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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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가 우물 안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다. - P46

내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오직 나 자신에게 이르기 위해 내가 내디딘 걸음들뿐이다. - P65

"똑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전혀 가치 없어. 아무 가치도 없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건 죄악이지.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 P88

각성이 나의 익숙한 느낌들과 기쁨들을 일그러뜨리고 퇴색시켰다. 정원은 향기가 없었고 숲은 마음을 끌지 못했다. 내 주위에서 세계는 낡은 물건들의 떨이판매처럼 서 있었다. 맥없고 매력 없이. 책들은 종이었고, 음악은 서걱임이었다. 그렇게 어느 가을 나무 주위로 낙엽이 떨어진다.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비, 태양 혹은 서리가 나무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리고 나무 속에서는 생명이 천천히 가장 좁은 곳, 가장 내면으로 되들어간다.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 P91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 P122

사랑은 천사상이며 사탄이고, 하나가 된 남자와 여자,인간과 동물, 지고의 선이자 극단적 악이었다. 이 양극단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을 맛보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보였다. 나는 운명을 동경하고, 운명을 두려워했지만, 운명은 늘 그곳에 있었다. 늘 내 위에 있었다. - P127

나는 단 한 가지만 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어둡게 숨겨진 목표를 끌어내 내 앞 어딘가에 그려 내는 일,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될 것이며, 그러자면 얼마나 걸리고, 그것이 어떤 장점들을 가질지 정확하게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려 내는 일, 그것은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무엇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어쩌면 나도 찾고 또 계속 찾아야겠지. 여러 해를, 그러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하겠지. 어쩌면 나도 하나의 목표에 이르겠지만 그것은 악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P128

당시에 나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그것으로 인도한 것이다. - P130

이제 비로소 피스토리우스가 이해되었다. 그의 모든 꿈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이런 꿈이었다. 사제가 되어 새로운 종교를 알리는 꿈, 찬양과 사랑, 예배의 새로운 형식을 주고 새로운 상징들을 세우려는 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의 직분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도 편안하게 이미 존재하는 것 속에 머물렀다. 그는 예전의 것을 너무도 정확하게 알았다. 그는 이집트에 대해, 인도에 대해, 미트라에 대해, 아브락사스에 대해 너무도 많이 알았다. 그의 사랑은 이미 지구가 본 형상들에 매여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스스로가 잘 알았다. 새로운 것은 새롭고도 달라야 하며 새 땅에서 솟아야지 수집되거나 도서관에서 길어 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의 직분은 어쩌면 나에게 해 주었듯이 인간이 그 자신에게 이르도록 돕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전대미문의 것, 새로운 신들을 제시하는 것, 그것은 그의 직분이 아니었다. - P168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사람들은 결국 시인 혹은 광인이, 예언가 혹은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것은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이었다. - P169

"연대란... 멋진 일이지. 그러나 지금 도처에 만발해 있는 것은 결코 연대가 아니야.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테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 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는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 종교도 도덕도 그 모두가 이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맞지 않아. - P180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그 길이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하면 안 돼요."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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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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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꽃은 무장투쟁이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만주벌판에서 산을 넘고 들을 지나는 무장 독립군을 생각하며 배고픔과 추위와 그리움을 견딘 그들을 존경했고 숭배했고 동경했다.

이런 이유로 문학이나 교육, 집필로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은 독립운동의 2류쯤으로 여겼을 지도 모르겠다.

윤동주는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목숨을 내놓지 않은 얄팍한 지식인들이 앞세운 그들의 변명과도 같은 독립운동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윤동주의 시를 좋아했지만 독립운동가로서의 윤동주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좀 더 나이가 들었다. 몇 년 전 영화 '동주'를 보았다.

영화 '동주'를 통해서 나는 윤동주의 진심이 느껴졌고 그의 부끄러움에 호응했다. 가슴속에 가진 당시 시국에 대한 분노(영화는 2016년 2월에 개봉했다. 박근혜 정부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내가 동주에 반사되었다. 조금은 윤동주가 이해되었고 소위 '얄팍한 지식인들'이 납득되었다.


친구와 서울 종로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에 갔다. 그는 윤동주를 아주 좋아하는 친구였다. 전시된 그의 시와 영상을 무심히 보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동주의 전시된 시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일일이 사진을 찍고 공짜로 주는 엽서를 마치 고흐의 진품 그림을 대하는 것처럼 귀히 여겼다.

그가 말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이라는 소설을 보았어. 여기 오니 소설이 생각나네. 윤동주를 가슴으로 읽고 이해하게 되였다고나 할까?"

평소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친구를 믿고 책을 빌렸다.


책은 2권짜리, 작가는 '뿌리 깊은 나무'의 이정명, 추리소설, 역사소설, 등장인물 교도관 스기야마, 윤동주 히라누마 도주, 교도관 와타나베 유아치, 조선인 죄수 최치수, 조선인 죄수이자 끄나풀 김만교, 누가 스가야마를 죽였는가? 윤동주는 어떻게 죽었는가? 문장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사람에게 시란 무엇일까? 칼이 무서운가, 글이 무서운가? 기록과 기억의 중요성.


시점이 여러 개의 나뉘어 왔다 갔다 산만했다. 소설 초반에 교도관 유이치의 기록과 시선으로 썼다고 되어 있었는데, 어느샌가 어느 부분은 스기야마의 시선이 되었다가 또 어떤 부분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되었다가 했다. 독서의 흐름에 심대한 방해를 일으키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추리소설임에도 심장 쫄깃해지는 몰입은 어려웠다.

시간도 과거와 현재가 벽걸이 시계의 시계 추처럼 자주 왔다 갔다 해서 과거와 현재의 분간이 흐릿했다. 책을 읽다 자주, 특히 초반에, 앞을 다시 들춰보는 수고를 해야 했는데 이 점도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작가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에는 이미 여러 작품으로 정평이 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을 드라마로만 보다가 활자로는 처음 읽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을 통해서 이정명 작가가 직유와 은유와 비유에 탁월한 솜씨를 지닌 작가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소설이 긴박하다기 보다 아름답고 처연하기까지 하였다. 작가의 탁월한 능력은 그래서 궁금증을 일으켜야 할 추리소설에는 오히려 독서에 장애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건 작가의 탁월한 묘사와 표현력을 질투한 내 뾰족한 심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거의 매 챕터마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해야 하는 문장들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행복이 유리에 맺힌 물방울처럼 불안하다'든가, '그의 영혼의 올이 하나씩 풀려나가는 걸 보았다'든가, '눈앞의 백지는 형무소의 뜰처럼 황량했다'든가, 하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비유를 만드는 작가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물과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저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만약 저런 능력이 타고나야만 하는 것이라면 수많은 글쓰기 강좌와 수업은 다 사기임이 틀림없다. 만약 수없는 노력과 연습이 절묘한 비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해야 하는지, 그저 나는 가망이 없는 것 같아 기쁘게 책을 읽으면서도 동시에 기분이 우울해짐을 느끼는 역설을 머리에 이고 책을 읽었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고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이것은 드라마로 영화로 다큐로 여러 번 다루어졌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어떻게 묘사하는가 어떤 식으로 풀어 내는가에 따라 재미는 증폭되기도 하고 반감되기도 한다. '별을 스치는 바람'에서는 사실이 증폭되었다. 책을 읽는 독자는 알고 있는데, 그 주사를 맞으면 안 된다는 것을. 책으로 들어가서 유이치에게 '그 주사를 동주에게 맞히면 안 돼! 그는 죽을 거야!'라고 미래를 말해주고 싶은 욕망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에서 들끓었다.

"속속들이 모르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위험하오."

1권 163쪽

동주가 유이치에게 말한 것처럼, 나는 윤동주에 대하여 속속들이 모르면서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진 않았나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부끄러워만 한 얄팍한 지식인이라고. 사람마다 저마다의 타고난 성정과 기질과 역량이 다 있을진대 사람을 똑같이 재단하여 무장투쟁이 일등이요, 나머지는 이등, 삼등으로 분류한 결국 아무것도 몰랐던.


영화 '동주'에서도 강하늘의 목소리로 듣는 윤동주의 시는 처절하고 의연했었다.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에 나오는 윤동주의 시도 의연하고 처연하고 슬픔이 배어 있었다. 색다른 맛이었다. 시는 볼 때마다 다르다. 읽기에 어렵고 시간과 품이 많이 들어간다. 읽는 데 드는 품에 비해 얻는 것이 힘드니 내가 시에 쉬이 눈이 가지 않는가 보다.

소설에는 윤동주의 시와 함께 윤동주가 사랑한 프랑스 시인 프랑스시 잠의 시가 두 편이나 실려 있다. 프랑시스 잠이라는 시인을, 그의 시를 알게 되어 기쁘다. 하나의 책으로 다른 책의 꼬리를 물게 되는 것, 독서의 묘미이다.


책의 뒤에 실려있는 윤동주의 연표를 정리해 봄으로써 '별을 스치는 바람'의 감상을 끝맺음하려 한다. 아직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도 어렴풋이나마 그전보다 더 윤동주를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더 이해하게 될 테니까.


-1917년(1살) 간도에서 태어남

-1925년(9살) 명동 소학교에 입학

-1931년(15살) 명동 소학교를 졸업

-1932년(16세) 은진중학교 입학

-1935년(19살) 평양 숭실중학교 편입

-1936년(20살) 숭실중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의 광명 학원에 편입

-1937년(21살) 윤동주라는 이름으로 작품 발표

-1938년(22살)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에 입학

-1939년(23살)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 발표

-1940년(24살) 릴케, 발레리, 지드의 작품을 탐독

-1941년(25살)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

-1942년(26살) 일본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

-1943년(27살)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고 작품, 일기가 압수

-1944년(28살)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

-1945년(29살) 해방되기 여섯 달 전, 2월 16일에 사망

-1947년 <쉽게 쓰여진 시>가 경향신문에 최초로 발표

-1948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

-1968년 윤동주 시비 건립

-1977년 윤동주 심문 기록 입수

-1979년 윤동주의 독립운동 사실 확인

-1982년 윤동주 판결문 사본 입수

-1985년 중국 용정의 윤동주 묘와 묘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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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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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이유가 없어도 좋다.그러나 죽음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 죽음,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위해서. - P9

"속속들이 모르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위험하오." - P163

그는 결코 알지 못했다. 읽는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것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감각이라는 사실을. 한 줄의 문장을,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을, 혹은 그의 세계를 읽는 행위라는 것을. - P169

주먹질로 점철된 세월 속에서 소실기관처럼 퇴화해 버린 감정. 배우지 못했지만 천성적으로 지닌 심미안. 그는 허공을 가로지른 음의 거미줄을 건너갔다. - P184

하지만 행복은 유리에 맺힌 물방울처럼 불안했다. - P185

"이름은 한 존재의 모든 것을 담은 상징이에요. 한 사람의 얼굴과 눈빛과 몸집과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기억과 꿈과 그리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죠. 하나의 단어가 수많은 느낌을 담고 한 줄의 문장이 헤아릴 수 없는 의미를 담은 것처럼요."
한 줄의 문장이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그렇다면 놈은 셰익스피어의 문장에 정반대의 두 의미를 숨긴 것이다.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여전히 향기를 풍기지만 장미말고 불리지 않으면 더 이상 장미가 아니다. 아무리 향기로운 장미도 시간이 지나면 향기를 잃고 시들지만 그 이름은 살아남는다. ‘장미‘라는 이름을 부르면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가 떠오르는 것처럼. 장미는 사라지지만 장미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장미는 유한하지만 장리마는 이름은 영원하다. - P218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읽기 전의 사람이 아니다. 문장은 한 인간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불치의 병이다. 단어와 구두점들은 몸 여기저기에 세균과 바이러스처럼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문장들은 뼈에 새겨지고 세포 속에 스며들고 자음과 모음은 혈관을 타고 흐른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는 뇌세포를 물들이고 영혼을 재구성한다. 그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가서도 안 된다. - P220

스기야마는 위험한 촉수를 가진 물건을 만지듯 조심스레 펜을 쥐었다. 펜촉은 검은 잉크를 듬뿍 머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심지어 종이 위에 내려앉지도 못했다. 눈앞의 백지는 형무소의 뜰처럼 활량했다. - P267

결핍은, 고통스럽지만 때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고양시키는 법이다. 감옥은 살기엔 고통스러웠지만 꿈꾸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그곳엔 자유가 없었기에 자유를 꿈꿀 수 있었고, 희망이 사라졌기에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 P278

모든 일은 일어날 어떤 일의 전조다. 시간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고 사건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모든 행위는 다가올 운명을 위해 복무한다. 그것이 기막힌 행운이든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갈 불운이든, 문제는 그 전조를 예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20

운명은 어딩에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디에 있을 수 있느냐는 권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달콤함을 참는 것은 고통을 참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다. - P184

철학자들과 주인공들의 이름이 그를 떠나갔다. 나는 그의 영혼의 올이 하나씩 풀리는 것을 보았다. - P192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 심지어는 거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다시 곱씹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행해 새 출발 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돌이켜 볼 수 있고, 돌이켜 보아야 과오를 찾을 수 있고, 과오를 찾아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받아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288

진실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죠. 기록이 불태워지고 감추어졌다 해도 진실은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소실되고 나의 진술이 사라져도 제가 본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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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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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지를 썼다. 그냥 되는대로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레몽의 마음에 들도록 힘썼다. 왜냐하면 내게는 레몽의 마음에 들지 않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 P41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러고는 벽을 통해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로,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왜 엄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에는 일찌감치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으므로 나는 저녁도 먹지 않고 잤다. - P49

"자넨 젊으니까, 그런 생활이 자네 마음에 들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는 하지만 결국 아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이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증략...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으나, 나이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 P51

길에 나서자, 피로한 탓도 있고 또 덧문을 열지 않고 있었던 탓도 있어서 벌써 퍼질대로 퍼진 뜨거운 햇살에 나는 마치 따귀라도 얻어맞은 것 같았다. - P57

이제 태양은 찍어누르는 듯 세차게 내리쪼였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 P65

조금 전과 다름없이 시뻘건 폭발은 그대로였다. 모래 위에서 바다는 잔물결들의 급하고 가쁜 숨결을 다하여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바위께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햇볕에 쬐어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더위 전체가 내 위로 내리눌러대면서 나의 걸음을 막았다. 그리하여 얼굴 위에 엄청나게 무더운 바람이 와 닿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두 주먹을 부르쥐었고, 태양과 태양이 쏟아부어 주는 그 영문 모를 취기를 견뎌 이기려고 전력을 다해 몸을 버티는 것이었다. 모래나 흰 조개껍질이나 유리 조작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칼날처럼 번뜩일 때마다 양쪽 턱뼈가 움찔하곤 했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 P67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는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 P69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에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읭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지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 P69

그날 마음이 아팠냐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 질문은 나를 몹시 놀라게 했다. 만약에 내가 그런 질문을 해야만 할 입장이었다면 나는 매우 거북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자문해 보는 습관을 좀 잃어버려서,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 P75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재판의 세계란 부르조아이기도 하고 나치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시대의 모든 암들입니다. 뫼르소로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뫼르소는 판사들이나 사회의 법칙이나 판에 박힌 감정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 존재합니다. - P139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힌 것일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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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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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은 고통이 인간의 가치를 재는 척도가 되지는 못해. 고통은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비열하게도 만드니까. - P42

내 미래는 아직도 요원하다. 앞을 향해서 뛰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역시 여신이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신보다 이해아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이 만든 것이니까. - P61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동물뿐이죠. 저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국과 인민의 자식이죠. 조국과 인민의 경험은 즉 제 경험이기도 합니다. 그 경험에서부터 태어난 모든 문제를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 책임미여 권리이기도 하지요. - P119

인간이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은 반드시 자기의 머리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기는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으로서 무슨 일에 있어서나 ‘왜?‘라는 질문을 던져 왔노라고 말한다. 희극적으로 비극을 연기하고, 비극적으로 희극을 연기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저주하고 누구를 동정해야 한다는 말인가? - P169

씨왕 같은 청년은 역시 행복하다. 그들에게는 역사의 책임이 있을 뿐 역사의 부담은 없다. 우리들도 다시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이 우리들처럼 되는 것일까. - P173

나는 이신과 결혼했다. 행복은 비교함으로써 비로소 이해하고 느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 P203

생활이 계속 필요를 낳고, 물질의 필요가 조금씩 내 정신을 빼앗아. 마지막에는 정신을 대신해 버렸어. 욕망에는 제한이 없어. 그 하나하나가 분발의 목표가 되어 다른 것 따위는 생각할 틈도 없지.
철학은 철학자에게 맡기고,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겨 버렸어. 나는 생활의 전문가가 되어 살림을 꾸리는 연구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만족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고 있어. 생활이라는 것은 본래 그런 것이야.
이것이 나의 이야기. 굼이 없는 생활이지만 덕택에 풍파도 일지 않아.
꿈이 있으면 언제나 풍파가 따르는 법이지. 다른 사람에게 주목을 받게 되면 반드시 그것을 깨뜨리려는 사람이 나타나. 하지만 누구에게도 주목을 받지 않으면 평온 무사한 법이야!
인간, 그 외에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 P205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론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 내가 알 리가 있나. 그러나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도 모르겠다는 말은 난 믿지 않아. 자기의 필요에 의심을 갖는다든지, 두려워한다든지, 자신감이 없다든지 하는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 - P239

이 자리에서는 서로의 인생을 알 수 있을 뿐 영향을 줄 수는 없어. 하물며 서로 간섭하는 것은 말도 안 돼. - P272

"현실은 우리 세대에도 한한의 세대에도 부모 세대의 고난을 나누어 갖게 하고 싶어요. 우리들은 쭉 이런 말을 들어 왔습니다. 너희들은 앞 세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만 앞 세대는 다음 세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주었나요? 부모는 자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주었습니까?"
- P344

뭘 그렇게 흥분하지? 나를 자기와는 다른 세대에다 집어넣고서는 이상한 사람! 하지만 말하고 있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괴로움이 있는걸. "아직 어린 주제에!" 엄마는 언제나 내게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엄마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를 생각해봐요. 내가 부딪히고 있는 것과 같은 이런 복잡한 문제에 부딪혀 본일이 있어요? 책에는 오이씨를 뿌리면 오리가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고 씌어있었다. 나는 무엇을 뿌렸지? 아무것도 뿌리지 않았어. 어른을 따라서 걸어온 것뿐이야. 그런데도 내 바구니에는 벌써 쓴 오이들만 가득해. 너무 무거워서 들 수조차 없어. 그런데도 갑자기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는 거야. 마치 내가 역사에 대해 나쁜 짓이라도 한 것 처럼. 이걸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 거야? - P344

나는 고통의 표면에 마약을 바르고 싶지는 않다. 하물며 어제를 은폐의 대상이나 오늘의 웃음거리고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고통은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예술과 철학과 사상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청춘과 애정을 잃었지만 무의미하게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나는 열정이 불타고 난 뒤의 숯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를 따뜻이 데워 주고 내가 나아갈 길을 비춰 주기에 충분하다. - P368

수 천년에 걸친 봉건제에 의해서 우리들은 점점 다음과 같은 인간으로 길들여지고 말았다.-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습관이 없고, 생활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갖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며, 자기를 독특한 개성으로 고양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사회에 독특한 ‘이것‘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기를 ‘그것‘에 섞어 넣거나 복정시키는가, 다시 말해서 개성을 공통적으로 해소시키는가에 있는 것 같다. - P381

습관, 습관, 습관보다도 무섭고 권위가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위를 보고 있다. 사람의 가치는 물론, 그 사람의 말의 가치도 지위에 따라서 다른 법이다. 지위가 높으면 말도 무겁고 지위가 낮으면 말도 가볍다. 이것은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사실이다. 사실은 흔히 진리보다도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개선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일까? - P402

참으로 좋은 공부가 된다. 만일 누군가에게 ‘단순한 일이 왜 이렇게 복잡해졌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일언지하에 대답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요소가 제1이라고. 여러 가지 목적으로 소란을 피우는 인간이 있고, 거기에 여려 가지 이유로 두려워하는 인간이 가세하고, 거기에 또 머리가 굳은 인간이 등장한다. 이렇게 되면 가장 단순한 일이라 할지라도 복잡해지고 말 것이다. 우연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세상사나 운명은 묘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 P443

나는 이미 ‘뛰어난 재목‘이 될 ‘최적기‘를 지났다. 닭으로 치면 늙은 닭이어서 제대로 달걀을 낳지도 못한다. 달걀로 친다면 반쯤 품다만 달걀이어서 새삼스럽게 부화될 수도 없다. 아직, 이대로 끝나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길에 커다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신천지를 창조하고 개척하는 것은 전력을 다 해서 지지한다. 나는 누가 올린 성과이건 간에 진심으로 기쁨을 느끼며 누가 불행에 빠지건 간에 진심으로 동정을 보낸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가? 꼭 내 자신이 영웅호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불만을 느끼고 리이닝에게 말했다.
"내게는 용기도 재능도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타인을 지지할 권리도 빼앗는 거요?"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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