿌리를 내리면 더 이상 사회과학 기반의 메타적 비판도 그저 감성적 접근이라 평가절하되어 앞으로는 실종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영화 <인 타임>을 예시합니다. 


양자컴퓨터의 발전은 "인지와 추론의 무한 반복 작업을 가능하게 하며 이것이 AI 분야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또한 사이버 보안도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되며 북한이 특히 역점을 두어 개발 중인 악의적 해킹 시스템인 라자루스 역시 주목의 대상이라고 하네요. 저자는 직전 정권이었던 트럼프 정부를 두고 평등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결한, 어떤 정치적 술책을 구사하여 정치적 빈틈을 파고든 세력으로 봅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해커는 미국 내 서버를 표적으로 삼아 해킹을 시도하기에 추적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저자는 규정하네요. 특히 여기서 저자가 지적하는 건 "소프트웨어 공급사슬의 보호에 실패(p195)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런 국제정세를 짚으면서도 기존의 대(對)미국 동맹을 강화해야 할지, 아니면 중국과의 친분을 도모해야 할지, 그도저도 아니면 제3의 길을 모색해야할지 한국의 포지셔닝이 여전히 국가전략적으로 모호함을 지적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국가는 힘이 있어야 온전한 생존을 모색하고 동시에 자신만의 전략을 추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허망한 명분론이나 내부 정쟁에 골몰할 게 아니라 철저한 실리 위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국가 발전을 이뤄낸 시기의 모범적인 사례들, 즉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철도, 고속도로 건설로 경제적 대전환점을 만든 미국이라든가, 부국강병이라는 목표 하나로 일로매진하며 기존의 권력을 전광석화처럼 대체하여 국가 개조에 성공한 메이지 유신, 또 비교적 최근의 뉴질랜드 경제개혁 등을 하나의 좋은 교본처럼 소개합니다. 확실히 역경을 이기고, 혹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서 대도약을 이룬 이야기는 누가 주인공이라 해도 통쾌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한국을 둘러싼 최근의 정세 급변은 물론 위기를 부르는 면도 있지만 이런 격동의 틈을 타서 큰 부와 권력을 손에 쥘 수도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이용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역량에 달렸다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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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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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자신의 실제 삶과 경험에서만 소재를 찾아 작품을 창작한다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주로 자신의 어머니, 치매 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가 주인공처럼 등장합니다. "치매"라는 단어는 p64에나 가서야 명시적으로 나오지만 우리 독자들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누가 무엇 때문에 고생하고 상황을 가슴아프게 바라봐야 하는지 소설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바로 눈치챌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글마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편지의 글들은 마치 전혀 다른 여자가 쓴 것 같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 편지를 쓴 건 한 달 전의 일이었다.(p15)"

하지만 우리는 현재 정상에서 크게 이탈한 정신 상태를 보이는 그 누구라 하더라도, 정상이었을 때의 모습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정상이 아닌 지금 모습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저 위의 문장은,


"이 편지는 어머니가 한 달 전에 쓴 것이다. 이렇게나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스타일로 표현하던 분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편지든 뭐든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저렇게 멍하게 계신 모습은 전혀 다른 어떤 여성 같다."


뭐 이를테면 이렇게 표현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나"는 담담히 현재의 (정상 아닌) 어머니를 기준으로 과거의 그녀가 쓴 글을 평가합니다. 그 뜻은, 이미 전의 모습이 전혀 아니지만 현재의 아픈 그 모습 그대로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그녀가 받아들였다는 것 아닐지 말입니다. 


"오늘은 웬일인지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일이, 마치 나와 관련된 참다운 본성을 파악하러 가는 듯하여 퍽 만족스러웠다.(p42)"


그러니 과연 현재를 쿨하게 긍정하는 사람이라야 저런 말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상이 아닌 어머니를 수시로 당혹스럽게 목격하고 받아들이는 "수고"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까지도 새로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이런 감정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었구나 등등.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확신까지는 없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일체감을 언제나 느끼고 살았는데 아버지처럼 어머니에 관한 소설도 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p42에 나오기를 아버지를 소재로 한 그 소설은 <아버지의 자리>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1983년작이며 원제는 "라 플라스" 즉 그냥 "자리"입니다. 물론 그게 아버지의 자리이겠지만. 


지금 이 소설은 1983년 12월부터 1986년 4월 26일자로 끝나는 형식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한국어판이 번역되어 이렇게 나와 우리가 읽고 있지만 원작은 1997년에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이 점도 알고 소설,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당시의 기록을 읽으면 좀 더 다른 느낌이 독해될 듯합니다. 


꿈에서는 우리가 누구든 다 만날 수 있습니다. p32, 1984. 5, 22에서 어머니는 빅토르 위고를 만났다고 딸에게 이야기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 어머니가 꿈과 현실을 혼동하지 않고 "내가 꿈에서..."라며 명확히 분별한다는 겁니다. 이 흐뭇함이 딸의 성취와도 어느 정도 관련되어 표현된다는 게 더 흥미롭고 말이죠.


p31에서 "내가 떠나려 하자 어머니는 '가버린다구?'라며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그저 시간이 다 되어 "떠나는 건데" 저 어머니는 그걸 "가버린다"고 받아들입니다. 가는 것과 "가 버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죠. 여기서 잠시 이 소설 제목을 보면 Je ne suis pas sortie (de ma nuit)인데... "나의 밤을" 대목만 잠시 생략하자면 저 문장은 "나는 떠나 버리지 않았다"입니다. p171의 작가 후기에 이것이 자신의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이라고 나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대상, 타자에 대해 자신이 인정하고 싶은 한계까지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원치 않고, 이해하기 어렵고, 괴롭고, 이런 대목에 이르러서 사람은 "떠나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Je ne suis pas sortie, 즉 나는 떠나 버리지 않았다고 단호히, 소설 제목(소설이 쓰일지 안 쓰일지도 당시에는 확신 못 했지만)에서부터 이야기하는 거죠. 시제는 복합과거로서 이미 완결된 과거에 대한 진술입니다. 어머니와는 언제나 일체감을 느끼며 살았다고 하기에, 어머니는 타자가 될 수 없고, 과거에 대한 기억을 거의 잊고 다른 사람이 된 어머니라 해도 "떠나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Annie!'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은 지도 일 년이 훨씬 지났다.(p97)" 저 말을 듣는 순간 몸의 자신의 모든 감각이 마비된 채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는 말이 나오네요. '아니'는 물론 아니 에르노, 이 소설의 작가 이름이자 주인공 화자입니다. 이어서 저 어머니가 하는 말은 "나도 같이 데리고 가!"입니다. 어머니는 빵과 과자가 충분하다 싶으면 치마 밑에 감춘다고 하는데(p98),작가는 여기서 식료품점에서 사탕을 여러 개 훔치던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립니다. 수치스럽고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이건 말건 그녀는 저런 어머니와 여전히 일체감을 유지합니다. "효도, 효심"과는 또 다른 성질입니다. p134에서 어머니는 다시 말합니다. "왜 나를 데려가지 않는거니? 재미있을 텐데."


"지금 이순간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쓰면서 '어머니가 살아계셨다' 등 반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지만, 오늘 불면의 밤을 지새고 나면 앞으로는 이미 완료된 사실로 대과거의 표현을 사용하게 될 것임을 깨닫는다(p149)." 담담하지만 또 슬프고, 그러면서도 희망이 엿보입니다. 떠나 보낸 건 어머니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일부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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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나만 몰랐던 마케팅 기술 - 글로벌 톱 브랜드 마케터의 송곳 같은 마케팅 치트
이혜진 지음 / 읽고싶은책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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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질과 성능 자체보다 마케팅, 즉 물건을 파는 기술이 더 우선일 때가 많다는 사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신박한 마케팅으로 일단 무엇을 팔고 봐야 하는 현실의 절박함은 결국 우리를 마케팅 공부에 몰두하게 하죠. 평소에 방탄의 <인트로: 페르소나>를 즐겨 듣는다는 저자는 작금의 현실이 "소비자와 브랜드 모두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서두도 인용합니다. 즉 성공한 브랜드는 비슷한 이유로 성공했지만, 실패한 브랜드는 다 제각각의 이유가 있으며 그 실패한 사연도 저마다의 이유로 재미있다는 겁니다. 확실히, 이래서 성공했다 류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어도, 그 반대를 재미있게 모아 놓은 책은 드뭅니다. 남의 실패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방법은, 내가 직접 일일이 실패를 해 보는 방법보다 확실히 싸게 먹히는 길입니다. 


마케터는 어떤 선입견,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p42).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소비자와 말이 잘 통하고 드디어 성공적인 마케팅을 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마케터의 언어"가 아니라 소비자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데,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라는 의문이 소비자로 하여금 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확실히 짜증나는 광고를 보면 우리 시청자들, 독자들이 그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됩니다. "이게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이런 실패를 피하려면 먼저 마음을 비우고 소비자의 시선, 또 상품 자체의 특질에 사심 없이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책 서두에는 아디다스 이야기, 네스프레소 이야기가 길게 나옵니다. 저자 자신이 이 상품, 회사, 브랜드에 깊이 간여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이 브랜드들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이 부분은 꼼꼼히 정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몇 년 전에는 조지 클루니가 등장하여 당연하다는 듯 "What else?"를 묻는 광고가 인상적이었죠. 저자는 또한 아디다스가 야심을 갖고 론칭한 버티컬 스토어가 결국 실패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깊이 관여한 프로젝트의 좌절에 대해 당사자가 직접 고백하는 스토리이므로 우리 독자들이 흥미롭게, 또 유익하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필립 코틀러가 CSR을 정식으로 이론화한 이래 널리 쓰이는 개념이 되었으나 네스프레소는 그를 넘어 CSV를 추구했다고 합니다. 그저 남는 이윤의 일부만 사회에 환원하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고객과 모든 가치와 이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거죠. 남수단은 반기문씨가 UN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독립한 나라인데 네스프레소는 신제품을 바로 이 남수단의 경제적 부흥과 연계시켜 론칭했다고 합니다. 이는 그저 이미지 메이킹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어려운 사람들과 한 걸음 한 걸음 같이 떼어 가는 모범을 보여 준 사례인 듯합니다.


몇 년 전부터 루프탑을 파티 공간으로 이용하는 트렌드가 부쩍 강해졌습니다. 서머셋 팰리스 서울에서 호텔리어로 일하며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뗀 저자는 그 무렵 "호텔 문턱이 낮아지면서 생긴" 새로운 풍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확실히 호캉스다 뭐다 하는 게 다 호텔이 이전보다 "겸손해져서(2016. 10. 4 중앙일보 B8면 기사 등)" 일반 시민들도 호텔을 더욱 합리적으로 이용(p50)하게 된 듯합니다. p54 이하에는 필자가 직접 진행했던 "마이걸즈 서울" 이벤트에 대한 후기가 나오는데 역시 실무에 관심 있거나 혹은 그저 마케팅 일반에 대해 뭐 좋은 아이디어 없나 하고 물색하던 이들에게 좋은 읽을거리입니다. "최고의 회사들은 새로운 방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연두색으로 테두리가 쳐진 대목들이 "비하인드 에피소드"로서 저자의 진솔한 후기가 담겨 있네요(p93 이하라든가).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나도 우먼스 트레이닝을 담당하기 전까지는 위아래 트레이닝복 하나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했다.(p65)" 요즘 여성들의 레깅스 착용을 두고 찬반 논란이 많은데 적어도 이 이슈를 놓고 단순 찬반으로 접근하는 건 마케터의 태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 저자가 레깅스 착용에서 캐치한 건 "운동할 때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였습니다. 이런 테크니컬한 게 눈에 먼저 들어와야 마케팅의 눈이 뜨이는 거겠죠. 저자는 다시 강조합니다. "성공은, 편견을 넘어선 자의 것이다.(p67)"


"나와 어딘가 닮은 듯한 브랜드에 묘하게 끌린다(p84)." 저자는 여기서 투미 브리프케이스를 언제나 함께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예를 듭니다. 이 브랜드가 일관되게 내세우는 건 "견고한 실용주의 가치 체계"라고 합니다. 이것이 오바마가 자신을 브랜딩한 "팩트 가이"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는 거죠. 브랜드는 이처럼 뭔가 근본적인 차이를 두고 포지셔닝에 나서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이런 건(=근본적으로 달라서, 다른 브랜드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못 따라오는 건) 생각만 해도 신난다는 게 저자의 느낌이라고 합니다. 이 맛을 알아야 성공에의 첫 걸음이 떼어지는 것 아니겠나 싶습니다. 


p127에서 저자는 정재승의 말을 인용하며 에디슨이 이야기한 아주 유명한 명언, "천재는 99%의 땀(퍼스피레이션)과 1%의 영감(인스피레이션)으로 이뤄진다"라는 말을, 우리 상식과는 정반대로 해석하자고 합니다. 즉 99%의 노력을 때려부어도 1%의 영감이 없으면 결국 안 이뤄지는 건데, 이 1%가 사실 아무한테나 안 찾아오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1) 시장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2) 이 가치를 경쟁력 있게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3) 끝까지 소비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p134)


마케터에게 운칠기삼은 없으며 준비된 실력의 힘은 그 무엇(운이라든가)보다도 강력하다고 합니다(p151). 성공을 밥 먹듯 하는 마케터는 언제나 자신만의 기준을 유지하며, 마지막으로 "이거 내가 봐도 괜찮은가?"를 항상 되묻는다고 합니다. 나이를 초월하는 자신만의 에이지리스한 스타일을 가질 것, 절대 지루해지지 말 것 등을 저자는 독자에게 힘 주어 강조합니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주장이 정답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혜진이라는 마케터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 책을 통해 뚜렷이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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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심리학
바이원팅 지음, 최인애 옮김 / 미래와사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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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가짐이나 동기, 내심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대뇌를 비롯한 각종 신경 기제가 우리 자신을 속이는 중인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죠. 이 책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우리 자신의 진짜 심리, 혹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과정을 가르쳐 줍니다. 


왜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가며, 괴로운 시간은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처럼 느리게 지나갈까요? 책에서는 착각을 일으키는 요소 세 가지에 대해 설명합니다(pp.38~39). 1) 생활환경과 조건의 차이(가난한 아이는 어쩌다 먹는 밥이라도 매우 맛있게 먹음) 2) 생리적 구조(시각 분석 기관 내부의 흥분에 따라 같은 도형도 다르게 보임) 3) 과거의 경험(과거에 비슷한 걸 보았으면 현재의 것도 그 경험에 맞추어 판단) 등이라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은 외모를 지닌 여성 현미(p42)"씨가 겪는 외모 콤플렉스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녀는 현재 두 눈 크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하고, 혹시 시력에 큰 지장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부터 자신의 외모가 비정상(물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일상에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그녀를 면밀히 검사해 보니, 아주 예전부터 학력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 열등감을 만회하기 위해 괜찮은 신랑감을 물색해 왔으나 결국 실패한 과거의 경험들, 이 모든 것이 얽혀 현재의 외모 강박증을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처럼 현재의 심리적 강박이나 집착은, 한 가지 원인만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여러 심리적 좌절, 실패의 경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기분에 따라 길게도 짧게도 느껴지는 시간의 착각은 아인슈타인이 예전부터 효과적으로 설명했었습니다(p57). 불교의 가르침에 "일체유심조"라는 게 있지만, 저자는 이런 경우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모든 게 좌우되므로 결국 자신의 마음, 같은 것을 길게도 짧게도 느끼는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다고 합니다. 또 유명인 효과도 이어서 설명하는데, 사실 상품이나 서비스의 효능이란 게, 그걸 누가 광고하는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상할 만큼 유명인의 한 마디에 좌우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명인을 일부러 키워서 특정 상품을 지속적으로 판매하려는 기획도 있다고 하죠. 우리들도 어떤 유명인에 아주 미미한 연관만 있어도 바로 지인들 앞에서 "아무개가 나의 지인"이라며 자랑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인은 그 자체로 대단한 것"으로만 여길 뿐 대체 어디서 유명도가 유래했는지, 대체 왜 사람들이 유명인에 그토록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별반 깊이 생각하질 않습니다. 


마케팅 기법 중에는 "문전 박대(p87)"라는 게 있습니다. 먼저 일부러 상대가 들어주기 힘든 부탁을 한 후 보기좋게 거절 당합니다. 그런 다음 그보다는 약한 부탁을 하면, 상대 입장에서 이것까지 거절하기는 힘들겠으므로 본래의 의도(두번째 부탁)를 달성한다는 식입니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10을 얻기 위해 먼저 100을 요구하는 지혜"라고 요약합니다. 또 책에서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이라는 성어를 인용합니다(p100). 이는 "역지사지와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라고 책에서는 말하는데, 윤이라는 인물이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예화를 소개하면서 "윤의 잘못은 역지사지하고 않고 추기급인한 데에 있다"고 합니다. 추기급인은 사실 자기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내가 이러하니 남도 이러하겠거니 짐작하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거죠.


몇 년 전에 어느 유명한 정치인이 "삼인성호"를 거론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사자성어와 거의 어언제나 함께 거론되는 게 "효자 증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살인을 의심하여 뛰쳐나가는 이야기(이른바 曾參殺仁)"입니다. 이걸 두고 책에서는 "축적된 심리적 암시"의 효과라고 설명합니다. 또 언어 자체보다는 몸짓이나 표정을 통해 그 사람의 거짓 여부를 알 수 있는데, 공연히 웃음을 짓는다거나 하는 건 "위장된 표정이 실패했을 경우 재빨리 무마하려는 제스처(p131)"라고 합니다. 동공이 커지고, 억지 감정을 만들어 내고, 코를 만지고(어떤 늙은 유튜버가 생각나네요), 얼굴에 두려움이 비칠 때 그런 상대방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잘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물을 자주 마실 것을 충고합니다. 물은 우리 몸에 산소만큼이나 중요하며(p153), 특히 아드레날린이라는 고통 호르몬이 분비되면 이를 밖으로 배출해야 하는데 그때 물이 핵심적 구실을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웃게 만드는 건 우뇌엽인데, 이것이 우리를 젊게 지키는 중요 기제라고 하는군요. 또 웃음은 그 자체로 효과적인 심호흡 운동(p161)이라고 합니다. 


앞에서도 지나친 집착이 모든 걸 망치는 원흉일 수 있다고 했는데, 책에서는 모든 목표를 억지로 달성하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정책 목표의 75%만 달성해도 성공이라고 평소에 주변에 말했다고 하네요(p201).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포기하는 법도 배워야 하며 두 보 전진을 위해서는 한 보를 후퇴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저자의 말입니다. 


미국에는 한 세기 전에 헬렌 켈러라는 위대한 강연자, 모티베이터가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중국에는 황메이리엔(黃美廉. 황미렴) 박사라는 분이 있는데(p214) 이분이 저 헬렌 켈러하고 비슷한 위상인 듯합니다. 어렸을 때 뇌성마비를 앓아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데도 불굴의 의지로 박사 학위까지 딴 분입니다. 이분의 특징은 "모든 일에 감사하자. 나에게 귀여운 얼굴, 길고 예쁜 다리 둘을 준 신과 부모님께 감사하자" 등 매사를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그리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중증 장애를 극복하자니 그럴 수밖에 더 있었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어디 그렇겠습니까? 사람은 아주 사소한 좌절이나 불편만 겪어도 바로 의지를 잃거나 주위를 탓하는 습관에 바로 빠져듭니다. 긍정과 만족의 마음가짐은 저 황 박사의 예처럼 기적을 부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번 도쿄 올림픽 때 자원봉사자에 대한 처우가 논란을 빚은 적 있습니다. 자원봉사에는 가격을 매기면 안 되고, 오히려 자원봉사자의 의욕을 잃게 하여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책에서 드는 게 재미있는데, 우리의 행동은 사회 규범, 시장 규칙 두 가지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p249)이라고 하네요. 명예와 자기만족을 더 중시하는, 사회 규범에 의해 이미 영향 받고 행동하는 사람더러 느닷 시장에서 형성된 대가를 들이대면 기존의 의욕도 다 빠져나가고 나아가 분노까지 유발시키는 게 당연합니다. 


확실히, 배우자를 고를 때에는 뭔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는 듯합니다. 앞에서 본 현미씨(p42) 역시 자신에게 부족한 학력을 채워 줄 수 있는 배우자가 필요했으나 이게 잘 되지 않아 그 모든 불안과 행동장애가 찾아온 경우죠. p291에는 거꾸로 "누군가를 돌보고 싶은 심리"가 필요 이상으로 작용하여 세 번이나 남편을 술고래 타입으로 맞아 파탄을 빚은 어느 여성의 사례가 나오는데 이 여성의 아버지도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다고 합니다. 사람의 행동에는 그런 행동을 낳은 어떤 심리적 원인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므로 타인이건 자기 자신이건 이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야 어떤 함정과 반복되는 오류에 빠지지않을 수 있다는 게 결론입니다. 심리를 바로 파악하는 건 내가 내 자신의 진짜 주인이 되는 지름길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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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세책점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아이들 23
구본석 지음, 반성희 그림 / 책고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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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귀하던 시절, 한 번 사용한 종이를 다시 깨끗이 씻어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는 풍습은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무척 아름답게도 보입니다. 그러나 기실은 물자가 풍요롭지 못하던 시절 일종의 고육책이었겠는데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많습니다. 물론 세책점의 세는 씻을 세(洗) 자가 아니라 세 놓을 세(貰), 즉 오늘날이라면 대여점이라는 뜻이지만 말입니다. 한때 한국에서도 책 대여점이 성행했었습니다만 지금은 찾기 어렵고, 지역 도서관이나 e-book 대여 업체(온라인)가 주류를 이룹니다. 


"겸이"라는 외자 이름은(혹은 이름의 끝자만 따 부를 수도 있지만)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의외로 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긴 한자 자체가 상서롭고 길한 느낌을 주기 때문도 있습니다. 한데서 잠을 자다 보면 몸에 탈이 날 수도 있고 잠시 잠이 든 듯하다가도 일어나 보면 어느새 몸이 정상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p40). p39의 일러스트에서 몸이 축 젖은 채 고개를 떨구며 기가 팍 죽은 겸이의 모습은 참 처량하게 보입니다. 


봉수는 겸이한테 글자를 가르쳐 줍니다(p66). 이미 배워서 아는 것도 있고 시시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는데 여튼 글자를 가르쳐 주는 일이나 그것을 배우는 일이나 몹시 보람 있고 뿌듯한 소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글자를 배워서 무엇에 쓸까요? 앞 p10에 보면 이야기 장수가 청이 이야기(심청전)를 들려 주며 구경꾼들의 애를 태웁니다. 이처럼 이야기 장수의 연기와 변덕에 좌우되지 않고, 책 한 권만 갖고 있으면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책을 들춰 보며 내 편할 대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p100에는 잠시 책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라이더인데... 영국 등에도 순회 도서관 같은 게 있어서 주민들에게 이용료를 받고 서비스를 하는 풍속이 있었죠. 필사본 책을 배달하는 직분이지만 이야기가 읽고 싶은 여인네들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행차였겠습니까. 이 페이지에는 키가 큰 옥정이가, 얼굴이 거무스름한 겸이 볼을 귀엽다는 듯 비벼대는 장면이 일러스트로 나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여러 버전이 있죠. 영화에도 두 가지 버전이 만들어져서 반응을 본 후 어느 하나가 채택되듯이 말입니다. p116에는 <금방울전>에 대해, 이 버전이 더 재미나게 마무리지었다며 신 나게 권하는 세책점 주인의 말이 나옵니다. 하긴 필사자가 구태여 기존의 텍스트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자신의 판단으로 결말을 바꾸어 더 재미있고 더 많은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게 바꿀 수도 얼마든지 있죠. 


옥정이는 겸이보다 두 살이나 많은 데도 겸이는 옥정이만 보면 마음이 설렙니다(p14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을 들키지 말아야 할텐데 라며 노심초사합니다. 왜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바로 터놓지 못하고 이런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며 망설이는 걸까요? 어찌 보면 이런 의문도 이야기책을 읽으며 자신 나름의 답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이야기의 힘입니다.


이야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강력히 움직이는 힘이 있고, 때로는 큰 감동을 주어 사람의 인성을 바꿔 놓기도 합니다. 책이 얼마나 사람의 감정을 멋지게 정화할 수 있고, 또 그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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