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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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했던 시절 분연히 일어나 민족의 자존과 대의를 추구한 분들은 정말 존숭받아 마땅합니다. 이분들을 향한 존경과 사랑이 멈춘다면, 그건 아마도 민족이나 국가 단위가 이미 소멸해서일 가능성이 크겠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들과 우리 자손의 숨통이 붙어 있는 한 독립 우국 지사들은 영원히 기억되어야만 합니다.


이 소설에서 계속 란사라 불리는 주인공 분은 실존인물 하란사, 혹은 김병훈 선생의 딸로 태어난 김란사님입니다. 그녀는 과연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음이 소설 초반부의 여러 일화를 통해 독자에게 전해지네요. 식민지 시대는 아직 그 직전의 봉건 잔재가 극복되지 않았기에 특히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여성들은 성차별, 민족차별, 재능 억제 등 삼중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강점기의 민족 시련사는 남성보다 (뛰어난) 어느 여성에 의해 더 극적으로 부각되곤 합니다. 


"난 내 성씨가 싫어." "그냥, 그리고 서양에서는 남편의 성을 따르잖아? 난 곧 미국에 갈 거니까."


오히려 성을 타고난 성이 아닌 남편 성으로 바꾸는 걸 진취적인 선택이라 여긴 난사(낸시)의 의식 구조가 재미있게 보입니다. 큰 거부감을 드러내는 분들도 많지만 부모 성을 함께 쓰는 현대 한국의 일부 여성들(극히 일부 남성도 포함)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라면) 오히려 더 타당한 근거를 갖추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에서 두 성씨를 함께 쓰는 건 남편 성, 태어날 때의 성(이 경우도 출생 가문이 상당한 명망을 갖췄거나, 자신이 결혼 전 일정 사회적 지명도를 얻은 경우에 대체로 한정)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란사는 나날이 빛이 났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가꾸려는 노력이 제 명을 재촉하는 길인 줄 알았더라면 화영은 어떻게든 란사를 말렸을 것이다."


여기서 화영이라는 인물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이며, 이화학당 시절부터 내내 하란사의 절친한 벗이었던 걸로 세팅됩니다. 기생 출신이었다는 화영은 본처에게 걸려들어 호된 봉욕을 겪는데 이때 하란사가 나타나 본처(그닥 신분이 번듯해 보이지는 않는)의 폭력으로부터 구해 줍니다. 근 백 이십 년 전의 일인데도 시앗다툼은 현대 대한민국의 그것이나 별 차이가 없는데... 아마도 현대 작가의 필치 끝에 나온 작품이라 그런 듯합니다. 


아무튼 빼어난 재주를 갖고 태어난 여성(그렇게 착각하는, 뭔가에 씌어 사는 이상한 여성이 아니라)이,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는 과정(과 결과)에서 오히려 피해를 본다는 건 참으로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뜩이나 인재가 부족한 판에 다시 성별로 갈라치기를 해서 인재 풀의 절반을 탈락시킨다는 게 얼마나 민족과 국가를 위해 큰 손해이겠습니까. 


사실 하란사도 인생의 초장마저 겉으로 드러난 그 역정만 보면 가혹한 비극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늙은 재력가한테 시집을 갔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남편 하상기 씨가 배울 만큼 배웠고 깰 만큼 깬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소설 속에는 "남편 덕에 그녀는 나날이 꽃필 수 있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 소설에서 전반부에 주인공처럼 각광 받는 인물은 차라리 하상기이며, 실존 인물로 "김란사"라 더 널리 알려진 이분에 대해 구태여 하란사라 제목이 붙은 건 작가의 이런 생각이 크게 작용한 듯합니다. 


소설 속에서 하상기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내 대하기를 마치 팬이 스타 대하듯 아끼며, 유학을 보내 주는가 하면 낳은 딸 자옥도 사실상 부친인 그가 키우다시피하는데 요즘도 이런 남편은 아마 보기 극히 드물 듯합니다. 그래서 소설 중, 오히려 어미가 딸 간수를 소홀히하여 일찍 죽었다며 과하게 란사가 욕 먹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어려서 죽은 자옥은 가락지로 마치 화체한 듯(p157) 이후 어머니의 몸에 내내 따라다닙니다. 


"이화학당을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 당신이 생명을 그리 여기는 건 모순 아니겠소?"


나이도 어리고 사실 생각도 채 여물지 않은 란사를, 남편은 이처럼 능숙히 설득합니다. 생각이 더 완결돤 분이 그렇지 못한 어린 상대를 차분하게 설득하고, 당사자의 생각이 더 무르익게 도우면서도 자신의 의도도 관철하니 이 얼마나 뿌듯한 광경입니까.


"란사는 1908년 서른 여덟이 되던 해에 고종 황제로부터 훈장을 받았다(p73)." 그런데 1907년에 고종 황제는 이미 퇴위를 했으므로 만약 국가에서 주는 훈장이라면 고종이 아니라 순종 황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고종도 당시 태황제 신분이었으니 태황제가 수여하는 다른 영전체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또 p6에는 의친왕이라는 호칭도 널리 쓰기에 비록 일본식 호칭이지만 혼용한다고 하셨는데, 의친왕은 애초에 일본식 호칭이 아닙니다. 대한제국으로부터 러일전쟁 발발 전에 받은 작위인데 어째서 그게 일본식이겠습니까. 아무 거리낌 없이 널리 써도 됩니다. 역사적 진위가 명백히 가려지는 문제인데 한때 일본식으로 간주한다는 대중의(?) 합의(착각)가 있었다고 해서 흑이 백으로 바뀌겠습니까.


"참 장한 일이나 가슴이 아프오." "전하가 걱정되니 당분간 피하셔야겠습니다.(p191)"


하란사는 소설 속에서 의친왕을 밀접히 모십니다. 소설의 상상이 많이 가미되었으나 유능하고 총명한 그녀가 의왕에 대해 긴밀한 보좌를 해 왔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강(소설 중에서 자주 본명으로 일컬어집니다)과는 신분의 차이가 크나 하란사가 더 누나 뻘이기도 합니다. p177에 나오듯 란사는 황족들에 대해 마냥 숭배하는 태도는 절대 아니고, 이강 같은 특별한 경우에나 그리 존대를 하는 거죠. 물론 p165에 나오듯 이강은 파락호, 난봉꾼 같은 면모도 분명 있었습니다. 


"아줌마, 나도 그 애국이라는 거 하면 안돼요? 어떻게 하면 애국할 수 있어요?"(p216)

"쓸데없이 연애질이나 하며 청춘을 허비하면 안돼. 우리 한 명 한 명이 다 애국자가 되어야 해."(p62)


후자의 대사는 아직 어렸을 적, 자신보다 훨씬 어린 동생들에게 란사가 하던 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렇게 당찼으니 성인이 되어 그런 활약을 펼칠 수 있었죠. 전자는 병수가 강씨 아줌마한테 하는 말입니다. 


<관산융마>는 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화영을 첩으로 둔 영감님이 이 곡을 거론하더니(p63), 한참 뒤 기미독립선언 무렵 의왕이 학선에게도 청하네요(p234). 소설은 이처럼 독립지사 여성투사 하란사의 건조한 일생만 다룬 게 아니라(그녀의 일생은 결코 건조하지도 않았지만) 당대의 다양한 풍속과 이야깃거리가 곁들여져 더욱 내용이 풍성하고 재미있습니다. 


"정말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저는 전하의 심복이지 여사님(란사)의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이 구더기 같은 놈, 네놈이 전하를 잘 못 모셨으니 이 사달이 난 것 아닌가?"(p314)

"구더기 같은 X, 어디 붙어먹을 데가 없어 일본 놈하고 붙어먹어?"(p67)


이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속에서의 하란사 여사님은 대단히 직정적이고 입이 건 편입니다. 여튼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어느 신여성의 기개와 장한 행적이 이 소설에는 잘 묘사되어 있고, 마지막이 (이제는) 늙은 기생 화영의 조용한 회고로 마무리되는 것도 감동적이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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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마케팅 - 인간의 소비욕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매트 존슨.프린스 구먼 지음, 홍경탁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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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브랜드가 어떻게 대중의 마음 속에 각인되어 명품으로 자리하는지 그 과정을 밝혀 내는 건 마케팅학, 나아가 경영학의 절대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어떤 제품은 성능이 우수하고 시장에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도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지며, 다른 제품은 특별한 장점이 없는데도 롱런하거나 열광을 받는지는 정말 수수께끼라고 할 만합니다. 그 모든 것은 객체인 상품과 특정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어떤 힘을 갖는 게 아니라, 결국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밖에 안 됩니다. 


나이 든 뇌보다 젊은 뇌가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의욕적으로 흡수한다는 사실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타당하고 이미 오래 전에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p92에는 특히 미국에서 일정 사업은 어린이들에게 직접 마케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처럼 예민하고 왕성한 반응을 보이는 뇌에다 대고, 그처럼이나 자극성이 강한 상품과 그것이 안겨 주는(확실치는 않지만) 효능을 잔뜩 광고한다면, 아이의 정신 발달에 해로울 뿐 아니라, 한창 생산적인 정보와 지식을 머리 속에 정리해 나가야 할 어린이에게 얼마나 손해가 되는 결과가 빚어지겠습니까?(그런 거 "배울" 시간에 제대로 된 공부를 했었다면)


어리석고 기억력이 나쁜 사람일수록, 자기 머리 속에 남겨진 기억이 절대적이라고 착각합니다. 반면, 예리한 )기억력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기억에 오차가 있을 수 있음을 자각하고 적절히 보정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죠. p118에는 "기억은 부정확한 재구축 과정"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이, "어차피 머리 나쁜 나건 좋은 머리건 간에 기억은 똑같이 부정확하다"고 우기는 바로 같은 소리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기억 재구축 과정의 줄을 놓은 사람하고(되는대로 막사는 사람), 매 순간 애착을 갖고 소중히 기억을 가꾼 사람이 어떻게 결과가 같겠습니까? 


책에서는 여튼 이런 사실 때문에, 기억이 참된 것이 아니라 무엇에 의해서 쉽게 조작될 수 있는 것임을 전제로 마케팅에서 이를 집중 공략 중임을 지적합니다. 사실 이런 조작은 정치 세력이라든가, 연예 기획사 같은 곳에서 아주 집요하게 시도합니다. 우리가 포털 등에서 접하는 연예 뉴스 대부분은 어떤 정보나 뉴스 같은 것이 아니라, 상품화한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 조작입니다. 또 바보 같은 사람일수록, 냉정하게 정보와 지식을 가리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어리석은 대중이 휩쓸리기 쉬운 트렌드나 유행 속에 떠도는 바이럴에 몸을 맡기며 자신의 뇌를 망칩니다. 이런 조작 가능성의 증대는 특히 최근 들어 가상기술의 발전(p119)으로 더욱 커졌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행동경제학자 카너만의 대중서 중에 나와서 유명해진 말이 "패스트 씽킹"입니다. 사실 그 말은 이 책에서 쓰는 것처럼 "자동모드(반대말은 수동모드)"가 좀 더 정확하겠지요. 우리 사고는 지금 이 책의 용어처럼 자동모드로 진행되는 게 있고, 일일이 생각과 검토를 거쳐 진행되는 수동 모드가 있습니다. 자동 모드는 충동의 영향을 받기 쉽고, 수동 모드는 충동에 저항(p162)하는 것이라고 책은 정리합니다. 또 책에서는 스트루프 현상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사실은 그리 똑똑하지 않은데) 우연히 그가 잘하는 일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동모드 적합 사무에 최적화되었다면, 실제 능력 이상으로 똑똑해 보이는 효과를 거두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마케팅의 성공 여부는 대중의 이 무방비 상태 자동 모드 영역을, 어떻게 자사 상품에 유리하도록 조작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극소화하는 기제에 의해 행동합니다. 책에서는 마이클 랜디라는 어느 행동가의 예를 들며, 소유물을 모두 폐기하고 불태워버림으로써 획득하게 되는 자유로움이, 소유물을 모두 잃게 되는 고통(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겠죠)보다 컸기에 이런 행동을 감행했다고 말합니다(p197). 잘된 마케팅이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한때 세렌디피티라고 해서 우연히 발견한 쾌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유행이 있었습니다. 똑같은 쾌감이라고 해도 그것이 노력이나 계산이 아닌 우연에 의한 만남이나 발견이었다면 더 가치가 크다고들 여깁니다. 책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예가 나오는데 30일 동안 아이스크림을 계속 체험하게 하면 마지막에 가서는 얼마나 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게 될지를 노린 기획이었습니다. 답은? 제발 이 프로그램에서 빼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는 거죠. 아이스크림은 대체로 이것을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우연히 누가 사다 줬다거나, 휴양지 등에 놀러왔을 때 우연히 마주친 현지 판매상한테 사 먹곤 하는 게 더 큰 효용을 가져다 준다는 거죠. 어느 특정 유명 브랜드가 "골라먹는 재미"를 강조하는 것도 아이스크림 자체가 워낙 지겨워지기 쉬운 상품인 이유도 있겠죠. 독자인 저는 개인적으로 탄산음료, 맥주 같은 것도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선택의 폭이 넓으면 무조건 좋은 것인가. 과거처럼 제한된 선택 안에서 만족하던 시절에는 그렇다고 여겼으나, 요즘은 오히려 결정 장애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선택지의 폭이라는 것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쾌감을 감소시키고 행위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거죠. 기업은 또한 "참여"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사실은 "중독"을 유도하는 전략(p231)이라고 책은 말합니다. 요즘 "구독 경제"가 부쩍 강조되는 시점에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입니다. 


특정 브랜드에 미친 듯 몰입하거나 특정 상권(홍대 등)을 열광적으로 미화하는 사람을 보면 좀 많이 모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플이나 주얼리의 특정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에 비해 자기 외모 가꾸기에 정성을 쏟는 사람은 차라리 일종의 자기계발(개발?)을 하는 셈이라 영리하게까지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튼 자기 인생에 애착을 갖고 자기 삶을 사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책에서 소개하는 할리데이비슨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간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엔진의 힘이 모터바이크의 매력 본체인데, 이걸 전기 동력으로 바꾸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인가, 전환이 필연적이라면 오히려 좀 늦지 않았는가, 이런 문제들을 책에서는 제기(p311)합니다. 


생각해 보면 섬뜩한 일입니다. 광고를 보고, 혹은 연예인이 착용한 아이템 등을 보고 마음으로부터 그토록 큰 공감, 삶의 활력, 애정 등이 솟아올랐지만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셜계된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었다니.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쪼개서 퇴근길(뿐 아니라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다 내어서)에 들린 스OOO에서 홀짝거린 커피 한 잔의 여유, 낭만... 이런 게 모두 세뇌와 조작의 산물이었다니! 이런 좋은 책을 읽는 보람 중 하나는 첫째 미디어(매스미디어든 소셜미디어든 간에)의 영향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만의 소비 패턴이 무엇인지 재설계하는 바탕을 마련해 주겠고, 둘째 적어도 직장인이라면(자영업자라 해도 마찬가지) 실적을 내고 안 내고 그 모든 활동, 일의 기초가 결국은 마케팅이니만큼 어떻게 해야 영리한 마케팅이 되겠는지에 대해 인사이트를 제공해 준다는 점입니다. 무슨 일이든 간에 일 잘 하려면 결국 모든 걸 이 관점(이 책에서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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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에디션 코린이를 위한 코인의 모든 것 - 한 권으로 끝내는 암호화폐 투자가이드 MK에디션
매경이코노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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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원 잡으로는 장래가 크게 걱정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만약 투잡을 못 갖는다면 투자라도 해야 하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신세 망칠 투기 수단으로만 여겨지던 코인이 지금은 필수가 되어 갑니다. 남들 다 하는 코인이니 나도 해야겠고, 무작정 따라하자니 겁이 나고... 그래서 믿을 만한 가이드가 이 코인 분야만큼 절실히 필요한 곳도 또 없습니다. 가상 자산 관련해서는 이제 발상의 전환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며 책에서는 특히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의 이름이 p111에서 거론되기도 하네요. 


 

이 책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매경에서 나와서 그런지, 책 편집이 마치 신문기사 스크랩처럼 되어 있습니다. 헤드라인, 부제목, 풍부한 그래픽, 신문기사 길이 정도의 간결한 아티클... 그러면서도 다른 코인 책보다 더 깊이 있는 분석... 정말 코린이들이 읽어도 부담 없이 기초부터 쌓아가다 어느새 달인이 될 듯한 느낌입니다.

 

"채굴"은 그저 무식한 노동처럼 여겨지지만 이 책에서는 채굴의 의의를 아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채굴의 핵심은 "거래 내역 증명"입니다. 이 고달프고 지루한 작업을 해 준 대가로 유저는 새 코인을 얻는 거죠. 저자들은 이 작업의 의의를 "은행이 할 일을 대신 해 줌(p50)"으로 요약합니다. 지극히 맞는 말입니다. 은행 역시 본질적으로는 같은 일을 하고 사회적 신뢰(와 그 수수료)를 얻으니 말입니다. 


 

p51에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인포그래픽이,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의 생태계에 대해 또 명쾌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사실 주변에 워낙 코인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어느 정도는 감 잡고 들어가는 사항이지만, 이 그래픽만큼 해당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해 주는 건 저 개인적으로는 처음 보는 듯합니다. 


 

백 년 전 미국 경제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땅을 파고 돈을 묻은 후 그것을 다시 파 내게 하는 노동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것이 뉴딜의 시초인데, p53에는 무료 이벤트로 뿌리는 코인이란 뜻으로 "에어드롭"이란 말이 나옵니다. 현재는 이런 이벤트가 많이 줄었고, 대신 퀴즈를 풀게 시키거나 해서 채굴과 무료지급을 겸한 경우가 많죠. p101에 여러 "김치 코인들"을 설명해 주는데 설문 조사 응대, 노래 부르기(!) 등 다양한 방법이 나와서 놀랍습니다. 역시 사람의 아이디어에는 끝이 없는 듯합니다. 


 

비트토렌트는 예전부터 인기를 끌던 P2P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약점은 책 p88에도 나오지만 유저가 받을 파일을 다 받고 나면 꺼버리거나 시드 유지가 안 되는 것이었죠. 현재는 이걸 무료 코인 지급으로 보충한다는데 시대의 트렌드를 잘 맞춘 선택 같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코인 거래소는 사기꾼 집합소 같은 느낌을 주었고 실제로도 대놓고 사기를 친다는 혐의가 짙었습니다. 요즘은 심사를 통해 양질의 거래소를 걸러내는 정책이 시행 중이므로(이른바 특금법) 가망 없는 코인은 상폐(삭제) 시킨다거나 해서 여러 자정 노력이 이뤄집니다. 책에서는 다만 거래소들 중에는 여전히 위험하다거나 생존 전망이 불투명한 곳이 많으므로 주의할 것을 당부합니다. p133에서는 중국의 "후오비" 같은 거래소를 유망하다고 소개합니다. 


 

가상화폐가 인기를 쓰는 건 이른바 "중앙화의 리스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인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그런데 거래소는 이와 달리 중앙집권적이니 이러면 가상화폐의 장점 하나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탈중앙화 거래소가 등장(p134)하여 각광을 받습니다. 이 부분 책의 설명은 탈중앙화 거래소의 장점(과 단점)이 잘 설명될 뿐 아니라, 기존 중앙화 거래소의 장점, 단점까지 한번에 이해가 잘 됩니다. 이런 점만 봐도 이 책이 기존 다른 코인 관련 서적에 비해 설명력 자체가 월등하다는 게 확인되네요. p182에 난립하는 거래소들 중 어떤 걸 조심하고 걸러야 하는지에 대해 좋은 팁이 많이 나옵니다. 

 

코인 투자시에는 이른바 사기 코인으로 피해를 입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p141에 "가격 비교가 어려운 코인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제목 하에 아주 유익한 조언이 많습니다. 유명 유튜버들이 들려 주는 실전 위주의 좋은 조언들이 많으므로 우리 독자들이 잘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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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 혁명 시리즈
칼렙 에버레트 지음, 김수진 옮김 / 동아엠앤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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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인들은 워낙 어려서부터 열성적인 교육을 받는 환경(부모님, 학교, 각종 사교육...)에서 자라나서인지 숫자가 얼마나 추상적(p177)이고 고차원적 개념인지 실감을 못합니다. 에디슨이 어렸을 때 헷갈렸다던 빵 2개의 2와, 사람 눈 개수의 2, 하늘을 나는 참새 두 마리의 2 등으로부터 공통의 개념을 추출할 수 있고부터 인류의 문명은 새로운 레벨을 향해 도약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 p32에 인용되는 언어학자 하이케 비제 같은 분은 다음과 같이 잘라 말합니다.

 

1) 숫자는 본래 존재하는 관념에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2) 숫자는 관념을 추론하기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니다.

 

어떤 책이 정말로 균형 잡힌 관점을 전달하거나, 시간을 내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는 이런 구절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독후감 맨첫머리에 제가 쓴 내용은, 우리가 중학교 입학하면 받아들곤 하는수학 교과서 머리말에 보통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 보편적 상식에 저 비제처럼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의견도 있고, 그런 의견들의 건설적인 대립 속에 새로운 관념이 싹트고 정설이 태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자는 비제의 의견에 반대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정론에 더 찬동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융합, 통섭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은, p35에도 나오듯 인류학, 언어학, 심리학을 두루 원용하며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니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수학 자체보다 수학을 뒷받침하는 철학과 수학관에 조금은 기초 소양이 있는 독자라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책을 즐겨 읽어 온 독자라면, 고고학, 인류학적 논거를 널리 자유자재로 원용하는 저자의 필치에 다소 놀랄 수 있습니다만 차분히 읽어 가다 보면 "그래, 이런 시도가 필요했었는데 여태 없었어" 정도의 느낌이 들 것입니다. 수학 안에서만 수학을 논하지 말고, 그 밖에서도 근거를 끌어올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동아시아인은 한자를 널리 쓰고, 한자의 용법인 육서 중 하나는 지사입니다. 하나, 둘, 셋 같은 숫자를 일상에서 고유한 문자로 기록하는 건 인류 문명의 아주 오래된 전통 중 하나죠. 이 책의 2장에서는 그런 기수법의 역사를, 정말 광범위한 전거를 통해 정리합니다. 대중서 중 이런 시도를 하는 책은 적어도 저 개인적으로는 그리 자주 접하지 못했습니다. 


 

"수량을 10 단위로 세는 걸 우리가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은 아니다(p59)." 그래서 우리는 무려 중1때 십진법이 아닌 기수법도 배웁니다. 오진법, 이진법... 사실 중학생에게 가르치기에는 (아주 솜씨 좋은 선생님이 있다면 모를까) n진법이란 결코 쉬운 개념이 아닙니다. 물론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한 기계적 테크닉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큰 수를 세기 위해, 또 계산하기 위해 진법 같은 걸 고안해 내었다니 인류의 지혜란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런 걸 일상에 도입 않고 어떻게 일상이 가능했을까를 생각하면 그저 아찔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중학생 때 어느 원주민 부족의 수 체계가 "하나, 둘, 많다"로 이뤄졌다는 지식을 접한 적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이런 생각은 특정 종족에 대한 편견을 부른다는 이유 때문에 꺼려지기도 합니다. 이 책 저자는 p73에 자신이 직접 연구하여 정리한 카리티아나 수 용어를 제시합니다. 수의 이름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면 11은 "우리의 발가락 한 개를 가져라"입니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을 배웁니다. 그 유명한 연설문의 첫 시작은 four score and seven...인데요. 여기서 20을 한 묶음으로 여기는 수사가 score임도 배웁니다. 이 책 p81에서 구태여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십진법의 사용이 생래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자명하다거나 타당한 근거를 가진 게 아님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사실 링컨의 시대에도 무슨 score 등의 비 십진법 사용이 일반적이지는 (당연히) 않았겠죠. 연설문에서나 쓰이는 문어투였을 뿐입니다. 아마 우리 세대도, 대략 이십 년 정도 지나면 사흘, 나흘 하는 말들이 우리말 퀴즈대회 정도에서나 나오는 사어(死語)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하나, 둘, 셋, 하는 구어 체계와, 일, 이, 삼, 하는 보다 문어적 체계가 왜 따로 분화했는지는(상당수의 언어에서 그렇죠)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죠. 이 책에서 논하는 가장 흥미로운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단순히 두 개의 체계가 병존한다 정도가 아니라(그래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는 생활의 편의를 위해 그저 쓰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계산과 특별한 기억 보존을 위해 감성을 배제하고 기술적 수단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문법적 수가 전 세계 언어에서 대부분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였다.(p122)"

 

그렇다면, 만약 이런 수를 나타내는 단어가 모조리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부터가 이 책의 가장 흥미진진한 논의의 시작인 셈입니다. 어떤 부족은 "숫자 없이 사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고 오래 전에 결단을 내렸는지 아예 관련 어휘가 없다고 합니다. 또 책에서는 귀가 안 들리는 분들의 예를 들기도 합니다. 저자가 p156에서 내리는 잠정 결론은 "숫자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가 타고난 모든 능력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입니다. 

 

다음에는 (수에 대한) 영아 인지 개념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이 영역은 사회적 환경에 의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고 저자도 (주류 학설을 따라) 그런 의견입니다. 저자는 이 논의 과정을 통해, (한때 영아였던) 우리들이 지금처럼 수를 정밀한 방식으로 인지하는 건 철저히 누적적이고 단계적이며 또 귀납적임을 증명합니다. "이러한 전통과 기술은 궁극적으로 숫자단어에 의존한다(p181)." 여기서도 저자는 언어 속에 포섭된 숫자 단어가 그 개념의 인지 기능에 절대적 구실을 한다는 입장이죠. 


 

7장에는 동물들이 생각하는 수량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데 동물인지전문가라며 박준구라는 분(의 공동연구)이 잠시 소개됩니다. 이분은 유매스 교수로 재직중이고 한국에까지 그 명성이 알려진 자랑스러운 분이죠. 주전공은 뉴로사이언스입니다. p254에는 "기호 혁신의 중핵에 선 숫자"라는 성격 규정이 등장합니다. 책을 통해 전개되는 저자의 논지로 보아 필연적인 결론입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죠. 저 명언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저자 역시 "사람이 숫자를 만들었고, 숫자가 (현재까지도) 사람(의 정신)을 만들고 있다"란 말로 책을 마무리짓습니다. 여태 인류(중 최고의 두뇌)가 수를 만들고 발전시켜 온 과정도 놀랍지만, 그 과정에 대해 이처럼 인지적, 반성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경이롭다고 생각합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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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유혹 - 역사.문화.여행.성지순례…터키에 관한 모든 것
강용수 지음 / 유토피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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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터키는 특히 오스만 부족이 아나톨리아 일대에 자리잡은 이래 주변 세력을 빠른 속도로 제압하고 지중해 세계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셀주크 투르크가 아나톨리아 일대를 차지한 건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승리하고부터인데 이때도 마치 금 제국이 북송 영토를 지배할 때 맹안모극제로 간신히 통치 시스템을 유지했듯 "룸 술탄국"을 따로 만들어 현지인을 지배했을 뿐입니다. "룸"이란 국명에서도 알 수 있듯 그때까지만 해도 로마의 남은 권위를 무시할 수 없었죠. 이랬던 것이 수백 년 지배를 거치면서 오스만 제국에 이르러서는 당당히 현지의 지배자를 칭하기에 이릅니다. 


19세기 들어 투르크가 완전한 말기적 증상을 노정할 때 영국은 이 지역에 빚어질 혼란을 우려하여 명목만 남은 제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데 오히려 골몰할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20세기 들어 제국은 슬라브 족 등 피지배 민족들의 독립을 막을 역량을 도저히 갖추지 못한 데다, 1차 대전 당시 줄을 잘 못 서서 완전히 국망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케말 파샤의 활약이 아니었으면 이 나라는 당시 형체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저자 강용수씨는 "현지인들도 따기 힘들다는 터키 가이드 자격증을 한국인으로는 두번째로 취득"했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그만큼 오래 산 분인데, 그래서인지 이 책은 두께도 두껍고 정보가 참 많이 들어 있습니다. "터키는 그리스 신화의 발상지"라는 서술이 있는데, 적어도 아나톨리아 반도 해안 지대 일대는 분명 그리스 문명권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리스 신화의 주 무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나 발칸이긴 합니다만. 


사실 한국에서는 관련 학과로 진학하여 해당 언어를 전공하지 않으면 터키어를 제대로 배우기가 무척 어렵긴 합니다. 일단 여행 등의 목적을 위해 간단한 회화 정도를 배우려면 이 책에도 적지만은 않은 정보가 나와  있습니다. 


책에서는 서부 지중해, 동부 지중해 등으로 나눠 여러 곳을 소개하는데 이때 동부/서부의 구별은 지중해 전체를 기준으로 한 게 아니라 터키 영토만을 준거로 삼았습니다(터키 책이니까). 많은 전화를 겪고 피폐해진 면도 있지만 인류 역사의 중요한 국면이 여러 차례 이 지역을 무대로 삼았으므로 엄청난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정정이 불안하고, 예전 아타튀르크의 시대와는 달리 사회 지배 세력이 대거 교체되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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