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제법 선선하다. 선선함은 어째서 그리움이랄지, 서늘한 공허함 따위를 불러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감성이 가장 말랑해지는 시기는 겨우내 곰보다 미련하게 잠들었던 감성을 깨우기 시작하는 봄일지도 모르는데..어째서..

성급한 마음이 바람 속에서 가을 냄새를 맡는다. 향기..아니다. 냄새다.

 

가을의 냄새를 발견한다. 호빵 냄새를 맡으면 생각나는 풋사랑의 상대처럼 냄새가 기억을 깨우고 감성이 동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참 좋은 시집들이 혼기 꽉 찬 처녀들처럼 줄줄이 나서고 있다.

 

  깔끔한 시어들이 슬픔에게 무릎 꿇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근조근 노래한다.

  무릎을 꿇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는..삶을 키우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

  슬픔의 힘, 울고 싶을 때 누군가 때려준 한대의 따귀처럼..다 쏟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후련해지는

  기분..참 좋다.

  우루룩 읽어버릴 시집은 아니다. 하나씩 천천히 읽는 것이 좋겠다.

  진한 슬픔은 그렇게 때때로 울먹여도 괜찮은 것이니 말이다.

 

 

 

 

 

 

 

표지가 유난히 독특한, 문학동네의 시선집들..

 

  이번에도 표지색이 곱다.

 나는 가을 냄새가 난다고 수선을 피우고 있는데..겨울 소식을 이야기 한다. 그 소식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허밍으로 울려지는 우울일까?

 

 

 

 

 

 

 

 

 

 

 

 

 

 

 

 

 

 

 

 

 

 

 

 

 

 

 

 

 

 

문학과 지성과 창비의 시인선은 믿고 본다. 시를 읽는데 신뢰 운운하는게 우습지만..그것이 그들이 시를 선택하고 묶어내는 내공이고 연륜이라고 본다. 문지의 견고함과 창비의 예리함, 그리고 문동의 신선함..

 

詩를 읽기 좋은 때다.

時를 잃기도 좋은 때다.

시를 읽다..시를 놓치고 시름시름 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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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휴기간 동안 뒹굴거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절감하면서도, 지금이 아니면 언젠 뒹굴거릴 수 있으랴..하는 미련 곰팅이 같은 생각에 끝없는 뒹굴림을 행했다.

봐도 봐도 새롭지 않은 뉴스들 사이로 노벨 문학상에 대한 이야기가 보였고, 유력 후보로 하루키가 꼽힌다는 글을 본다.

그 뒤로..응구기 와 시옹오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반가운 일이다.

케냐의 독립투쟁을 치열하게 그려낸 그의 한톨의 밀알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프리카라는 ..단지 그 대륙의 후손이라는 것만으로 온갖 수탈과 억압의 대상이 되어야했던 지난한 역사는..그 끝을 보이지 않는 잔혹함을 품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아프리카의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다. 노예 12년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출판사에서 쏟아냈는지..영화화 된 것이 이유였을까?

 

 

 

 

 

 

 

 

 

 

 

 

 

 

 

 

 

아프리카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보고임에 틀림없다. 어느 하나도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으며 어느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이국의 이방인들은 그들의 땅과 그들의 정신을 그렇게도 탐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배의 역사, 투항의 역사, 그 아픈 역사들 속에서도 그들은 음악을 만들고 춤을 추었고, 문학을 쏟아낸다.

 

응구기 와 시옹오의 필력과 그의 역사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사람으로..노벨상의 영광이 그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들녘의 책들이 다시 쏟아져 나왔으면 싶어진다.

 

보아둘만한, 어쩌면 우리의 역사와 정서와도 닮아있는 그의 책이 구하기 힘든 도서목록에 들어가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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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법 가을인척 하는 하늘을 만났다.

높고, 푸르고 눈부신..

명절을 앞두고, 그것도 가을의 대표 명절을 앞두고 서둘러 마음이 가을을 만들어내고 있나보다.

작년 이맘 때, 참 많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냈었다. 한꺼번에..

한달동안 매일 한명씩 이름을 적고 사연을 적고, 짧은 시 하나를 적어서 그렇게 보냈었다.

엽서를 받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가을 하늘을 보여달라는 숙제와 함께..

 

올 가을엔..엄두가 안난다. 아마 늙었거나 심드렁해진건지도 모른다.

편지가 생각난 건 아마 작년의 잔영이 남았던것인지도 모른다. 엽서를 쓸 때 설레던 마음..반가워할 사람들의 모습..그런 여타의 모습들이 한꺼번에 보여진건지도 모르겠다.

 

<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 도덕에 관한 편지 프랑키에르에게 보내는 편지>

길고 긴 제목이다. 루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떤 이야기들이 넘쳐났을지 말이다.

제목부터 이리 긴 것을 보면, 그 내용 또한 야무지고 길 것 같다. 단단한 문체의 루소. 그의 손끝에서 쓰여진 편지.

 

 

 

 

 

 

 

 

 

가족들이 모여 앉아 시끌벅적할 명절..시끌벅적함이 긍정적인 단어는 아닐것이기에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 어쩔 수 없는 질타를 들으며 어쩔 수 없는 웃음을 짓기도 할 것이다. 의무방어전같은..

그래도 가족과 형제들에게 기대어 보는 건 어떨까? 이들처럼..

 

 

 

 

 

 

 

 

 

 

 

 

 

 

 

 

오랜 친구와의 편지 나눔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젊은 날을 기억하게 해주는 편지들도 꺼내어 볼 수 있을까?

 

 

 

 

 

 

 

 

 

 

 

 

 

 

불심검문을 거부하다 빼앗긴 가방 속에 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때문에 경찰과 동행해서 신원조회라는 것과 진술서를 썼던 기억도 과거의 어느 한 페이지로 기억된다. 그런 때가 있었다.

 

어쨌든..

좋은 시집들도 많이 나오고 곧 소슬한 바람도 불게다. 아직도 길 위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걱정이다. 추위가 오기 전에 그들을 아랫목에 재울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 해 본다.

 

이번 가을엔..길 위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앙상한 마음이지만 기꺼이 보태고 싶다는 소심한 표현이라도 전해주어야 할 것 같다.

 

세월은 속절없이 가는데..세월은 해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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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의 밀도 - 청소년 테마 소설 문학동네 청소년 24
고재현 외 지음, 유영진 엮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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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책상 위가 온통 책으로 난리도 아니다. 이리 쌓고, 저리 쌓고..

그 동안의 세월과 짬밥으로 책상 두개를 모두 사용하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 사건의 발단인지도 모른다.

널찍한 공간이 생기니 책상위에 책을 마구 던져둔다.

쉬는 시간이면 사탕이라도 하나 얻을까 싶어서 아이들은 내 자리에 모여든다.

저희들 집엔 고급 사탕이며 과자들이 널렸을건데, 어째서 내가 주는 콩알만한 싸구려 사탕에 목숨을 거는지 알 수 없다.

수업시간에 사탕 몇개를 들고 들어가, 잘한 녀석 몇에게 나눠주고 나면, 아이들은 한없이 부러워하곤 한다.

어쩌면, 아이들은 관심을 받는다는 확인과 체온을 느끼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여튼, 그렇게 모여든 아이들은 책상에 널부러진(?)책들을 만지고 쌓고하며 논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노는 아이들을 보는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다 한 녀석이 "쌤, 이거 빌려가도 되요?"

한다. 기다리던 바다. "당근~!" 그러자 아이들이 "뭔데? 나도..나도.."하면서 타임세일하는 마트 매대앞의 엄마들처럼 우르르 달려들어 한권씩 집어가 버렸다.

누가 어떤 책을 가져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가져간 책들이 돌아오기도 하고 영 안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렇게 가져간 책이, 그 아이의 삶에, 아니 적어도 그 아이의 십대 어디쯤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는다면 그걸로 족하다. 냄비받침으로 사용하건, 사발면 하나와 바꾸어버리던..상관없다.

 

 

얼마전, 고마운분께 책을 선물받고는 그 표지에 반해, 읽어야지 하고 꾸역꾸역 가방에 넣어 들고 온 책은 단연 인기였다.

저희들끼리 알아서 돌려 읽다가 꼬질꼬질해져서 돌아온 책..

한 권이 돌아왔다.

 

 

 

 

각각 일곱명의 작가들이 쓴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들고 간 아이는 키가 작고 조금 통통한 아이였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지만, 자신은 너무 못생겨서 가수는 할 수 없을거고 작곡을 하고 싶다고 어느 날엔가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작고 통통한..못생기고 피부도 검은..게다가 윗니 양쪽에 난 덧니까지, 아이의 자신감은 그 아이의 키만큼 낮고 작았다.

책을 돌려주며 아이가 말했다.

"쌤, 이거 진짜 재밌어요. 세상에 별 사람이 다 있어요."

어쩐지 아이의 표정이 밝아보였다.

자신이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어쩌면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징표라고 생각하게 된건가?

아니면 콤플렉스로 고민하는 것이 비단 자기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챈건가?

어쨌든, 다양성이든, 개성이든 아이가 만난 그것이 그 아이에게 조금 더 밝은 웃음을 준 것이 틀림없다.

 

일곱가지 이야기는 감추고 싶은 비밀, 혹은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이야기, 친구와의 관계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언어로 잘 풀어놓았다. 첫 이야기부터 흥미롭다. 혀에 털이 난다. 상상이나 되는가..

식구들과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고, 털이 나는 혀를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저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을 품고 사는 사람들.

모두가 품고 있는 콤플렉스라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지 않나? 반문하게 된다.

콤플렉스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장점이 되기란 그닥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

특별한 징표가 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기질일 수도 있다는 걸..이해하는데서 자신을 이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시작되는 것일게다.

 

띠지에 쓰여진 한마디. "말 해, 아프다고."

아이들은 아프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냥 약효 하나도 없는 행위지만 그저 "호~"하고 불어주기만 해도 한결 좋아질 아픔이다.

"너만 아픈거 아냐! 다른 애들도 다 아퍼. 엄살부리지 말고 열심히 해" 이런 말들이 상처를 악화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책 읽는 아이들은 예쁘다. 읽고 나서 뭔가 이야기하려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는 건 정말 설레는 일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란다.

 

그저 호~ 해주고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그 아이가 거기 있다는 걸 기억해 주는 것으로, 아이들은 훨씬 자존감있게 자라나게 될게다.

 

근데..다른 책도 보고 싶은데..언제 돌아올까? 돌아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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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지둥 시작한 한 해는 그 봄에 소용돌이가 치더니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

여름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가고, 빠른 명절이 허겁지겁 달려와 코 앞에 섰다.

1년의 3분의 2가 지나가도록 뭘 하고 있었는지도 까마득하다. 그저 헛헛한 심사와 먹먹한 가슴만 남았다.

 

9월

달력을 유심히 바라보다, 가을이구나..혼잣말을 해본다.

습관처럼 책 구경을 하고, 몇가지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재를 마친다.

도대체 어디다 정신을 팔고 있었던건지..배송문자가 오고 나서야..그곳에 예약도서들이 있을음 알아챈다.

 

 

 

 

 

 

 

 

 

 

 

 

 

 

 

김영하와 김중혁은 말 그대로 스타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쫀쫀한 김영하의 글과 창작의 발명가라고 지칭되는 김중혁의 글을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는 것 또한 흥미로운 시간임에 분명하다. 공허한 십자가..뭔가 제목에서부터 선득선득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예약날짜가 명절 후라서..아마 길고 긴 후유증에 신음할 때..청량제처럼, 혹은 구조대처럼 나타나 줄것 같아 다행이다.

 

 

 

 

 

 

 

 

 

 

 

 

 

 

세 권의 책이 도착했다. 이 또한 어떤 기준으로 구입한건지 타인의 눈으로 보기엔 애매할 것이나..

언제나 기준은 하나다.

간절히 읽고 싶은 것!

지금이 아니면 못읽을 것만 같은 것.

 

며칠 전 도착한

 

 

 

 

 

 

 

 

 

 

 

 

 

 

라말라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이 얼마나 잔인한 속성을 가졌는지 알아버린 소년병처럼 말이다.

 

가을이 시작된다.

농도 짙은 슬픔도, 선득거리는 한기도, 잘 여문 웃음도 다 그 의미대로 풍성할..가을을 예약한다.

 

봄을 잃고 여름을 놓쳤다.

가을을..기다린다.

오겠지..올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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