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 개정보급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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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빅터 프랭클이라는 정신분석학 박사가 쓴 자신의 체험수기이자, 자신의 정신분석연구 테마인 로고테라피에 대한 설명서이다.

나는 로고테라피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었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프로이트와 함께 두 번째로 손 꼽히는 정신분석학 학문이라고 한다.


책은 세 가지 파트로 되어있다.

1부에서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에 대한 이야기가, 2부에서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기본 개념이, 3부에서는 비극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삶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은데, 빅터 프랭클 박사가 나치 수용소로 가게 된 이유가 참 아이러니하다.

독일이 오스트리아 침범이 예상되는 시기에 오스트리아에 있던 미국 대사관에서 프랭클 박사에게 미국 이주를 허락하니 빨리 미국으로 가라고 말했다. 평소 나치에 반대되는 말을 해온 유대인인 박사는 오스트리아에 그대로 있으면 필시 수용소행이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프랭클 박사는 고뇌에 빠졌다. 범인들 같으면 고뇌에 빠질 이유가 없는 사안이지만, 박사가 고뇌에 잠긴 이유는 연로하신 두 부모님 때문이었다. 그들은 미국에 같이 갈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임신한 아내와 프랭클 박사만이라도 떠나라고 독촉했다. 그때 우연히 프랭클 박사 눈에 들어온 조각 하나. 그 조각에는 십계명의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박사는 미국행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에 남았다. 그리고 부모님, 아내와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참, 아이러니한 게 나치 수용소에서 부모님과 아내는 모두 죽었고 박사 본인은 살아남았다. 그때 아내와 미국으로 떠났더라면, 아내라도 생존했을 텐데.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렸을까?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고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나라면, 둘이라도 떠났을 것 같다. 부모님은 그렇게 떠나는 자식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을 것 같다.


책의 유명세에 비하여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신파적인 요소가 배제된, 학자들이 썼을 법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수용소에서의 삶이 지옥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그 어떤 자극적 단어와 신파적 문장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안네 프랑크의 일기'처럼 가슴 저미는 글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그만큼 책에는 진정성이 더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빅터 프랭클이 주창한 로고테라피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고 정의한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184쪽)

빅터 프랭클에 따르면,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는 나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빅터 프랭클은 자아실현이란, 목표를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며 자아실현을 갈구할수록 목표에서 멀어진다고 하였다.


한동안 우리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진리인 것 같은 세상에 살았다. 세상이 뭐라 하든 나만 좋으면 된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작은 것이라고 그만이라고 하는 말들이 넘쳐났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나는 나일 뿐,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치유의 심리학이 난무하는 세상이었다. 아니, 지금도 그런 세상이다.


그런데, 빅터 프랭크의 말은 다르다. 나 안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아실현은 목표를 이룰 수 없고, 사람은 나 말고 세상을 향해 바라보고 살아야 하며, 사람도 많이 만나고 일도 많이 하면서, 닥쳐오는 시련을 피하지 말고 부딪혀 견뎌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빅터 프랭클의 말이 많이 부분 동감한다. 나는 평소에도 늘 하던 것만 하면 만족을 못 하는 타입이었다. 어떤 과업을 필요로 했고 과업을 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는 사람이었다. 세상이 소확행과 내면을 이야기할 때 선뜻 동의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자꾸 편한 길로만 가려는 것 같고 미디어가 그 자리에 머무르라고 종용하는 것 같았다.


이런 나에게 이 책에서 한 빅터 프랭클의 말은 나에게 근거를 가져다준 것 같았다.

'그래, 사람은 시련을 견디고 성장하고 책임감 있게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존재인 거야, 그렇지!'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얻으려고 책을 읽기보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근거와 동조감을 확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더니, 이 논리가 맞다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에게 근거를 대준 책이 되겠다.

빅터 프랭클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 봐주는 것은 그 사람을 타락시킨다. 그 사람이 되어야 할 모습으로 바라 봐주어야 한다. 사람은 충분히 그것을 할 수 있는데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것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사람은 그가 되어야 할 모습으로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발전이 있는 것이다."


약간은 지루했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내가 되어야 할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발전할 내 미래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그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시련의 파도가 나에게 닥쳐올까?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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