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소주를 마셨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다.

매일 밤.

 

 

 

 

 

 

 

 

매일 저녁, 술을 마시던 시절에는 술이 음료수였다.

다음날의 숙취해소는 해장국이 최고였고, 해장을 핑계로 또 술을 마셨다.

물론 많이 마시진 못했다.

많이 마시는 사람들 틈에 끼이면 조금만 마셔도 취한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행복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마 '절대로' 혼자는 술을 마시지 않을 거 같애. 술은 자고로 둘이 마시거나 여럿이 마셔야지.

 

 

가끔 연락오던 친구는 뭐 하냐고 물으면 꼭 맥주를 마시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럼 술집에서 전화를 하는거니?

-아니. 집에서 혼자 마셔. 냉장고에 캔맥주를 한가득 사놓고 매일 저녁마다 마시지. 오늘은 괜히 울적해서 너에게 전화한거야.

-혼자서 술이 마셔지니?

-술은..혼자 마시는거야.

 

 

나는 지금 혼자서 술을 마신다.

술병이 평창수, 라는 걸 보고 감을 잡았겠지만 순도 40도의 안동소주다.

매실이나 다른 무엇으로 3년간 숙성시킨 약주.

세상에 널린 소주의 순도가 점점 떨어져가는 판국에 혼자서 40도의 소주를 마신다. 그것도 밤마다 한 잔씩.

 

가끔 내 몸이 모르모트가 되는 걸 허락할 때가 있다.

대개는 지적 호기심

약간의 필요성

어쩌면 절실함

 

지금은 치료의 목적이니 절실함 쪽이 절반은 넘어섰고

나머지는 호기심이다.

기왕에 먹기로 약속한 약주니,

만들어 주신 분의 성의는 눈물겹기 그지없고,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밤 소주를 마신다.

 

 

 

혼자 마시는 소주는 다행히 외롭지 않았다.

책이 나와 함께

마셔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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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4-2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무척 땡깁니다 ! 오늘 술 마실려다..제가 요즘 치질이라 술 마시면 안 된다고 해서
안 마시고 있는데 참기 힘드네요..

2013-04-20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1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2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0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0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13-04-21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알라딘에 애주가가 많아(?) 행복합니다 ㅋㅋㅋ 좋은건 함께할때 더 좋은 ㅋㅋ 저도 혼자 술 자주 마시거든요^^

달사르 2013-04-21 21:2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뽀 님도 애주가시군요? ^^
전 벌써 일주일째 애주가 행세를 하고 있습니닷.
음주 포스팅을 종종 볼 때마다
나는 언제 저런 거 해보나..싶더니 그날이 이렇게 어이없이 오다니욧! ㅎㅎㅎ

이렇게 술꾼이 되고보니, 동지 된 느낌입니다요. 뽀 님. ^^

hnine 2013-04-21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사르님, 제가 예전에 알던 어떤 아이는, 술을 아주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자기는 절대 혼자서는 술을 안마신다는 자기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고, 누가 묻지도 않는데 큰소리 뻥뻥 치곤 했었답니다 ^^ 혼자 마시면 여럿이 마실때보다 훨씬 많이 마시게 된다나요? 아무쪼록 술이 달사르님 옆에서 친구 노릇 잘 해주었기를 바라는데, 제가 술에게 좀 말해둘까요? 고분고분, 달사르님 하자는대로 옆에서 좋은 친구 역할 잘 해주라고요.

달사르 2013-04-21 21:38   좋아요 0 | URL
아. 그럴 수도 있군요. 혼자 마시면 그런 불상사가..
그 아이는 아직도 여전히 혼자선 술을 마시지 않을까요? 아님 저처럼 그 규칙을 깨버렸을까요? ㅎㅎ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니 그 아이도 저처럼 규칙이 깨졌을 거다! 에 일단 한 표를.

아..hnine님. 어제까진 보약 같은 느낌으로 한 잔씩 마셨는데
오늘은 정말 술 마시는 기분으로, 취하고픈 맘으로 한 잔 마시게 될 거 같아요.
하아...이럴 때 옆에 술이 있으니 무척 다행이다..라고 생각이 드니, 응? 이건? 술꾼의 자세 같은데요? 하하하.

탄하 2013-04-2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창수'라는 것을 처음 보므로, 소주잔에 콜라를 드시는 게 아닌가 했네요.^^

이런 게 약주군요. 매실에, 숙성에, 40도(?까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정성...
어쩐지,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홀로 잔을 기울이시나 했더니 그래도 몸보신 차원이라 다행입니다.

저도 옛날에는 가리는 술 없이 잘 마시고,
2차,3차, 횟수를 거듭해도 거절하지 않고,
사람이 많으나 홀로 있으나 잘 마셨는데...
이젠 안 마신지도 어언 3년이 넘은 것 같아요.

옛날부터 알았던 사람들에겐 "산부인과쪽으로 안 좋아져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겐 "저는 술을 좋아하지 않아요"라는
뻔뻔한 거짓말로 잘 속여 넘기고 있죠.^^

근데, 혼자 마시는 술 뒤편에 책이 있으니까 외로워보이진 않네요.
한 잔씩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도 참 좋은 기분이거든요.

* 아흑, 달사르님 페이퍼에 일등하기 정말 힘들다!

달사르 2013-04-21 21:50   좋아요 0 | URL
ㅋㅋ 제 페이퍼 스타일을 곰곰 생각해보니 주로 주말에? 올라는 듯 합니다. 아마 근무하는 주말 빼고? ㅎㅎㅎㅎ
그나저나 분홍신님 방에 몇 번이나 가봤지만 페이퍼 안 올라왔더군요!
지금 계절이 왠지 분홍신님 바쁘실 계절 같애서 얌전히 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힛.

분홍신님이 술에 대해 그런 역사가 있단 말이죠. 흐음.
술 약하실 줄 알았더니 아니었쓰. 2,3차까지 거뜬하셨다니..대단대단..
근데, 아무리 그랬어도
이제 3년이나 안 마셨으면
일주일이나 줄기차게 마신 내가 더 잘 마실지도? ^^


넵! 저도 약주는 엄마가 담근 맛없는 약주나 먹어봤는데요. 이렇게 제대로 된 약주는 처음 마셔봐요. 정말 약이 되는 걸 알겠더라구요. 술 마신 다음 날 더 펄펄 나니..이거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