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사회학
김광기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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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방인 그 매력적인 이름에 대하여.
 
"이방인" 이 한 단어를 던져두고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연상단어들을 주워담기 시작한다면 아마 한나절도 더 걸리지 않을까 싶다. 카뮈의 작품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어떤 시간과 공간에 정주하지 않고 떠도는 자로서의 이방인은 매력적이다. 마치 북유럽의 떠돌이 집시처럼 말이다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붙잡지 않는 그들의 삶이 다만 고달프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다들 한번쯤은 떠나고 싶은대로 떠나고 구름처럼 부유하고 싶은 꿈을 꾸곤 하니까 말이다. 혹자는 그것을 자유라고도 부르고 소외라고도 불렀다.
뭔가 정서적으로 내몰리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방인"이라는 이름은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그들을 이방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속에 나는 있는가? 뭔가 흥미로운 전개가 기대된다.
 
필자의 머리말. 그러니까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읽게 되는 문장들이다.
그 시작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책이라는 기대는 시작된다.
 

 

 

 

 이 책은 떠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에서 대부분 중요한 순간은 바로 떠남에서 시작된다. 처음 학교를 가려고 집 대문을 나서는 날, 군대 가려고 기차 타는 날,

(...)

그러나 그런 순간들로 인해 인생이 예상치 않게 풍요로워지기 시작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날과 순간들이야말로 누구나 이방인의 반열에 오르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

바로 떠남과 그로 인한 이방인의 체험에서 시작한다.

(...)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인간이라면 예외 없이 죄다 떠나는 자다. 고로 인간은 모두 이방인이다.

(p6~7)

 

 

 

 

모든 인간이 이방인이라고 정의 해 놓고 시작한다. 왜 그런 결론을, 혹은 그런 출발을 잡을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 전체에 걸쳐 전개된다.

 

 

# 2.

 

5부 14장으로 구성되어진 책의 내용을 잠시 보자면..

 

1부. 이방인 이론

2부. 이방인과 인간

3부. 이방인과 근대성

4부.이론의 적용과 실제

5부. 고향.

 

1부는 이방인과 연극무대의 은유로 시작한다. 이방인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살가운 비유다. 짐멜과 슈츠의 정의에 조금 더 넓고 깊은 의미들을 부여하게 되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회학적 개념과 인문학적 논거들을 일상적이다 싶을 정도의 언어로 풀어놓기 위해 필자가 기울였을 노력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이방인이라는 다소 분절적인 개념을 거대한 사회학적 담론으로 풀어내며 그들을 의심하는 자, 혹은 모든 인간의 본질적 근원에 대한 재해석(또는 재정의) 으로 끌어내는 것에 대한 존경이 저절로 생겨난다. 따지고보면 우리 모두가 사회학자도, 인류학자이거나 인문학자도 아닌데 이런 개념들이 어렵지 않을까? 살짝 겁을 먹기도 할것이다.

사실, 겁을 먹었다.

뭔가 흥미롭긴 한데, 어려워보이고 다소 무거워보이는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흥미는 걱정을 무마시키는 묘한 스킬을 지니고 있다. 사전 찾아가며 보지 뭐, 이참에 공부하는 셈치고..

제법 그럴듯한 변명을 뚝딱 만들어낸다.

책을 펼치고 한참을 읽어내려가도록..나는 사전도 무엇도  찾아보지 않는다. 그만큼 일상적인 언어와 자연스러운 비유로 풀어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개념을 폄훼하거나, 경박하게 풀어헤진 것이 아니다.

한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는 기가막힌 연결고리와 몰입력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몰아치다 느려지다를 반복한다.

 

#3. 결국 고향

 

이방인은 떠도는 자이다. 무엇을 위해서? 그 본래성으로 회귀하고자 함은 아닐까? 사회에서 밀려난 자가 아니라 스스로 사회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그 속에서 종속되거나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는 의심과 질문으로 세계와 자신의 본래적의미를 찾으려 싸우는 자들..그래서 개별적 존재가 아닌 사회학적 존재로서의 이방인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본래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를 나이게 못 하는, 즉 나를 다른 것에 가둬두려는 세계의 모든 집요한 작업과 기획으로부터 나를 스스로 풀어 다른 세계에 개방하는 것과그것 밖으로 거침없이 서려 하는 것이 바로 이방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방성은 곧 이 세계에서 편안함과 안도를 얻디 못하는 것이다. (p452)

 

 

 어쨌던 참과 본래성을 찾는 이들이라면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며 물어대는 이방인과 현상학자 그리고 사회학자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울 필요가 있다. 바로 그들이 본래성을 위해 맹렬히 몰두하고 있는 자들이기에 그러하다. 그들은 세계에서 참의 고향, 본래성의 고향을 찾으려 하염없이 자제하고 침묵하며 세계를 거스르는 자들이다. 세상의 껍데기는 가라고 부르짖으며 본래성 때문에 향수병이 걸려버린 자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이들을 유독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하여, 이방인이여 영원하라!

 

                                        (p453)

 

 

 

 

책의 상당부분을 밑줄을 그으며 읽는다.  따로 정리하며 한번 더 읽어야겠다고 계획한다.

쉽게 놓아지질 않는 책이다. 인용한 문장들에서 보여지듯이 어렵지 않게 풀어놓은 글들이 생경하지도, 난해하지도 않다. 물론 사회학자들의 이름이나 이론에 대한 것들은 빼고 말이다.

책을 읽으며 자꾸만 필자의 글들을 찾아본다.

"이방인의 사회학"이라는 연구논문이 2003년 것 부터 찾아진다.

필자가 최소한 10년 이상을 연구하고 재편하고 정리하고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그정도 노력과 공을 들였다면..흥미롭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누구라도 읽어낼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들이니 말이다.

 

# 4. 위로

 

최근들어 많은 이들이 사회로부터 밀려나고 억압되며 잊혀지고 있다. 소외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밖으로 밀려나가는 혹은 내쳐지는 사람들. 그것이 비단 서러운 일은 아닌것이다.

판에서 밀려난다는 건, 어쩜 새로운 판으로 뛰어들어 이방인으로서의 출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주하는 자가 아닌 자신의 판에서 끝없이 자신의 본래적 정의를 묻고 의심하며 찾아가는 중심자적 이방인.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시대의 <이방인>인 것이다.

밀려나는 자가 아닌, 뛰어드는 자.

위로가 되었다.

강요된 객체가 아닌, 힘찬 주체가 되어도 좋다는 암묵적 합의를 받아낸 것처럼.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신비로운 존재도, 이해하지 못하는 소수적 존재도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의 "이방인"

기필코 영원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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