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약국이다보니 고객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으시다. 그러나 요새는 할아버지인지 아저씨인지, 할머니인지 아주머니인지 구분이 어려울 때가 많다. 대부분 염색약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는데다, 요새는 외모 또한 가꾸는 시대라 그런지 외모로도 구분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예전엔 할머니들의 경우 대부분 허리가 구부러지고 꼬부랑 지팡이를 짚으시는 걸루 분간하기도 했는데 요새는 지팡이를 짚으시는 할머니들도 소수에 속한다. 몸관리들을 잘하셔서 허리가 구부러지는 사람도 줄어들었나보다. 그래서 나는 유독 흰머리를 고수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는 아직은 흰머리가 하나도 없는데 흰머리가 나중에 생겨도 염색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흰머리의 고운 결을 은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날 흰머리가 하나씩 생기기 시작해 흰머리, 검은머리가 서로 섞이며 사이좋게 지내듯이 보이다가 흰머리로 도배하게 되는 날은 그동안 수고했다고 하늘에서 주는 은메달 훈장을 받는 느낌일 거 같애서다.   

감기약이나 몸살약은 당장 아프기 때문에 사람들이 약을 받자마자 먹는 경우가 많다. 진통제 성분이 들어있으니 식사 후 30분 지나서 드시라고 하셔도 당장 아프시다 하소연을 하시곤 한다. 어쩔 수 없이 이번 한 번은 그냥 드시라고 하는데, 노인네들의 경우 약알을 흘리시는 경우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흰 백발의 최씨할아버지의 경우도 그러했다. 시골 어르신들은 병원 나들이가 큰 하루 일과에 속한다. 그래서 병원 오시는 날에는 집에 있는 옷 중 제일 깨끗하고 정갈한 외출복을 입고들 오신다. 그러나 안에 받치는 옷은 농사일 할 때 입던 옷 그대로여서 언밸런스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또한 얼마나 정감이 가는 패션인지 모른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입고 오시던 낡았지만 깨끗했던 점퍼 말고  새 옷 느낌이 물씬나는, 그래서 사각사각 소리까지 상큼하게 나는 연한 파랑 줄무늬가 들어간 흰색 점퍼를 입고 오셨다.

감기약 처방전을 들고 오셨길래 약을 지어드리고는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서 약을 드시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약 드시는 동안 말벗이라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약알을 주르르 흘리셨다. 급히 새로 약을 지어서 나와 보니 기다리시던 중에 물도 흘리셔서 앞섶과 소매부리, 입매에 물기가 흥건하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할아버지를 웃기기 위해 말을 돌려본다.

"어머. 할아버지. 이거 못 보던 옷이네요? 어머, 멋지세요. 누가 사주신 거에요? "
"으응. 우리 아들이 이번에 사줬어."
"어머~ 아들이 사준 이쁜 꼬까옷을 적셔서 어떡해요. 제가 깨끗하게 닦아드릴께요. 닦고나면 표가 안 날 거에요. 아드님이 효자신가봐요. 이렇게 멋진 옷도 다 사주시구요."

할아버지 입가에 미소가 고인다. 어르신들에게는 그저 아들 칭찬이 최고의 자랑거리이다. 우리 아들이 어디 사는데 연봉이 얼마고, 직업이 뭐고, 이번에 뭘 해줬고 등의 자랑이 늘어지는 다른 분들과 달리 이분은 그저 미소만 빙그레 지으신다. 순하신 양반의 미소 속에 앞서의 많은 자랑들이 담뿍 들어있다. 휴지로 할아버지의 소맷부리를 닦아주는데 할아버지가 부동의 차렷자세로 얌전히 앉아계신다. 웃으며 입가를 마저 닦아줄 때는 아예 눈을 감으신다. 아! 저 모습은 조카가 아이였을 적 밥 먹이고 입가 닦아줄 때의 표정과 꼭같구나! 어르신의 어렸을 때가 잠시 떠오르다 사라졌다.



약국엔 또다른 흰머리 김씨할아버지가 오신다. 그러나  김씨할아버지는 따뜻한 속마음과 달리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은 약간 거칠다. 얼마전 최씨할아버지의 기억으로 투덜이 김씨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투덜이 할아버지여도 자식 자랑은 남 부럽지 않게 하겠지, 이번에는 투덜스런 말 말고 고운 말을 들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가 내심 있었다.
 
"어머 할아버지. 점퍼 너무 멋져요. 아드님이 사주신 거에요? 신세대 옷으로 골라주셨네요? 어머. 할아버지 멋쟁이 되셨어요~"
"아니야~아들이 내려올 때 입고 왔던 걸 갈 때 놔두고 가더라구. 입기 싫다고, 주고 간 거야."
"에이. 아드님이 할아버지 옷 새로 사왔다고 하면 비싼 옷 샀다고 뭐라 하실까봐, 일부러 그런 핑계로 놔두고 가신 거 아네요? 아드님이 이벤트쟁이시구나~ 속도 깊으셔~"
"아니야. 정말 지 입기 싫어서 나에게 버리고 간 거야. 디자인도 봐. 이렇게 후진 디자인이 요새 어딨어. 요새는 다 가벼운 신소재로 만든다던데 이건 뭐, 무겁기만 하고, 디자인도 구식이고. 에이.."
".........................."

두 할아버지의 자식 자랑법이다. 표현은 달라도 다 자식을 조선에 없는 내 아들이라 생각하겠지. 나는 아직 김씨할아버지의 사랑 표현법에 익숙하진 않지만, 어느 날엔가는 익숙해지리라 생각한다. 투털이 할아버지는 아직도 철이 안 든 어른아이같다. 나이 들어서까지 저래 철이 안 들면, 그것 또한 청춘의 한 모습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익숙해질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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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7 18: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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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8 2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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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17: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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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30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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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6 1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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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30 1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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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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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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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봉지를 뜯는다
약알이 데구르르 흩어진다
물을 먹다 아차차, 앞섶이 흥건하다
약사가 다시 약을 지어 휴지로 입가며 소매며 닦아준다
고운 아가씨다 울 엄마처럼. 나도 예전엔 저렇게 고왔더랬지

약사 선상님, 뭐라고?
뭐라고? 잘 안 들려
좀더 큰소리로 말해줄 수 없겠나
약사의 작은 입이 하마 입맨치로 커졌다
이제 겨우 들린다. 나도 예전엔 앵앵 모기 소리도 들었더랬지

약값을 계산한다
한손으로 돈을 꺼내려니 힘이 든다
콤바인에 손가락이 짤린 뒤로 애로사항이 많다
눈치 빠른 약사가 음료수도 까서 주고 잔돈도 호주머니에 넣어준다
그래야지 암. 나도 예전엔 누가 불편해뵈면 바리바리 도와줬었지


청춘의 기억은
쭈그러진 가죽거죽 안
여즉 고맙게도 뛰어주는
심장보다 더 깊숙한 그곳에 곱게 접어 꼭꼭 숨어라!
추억 속에 매 순간 되살아나 봄빛같이 푸르게 스쳐 지나간다

나도 예전엔
나도 예전엔

스치는 추억이
모두 지나가고 남은 자리에
하회탈 미소의 낯선 늙은이가
꼬부랑 지팡이를 쥐고 콩콩콩 길을 나선다
썩 비켰거라, 온 대지가 벌떡 일어나 그를 경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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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2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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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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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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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8: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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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0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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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14: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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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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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5: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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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0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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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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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에게 아주 달리 들리는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이 현상을 오래동안 유심히 지켜보고 있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진 못하고 있다. 최근에 겪은 두 가지의 경우를 지켜보면서 여전히 이 현상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고향에서 가게랍시고 열어 놓으니 친구들이 종종 들른다. 세무사 친구, 학원 경영하는 친구, 가방 가게를 하는 친구, 법무사 친구, 학교 선생님 친구, 아직까지 학생인 친구 등등 다양한 직종의 친구들이 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는 노가다 친구이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부류였는데 소위 말하는 날나리였다. 일찌감치 공부를 접은 참이라 입시 공부를 하지 않은 친구는 그러나 성격은 좋아서 늘 웃고 다녔다. 입도 꽤 걸쭉해서 농담도 많이 했지만 , 교과서에 나오는 화가와 이름이 같아서 1학년 입학한 첫 날 바로 기억한 친구였다. 물론 학교 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최근에서야 친하게 된 경우다. 이 녀석은 노총각으로 늙다가 늘그막에 아주 참하고 이쁜 색시를 얻었고, 무지 귀여운 아들내미까지 생겼다. 가끔씩 가게를 들르면 꼭 내 얼굴을 유심히 보는데, 내 얼굴의 여드름이 큰지 작은지, 얼굴 라인이 이쁜지 어떤지, 살이 쪘는지 빠졌는지 등을 유심히 본다.

"야, 너 많이 이뻐졌네.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 지가 무슨 허락의 위치에 있는 사람마냥 말을 한다. 그래? 그럼 좋은 사람 소개해줄래? 라고 말을 이어가면, "야, 야, 넌 이제 그 나이에는 힘들어. 너는 이제 재혼 자리나 알아봐야 돼. 그리 늙어서 무슨 결혼을..뭐시라? 연하라고? 웃긴 소리 하지 마. 연하가 미쳤다고 너를 좋아하냐. 니가 직업도 반반하고 얼굴도 그 정도면 이쁘지만 그래도 니가 그 나이 먹도록 시집 못가믄 어딘가에 하자가 있는 거고, 마, 막실해라. 뭐라꼬? 골드 미스? 골드 미스 다 죽었나. 하이고~"

이렇듯 말을 함부로 하는 친구인데도 그 친구의 말을 듣노라면 얼굴에 웃음이 핀다. 나를 생각해 주는 친구의 숨은 배려가 느껴지기 때문이리. 보통의 사람들의 경우는 이럴 경우, 애써 대화를 피하려 하거나 괜한 간섭을 하려 하거나, 측은하게 보거나 중의 하나인데 이 친구는 자기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며 자기를 포장하려 들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 욕쟁이 할머니의 막말에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계속 듣고 싶어 욕해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른 한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를 부러워하던 친구였다. 2학년 때 비밀 친구라는 의미의 마니또 게임을 했는데 마니또인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관심을 두며 편지를 보내거나 선물을 보내며 서로 우정을 만들어가는 게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얘들은 죄다 뭔가를 받는데 나만 내 마니또가 아무 것도 안 주는 거다. 반에서 나름 인기인이었기에 나에게만 안 주는 그 마니또가 충격이었다. 주위의 친구들도 나를 놀려먹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마니또 때문에 서러워서 울기까지 했다. 아주 한참 늦은 뒤에 편지 한 장을 받았는데 이것도 또한 가관이었다. 너무 늦게 줘서 미안하다는 둥, 니가 인기인이어서 그런 편지는 기대도 안 하고 있는 줄 알았다는 둥, 너를 보고 그린 그림을 받아줘라고 적어놨는데 못나도 그렇게 못나게 그릴 수 없어서 나를 일부러 화나게 만들려고 편지를 보낸 듯한 그런 편지였다. 나는 얼굴이 시뻘개지고 눈물이 났는데, 나중에 마니또라고 자기를 고백하는 친구가 바로 그 애였다.  반에서 늘 조용히 있어,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도 없던 아이. 그 아이의 눈은 늘 흔들렸는데 하루는 나에게 이층 교실 안에서 밖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물어봤다. 나는 공부 안 하고 밖에 나가서 놀고 싶은 생각, 이라고 말을 했고, 친구는 그래, 너는 그런 생각 뿐이겠지. 나는 밖을 잘 안 봐. 밖을 보면 무서워지거든.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지 몰라서. 내가 혹시나 창가에 서 있게 되면 나를 지켜봐 줘. 나를 막아줘. 무시무시한 말로 나를 놀래킨 친구 덕에 난 난생 처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도 있다는 걸 인식했다. 그 이후로 친구를 유심히 보면서 나름 챙겨주려 노력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많은 사연들이 친구에게 있었는데 역시나 나는 내 나름의 최선으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리고 얼마전 친정에 들르는 김에 아이와 같이 약국을 들렀는데 아주 허름한 옷을 입고 나타났다. 나는 친구의 허름한 옷에 살짝 놀라면서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했는데 친구는  전혀 엉뚱한 말을 하는 거다.

"약국 이렇게 차리면, 이제 우리 남편 반 정도는 버냐?
어머, 너 아직도 시집 못 갔으면 이제 어떡하냐? 너를 누가 데려가겠냐..
아직도 너는 니가 돈을 버냐..나는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편안하게 사는데.."

니 남편 몇 배는 벌거등..ㅠ.ㅠ  
이년아..니가 어떻게 시집 갔는지, 결혼 전에 어떤 짓을 했는지, 배불러 어떻게 결혼했는지 내가 다 아는데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냐, 이년아..ㅠ.ㅠ
니년 남편은 배 타러가서 일년에 한 두번 오는데 외롭다고 징징거릴 때는 언제고 그리 말하냐, 이년아..편안하게 산다는 년이 친정 집 들르면서 그리 허술한 옷을 입고 나타나냐..

참말로...둘다 속에 것을 그대로 말을 하는데도 두 친구의 말은 하늘과 땅이다.  만약 밑의 친구와 똑같은 말을 위의 친구가 했다면 어떨까. 나는 물론 화가 나지 않았을 거 같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말에는 내뱉는 언어 이상의 그 무엇이 포함되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면서 쳐다보는 눈빛, 표정, 중간의 쉼표, 등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 대화일 것이다. 혀 끝에서 맴도는 그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차이를 만든다. 당신의 혀끝에는 무엇이 맴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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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8 2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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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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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떠올리는 사람은 나와 정신적 세계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불과 얼마 전인데 나는 이렇게 어느새 시의 세계에 모종되듯 넘어와 있다. 언제 어떻게 넘어오게 되었는지는 나 조차 알 수 없는 사연이다. 어떤 미래에 내가 시집을 들고 있고, 시를 읽고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없었건만, 미래는 나를 이 곳으로 데려다 놓았고, 나는 시인들의 새로운 세상이 가득 펼쳐져 있는 시집을 한 권씩 읽고 있으며 시 속에 시인들이 숨겨놓은 향기를 만끽하고 있다. 최근에 읽은 여러 권들 중에서 황지우의 시집을 시발점으로 해서 리뷰쓰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개인적 바램이 있다. 시집 말미를 장식하신 분은 이인성이란 분인데 황지우 시인과 친한 눈치다. 게다가 글을 쓰시는 분이란다. 발문을 읽으면서 발문을 쓴 사람에게 관심이 갔다. 아..멋진 부분 발견했다. 

   
 

지금도, 내 몸은 방금 껴안았던 이 시집 옆에 축 늘어져 누워 있건만, 내 마음은 어서 다시 껴안고 싶어 안달이다. 뭐라고? 그토록 매혹적인 존재라면 감추어진 비밀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해보라고? 솔직히. 나도 내친김에 이 시집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그 다채로운 촉감의 질들을 내 식으로 - 소설적으로- 자세히 묘사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멈춘다. 아무래도 그건 안 될 일이다. 이 시집이 나에게 처녀성을 주었는데, 그래도 첫 흘레의 비밀만은 혼자 속에 간직해두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건 이것대로 솔직히, 여기까지 써온 것만 해도 내가 너무 해펐다는 자책감이 든다. 조금 정색을 하자면, 황지우가 평론가의 '해설' 대신 소설쟁이의 '발문'을 원한 이유도 헤아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생선회 치는 칼로 뼈만 발라놓을지 모르는 분석이라는 것 대신, 독자들로 하여금 시적 체험의 직접성을 향유하도록 매개하는 '뚜쟁이'를 원해서였다면, 나는 이 정도로만 변죽을 울리는 게 옳겠다 싶다.  

 
   

 

캬..이런 멋진 발문이라니. 그러니까 평론가는 해설, 소설가는 발문이로구나. 아하~ 어쩐지 기존의 다른 글들과 다른 느낌이 들어서 신선하더라니, 발문이었구나~ 나는 소설가에게도 관심이 생겨 내신 책이 있나 찾아봤다. <식물성의 저항> 음..제목부터 근사한데? 다음 번에 이분 책도 도전을 해야겠다. 발문을 이토록 멋지게 쓰시는 분의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다시 시집의 발문으로 돌아가서, 소설가의 말에 무척!공감한다. 첫 흘레의 비밀을 만방에 퍼뜨릴 수는 없는 일이다. 글 쓰는 작가라면 은당 그 비밀을 아주 잘 간직해서 숙성시켜 이후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에 양념으로, 혹은 메인으로 사용할 일이다.  소설가 이인성처럼 나 역시 황지우의 시집을 옆에 끼고 있다. 땀이 나고 정신 없는 시간들이 지나간 후 축 늘어진 정도까지는 아직 아니지만 말이다. 황지우의 시는 중간중간 어렵고 난해한 부분이 있어 해석에 조금 기대어가려 했더니 기대 밖의 성공이다. 시를 좀더 맛있게 읽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다시 책을 들어 읽었던 시를 새로 하나씩 읽어본다. 이번에는 황지우의 시어 중 '바깥'의 의미와 '진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극과 극은 통하듯이, 거시우주와 미시우주 역시 통한다. 아주 작은 원자를 분해해 나가다 보면 그 속에 우주의 형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즉 안의 안은 바깥과 같다는 말일 터이다. 이러한 자연법칙은 그 속의 피조물인 인간의 삶에도 고스란히 투영되는데 삶에서 안의 안이 바깥이 되는 경험을 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인지하기는 무척 어려울 터이다. 그러니 황지우 같은 시인이 탐침의 기법까지 써가며 바깥을 찾으러 애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깥을 추구하는 건 종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불교에서 선의 개념이 이와 동일할진대 이들의 수행방식도 또한 내 안에서 선(혹은 도)를 찾는 방법과 바깥에서 찾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극도의 이타심과 극도의 이기심이 일맥상통하듯이 이들의 수행방식도 극에 달하면 그 차이가 없어진다. 소설가 이인성에 의하면 황지우는 바깥의 갈구를 먼저 했다. 그러다 개인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안의 안으로 탐침을 시도한 듯 하다. 이번 작품은 확실히 '안의 안' 으로 그 지향점이 나 있다. 여기에 이인성이 덧붙이는 말은 이는 표층적 자아의 지향점이고, 이와 다른 분열적 자아는 거기에 저항을 하는데 소설의 묘미는 이 두 자아의 부딪침으로 인한 새로운 시적 실존 공간의 구축이라고 말을 한다. 조금 어려워진다. 황지우는 바깥, 즉 안의 안으로 탐침을 시도하지만 이는 선의 추구, 이상향의 지향과는 조금 각도를 달리하는, 현실이 아무리 비루하고 어렵더라도 그래도 이 땅에 발 딛고 살아야겠다는 힘겨운 의지를 보여주는 거라 생각을 하니, 이인성의 말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해 속의 검은 장수하늘소여
눈먼 것은 성스러운 병이다

활어관 밑바닥에 엎드려 있는 넙치,
짐자전거 지나가는 바깥을 본다, 보일까

어찌하겠는가,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늦었을 때
알지만 나갈 수 없는, 무궁의 바깥;
저무는 하루, 문 안에서 검은 소가 운다


내 속에 오래도록 담겨 있는 것이 내 주위의 타인의 입으로 무심결에 나오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나를 안 지 얼마 되지않는 이웃의 입에서조차 그 말은 나올 수 있는데,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나도 모르는 내 깊은 곳의 비밀을 헤아리는 경우도 있기에 그런 상황을 마주치면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지게 된다. 언젠가 소설가 이인성의 입에서 나온 진흙 속의 미꾸라지의 비유는 그런 의미로 황지우에게서 오래 담겨 있게 된다. 황지우는 특히 진흙에 생각을 집중했는데 갯벌에서 진흙으로 손장난을 해 본 적이 잇으면 진흙이 얼마나 부드럽고 감미로운 입자인지 알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으로 달려간다. 이 엄청난 진실은 때때로 잔인한 현실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데,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에 오히려 그동안 그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어리석은 현실에 더 경악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뼈와 살이 있는 형상으로 태어나 낳아준 우주로 모두 화하는 지점에 가장 근접한 것은 흙, 바로 진흙이다. 그 모태적이자 최종 정착지인 질료로서의 진흙에 대해서도 황지우는 탐침을 하는데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너무나 멋진 시가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진흙으로 가고 있는 예비 진흙들인 것이다.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는 존재>

원목 옷걸이에 축 처진 내 가다마이, 일요일 오후의
공기 속에 그것은 있다
나를 담았던 거죽,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깨닫는 나의 한계;
(중략)
길게 모로 누워 있는 일요일; 이 내용물은
서서히 금이 가면서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시아나기 잔해에서 실신한 여자를 헬기가
끌어올릴 때 바람이 걷어올리는 붉은 팬티;
죽음은 그렇게 부끄러움을 모른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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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30 1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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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2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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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2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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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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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2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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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5: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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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1    
                                                                      황지우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어머님 문부터 열어본다.
어렸을 적에도 눈뜨자마자
엄니 코에 귀를 대보고 안도하곤 했었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침마다 살며시 열어보는 문;
이 조마조마한 문지방에서
사랑은 도대체 어디까지 필사적인가?
당신은 똥싼 옷을 서랍장에 숨겨놓고
자신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생을 부끄러워하고 계셨다.
나를 이 세상에 밀어놓은 당신의 밑을
샤워기로 뿌려 씻긴 다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겨드리니까
웬 꼬마 계집아이가 콧물 흘리며
얌전하게 보료 위에 앉아 계신다.
그 가벼움에 대해선 우리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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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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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2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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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2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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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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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2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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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5: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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