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표교 세책점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아이들 23
구본석 지음, 반성희 그림 / 책고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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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귀하던 시절, 한 번 사용한 종이를 다시 깨끗이 씻어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는 풍습은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무척 아름답게도 보입니다. 그러나 기실은 물자가 풍요롭지 못하던 시절 일종의 고육책이었겠는데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많습니다. 물론 세책점의 세는 씻을 세(洗) 자가 아니라 세 놓을 세(貰), 즉 오늘날이라면 대여점이라는 뜻이지만 말입니다. 한때 한국에서도 책 대여점이 성행했었습니다만 지금은 찾기 어렵고, 지역 도서관이나 e-book 대여 업체(온라인)가 주류를 이룹니다. 


"겸이"라는 외자 이름은(혹은 이름의 끝자만 따 부를 수도 있지만)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의외로 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긴 한자 자체가 상서롭고 길한 느낌을 주기 때문도 있습니다. 한데서 잠을 자다 보면 몸에 탈이 날 수도 있고 잠시 잠이 든 듯하다가도 일어나 보면 어느새 몸이 정상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p40). p39의 일러스트에서 몸이 축 젖은 채 고개를 떨구며 기가 팍 죽은 겸이의 모습은 참 처량하게 보입니다. 


봉수는 겸이한테 글자를 가르쳐 줍니다(p66). 이미 배워서 아는 것도 있고 시시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는데 여튼 글자를 가르쳐 주는 일이나 그것을 배우는 일이나 몹시 보람 있고 뿌듯한 소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글자를 배워서 무엇에 쓸까요? 앞 p10에 보면 이야기 장수가 청이 이야기(심청전)를 들려 주며 구경꾼들의 애를 태웁니다. 이처럼 이야기 장수의 연기와 변덕에 좌우되지 않고, 책 한 권만 갖고 있으면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책을 들춰 보며 내 편할 대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p100에는 잠시 책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라이더인데... 영국 등에도 순회 도서관 같은 게 있어서 주민들에게 이용료를 받고 서비스를 하는 풍속이 있었죠. 필사본 책을 배달하는 직분이지만 이야기가 읽고 싶은 여인네들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행차였겠습니까. 이 페이지에는 키가 큰 옥정이가, 얼굴이 거무스름한 겸이 볼을 귀엽다는 듯 비벼대는 장면이 일러스트로 나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여러 버전이 있죠. 영화에도 두 가지 버전이 만들어져서 반응을 본 후 어느 하나가 채택되듯이 말입니다. p116에는 <금방울전>에 대해, 이 버전이 더 재미나게 마무리지었다며 신 나게 권하는 세책점 주인의 말이 나옵니다. 하긴 필사자가 구태여 기존의 텍스트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자신의 판단으로 결말을 바꾸어 더 재미있고 더 많은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게 바꿀 수도 얼마든지 있죠. 


옥정이는 겸이보다 두 살이나 많은 데도 겸이는 옥정이만 보면 마음이 설렙니다(p14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을 들키지 말아야 할텐데 라며 노심초사합니다. 왜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바로 터놓지 못하고 이런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며 망설이는 걸까요? 어찌 보면 이런 의문도 이야기책을 읽으며 자신 나름의 답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이야기의 힘입니다.


이야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강력히 움직이는 힘이 있고, 때로는 큰 감동을 주어 사람의 인성을 바꿔 놓기도 합니다. 책이 얼마나 사람의 감정을 멋지게 정화할 수 있고, 또 그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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