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범우문고 307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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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송에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방송에서 유시민이 나와서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책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평소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던 나는 이 책을 언젠가 꼭 한번 읽어보리라고 마음먹었다. 

나는 참여하고 있는 독서토론 모임의 50번째 책으로 '독일인의 사랑'을 선택했다. 우선 책이 얇아서 좋았다. 110mm x 174mm 문고판으로 겨우 172쪽의 두께였다. 가볍게 읽을 수 있겠지, 안일한 생각을 가졌다. 

책은 두께와는 반비례하였다. 문장은 수려했고 은유와 비유는 넘쳐났으며, 종교와 철학이 온갖 데 난무하였다. 책의 선정자로서 나는 난처해졌다.

독서토론 모임에서 책 선정자는 책을 가지고 토론한 논제를 발제해야 한다. 서정보단 서사를 선호하는 나는, 서정과 감상이 넘쳐나는 책에서 발제를 고르기 위해 책을 읽고 나서도 맘 편히 있지 못하고 인터넷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의 가사가 된 시를 지은 빌헬름 뮐러를 아버지로 둔 막스 뮐러는 원래 언어학자였다. 또한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연구도 많이 하였다. 독일에서 태어나 공부하던 뮐러는 1850년 영국 옥스퍼드로 유학 가서 아예 영국에 귀화를 하여 1900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 영국에서 살았다. 뮐러는 언어학자로 살면서 평생 단 한 권의 책을 집필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독일인의 사랑'이었다. 영국에서 살면서 언어학 관련 저서와 논문은 영어로 썼는데, 귀화한 영국인이 쓴 소설은 독일어로 독일인을 위해서 썼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영국인의 사랑도 아니고, 왜 독일인의 사랑을 썼을까? 찾아본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뮐러는 1774년에 발간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온 우울한 사랑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독일 젊은이들에게 결핍되고 슬픈 사랑 대신  영혼이 충만한 사랑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 신학'이라는 종교적인 책을 바탕으로 하여 사랑은 운명처럼 다가오고 사랑을 하면 영혼과 마음이 가득 찬다는 내용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독일인의 사랑'이다. 

주인공인 '나'는 소년 시절 우연히 영주의 저택을 방문하게 되고 거기서 병약하게 태어나 평생을 병상에서 지내는 마리아라는 여성을 만난다. 
이후 헤어진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 철학과 사랑과 종교에 대하여 서로 대화를 나누는 중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병약한 마리아는 끝내 숨을 거두게 되고, 그녀를 평생 돌보던 노의사가 주인공에게 마리아의 죽음과 자신의 당부를 전한다. 


줄거리는 정말 간단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독일인의 사랑'은 발간 당시 독일에서 아주 인기가 많았다. 오히려 현대 독일에서는 인기가 시들하며, 독일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리고 읽히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 책을 줄거리를 따라 읽는 책이 아니다. 등장인물도 이름도 없는 주인공과 마리아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주인공과 마리아의 대화를 읽고 곱씹어 보는 데서 책의 묘미가 살아있다. 


어떤 옛 현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난파당한 작은 배의 조각들이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중에서 몇 개의 조각은 서로 만나 잠시 붙어서 다녔으나 잠시 후 폭풍이 덮쳐와 그 두 조각을, 하나는 서쪽으로 하나는 동쪽으로 몰로 가 버렸다.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운명도 이와 같다. 다만 그와 같은 커다란 난파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 따름이다. - P29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도 확실한 사랑의 표시를 나타내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알아내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기 스스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건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사랑을 믿는 범위 내에서만 다른 사람의 사랑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65


마침내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 주인공에게 마리아는 묻는다. ​

"당신은 왜 나 같은 것을 사랑하시는 거예요?"


이때 주인공이 한 대사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문구이다. ​

"왜냐고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그가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에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느닷없이 다가오며, 태양이 있고 달이 뜨는 것처럼 자연의 섭리이자 운명이라는 것이 막스 뮐러의 주장인 것이,  이 책을 통해서 읽힌다. 


하지만, 이런 작가의 의견에 괜한 딴지를 부리고 싶은 나는 아직도 사춘기인 걸까?

로미오는 줄리엣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운명이나 자연의 섭리라기 보다 줄리엣의 아름다운 미모 때문일 것이다. 성춘향의 파릇파릇하고 예쁜 외모가 이몽룡의 시선을 끈 이유였을 것이다. 작가는 환상과 경건의 세상을 동경하면서 그의 희망 사항을 소설로 쓴 것일 것이다.  즉, 사랑에는 남에게는 차마 밝히지 않는 어떤 속물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딴지를 걸고 싶다. 


독서토론 모임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독일인의 사랑'을 평생 읽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줄거리가 없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화와 감정만이 난무한 독일인의 사랑을 선택하고,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독서토론 모임이 자랑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읽기 보다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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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범우문고 307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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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엔 누구나 그 나름대로 신비와 경이를 가지는 법이다. 하지만 누가 그걸 표현할 수 있으며 그 뜻을 풀어서 말할 수 있겠는가? - P13

그날은 우울한 날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집에 돌아오셔서도 내가 버릇없이 굴었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날 밤 나를 잠자리까지 데려다 주셨고, 나는 기도를 드렸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좋아해서는 안된다는 그 남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자주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25

어떤 옛 현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난파당한 작은 배의 조각들이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중에서 몇 개의 조각은 서로 만나 잠시 붙어서 다녔으나 잠시 후 폭퐁이 덮쳐와 그 두 조각을, 하나는 서쪽으로 하나는 동쪽으로 몰로 가 버렸다.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운명도 이와 같다. 다만 그와 같은 커다란 난파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 따름이다. - P29

나는 나의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38

어떤 사람이든, 포플러가 서 있는 단조롭고 먼지 낀 길을 걸어가며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시기가 일생 중에 있게 마련이다. 그런 시기에 대한 회상이라면 자기가 무척 먼 길을 걸어왔으며 나이가 들었다는 슬픈 감정밖에는 아무런 추억도 남지 않게 마련이다. 인생이라는 강물이 조용히 흐르는 동안에는 그 강 자체는 항상 동일한 강이고, 변하는 것은 오직 양쪽 언덕의 풍경뿐인 것처럼 생각된다. - P41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도 확실한 사랑의 표시를 나타내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알아내기는 참으로힘든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기 스스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사랑을 받고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건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사랑을 믿는 범위 내에서만 다른 사람의 사랑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P65

"창조주이신 아버지시여,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시고, 땅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제게서도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중략...
신의 뜻이 아니면 아무리 하찮은 일도 네게 일어나지 않으리라. - P108

인간은 어찌하여 삶이란 것을 장난으로 여긴단 말인가. 그리고 어찌하여 하루하루가 자신의 최후가 될 수도 있으며,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영원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과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미를 하루하루 뒤로 미룬단 말인가. - P110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은 먼 바다까지 헤엄쳐 나가서 팔에 힘이 빠질 때에야 비로소 돌아올 것을 생각한다. 그는 허겁지겁 급히 파도를 타지만, 감히 멀리 있는 해안을 쳐다볼 원기가 없고, 한 번 팡을 저을 때마다 힘이 다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있다는 것을 느낀다. 드디어 그는 목표도 잃고 거의 의식도 잃고 경련을 일으킬 지경에 이른다. 그대 갑자기 가의 발이 굳건한 땅을 딛게 되고 팔은 해안에 있는 최초의 돌을 잡게 된다. ...중략...
하나의 새로운 현실이 내게 마주쳐 왔고, 내가 당했던 고통은 하나의 꿈이 되었다. 인간의 생애에서 그런 순간은 별로 많지 않으며, 그런 환희를 맛보는 살마도 별로 많지 않다. 처음으로 아기를 팔에 안아 보는 어머니, 전쟁으로부터 명예롭게 귀환한 외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 동포로부터 환호를 받는 시인, 사랑하는 애인으로부터 따뜻한 손길을 받는 젊은이......이런 사람들은 그것을 안다. 꿈이 현실이 되는 그 기분을. - P114

그대의 오빠가 되든,
그대의 아버지가 되든,
그 무엇이든 되어 주리라.

‘그 무엇이든‘에 대한 올바른 이름이 찾아져야만 했다. 세상은 이름 없는 것은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 P149

왜 우리들은 자신의 마음속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해명하려고 애를 써야 된단 말인가? 결국 자연계에 있어서나 인간에게 있어서나 우리의 마음속에 있어서나, 설명할 수 없는 것만이 우리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것이다. - P149

아침이 되었다. 나는 그 여자 앞에 섰다. 정말로 그 여자 앞에. 오, 육체 없는 정신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지 마라! 완전한 존재, 완전한 의식, 완전한 기쁨은 정산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육체화된 정신이며 정신화된 육체다. 육체 없는 정신은 없다.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유령일 뿐이다. 정신 없는 육체도 없다. 있다고 한다면 그건 시체일 뿐이다. ...중략... 진짜 삶은 어디에서나 육체적이면서도 정신적인 삶이며, 진짜 향연은 어디에서나 육체적이면서도 정신적인 향연이요, 진자 함께 잇다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함께 있는 것이다. - P156

"그런데 당신은 왜 나 같은 것을 사랑하시는 거예요?"
하고 그녀는 아직도 결단의 순간을 망설이는 듯 나직이 물었다.
"왜냐구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그가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에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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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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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잘 대접받게 하라고요. 왜냐하면 그들은 이 시대의 축소판이요 짧은 연대기이기 때문이오. 죽은 후 당신의 묘비명이 나쁜 게, 살아 생전 배우들의 험담보단 나을 것이오. - P85

종종 우리들 탓이지만, 경건한 외모와 신성한 행동으로, 우리가 악마조차 달콤하게 만듦은 너무 흔히 입증되는 사실이다. - P93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 P94

높은 자들의 광기는 방관하면 아니되오. - P101

결심이란 기껏해야 기억력의 노예일 뿐,
태어날 땐 맹렬하나 그 힘이란 미약하오.
그 열매가 시퍼럴 땐 나무 위에 달렸지만,
익게 되면 그냥 둬도 떨어지는 법이라오. - P111

칼 같이 말하지만 칼을 쓰진 않을 테야. 내 혀와 내 영혼이 이 점에선 위선자길. - P120

죄의 참된 본질이 그렇듯, 병든 내 영혼에겐 사소한 일들이 커다란 불행의 전주곡 같구나. 죄의식은 서투른 걱정에 가득 차서, 엎지를까 겁내다가 스스로 엎지른다. - P151

사랑의 불길 속엔 그것을 약화시키는 일종의 심지나 검댕이 자라는 법이며 언제나 꼭같이 좋은 것도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좋은 것도 넘치면 홧병처럼 제풀에 죽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픈 일 하고플 때 해야 돼. 왜냐면 <하고픔>은 말이 많고 손이 많고 사건이 많은 만큼 변하고 줄어들고 지연되며, <해야 됨>도 한숨이 피 말리는 것처럼, 누그러지면서 우리를 헤치니까.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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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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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버리면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고, 아무것도 꿈꿀 수 없다 - P16

공무원이 영혼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아마도 공무원들이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P21

대통령은 결과를 명령할 수 없다. 대통령은 과정만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명령한 과정을 결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 명령의 결과가 생각과 다를 때 깊은 상처를 받는다. - P138

감동은 대상에 대한 애정과 디테일이 만났을 때 가능하다. -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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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 개정보급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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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빅터 프랭클이라는 정신분석학 박사가 쓴 자신의 체험수기이자, 자신의 정신분석연구 테마인 로고테라피에 대한 설명서이다.

나는 로고테라피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었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프로이트와 함께 두 번째로 손 꼽히는 정신분석학 학문이라고 한다.


책은 세 가지 파트로 되어있다.

1부에서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에 대한 이야기가, 2부에서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기본 개념이, 3부에서는 비극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삶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은데, 빅터 프랭클 박사가 나치 수용소로 가게 된 이유가 참 아이러니하다.

독일이 오스트리아 침범이 예상되는 시기에 오스트리아에 있던 미국 대사관에서 프랭클 박사에게 미국 이주를 허락하니 빨리 미국으로 가라고 말했다. 평소 나치에 반대되는 말을 해온 유대인인 박사는 오스트리아에 그대로 있으면 필시 수용소행이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프랭클 박사는 고뇌에 빠졌다. 범인들 같으면 고뇌에 빠질 이유가 없는 사안이지만, 박사가 고뇌에 잠긴 이유는 연로하신 두 부모님 때문이었다. 그들은 미국에 같이 갈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임신한 아내와 프랭클 박사만이라도 떠나라고 독촉했다. 그때 우연히 프랭클 박사 눈에 들어온 조각 하나. 그 조각에는 십계명의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박사는 미국행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에 남았다. 그리고 부모님, 아내와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참, 아이러니한 게 나치 수용소에서 부모님과 아내는 모두 죽었고 박사 본인은 살아남았다. 그때 아내와 미국으로 떠났더라면, 아내라도 생존했을 텐데.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렸을까?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고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나라면, 둘이라도 떠났을 것 같다. 부모님은 그렇게 떠나는 자식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을 것 같다.


책의 유명세에 비하여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신파적인 요소가 배제된, 학자들이 썼을 법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수용소에서의 삶이 지옥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그 어떤 자극적 단어와 신파적 문장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안네 프랑크의 일기'처럼 가슴 저미는 글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그만큼 책에는 진정성이 더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빅터 프랭클이 주창한 로고테라피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고 정의한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184쪽)

빅터 프랭클에 따르면,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는 나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빅터 프랭클은 자아실현이란, 목표를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며 자아실현을 갈구할수록 목표에서 멀어진다고 하였다.


한동안 우리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진리인 것 같은 세상에 살았다. 세상이 뭐라 하든 나만 좋으면 된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작은 것이라고 그만이라고 하는 말들이 넘쳐났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나는 나일 뿐,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치유의 심리학이 난무하는 세상이었다. 아니, 지금도 그런 세상이다.


그런데, 빅터 프랭크의 말은 다르다. 나 안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아실현은 목표를 이룰 수 없고, 사람은 나 말고 세상을 향해 바라보고 살아야 하며, 사람도 많이 만나고 일도 많이 하면서, 닥쳐오는 시련을 피하지 말고 부딪혀 견뎌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빅터 프랭클의 말이 많이 부분 동감한다. 나는 평소에도 늘 하던 것만 하면 만족을 못 하는 타입이었다. 어떤 과업을 필요로 했고 과업을 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는 사람이었다. 세상이 소확행과 내면을 이야기할 때 선뜻 동의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자꾸 편한 길로만 가려는 것 같고 미디어가 그 자리에 머무르라고 종용하는 것 같았다.


이런 나에게 이 책에서 한 빅터 프랭클의 말은 나에게 근거를 가져다준 것 같았다.

'그래, 사람은 시련을 견디고 성장하고 책임감 있게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존재인 거야, 그렇지!'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얻으려고 책을 읽기보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근거와 동조감을 확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더니, 이 논리가 맞다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에게 근거를 대준 책이 되겠다.

빅터 프랭클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 봐주는 것은 그 사람을 타락시킨다. 그 사람이 되어야 할 모습으로 바라 봐주어야 한다. 사람은 충분히 그것을 할 수 있는데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것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사람은 그가 되어야 할 모습으로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발전이 있는 것이다."


약간은 지루했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내가 되어야 할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발전할 내 미래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그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시련의 파도가 나에게 닥쳐올까?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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