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에게 아주 달리 들리는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이 현상을 오래동안 유심히 지켜보고 있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진 못하고 있다. 최근에 겪은 두 가지의 경우를 지켜보면서 여전히 이 현상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고향에서 가게랍시고 열어 놓으니 친구들이 종종 들른다. 세무사 친구, 학원 경영하는 친구, 가방 가게를 하는 친구, 법무사 친구, 학교 선생님 친구, 아직까지 학생인 친구 등등 다양한 직종의 친구들이 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는 노가다 친구이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부류였는데 소위 말하는 날나리였다. 일찌감치 공부를 접은 참이라 입시 공부를 하지 않은 친구는 그러나 성격은 좋아서 늘 웃고 다녔다. 입도 꽤 걸쭉해서 농담도 많이 했지만 , 교과서에 나오는 화가와 이름이 같아서 1학년 입학한 첫 날 바로 기억한 친구였다. 물론 학교 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최근에서야 친하게 된 경우다. 이 녀석은 노총각으로 늙다가 늘그막에 아주 참하고 이쁜 색시를 얻었고, 무지 귀여운 아들내미까지 생겼다. 가끔씩 가게를 들르면 꼭 내 얼굴을 유심히 보는데, 내 얼굴의 여드름이 큰지 작은지, 얼굴 라인이 이쁜지 어떤지, 살이 쪘는지 빠졌는지 등을 유심히 본다.
"야, 너 많이 이뻐졌네.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 지가 무슨 허락의 위치에 있는 사람마냥 말을 한다. 그래? 그럼 좋은 사람 소개해줄래? 라고 말을 이어가면, "야, 야, 넌 이제 그 나이에는 힘들어. 너는 이제 재혼 자리나 알아봐야 돼. 그리 늙어서 무슨 결혼을..뭐시라? 연하라고? 웃긴 소리 하지 마. 연하가 미쳤다고 너를 좋아하냐. 니가 직업도 반반하고 얼굴도 그 정도면 이쁘지만 그래도 니가 그 나이 먹도록 시집 못가믄 어딘가에 하자가 있는 거고, 마, 막실해라. 뭐라꼬? 골드 미스? 골드 미스 다 죽었나. 하이고~"
이렇듯 말을 함부로 하는 친구인데도 그 친구의 말을 듣노라면 얼굴에 웃음이 핀다. 나를 생각해 주는 친구의 숨은 배려가 느껴지기 때문이리. 보통의 사람들의 경우는 이럴 경우, 애써 대화를 피하려 하거나 괜한 간섭을 하려 하거나, 측은하게 보거나 중의 하나인데 이 친구는 자기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며 자기를 포장하려 들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 욕쟁이 할머니의 막말에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계속 듣고 싶어 욕해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른 한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를 부러워하던 친구였다. 2학년 때 비밀 친구라는 의미의 마니또 게임을 했는데 마니또인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관심을 두며 편지를 보내거나 선물을 보내며 서로 우정을 만들어가는 게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얘들은 죄다 뭔가를 받는데 나만 내 마니또가 아무 것도 안 주는 거다. 반에서 나름 인기인이었기에 나에게만 안 주는 그 마니또가 충격이었다. 주위의 친구들도 나를 놀려먹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마니또 때문에 서러워서 울기까지 했다. 아주 한참 늦은 뒤에 편지 한 장을 받았는데 이것도 또한 가관이었다. 너무 늦게 줘서 미안하다는 둥, 니가 인기인이어서 그런 편지는 기대도 안 하고 있는 줄 알았다는 둥, 너를 보고 그린 그림을 받아줘라고 적어놨는데 못나도 그렇게 못나게 그릴 수 없어서 나를 일부러 화나게 만들려고 편지를 보낸 듯한 그런 편지였다. 나는 얼굴이 시뻘개지고 눈물이 났는데, 나중에 마니또라고 자기를 고백하는 친구가 바로 그 애였다. 반에서 늘 조용히 있어,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도 없던 아이. 그 아이의 눈은 늘 흔들렸는데 하루는 나에게 이층 교실 안에서 밖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물어봤다. 나는 공부 안 하고 밖에 나가서 놀고 싶은 생각, 이라고 말을 했고, 친구는 그래, 너는 그런 생각 뿐이겠지. 나는 밖을 잘 안 봐. 밖을 보면 무서워지거든.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지 몰라서. 내가 혹시나 창가에 서 있게 되면 나를 지켜봐 줘. 나를 막아줘. 무시무시한 말로 나를 놀래킨 친구 덕에 난 난생 처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도 있다는 걸 인식했다. 그 이후로 친구를 유심히 보면서 나름 챙겨주려 노력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많은 사연들이 친구에게 있었는데 역시나 나는 내 나름의 최선으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리고 얼마전 친정에 들르는 김에 아이와 같이 약국을 들렀는데 아주 허름한 옷을 입고 나타났다. 나는 친구의 허름한 옷에 살짝 놀라면서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했는데 친구는 전혀 엉뚱한 말을 하는 거다.
"약국 이렇게 차리면, 이제 우리 남편 반 정도는 버냐?
어머, 너 아직도 시집 못 갔으면 이제 어떡하냐? 너를 누가 데려가겠냐..
아직도 너는 니가 돈을 버냐..나는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편안하게 사는데.."
니 남편 몇 배는 벌거등..ㅠ.ㅠ
이년아..니가 어떻게 시집 갔는지, 결혼 전에 어떤 짓을 했는지, 배불러 어떻게 결혼했는지 내가 다 아는데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냐, 이년아..ㅠ.ㅠ
니년 남편은 배 타러가서 일년에 한 두번 오는데 외롭다고 징징거릴 때는 언제고 그리 말하냐, 이년아..편안하게 산다는 년이 친정 집 들르면서 그리 허술한 옷을 입고 나타나냐..
참말로...둘다 속에 것을 그대로 말을 하는데도 두 친구의 말은 하늘과 땅이다. 만약 밑의 친구와 똑같은 말을 위의 친구가 했다면 어떨까. 나는 물론 화가 나지 않았을 거 같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말에는 내뱉는 언어 이상의 그 무엇이 포함되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면서 쳐다보는 눈빛, 표정, 중간의 쉼표, 등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 대화일 것이다. 혀 끝에서 맴도는 그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차이를 만든다. 당신의 혀끝에는 무엇이 맴돌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