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사회학
김광기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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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방인 그 매력적인 이름에 대하여.
 
"이방인" 이 한 단어를 던져두고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연상단어들을 주워담기 시작한다면 아마 한나절도 더 걸리지 않을까 싶다. 카뮈의 작품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어떤 시간과 공간에 정주하지 않고 떠도는 자로서의 이방인은 매력적이다. 마치 북유럽의 떠돌이 집시처럼 말이다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붙잡지 않는 그들의 삶이 다만 고달프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다들 한번쯤은 떠나고 싶은대로 떠나고 구름처럼 부유하고 싶은 꿈을 꾸곤 하니까 말이다. 혹자는 그것을 자유라고도 부르고 소외라고도 불렀다.
뭔가 정서적으로 내몰리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방인"이라는 이름은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그들을 이방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속에 나는 있는가? 뭔가 흥미로운 전개가 기대된다.
 
필자의 머리말. 그러니까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읽게 되는 문장들이다.
그 시작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책이라는 기대는 시작된다.
 

 

 

 

 이 책은 떠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에서 대부분 중요한 순간은 바로 떠남에서 시작된다. 처음 학교를 가려고 집 대문을 나서는 날, 군대 가려고 기차 타는 날,

(...)

그러나 그런 순간들로 인해 인생이 예상치 않게 풍요로워지기 시작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날과 순간들이야말로 누구나 이방인의 반열에 오르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

바로 떠남과 그로 인한 이방인의 체험에서 시작한다.

(...)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인간이라면 예외 없이 죄다 떠나는 자다. 고로 인간은 모두 이방인이다.

(p6~7)

 

 

 

 

모든 인간이 이방인이라고 정의 해 놓고 시작한다. 왜 그런 결론을, 혹은 그런 출발을 잡을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 전체에 걸쳐 전개된다.

 

 

# 2.

 

5부 14장으로 구성되어진 책의 내용을 잠시 보자면..

 

1부. 이방인 이론

2부. 이방인과 인간

3부. 이방인과 근대성

4부.이론의 적용과 실제

5부. 고향.

 

1부는 이방인과 연극무대의 은유로 시작한다. 이방인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살가운 비유다. 짐멜과 슈츠의 정의에 조금 더 넓고 깊은 의미들을 부여하게 되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회학적 개념과 인문학적 논거들을 일상적이다 싶을 정도의 언어로 풀어놓기 위해 필자가 기울였을 노력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이방인이라는 다소 분절적인 개념을 거대한 사회학적 담론으로 풀어내며 그들을 의심하는 자, 혹은 모든 인간의 본질적 근원에 대한 재해석(또는 재정의) 으로 끌어내는 것에 대한 존경이 저절로 생겨난다. 따지고보면 우리 모두가 사회학자도, 인류학자이거나 인문학자도 아닌데 이런 개념들이 어렵지 않을까? 살짝 겁을 먹기도 할것이다.

사실, 겁을 먹었다.

뭔가 흥미롭긴 한데, 어려워보이고 다소 무거워보이는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흥미는 걱정을 무마시키는 묘한 스킬을 지니고 있다. 사전 찾아가며 보지 뭐, 이참에 공부하는 셈치고..

제법 그럴듯한 변명을 뚝딱 만들어낸다.

책을 펼치고 한참을 읽어내려가도록..나는 사전도 무엇도  찾아보지 않는다. 그만큼 일상적인 언어와 자연스러운 비유로 풀어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개념을 폄훼하거나, 경박하게 풀어헤진 것이 아니다.

한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는 기가막힌 연결고리와 몰입력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몰아치다 느려지다를 반복한다.

 

#3. 결국 고향

 

이방인은 떠도는 자이다. 무엇을 위해서? 그 본래성으로 회귀하고자 함은 아닐까? 사회에서 밀려난 자가 아니라 스스로 사회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그 속에서 종속되거나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는 의심과 질문으로 세계와 자신의 본래적의미를 찾으려 싸우는 자들..그래서 개별적 존재가 아닌 사회학적 존재로서의 이방인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본래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를 나이게 못 하는, 즉 나를 다른 것에 가둬두려는 세계의 모든 집요한 작업과 기획으로부터 나를 스스로 풀어 다른 세계에 개방하는 것과그것 밖으로 거침없이 서려 하는 것이 바로 이방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방성은 곧 이 세계에서 편안함과 안도를 얻디 못하는 것이다. (p452)

 

 

 어쨌던 참과 본래성을 찾는 이들이라면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며 물어대는 이방인과 현상학자 그리고 사회학자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울 필요가 있다. 바로 그들이 본래성을 위해 맹렬히 몰두하고 있는 자들이기에 그러하다. 그들은 세계에서 참의 고향, 본래성의 고향을 찾으려 하염없이 자제하고 침묵하며 세계를 거스르는 자들이다. 세상의 껍데기는 가라고 부르짖으며 본래성 때문에 향수병이 걸려버린 자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이들을 유독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하여, 이방인이여 영원하라!

 

                                        (p453)

 

 

 

 

책의 상당부분을 밑줄을 그으며 읽는다.  따로 정리하며 한번 더 읽어야겠다고 계획한다.

쉽게 놓아지질 않는 책이다. 인용한 문장들에서 보여지듯이 어렵지 않게 풀어놓은 글들이 생경하지도, 난해하지도 않다. 물론 사회학자들의 이름이나 이론에 대한 것들은 빼고 말이다.

책을 읽으며 자꾸만 필자의 글들을 찾아본다.

"이방인의 사회학"이라는 연구논문이 2003년 것 부터 찾아진다.

필자가 최소한 10년 이상을 연구하고 재편하고 정리하고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그정도 노력과 공을 들였다면..흥미롭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누구라도 읽어낼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들이니 말이다.

 

# 4. 위로

 

최근들어 많은 이들이 사회로부터 밀려나고 억압되며 잊혀지고 있다. 소외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밖으로 밀려나가는 혹은 내쳐지는 사람들. 그것이 비단 서러운 일은 아닌것이다.

판에서 밀려난다는 건, 어쩜 새로운 판으로 뛰어들어 이방인으로서의 출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주하는 자가 아닌 자신의 판에서 끝없이 자신의 본래적 정의를 묻고 의심하며 찾아가는 중심자적 이방인.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시대의 <이방인>인 것이다.

밀려나는 자가 아닌, 뛰어드는 자.

위로가 되었다.

강요된 객체가 아닌, 힘찬 주체가 되어도 좋다는 암묵적 합의를 받아낸 것처럼.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신비로운 존재도, 이해하지 못하는 소수적 존재도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의 "이방인"

기필코 영원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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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코미디
윌리엄 사로얀 지음, 정회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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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족의 힘

윌리엄 샤로얀의 첫 글에서 애틋함과 존경심을 먼저 읽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인 타쿠히 샤로얀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서문을 읽으며 어렴풋하게나마 휴먼 코미디의 온도가 느껴진다.

" 어쨌거나 이 이야기는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 작품이 당신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당신과 우리 가족의 특징인 유쾌함에 진지함을 적절히 섞어 최대한 단순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흡족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저도 알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이 이야기는 당신의 아들이 당신에게 바치기 위해 쓴것 이고, 따라서 그 이유만으로도 당신에게는 흡족한 작품일 것입니다. - 194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윌리엄 샤로얀"

마지막 문단에서 많은 것들이 읽힌다. 그가 자신의 가족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가족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그 가족의 일원으로 자신을 있게한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어린 아들의 어리광처럼 귀엽고 진지하게 느껴진다.
중학교때 엄마의 생일이었다. 늘 싸구려 브로우치나 색종이를 오려 한참을 들여다 보아야 무언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조악한 모자이크를 선물했었던 나였지만, 중학생이 되었다고 뭔가 어른스러운 척 하고 싶었던 나는 돈을 모아 블라우스 한 벌을 샀다. 분홍색의 블라우스. 프릴이 잔뜩 달렸고 목에 리본을 묶어야 하는 내 눈에는 너무 고운 블라우스를 말이다. 학교 앞 보세 가게 쇼윈도에 걸려있던 그 옷을 보고 첫눈에 반해 얼마인지를 묻고 언제쯤 사러 올테니 팔지 말아달라는 당부까지 하고 나왔었다.
여튼, 엄마의 생일날 나는 그 옷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선물을 전할때의 그 긴장감과 흥분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얼마나 좋아할지, 어떤 칭찬을 할지 가늠이 되진 않았지만, 내 마음을 읽어줄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았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선물.
선물을 받은 엄마는 당황한 표정이 잠깐 스쳐갔지만 이내 예쁘다 어디서 이런걸 샀니 우리 딸 다컸네를 연발하며 충분히 기뻐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엄마에게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을 블라우스였다. 엄마의 칭찬에 나는 별것 아니란 듯 거드름을 피우며 "맘에 안들어도 할 수 없어. 엄마 주려고 거의 한달을 저금하고 버스비도 아겼다고. 따라서 엄마는 싫어하면 안돼. 알았지?" 세상에 이런 건방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그게 가능했던 건, 내가 엄마를 존경하고 있다는 마음과 그걸 알아챈 엄마의 시선이 마주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 서문만을 읽고나서 떠올린 옛기억은 페이지를 넘어갈 때마다 여러가지의 장면들과 마주하며 시간을 더듬게 했다.
그 때, 그 곳에서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는지..결핍과 희망사이에서 무엇이 우리를 웃게했었던가에 대한 확인작업처럼 말이다.

책은 그렇게 처음부터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 2.

캘리포니아 작은 도시 이타카 산타클라라 가에 있는 매콜리가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리고 순수한 율리시스,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전신국에서 일을 하는 호머, 군에 간 형 마커스, 호머이 누나 베스 그리고 매콜리 부부의 일상이 이렇게 소소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그려진다. 마치 매일매일의 일일 연속극을 보듯이. 아, 요즘의 드라마는 막장코드가 대세라서 어쩌면 적절치 못한 비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에서 조용히 번지는 애틋함과 과장되지 않게 소소하게 지어지는 미소의 정체는 유쾌함이었다.
코미디라고 하면 왁자하게 박수를 치고,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우스운 것이라는 편견을 걷어내기에 충분하다. 잔잔한 웃음이 오래도록 기분 좋게 하는 것, 그것을 바로 희극이라고 불러야하지 않을까? 금방 잊혀지는 자극이 아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언제라도 한 부분을 꺼내어 웃음지을 수 있게 하는 것.
할머니가 다락 문앞에 놓아둔 박하사탕 주머니 처럼..언제나 달고 기분좋은 것 말이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 비극이 비극을 불러와도 그 뒤춤에 희극의 부스러기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눈물이 다만 비극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만으로도, 비극과 희극의 간극은 넓지만은 않다는 것.

사실, 어렵고 힘들지만 견뎌내고 참아내어 언젠가는 행복해진다는 막연한 희망과 견딤의 글들을 어릴 때부터 자주 보아왔던 것 같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순하고 착하게 진심을 지키며 살아내면 언젠가는..(이 언젠가는 이라는 막연함은 얼마나 숨막히는 고문인건지..) 그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
기다리고 견디는 것.
그 고리타분한 공식이 책에서는 조금씩 균열을 갖게 된다. 고난과 역경의 정체가 얼마나 유약한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강화체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고 서로에게 힐링이 가능하며 방어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단단하게 마주서는 그 힘을 말이다.
심지어..형 마커스의 전사 소식을 전해듣는 순간에도 가족은 최고의 힐링을 시작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오래 들여다 본 이유다.

"어머니는 죽을 만큼 가슴이 아팠지만 군인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올래요? 우리 집 구경시켜줄게요."

이 말에서 어머니의 강인함 따위 보다는 얼마나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아들에 대한 존중도. 떠난 이를 미소로 보낼 수 있는 건 어느 순간에 가능할까?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과 믿음이 여전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이 사람들..정말 멋지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문득 떠올랐다.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 가장 유쾌할 수 있었던 힘과 닮아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리고, 순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아가던 웰컴 투 동막골도..

 




# 3.

율리시스의 얼굴에는 매콜리 집안 사람들 특유의 온화하고 지혜로우며 비밀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세상 모든 것을 향한 인사이기도 했다. -p11

조심조심 어머니에게 달걀을 건네는 소년의 행동에는 어른들은 알 수 없고 어린아이들은 굳이 기억할 필요없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다 -p12

소년의 어머니는 그런 질문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소년에게 두 눈이 있고, 그 눈 뒤에는 관찰력이 있으며, 관찰력 뒤에는 알고자 하는 마음과 사랑과 갈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27

호며는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여인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그녀에게 닥친 상황이 너무나 터무니 없고 부당해 보여서 이런 삶을 계속 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p32

학교는 아이들이 거리를 떠도는 걸 막아주는 수단일 뿐이니까. 하지만 좋든 싫든 아이들은 결국 언젠가 거리로 나가게 마련이지. 자식들이 세상으로 나가는 걸 부모들이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두려워 할 것도  없어. 이 세상엔 공포에 떨고 있는 어린애들이 수없이 많단다. 너무 겁이 나서 서로를 겁주기도 하지. -p42

코치는 휴버트 애클리 3세를 일 등으로 만들기로 이미 결정한 듯 했다. -p59

헬렌 엘리엇이야말로 호머에게는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는 가엾은 인류가 이루어낸 최고의 업적이었다. -p68


몇개의 밑줄을 읽고 있으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매콜리 집안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주변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사는 법을 알 수 있다. 최소한 이 가족은 사람의 체온을 유지할 줄 안다.

"오히려 그 아이의 가슴 속에 인간미와 선량한 마음이 있는지. 그 아이가 진실과 품위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보다 모자라든 훌륭하든 상관없이 타인을 존중하는지 여부가 나에겐 훨씬 중요하단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인간적이기만 하다면, 나는 그들이 인간으로서 똑같은 태도를 보이기를 원하지 않아.(..) 그보다는 내 학생들이 모두 제각각의 특별함을 가진 인간이기를 바란단다. 저마다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개성을 갖고 있기를 바란단 뜻이야. (고대사 선생님 미스 힉스) -p79 요약

"너는 지금 죽은 형의 일부가 네 마음속에서도 죽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 일부는 그저 육체에 불과해. 언제든 있다가도 사라질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지. 그 부분이 죽었다는 사실에 지금은 네 마음이 아프겠지만 조금만 기다려봐 고통이 완전해져서 죽음 그 자체가 되면 곧 사라질 거야.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 인내심을 갖고 참아. 그러면 마침내 네 마음 속에 죽음이라는 것을 품지 않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거야. (스팽글러가 호머에게) -p296

#4.

인생은 비극이다. 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인생은 희극이다. 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이 상반되는 명제가 논란거리도 증명거리도 아닌 채 하나의 명제처럼 입에서 입으로 책에서 책으로 전승되는 건 그 두가지의 본성이 인생, 즉 사람의 삶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일게다. 세상을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어린 시절의 희극과 세상의 정체와 마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비극 사이에 무엇이 더 큰 영역을 확보하는지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모든 비극적 요소들이 희극적 요소들에 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비극은 희극에 그 근원과 동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내 목에는 점이 하나 있었다. 목과 쇄골의 사이에..엄마는 처음에 그것이 파리똥인줄 알고 수건으로 닦아주었다고 했다. 피부가 빨개지도록 닦아도 없어지지 않기에 그것이 점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작고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 점이었으나, 지금은 작은 팥알만큼 크다. 어릴 때부터 거기 있던 건 떠나지 않는다. 굳이 수술적요법으로 떼어내지 않는다면 말이다.
삶이 희극이 될 수 있는 근거도 거기에 있을것만 같다. 세상이 커다란 호기심이었고 즐거움이었던 시간. 그 어린 시간은 사라지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굳이 훼손하지만 않는다면..그것이 거기 그대로 있는 한, 희극을 근간으로 한 비극은 다시 희극으로 회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숨가쁘게 살아내야하는 삶의 동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가족은 가장 강력한 방공호이며 울타리이며, 분명한 내 자리와 내 몫의 웃음이 보태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아버지에게 바쳐진 글..오래도록 그 온도를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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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9-0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적 명작소설 중에서도 자극적인 소재가 꽤 많은 편이죠.그런 것을 감안한다면 건전하면서도 감동적인 소설로 이 책을 꼽을 만합니다.저도 마지막 장면이 슬펐어요.전쟁영화에서도 전사한 아들의 유골을 갖고 온 군인이 나오는 장면들이 있죠.우리나라 영화든 외국영화든...

나타샤 2014-09-02 16:49   좋아요 0 | URL
담담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걸까..생각을 오래했습니다. 가족들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아마도 사랑일거라고 말이죠. *^^
 
괴물이 나타났다!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11
신성희 글.그림 / 북극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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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이 나타났다.

조용한 숲 속 마을에..

저 멀리 도무지 추측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지나가는 것을 본 토끼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토끼는 고슴도치에게 고슴도치는 또 다른 친구에게..이렇게 전달되는 괴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소문을 전해들은 동물친구들은 그 머리 속에 괴물의 실체를 그려본다. 재미있는 건, 같은 말을 듣고 떠올리는 괴물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처음의 단서에서 소문을 들은 친구들이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덧입혀가게 되는 괴물의 실체는..글쎄?



#2. 그림만 있는 그림책


말 그대로 그림책이었다. 글과 채색되지 않은 그림이 꽉 들어차있다.

기타 하나와 목소리 하나로 무대를 장악하는 가수의 가창력처럼, 채색되지 않은 그림과 짧은 글로 몰입을 시킬 수 있다면 가독성? 혹은 몰입력이 훌륭한 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책들은 강렬한 채색으로 색에 빼앗긴 시선을 그림과 이야기에 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반면, 색을 빼버린 그림은 더 풍성한 상상을 하게 한다.

푸른 고슴도치는 어때? 빨간 사슴은? 초록 사자는? 노랑 코끼리는?

아이에게 고정된 색이 아닌 상상의 색으로 자신의 동물을 완성시켜보게 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아쉽게도 나는 그렇게 어린 아이와 함께 살지 않는 관계로..또래의 아이가 있는 엄마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채색되지 않은 그림이지만 섬세하고 생동감이 있다. 각 동물들의 특징이 잘 살아있어서 좋은 교본이 될것도 같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색칠하며 이야기를 더해간다면 몇번을 읽어도 새로운 이야기가 그 속에서 피어날 것이다.


#3.놀기 좋은 책


일부러 틀린그림찾기랄지 숨은그림찾기 같은 앱을 다운 받아 눈이 빠져라 찾곤한다. 그렇게 숨어있는 무엇을 찾는건 본능에 가까운 욕구이며 재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이 어릴때, 숙제를 해야한다며 필통을 내놓으라는 아이에게 작은 지도를 내어주며 '찾아봐~!' 했다. 아이는 짜증을 내면서도 엉성한 지도와 몇가지 암호를 열심히 풀어 냉동실 안 얼음통 속에 비닐에 갇힌 제 필통을 찾아내었다. "엄마때문에 못살어 진짜". 하면서도 아이는 가끔 보란듯이 제 물건을 내 앞에 흘리곤 했다. 아마도 감춰보라는 암묵적인 요구였을게다. 

책에서 숨은그림 찾기를 할 수 있다.



나무 뒤에, 풀숲 뒤에, 숨은 아이들이 있다. 얼마나 열심히 숨었는지..*^^*



색을 입으면 더 선명하게 보이겠지만 어쩌면 계속 숨겨두고 찾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 4. 오해와 진실


나와 다른 어떤 것과 마주하면 우리는 지레 겁을 먹는다. 혹시나 자신에게 위해가 될까 싶어서..다른것은 그저 다른 것일 뿐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자세라는 걸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 밑바닥에는 자신의 무서운 면이 기본으로 깔려있을 것이라는 진실도 인정해야한다.

어떤것이 두렵고 위험하다는 것..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늘 자기 자신의 위험성과 두려움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요즘처럼 "다름"이 위협적인 때가 없다.

진영을 나누고, 지역을 나누고, 입장을 나누고, ..

그렇게 너와 나의 다름이 적대감의 근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이렇게 예쁘게 보여주고 있다.

존중과 인정. 

그것을 어릴 때부터 마음 한 구석에 단단한 오동나무처럼 심어두어야 할 일이겠다 싶다.



첫 페이지이다. 아무것도 없는 몽실..



마지막 페이지..

서로 다르지만 함께 몽실~!


정보의 공유는 어떠해야 하는가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책이다.

주변에 선물하기에도 좋은..색연필과 같이 선물하면 더욱 좋을..기분 좋아지는 책을 만난것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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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나는 날 내 친구는 그림책
미로코 마치코 글.그림, 유문조 옮김 / 한림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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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림책에 꽂힐 때가 있다. 그림책을 읽을만한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습게도 어린 친구들이 많은 관계로 그들이 아이에게 선물하려면 뭐가 좋을까? 를 가끔 생각한다.

여섯살 남자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있다.

작년에 동생을 보고 고집과 짜증이 늘었다고 걱정을 눈꼽처럼 달고 다녔다.

크느라 그러는거지..라고는 했지만 아직도 동생이 싫다고 종알거린다는 녀석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많은 것이 궁금하고 많은 것을 상상하는 것이 녀석에게 도움이 될것 같았다.

게다가 올해는 비바람과 자주 만나게 되는 슬픈 날도 많았으니까.




오늘은 바람이 세다. 휘잉 휘잉 세차게 분다.


한장씩 사진을 찍어 녀석의 엄마에게 전송을 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엄마의 역할은 천천히 읽어주는 것이었고..사진을 확대해서 이쪽 저쪽 살펴보며 녀석이 조금씩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는 톡이 날아온다.



하늘에서 늑대가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던 녀석이 베란다로 뛰어가 창밖을 한참 살피더란다. 어디? 어디?

한참을 서서 밖을 보던 녀석이 씨익 웃으며 "창문에 늑대털이 한가득이네. 다음은?" 하며 독촉하기 시작했단다

다음 페이지와 그 다음 페이지를 전송하며 녀석과 녀석의 엄마와 나는 이 놀이에 푹 빠져버리게 된다.




바람에 날려서 머리카락이 치솟았다.

삐죽삐죽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그게 아니다.

머리에 고슴도치가 올라앉았다.


이 대목에서 녀석이 까르르 웃으며 아빠의 헤어젤을 들고와 엄마에게 내밀었단다. 전송은 잠시 미루어졌다.

두 모자간에 헤어스타일링이 시작되었으니까. 한참이 지나서야 아이의 사진이 날아왔다. 꼭 저런 표정을 하고서..



빗방울이 내리치기 시작한다.


치타들이 왔다.


유난히 치타와 호랑이를 좋아하는 녀석은 엎드린 자세로 치타처럼 거실을 뛰어다니고 있단다.




비가 점점 더 많이 내린다.



다음 사진은 시간을 좀 두고 보낸다.

왜? 녀석이 환호성을 지를게 분명하니까.



고래가 밤을 끌고 왔다.


멋진그림에 예상대로 녀석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고래다~!"

고래는 상상으로 들어가는 가장 분명한 열쇠라고 늘 생각한다. 

그 뒤를 이어, 박쥐 ,다람쥐, 거북이들이 저마다의 역할로 이야기에 등장한다.

아이는 동물들이 나올 때마다 제가 알고 있는 짧은 이야기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비가 그쳤다.

바람이 약해졌다.

천둥도 멈췄다.


내가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을 보내고 "재밌지?"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답장이 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이엄마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랑 색종이랑 난리도 아녜요. 동생에게 너 고래 알어? 그거 모르지? 바보같이. 내가 그려줄께"하며 법석을 떨고 있다고 한다.

한참을 웃었다.


비가 개인 다음 날.

나는 녀석에게 책을 선물했다.

이 예쁘고 멋진 책. 

어느 비오던 날, 마음 착한(?) 이모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로 기억할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 아이는 매일을 여러가지 동물들로 표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해가 떴네. 캥거루가 오려고 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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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한 시대를 풍미하고 초연히 떠나갔던 뮤지션의 울컥울컥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비, 우산도 방어력을 상실하고 어찌되었든 머리만 안젖으면 괜찮을 거라는 근거없는 생각에 머리만 우산 속에 파묻고 걷는다. 꿩도 아니면서..


열 여섯, 사춘기 아이도 아니면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눈이 오면 눈이 내려서..비가 오면 비가 와서..화창한 날은 화창해서..롤러코스터를 타듯 그렇게 출렁이며 지낸다. 

산울림의 노래 가사에.."별을 보면 별로, 달을 보면 달로 보일 때까지~"라는 구절이 있다.

별과 달이 과한 의미부여를 하는 미욱함을 벗어난 후 까지..떠나기 말라는 내용이리라.













 


















공지영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떠올렸다. 비가 내려서 말이다. 표지가 떠오르고 오래지 않아 신경숙의 눈송이가 연쇄적으로 떠오른다. 같이 놓고 보니 전혀 다른 표지다. 하지만, 눈송이를 받는 순간부터 나는 공지영의 책과 두 권의 이미지가 겹쳐진 채 좀체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드라마에 나왔다는 폭풍우 치는 밤에..창 밖의 바람을 보니 저런 느낌일까 싶어졌다. 그래도 거센 바람은 폭풍의 언덕이지 않겠나?

눅눅하고 시린 날씨 말고, 맑은 날씨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루키의 4월의 맑은 아침에~ 사월..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저절로 연상된다. 더불어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도..

뜬금포처럼 눈사람 여관이 고개를 내민다. 덥고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뭔가 쨍한 이미지가 필요했나보다.




 이렇게 비오고 바람불고 날씨에 휘둘리다 보면..뭐라도 되겠지..

  이렇게 날씨에 예민해 지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오늘의 운세랄지..퇴근 후 술 한잔 기울일 이야기꺼리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뉴스를 뒤지고 다니면서 말이다.

 




















울컥해졌던 마음과 철없이 감상을 타고 넘는다고 제풀에 기운이 떨어진다.

술상이던 밥상이던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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