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여중 구세주 특서 청소년문학 21
양호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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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중2 남혜진이며 현재는 20대 중후반이 되었을 만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작은고모네에 의탁해서 어렵게 살았는데, 새로 전학간 학교에서 적응도 못 하고 딱 가출소녀가 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이란 정말 한순간의 기분, 분위기, 좋거나 나쁜 영향 등 그야말로 우연의 요소에 의해 정반대 방향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가출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그녀의 인생에 손을 뻗어 "구원해 준" 같은 학교 친구가 바로 구세주였습니다. 성이 구씨고 이름이 세주입니다.


주인공은 다소 내성적이며 여성치고도 완력이 그리 강하지 못합니다. 이런 혜진이를 고비마다 잡아 주고 도와 준, 정말로 좋은 친구가 세주입니다. 세주에게는 쌍둥이 남동생 세우가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살짝 암시만 되는 정도이지만 혜진이는 세우에게 조금 마음이 있는 듯도 합니다(p72, p127). 아직 한창 젊은 나이이므로 혹 속편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둘이 어떻게 잘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작품은 여성들끼리의 가슴 뭉클한 우정에 대해 포커스를 맞췄으므로 그런 곁가지는 없는 편이 과연 나았겠습니다. 


겉돌던 혜진이에게 소속감을 마련해 준 고마운 친구 세주와의 우정이 중심이고, 4총사로 어울려다니던 나머지 둘 차인정, 함은하는 약간은 비중이 낮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은하, 인정, 주인공 혜진은 반드시 약속 장소에 나올 듯하지만 왠지 (타이틀 롤인) 구세주는 안 나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데, 무슨 일이 있나, 소설 막판에 어떤 큰 불행한 일(사고로 몸이 불편해졌다거나, 둘이 어떤 일 때문에 치명적으로 싸웠다거나)이 벌어지기라도 했을까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훈훈하게 돌아가니 마음 놓고 읽으셔도 되겠습니다. 


세주는 정말로 1인칭 화자 혜진이한테 구세주 노릇을 해 주는데, 앞서 말한 대로, 무서운 사회 선생에게 교과서를 준비 안 한 게 걸리면 무척 혼이 났을 테며, 가뜩이나 정신적으로 위기였던 그녀에게 이런 일까지 벌어졌더라면 꼼짝없이 그녀는 가출소녀가 되었을 겁니다. 이 대목이 독자인 저에게는 평행우주의 갈림길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구세주가 특별한 무슨 안목, 혜안이 있다거나, 남달리 똑똑하다거나 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갖는 순수한 호의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바뀐 것입니다. 청소년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우정의 가치, 기적으로도 보였습니다. 


혜진이는 차남구함 4총사 중 가장 약한 멤버였던 탓에, 소설 중반부쯤에 오이소박이 패거리한테 걸려 큰 봉변을 당할 뻔합니다만 이때도 구세주가 때맞춰 나타나 구세주 노릇을 합니다. 차남구함 4총사가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보낼 무렵에는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라든가 UFC의 론다 로우지(=라우지) 같은 스타가 나타나 인기를 끄는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략 십 년 전이죠. 광우병 파동은 어떤 정치적 메시지 같은 걸 전달하는 것 같지는 않고, 소설 속에서 그저 시대의 이정표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처럼 시끄러웠던 사건이 전혀 정치적 색채를 안 풍기게 한 데에서 이 소설의 담백하고 잔잔한 분위기가 더 잘 도드라지는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 또 중요한 인물은 "짱아찌" 할머니인데, 프롤로그에서 생선 냄새 나는 어느 수다스러운 아주머니하고 좀 겹치는 이미지입니다. 그 아주머니는 평생 사는 삶이 신산한 듯하지만, 나중에 드러나듯 "짱아찌" 할머니는 엄청난 재산가이기도 했으니 다르다면 다르네요. 할머니가 그 많은 재산으로 좋은 일 하시는 장면에서는 박수가 절로 나올 만하지만, 소설 속의 남성여중 학교 재단은 (작품 중에도 그런 서술이 있지만) 내부 문제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런 문제가 먼저 해결되고 나서 기부가 이뤄져도 이뤄졌으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웃음이 나오는 대목은 어느 분의 칠순잔치에 이미테이션 가수 전남진씨가 공연 오는 장면입니다. 이미테이션이라고 해도 가창력은 다들 좋은데 이분은 그렇지 않아서 웬만하면 박수 쳐 주고 좋게 넘어갈 관객들한테 큰 조소를 받습니다(아무리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한들). 이 장면이 p85에 나오고 대타 격으로 무대에 오른 "걸그룹" 차남구함이 분위기를 휘어잡는데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습니다. 한참 뒤인 p185에는 저 부분을 언급(allusion)하며 "누가 칠순 잔치를 하나?"라는 말이 나오는데, 앞에서 그 일화를 본 독자는 여기서 또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혜진이는 세주의 따뜻한 우정 덕분인지 마음에 여유를 찾고, 마을 전체가 큰 수해를 입은 그날밤 공장의 물품을 필사적으로 지켜냅니다. 혜진이가 그저 자기 자존심만 중히 여기는 애였으면 친구 세주를 부를 생각도 안 먹었을 건데(그랬으면 공장은 더 큰 피해를 입었겠죠), 그러지 않고 상황이 급할 때 무엇을 더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지 마음을 바르게 먹은 아이라는 게 드러나죠. 이래서 혜진이는 복을 받아(?) 나중에 대학원도 다니고 더 알찬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요? 프롤로그에서 생선 아주머니(?)가 외모에 대해 칭찬하는 걸 보면 미모도 잘 피어나게 성장한 것 같고 말입니다. 


이 소설의 4총사보다는 더 늦은 나이에 해후하는 설정이지만 십대때 순수한 우정을 나누고 성인이 되어 재회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는 <나우 앤 덴>이 있습니다. 그 영화보다 자극적이거나 극적인 설정은 없지만,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잔잔하게 그 시대의 풍속도를 보여 주는 면에서 더 뭉클한 면이 있습니다. 결말이 해피엔딩인 점도 마음에 듭니다. (스포) 나중에 세주는 약속장소에 나타나는데, 특유의 그 활동적인 면을 잘 살려 부사관이 되어 있으며 여성인데도 UDT에 지원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힙니다. 


에필로그에서 혜진이는 더 이상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는데 이 대목은 화자가 유년시절의 미숙함과 완전히 결별하고 어른이 되는 걸 상징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처럼 유년기와 어떤 행복한 결별을 이뤄 내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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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정약용 - 시간을 거슬러 온 조선의 다빈치,‘실학 21’로 대한민국을 세계 중심에 서게 하다
윤종록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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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인(全人)적인 역량을 갖춘 분이, 예전이 아닌 요즘 우리 곁에 다시 와서 국민을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하는, 그런 위인은 몇 분이 있습니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황희정승... 그 중에 빠지지 않고 꼽힐 만한 분이 있다면 다산 정약용이겠습니다. 다산께서 현대로 와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경영한다면 과연 얼마나 번영하고 평화로우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만들어질까요? 이 책의 저자는 다산을 두고 다빈치형 인간이라 규정하며, 대통령 정약용의 지도 하에 세상에는 팍스 코리아나(p181)가 구현될 것으로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다산의 가문에는 유독 천주교 신도들이 많아서 정국이 바뀔 때마다 다산은 죄를 입고 귀양가기도 참으로 자주 겪었습니다. 이 책은 다산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었는데, 황사영 백서 사건 때문에 또다시 서학이 문제가 되어 박해의 여파를 입고 귀양을 가게 된 고충을 토로(p25)합니다(물론 작가의 상상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중국의 덩샤오핑도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아 하방(下放)으로 고생할 때조차 지역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하는데 범상치 않은 도량과 재능을 지닌 이들은 이처럼 어느 순간에도 빛이 나는 것입니다. 책에는 어느 늙은 주모가, 유배자인 당신 덕분에 외손자가 문맹을 면했다며 감사의 뜻으로 음식을 가져오는 장면(p40)이 나옵니다. 


한편 p48부터는 배경이 현대 대한민국으로 바뀌어, 실학청년미래포럼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정치에 새 바람이 불 조짐이 보입니다. 국제 정세는 급변하는데 국회에서는 날마다 여야가 소모적 대립을 일삼고 구태를 벗어날 기미가 대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전남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새해를 맞는 윤공 앞에 홀연이 어떤 계시가 들려오는데 내용이 다소 황당하기도 하지만 애타게 메시아를 찾는 청년들의 외침에 어떤 응답처럼 내려온 듯도 합니다. 18이라는 숫자에 굉장한 상서로움이 깃들었으며 우리 민족은 일찍이 가나안을 배회하던 열두 지파 중 단 지파에 속한다는 깨우침도 있습니다 ㅎㅎ


주인공인 윤공은 이름이 그저 "공"이며 어떤 존칭은 아닙니다(p103:4). 이처럼 현대에 재림한 옛적의 위인께 그간의 사정을 설명드리고 당황 않으시게 납득을 시켜 드리는 일이, 타임슬립 상황에서는 가장 난감할 것 같은데 윤공은 엘리트 청년이라서인지 200년 전 어르신(인데다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께 설명을 참 요령 있게 잘합니다. 진짜 이런 일이 생겨도 다산께서는 천재이므로 잘 이해하고 따라와 주실 듯합니다. 다산은 그 와중에도 자신을 알아 주었던 군주 정조 대왕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어쩔 줄을 모르십니다. 


p112에서 KTX에 탑승한 다산은 수많은 승객이 일시에 열차에 오르는데도 질서정연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 걸 보고 놀라지만 어떤 합리적인 방식이 약속되어 있겠거니 여깁니다. 이런 당연한 것도 과거에서 온 분(더군다나 비범한 두뇌와 지혜를 지닌 분)에게는 경이를 부를 수 있겠는데... 여튼 여의도에 도착한 다산은 국회의장의 영접을 받습니다. "신 대한민국 국회의장이옵니다...." 다산은 국회의장을 만나, 자신의 저서가 200여년(정확히는 221년)이 지나 그토록 큰 영향을 끼치고 숭앙되는 중인줄 몰랐다며, 정중하게 대통령 취임을 수락(p145)합니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지 싶습니다. 


"나의 시련은 바로 지금을 위한 것이었구나!" (p157)


바야흐로 세상은 코로나 때문에 큰 고생을 치르는 중이죠. 이번에는 하드파워가 아닌 소프트파워로 세계의 존경을 받게 된 한국이 정조대왕도 현대로 초빙합니다. 이는 어떤 혁신적인 기술 같은 건 아니고 하늘이 우리 코리아에 주신 약속(p180:1)이며 따라서 어떤 번잡한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정조대왕과 다산은 과연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지성들답게 한국과 세계를 향해 도도한 지론을 펴며 대중을 설득합니다. 극우, 극좌 식의 사고를 가진 자가 도대체 몇이나 되기에 그들의 대립 때문에 온 인류가 이 고생을 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이어 초대된 이는 시몬 페레스, 지난시절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 와중 큰 공을 세웠으나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는 강경 노선을 취하지 않고 아랍과 이스라엘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노선을 주창하여 노벨상까지 받은 인물이죠. 우리가 다 아는 대로 그는 암살을 당했습니다. p217에서 그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엔테베 작전에 대해 감개 어린 회상을 합니다. 


다음으로는 김성주라는 인물이 초청됩니다. 이 자도 다산 같은 민족의 위대한 스승 앞에서는 겸양한 태도를 취하는군요. 그러나 그의 말은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p235에서 그는 남한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자인합니다. 그리고 제 손자인 아무개한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합니다. 흠. 아무개도 눈 앞에서 이런 기적 같은 일(죽은 지 할애비가 나타남)이 벌어지니 꼼짝 못하고 세계 앞에서 평화를 약속합니다. 후... 이 작자는 아마 정말로 이런 천상의 기적이 일어나기라도 해야 정신을 차릴까요?


윤공은 이제 조국이 나아갈 바를 구체적으로 비전으로 만들어 연설을 이어갑니다. 이스라엘, 에스토니아. 네덜란드 등이 규모가 작으면서도 혁신과 진취적 정신을 통해 번영을 이룬 모범으로 거론됩니다. 앞에서도 소프트파워가 나왔지만 이런 나라들로부터는 더욱 구체적으로 그 성공 사례를 분석 추출합니다. 이어 대학의 자율성을 100% 보장하며(그런데 부작용은 없을까요?), 구글 같은 고부가가치 기업을 만들어 세계 경제를 주도함과 동시에 봉사하는 자에게는 천국을, 위에 군림하며 누리려는 자에게는 지옥이 되는 나라(p294)를 만들자고 합니다. 개업은 비즈니스 오프닝이요, 창업은 비즈니스 크리에이션이라고 하며(p309) 자영업자가 영위하는 모든 사업 활동이 그 자체로 창의의 산물이 되게 지원한다고 선포합니다. 농토는 역 모기지 정책(p334)을 적극 펴서 생산성을 높이고, 수익원을 더 넓히겠다고 밝힙니다. 


2027년 정약용 대통령은 거의 모든 것을 이루고 전세계의 존경과 축복 속에 퇴임합니다. 이제 세계는 코리아를 중심으로 대립과 질시를 지양하며 끝없는 번영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것이 국뽕이라고 해도 참으로 뿌듯하며, 망상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와 닮은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사심을 버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정진할 시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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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최종병기 책 쓰기 - 책 쓰기로 생존하라!
이건우 지음 / 일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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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인들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책 저자는 "테어다운을 통해 누구나 책쓰기를 할 수 있으며 책쓰기야말로 직장인이 가질 수 있는 최종병기"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또 테어다운이 무엇인지는 책에 자세히 나옵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쓴 이미예 작가는 2021년초 최고 화제 작가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사실 독자로서 저는 최근에 베스트셀러를 주의깊게 읽지 않아서, 책 이름은 들어본 듯도 한데 작가님이나 책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저 이미예 작가야말로 테어다운을 가장 잘 활용해 성공한 케이스라고 합니다. p33에 보면 "습작한 경험도, 공모전에 응모한 적도 없는 무명작가였던 그녀(부산대 졸. 삼전 엔지니어 출신)는 재미있는 만화책, 드라마 대본집 등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노트에 적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엔지니어 출신이고 엔지니어라면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공산품의 테어다운에 익숙할 만합니다. 성공한 제품을 뜯어 보고 무엇이 핵심이었는지 연구한 후 각각의 장점을 멋있게 결함하면... 책쓰기도 이와 비슷하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달러구트...>는 테어다운에 의해 태어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이 책 저자 이건우씨는 주장합니다(p33).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책을 쓴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쓰기 전 설령 전문성이 부족했다고 쳐도, 책 쓰고 나면 달라진다." 여기까지 읽고 저는 책 한 권 낸 후 커리어가 조금은 풍성해졌으므로 그래서 전문성이 늘어난 걸로 평가받나? 이렇게 생각했었는데(그럴 리가 없죠), 저자의 말은 그게 아니라 "책 쓰는 동안 연구를 했으므로 전문성이 전에 비해 늘어났다"는 겁니다. 그래봐야 전문 연구자에 비길 수 있겠나 하겠지만 책쓰기는 독자와 소통의 영역이므로 지식을 얼마나 쉽고 친근감 있게 전달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블로그 하는 분들 중 어떤어떤 책을 읽겠다 라며 다음 책쓰기 계획을 밝히고 그 과정을 블로그에 밝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걸 본 게 2016년이었으므로 한국에는 체계적으로 책쓰기를 하는 직장인분들이 꽤 많다는 걸 눈치핼 수 있죠. 이걸 하시는 분들은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저서 집필을 위해 자신만의 열정을 불태우기 때문에 공부 능률이 꽤 높습니다. 어려운 책을 읽어도 "이걸 내가 다 소화해서 내 책을 쓰는 데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각오가 대단하기 때문에 이해를 잘합니다. 과연 이분이 이렇게 양도 많고 전문적인 책을 소화할 수 있을까? 그런데 결과를 보면 처음부터 동기가 남달라서인지 확실히 다르더군요.


이 책을 보면 우리가 그래도 이름이 눈에 익은 여러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처음부터 유명했던 게 아니라 직장인 시절에 이처럼 책쓰기를 시작해서 오늘날 그 정도 명성을 쌓은 분들이 많습니다. 책 분량의 30% 정도는 그런 성공 사례들에 대한 소개인데 그것만 읽어도 재미있을 정도입니다. 구본형 소장 같은 경우 "직장인은 스스로를 고용한 1인 기업가라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1호, 2호 책을 낼 때 그는 아직도 IBM 영업관리부장이었습니다. 책들이 성공하자 그는 책에서 말했던 대로 회사를 떠나 자신의 연구소를 설립하고 오늘에 이릅니다. 요즘같이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한 때에 이런 식으로 성공하는 것도 확실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물론 거짓과 허위로 점철된, 극소수 네티즌들과만 짜고치는 고스톱 같은, 속이 검은 시도라면 백전백패이겠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글쓰기가 될 수 있을까요? 모든 대중을 만족시키려는 두루뭉술한 글쓰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타깃은 좁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백우진 작가 같은 이는, "보고서를 보면 (보고서 작성자가 아니라) 그걸 읽는 의사결정권자의 연령대까지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대단하죠. 물론 그 보고서가 잘된 보고서라는 전제 하에 그렇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직장인은 완벽하게 고객 맞춤형 글쓰기를 해야 한다" 회사 다닐때보다 더하네요. 그래도 막연한 책을 쓰고 성공하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이처럼 철저한 전략 하에 무엇을 만드는 게 올바른 선택입니다. "직장에서 쓰는 모든 글은 상사를 만족시켜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독자를, 스페시픽하게 정해진 타깃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거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신문광고에 이 책 광고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 아 이 책은 무조건 베스트셀러가 되겠구나 싶었는데, 탄생 비화를 들어 보면 전혀 아니라고 합니다. 에디터가 "이런 제목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반대했는데, 공 작가가 그렇게나 고집을 부려 결국 관철되었다고 하네요(p101). 공 작가의 작품 완성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솔직한 독자가 요즘은 꽤 늘었는데 그렇다고는 하나 이런 걸 보면 확실히 큰 성공을 할 자격이 있는 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작가가 아니라면 하다못해 카피라이터로서라도 말입니다. 


양은우 작가 역시 성공적인 직장인이었다가 성공적인 작가가 된 경우라고 합니다. "선한 영향력"이 그가 내세우는 모토지요. 자신처럼 직장인 생활을 하며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그는 "내가 왜 책을 내고 싶은지부터 먼저 깊이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책에 쓴 한 마디 때문에 정말로 직장을 그만두는 등 인생을 바꿔 놓을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으니, 어디까지나 "선한 영향력"을 염두에 두라는 거죠.


글 도둑질을 하면 안 됩니다. "표절"은 그저 부도덕이 아니라 불법이며 민형사상 중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행위입니다. 모든 책에는 말미에 "무단 전재를 금한다"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는데도 독자는 무신경하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죠. 세상에 없던 컨텐츠를 창조하는 게 작가의 본질인데 이런 걸 전혀 의식 못 한 채 그저 한번 떠 보겠다고 양심이 실종된 채 무리수를 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잘쓴 글은 유려합니다(p228). 이를 PREP으로 요약하는데 포인트(결론), 리즌(이유), 익잼플(근거사례), 포인트(요약강조)의 약자라고 합니다. 앞에서 공 작가는 편집자와 의견 대립을 빚었지만 공병호 소장 같은 사람은 반대로 "그 사람들이 전문가이니 그 사람들에게 그냥 맡기라"고 합니다. 사실 판단하기 어려운 일 같습니다.


베스트셀러라고 다 좋은 책은 결코 아닙니다. p118에 보면 최근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을 놓고 서평가인 한승혜 작가는 각각의 단점을 솔직하고 예리하게 꼬집습니다. 읽어 보니 제가 다 속이 시원하네요. 하지만 크게 성공을 거둔 책은 그만의 이유가 있기에 성공한 것입니다. 직장인으로서 책쓰기로 성공하고 싶은 이들도 그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기보다, 어차피 돈 벌고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 일을 시작했겠으므로 시장에서 성공하는 상품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잘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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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독서 습관 60일의 기적 -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책을 읽습니다
김선호 지음 / 빈티지하우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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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부터 알찬 독서 습관을 들여 놓아야 상급 학교에 가서도 공부를 잘 하게 되며, 무엇보다 독서는 주제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능력을 함양해 주기에 그 자체로 매우 유익한 습관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생적으로 독서를 좋아하기 되기란 힘듭니다. 요즘은 더군다나 놀 것, 재미있게 즐길 소재들이 주변에 지나치게 많은 까닭에 아이들이 독서에 몰입하기가 더욱 어려운 환경입니다.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체계적으로 아이한테 올바른 독서 습관을 길러 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찾기 힘들겠죠.


"독서 습관이 자리잡기까지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p27)" 사실 많은 학부형들은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아이들이 독서 습관을 몸에 잘 붙이길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결국 습관을 들이기만 해도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여기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저자는 적어도 60일이 필요하며, 이 60일 동안 어떻게 잘 교육하고 지도하느냐에 따라, 거의 평생을 갈 수도 있는 아이의 독서 습관이 좌우된다고 주장합니다. 60일이 무작정 길다고 여기는 학부형도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짧다고 느끼겠죠. 아이가 책을 좋아하기만 한다면야...


아이들은 왜 이렇게 책읽기를 어려워할까요? 사실 책 p27에서는 주어가 "어린이들, 초등학생들"이지만, 그 주어를 "어른들"로 바꿔 놓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왜 우리 어른들은, 또 아이들은, 책 읽기를 어려워할까요? 답은 저자가 명쾌하게 제시합니다. "어려운 단어가 자꾸 나오기에, 무슨 뜻인지를 알 수가 없고, 또 한번 뜻을 잘못 이해하고 읽어 나가면 그때부터 내용이 이해가 안 되기에 독서를 이어갈 수 없다." 이게 가장 정곡을 찌른 답입니다.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은 거의 모든 게 스토리입니다. 심지어 수학책, 과학책, 공학 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용이 이어지질 않는데(독자가 이해를 못하거나 해서) 어떻게 책을 읽어 나가겠습니까. 어른도 지금 자신이 읽는 책, 혹은 인터넷상의 짧은 글이라도, 자꾸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도저히 읽어 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말로 된 책을 자주, 즐겨 읽는 분들이라도, 같은 책인데 영어로 된 책은 꼭 잘 읽는다는 보장이 없죠. 왜? 단어를 모르니까요. 


그러니 아이들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습관을 들이려면 일단 본문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자는 누가 옆에서, 모르는 단어의 뜻을 아이들에게 자꾸 설명해 줘야 한다고 합니다. 독자인 제 생각에도 이 과정이 정말 중요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중2때 도덕과목 선생님이, 일단 아이들더러 교과서에서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라고 하든가, 혹은 자신 생각에 이 단어들은 아이들이 어려워하겠다 싶은 걸 골라 수업 전에 먼저 설명을 해 주는 방식을 선택했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수업 내용을 못 따라오는 애들 수가 훨씬 줄어들고 그 선생님은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공부를 원래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별 필요가 없는 과정이었겠으나 의무 교육 과정의 교사는 학생 중 낙오자 수를 줄이는 것도 하나의 사명이니 말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독서는 참으로 정(靜)적인 활동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독자인 저는 "아, 참으로, 아이들에게 독서 습관을 붙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싶었습니다. 아니 애들이 얼마나 활발하고, 다이내믹하고, 좀이쑤셔 못 견디는 그런 나이이겠습니까. 그런 동(動)적이기 짝이 없는 애들한테, 더없이 정적인 활동인 독서를 시키려니 이게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저자는 "독서보다 정적인 활동은 명상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어른인 저도 명상이 잘 안 되며 어쩌다 시도해 보면 바로 잠이 옵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책 읽으라고 시킬 때 딱 이렇지 않겠습니까. 


"독서는 참으로 까다로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엄마 아빠들은 독서를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사실 본인들도 어렸을 때 그리 잘하지 못했으면서 애들더러 잘하라고 하니 어디 잘 되겠습니까. 심지어 엄마 아빠 본인들더러 "지금, 바로 당장" 독서를 (그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해 보라고 해도 잘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아이들 독서 교육은, 전문가가 시키는 대로 체계적인, 또 검증된 방법에 맞추어서 시켜야 합니다. 이게 생각만큼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독서만큼 유의미한 학습 습관을 정착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도구는 없다."


이 명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의를 달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뇌 활성화는 그저 학습, 인지 능력의 상승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하고 감정에 반응하기도 하는 기능 또한 높여 줍니다. 감정에 대한 공감력도 뇌 활성화를 통해서 더 높아집니다." 저자가 지금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독서를 통해 활성화한 뇌가 얼마나 다른, 미처 우리가 생각도 못 했던 다른 작업에까지 유능해지는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말해, 한번 독서를 통해 뇌가 활성화한 아이는, 그냥 똑똑해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감정도 풍부해진다는 겁니다. <레미제라블> 같은 책을 읽고 혼자 감동하여 눈물 펑펑 쏟는 자녀를 보면 이제 부모들은 만세를 불러야 합니다. "우리 애가 드디어 독서 습관 제대로 들였구나!"라고 말이죠. 사실 옛 성현들이 그리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건 그저 공부잘하는 기초 단계 하나가 제대로 자리잡혀서만은 아닙니다. 감정도 풍부하고 훌륭한 인성을 갖추는 첫걸음을 떼기도 했기 때문이죠. 공부잘하는 모범생뿐 아니라 먼저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해서도 책을 읽혀야 합니다. 그것도 어렸을 때.


혹 어려서 때를 놓쳤다 해도, 나이 들어서 새로이 독서하는 습관을 잘 들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물론 이 역시 훌륭한 일로 장려받아야 마땅하겠으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평생 독서는 의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어린 시절 무의식적으로 독서에 대한 분류를 끝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려운 책은 별론데 가끔 재밌는 책은 좋아요.'"


아이들은 얼마나 영악합니까? 저렇게 대답하는 애들 99%는 솔직히 책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경우이죠. 그러나 독서를 거부하는 반응이 사회적으로 당연히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기니, 부분적인 반사회적 특성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저리 꾸며 대답을 할 뿐입니다. 혹은 독서를 싫어하는 데서 드러나는 자신의 학습 능력 부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죠. 아이한테서 저런 소리가 나오면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무의식의 힘이 엄청나게 크다"고 하는 거죠. 어른이 되면 고치기 힘들고, 사실 불가능합니다. 뭘 공부하려고 해도 이미 무의식이 거부를 합니다. "넌 이걸 할 수 없어." 그러니 공부도 안 되고 독서도 안 되는 거죠. 저자의 다음 말을 눈여겨 보십시오. "무의식은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만 우선시합니다. 다른 건 가둬두고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공부해야지 해야지 처음에 의욕은 가득하지만 나중에 결국 안 되는 애들(중고등학생)은 초등학생 시절 무의식을 그리 간수했기 때문에 이후에 잘 안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평생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초등학생 때 독서 "습관"을 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습관은 무의식 레벨에까지 내려가서 습관으로 자리잡은, 아주 근원적인 습관입니다. 이건 다그치고 혼낸다고 되는 게 아니라, 책을 손에 잡고 그에 쓰인 지식과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즐겁다는 걸 무의식 레벨에서 느끼는 그런 습관입니다. 이건 초등학생 때 안 들이면 평생 어렵거나 불가능하죠. 


독서를 통해 어떤 능력이 계발될까요? 정신에 관련된 한, 모든 것입니다. 특정 분야에 한정된 능력이 아니라 감성을 포함하여 모든 것입니다. 이 책의 4장에는 그럼 어떻게 하면 전략적으로 아이한테 독서 습관을 붙일 수 있을지 구체적 방법론이 나옵니다. 요즘 4차산업혁명시대를 앞두고 통합적 학습능력이다 통섭이다 창의력이다 메타인지(認知)다 다양한 정신적 자질이 논의되는데, 이 모든 건 독서를 즐기는 아이라면 학원을 안 보내도 최소 비용으로, 저절로, 자기 주도 방식으로, 체득이 가능합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잡아도, 엄마가 억지로 공부를 시킨 아이는 결국 조직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스스로 불행한 사람으로 머물거나, 혹은 어딘가 정신적으로 심각한 결함을 결국 노출하더군요. 독서를 통한 자기 주도 학습은 아이의 스펙뿐 아니라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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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 새로운 행동, 믿음, 아이디어가 퍼져나가는 연결의 법칙
데이먼 센톨라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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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해야 할 때 적절한 변화를 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결국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국면에서는 변화란 변화 그 자체로 긍정적이고 생산적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지, 작은 변화가 어떻게 일파만파 번져가며 조직이나 사회, 국가 안에서 엄청난 결과를 낳는지, 이런 과정은 많은 학자, CEO, 실무자들이 연구하는 주제입니다. 이 책은 "변화"라는 주제 하나에 엄청나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연관되며, 그런 이야기 속에서 얼마나 유익한 교훈을 우리가 캐치할 수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일어날 법하지 않은 변화, 예를 들면 1980년대말 철의 장막 붕괴, 2011년 아랍 세계를 휩쓸었던 민주화 바람, 이런 놀라운 변화의 배후에는 소셜 네트워크가 있었습니다. 동독을 위시한 공산권 붕괴에도,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인터넷을 통한 소셜 미디어는 없었지만, 대신 영향력 있는 소수의 움직임이 유발한 사회적 파동이 체제 변혁에 큰 몫을 했습니다. 책에서는 이 사건보다 훨씬 이전인 1950년대 미국에서 흑인 차별 철폐에 큰 영향을 끼친 로자 파크스 씨의 예를 들기도 합니다. 이들보다 덜 알려진 활동가 중에서도 위대한 이들이 많았으나,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소수입니다. 그 이유를 책에서는 소셜 네트워크의 위력 차이라고 짚습니다. 


산아 제한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한국에서 몇몇 마을을 대상으로 한 피임법의 확산은 피임법 자체로 보면 성공적이었지만, 마을마다 대세로 받아들인 피임법들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케냐에서는 이와는 패턴이 달라, 어느 마을에서는 성공한 반면 다른 곳에서는 전혀 수용되지를 않았습니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의 성공은 피임법 자체의 확산이 아니라, 피임법의 수용하는 태도의 확산이며 피임법의 효용이 아닌 지인들 사이에서의 승인이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피임법의 가치를 개인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친구, 이웃이 좋다고 하면 너도나도 따라하는 식이라는 건데 이는 한국에서 사실 아직도 보편적인 행태입니다. 1970년대에 한정된 게 아니라 말이죠. 대체로 교육을 잘 못 받은 축에서 이런 식으로 의사를 결정합니다. 냉철하게 이치를 따지는 게 아니라 단톡방에서 뭐가 대세다 싶으면 그대로 따라하는 등. 


네트워크의 질, 영향력 등을 따질 때 가교(bridge)의 길이와 폭 두 가지의 기준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좁은 가교는 약한 유대를 통해 정보를 빨리 전달한다. 넓은 가교는 강한 유대를 통해 사회 변화를 촉진한다(p149)" 즉 어떤 가교든, 각자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조직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그 조직 성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p152). 단순한 정보 공유에는 "좁은 가교"가 좋지만, 조직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에는 좁은 가교만으로 충분치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설득을 더 쉽게 하고, 나아가 변화를 유발하려면 "넓은 가교"가 필요하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넓은 가교는 "신뢰"를 얻기 쉽게 돕고,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어서, "협응(coordination)"을 더 광범위하게 촉진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네트워크 성패 여부의 키 팩터를 "협응"으로 본다고 독자인 저 개인적으로는 판단될 정도였습니다. 협응은 그저 법이 이러이러하게 강제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1967년 스웨덴은 D데이 H아워를 정하여 좌측통행을 우측통행으로 변경했습니다. 법은 그러하지만, 지금 애매한 시각에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운전자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고 했을 때, 나는 법을 고지식하게 지켜야 할까요, 아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큰 사고를 피하기 위해 융통성 있게 처신해야 할까요? 이런 문제는 사실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나빠서, 윤리적으로 타락해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나 혼자만 받을 수 있는 손해를 모면하려는 계산 심리의 발동은 마냥 비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걸 두고 책에서는 협응의 딜레마라고 부릅니다. 


위 문제에서 상대방 운전자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갈등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저 법을 지키려 들거나, 그 반대로 반사회 성향을 드러내며 대놓고 위법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게임 이론에서는 이런 걸 두고 "상대방 반응을 살펴 가며, 만약 배신의 징후가 나타나면 한 수 빠르게 내가 규칙을 어겨 응징하는 게 최상의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기도 합니다. 법을 어기라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해법을 내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입니다. 


책에서는 모든 협응 게임에 티핑 포인트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변화를 누가 주창할 때 처음에는 보수 성향이 발동하여 대다수가 그에 호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일정 시점부터는 대세가 바뀌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주류가 교체되는 것입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이처럼 사회 생활을 일종의 협응 게임으로 파악한 선구자라고 합니다. 책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미투 열풍에도 이 법칙을 적용시킵니다. 


어떻게 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며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까요? 책에서는 산탄총 전략이라는 걸 제시합니다. 이것이 바이럴 마케팅의 핵심이라고도 하는데(p269), 변화 촉진자 열 명 정도를 먼저 선정하여 소문을 퍼뜨리게 하고 나중에 "팬데믹"을 이룰 만큼 확산을 노리는 방식입니다. 책을 소수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고 좋은 평을 퍼뜨리게 하는 것도 다 이런 전략의 응용이겠습니다^^


이것은 역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소문이 널리 퍼지게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 혁신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면 이번에는 "그게 망했다더라" 같은 소문만 널리 퍼뜨리게 됩니다. 책에서는 이 여러 군데에서 구글글래스(웨어러블 디바이스), 구글플러스의 실패 사례를 거론합니다. 이런 실패 사례가 생기면 이후에 론칭하는 신상품의 앞날에까지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재미있는 건 요즘 소비자들은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놓고 "좋다, 나쁘다"의 평판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어떤 기업이 다른 기업과 특정 시장을 놓고 벌이는 싸움도 승패를 정해가며 추이를 관전한다는 겁니다. 기업은 소비자를 놓고 그 심리를 교묘히 조장하려 들지만, 소비자 역시 알고보면 그런 기업들의 심리를 꿰뚫고 갖고 놀려 든다는 거죠. 우리도 이런저런 커뮤니티에서 그런 품평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는 교과서에서 대체 에너지의 중요성을 계몽 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실제로 대체 에너지가 산업화의 단계까지 간다거나,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그 어떤 것이 대신하리라고까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당위로서 인식하기만 했죠. 하지만 지금은 유럽에서 풍력, 태양열 발전 등이 중요한 산업 섹터로 부상했고 이 시장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의 주가도 코스닥에서 춤을 춥니다. 또 길거리에는 테슬라 등 전기차 모델이 이제 얼마나 많이 다니고 있습니까. 책에서는 이런 혁신의 수용, 혹은 전염이 어떤 패턴과 경로로 퍼지는지 재미있게 분석합니다. 


여튼 우리는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묘수가 없나 하고 매일 골몰하며 고민합니다. 거창한 도덕적, 정치적 신념의 확산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가 널리 팔리게끔, 쓰이게끔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가며 윗선에 올리는 게 다 그의 일환입니다. 이 책에서는 변화의 확산을 위한 일곱 가지 전략을 마지막 챕터에서 제시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당장 내가 하는 일에 바로 효과를 내며 적용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가 지금 고민하는 일의 본질에 대해 더 잘 들여다 보고 더 근원적인 솔루션을 찾게 돕는 것 같기는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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