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 - 말씀이 실제가 되는 교회론
이재학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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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에서 말하는 그 종말은 삶 속에 날마다 일어나야 한다. 죽은 후에 가는 천국만으로는 신앙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p34)" 타 종교와 달리 크리스트교는 언제나 현세에의 참여를 권하며,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마침내 함께 천국에 들기를 꾀합니다. 현실에서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데 그저 천국에서의 보상만 바라며 무기력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은혜와 구원은 이미 신의 섭리가 정했지만 현실 속에서 확인과 체험이 이뤄져야 하며 참된 기독교인은 결코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습니다. 이는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에 정착하여 척박한 환경을 일군 청교도인들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는 모든 면에서 기독교인들의 모범입니다. p62를 보면 초대 교회 신도들은 세례를 받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고 나옵니다. 또 3B가 강조되었다고 하는데 believe, behavior, belonging이 그것입니다. 믿음과 행동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소속감을 초대 교회가 그처럼이나 강조했다는 점도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교회 안에서 기독교인인 것이며, 공동체를 떠나 믿음과 행동만으로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내세울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재학 목사님은 말합니다. "세례의 본래 의미는 공동체적 신앙 사건이다." 또 "소속감이란, 목숨 걸고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라고도 합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네로가 믿음의 자녀를 핍박할 때, 신앙의 고백은 곧 사자밥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쉽게 믿음을 내세우고, 또 얼마나 쉽게 공동체를 떠납니까. p239에는 저자가 참조한 책들 중 알렌 크라이더(Alan Kreider. 1941~2017)의 저서가 세 권 소개되니 독자들이 찾아볼 만합니다. 

기도는 그저 정해진 문구만 외는 전시용 행위가 아니라 나의 열띤 영성이 형제들과 함께 표출되는, 그 자체로 나의 구원이 확인받는 몸짓이라야 합니다. p77을 보면 열시 기도회가 나중에 열심 기도회로 바뀐 경위가 나오는데, 이처럼 모든 성도가 하나되어 믿음과 영성이 뜨겁게 타오르는 모습은 타 교회의 신도들에게까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돌아보면 기도가 교회를 하나되게 했다(p79)." 기도 시간이 저녁이라는 점도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니고데모의 예에 비추어 특별한 영감을 줍니다. 

여름성경학교는 어느 교회나 운영하지만 특별히 재미있는 곳이 있고 은혜를 각별히 받는다는 느낌이 따로 오는 곳이 있습니다. 아이들만큼 정직한 영혼이 또 어디 있겠으며, 해당 사역이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아이들 반응만큼 정확한 바로미터가 또 없습니다. p126 이하에는 하늘땅교회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열린 하마알 여름성경성품학교의 사례가 자세히 나오는데, 한국에서 여름성경학교의 역사도 그 나름 오래되었지만 약간 타성에 젖는 면도 적지 않은 만큼, 이 하늘땅교회의 사례가 훌륭한 하나의 모범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 

예수 따로 교회 따로(p149)라면 이는 이미 교회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이브가 지은 아득한 원죄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들입니다. 따라서 일단 죄를 뉘우치고 씻어내야 하는데, 교회라는 건 곧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혹은 마음으로 죄를 짓고 끝없이 더러워진 우리들이 여전히 죄인인 채로 어떻게 교회를 구성하고 지체로서(p194) 예수를 모시겠습니까? "내 자신이 성령으로 변화하여 진리를 따르지 않으면 (교회 등) 안전한 곳은 더 이상 없다.(같은 페이지)" 우리 자신이 세상의 죄인들과 다를 바 없다면 교회는 무엇으로 구성되겠으며, 우리들이 여전히 덜 깨끗한 채라면 교회는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아무런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순진무구한 공동체입니다. 일생을 두고 아버지 곁에서 묵묵히 가사를 돌본 큰아들이나, 전 재산을 다 까먹은 후에야 눈물을 흘리며 고향으로 돌아온 탕아(prodigal son)이나 같은 대접을 받는다니 일견 불합리해 보이지만(p157) 그 역시도 한없이 크고 넓은 신의 자애로움입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큰아들에 종종 감정이입하여 불평하지만, 이 비유는 오히려 우리들 모두가 못된 둘째에 가까움을 꼬집는 의도입니다. 죄인이 스스로 죄인인 줄도 모르니 한심한 둘째만도 못한 셈입니다. 

우리의 욕심은 스스로를 죄악으로 이끄는 만악의 근원입니다. 교회의 대형화가 그리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게, p215에 나오는 대로 우리들의 욕심이 엉뚱하게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배출되지는 않았는닌지 돌이켜볼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하는 일은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p216)." 의심과 경쟁을 버리고 더 큰 이상을 향해 하나되는 마음가짐과 행동이라야 성령이 함께하는 거룩한 열매맺음이 이뤄지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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