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R - Rossum's Universal Robots 로숨 유니버설 로봇
카테르지나 추포바 지음, 김규진 옮김, 카렐 차페크 원작 / 우물이있는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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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R : 로숨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원작 | 카테르지나 추포바 글, 그림 | 김규진 옮김 | 우물이 있는 집

카렐 차페크의 희곡을 원작으로 추포바가 글과 그림으로 완성시킨 이 책은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이 흡사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사실 얼마 전 중국에서 한 그래픽을 쇼셜 미디어로 공개했는데 그 내용이 실로 충격적이었다. 바로 아이를 못 낳는 불임부부를 대신할 인공 자궁 시술이다. 그래픽이지만 실제로 리얼하도록 인공 자궁들이 의자처럼 보이는 시스템에 놓여있었고, 그 속에는 태아들이 자라고 있었다. 지금도 불임부부는 매년 증가한다고 하는데 이처럼 인공 자궁이 곧 나타나리라는 기대가 아닌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곧바로 이 기사가 거짓임이 판명되었고, 이 기업은 인공 자궁 기술에 아직 턱 없이 못 미치는 기술 수준이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말이다.

로봇이라는 것이 기계로만 치부되는 산물인 줄 알았는데, RUR에서는 그 모든 부산물이 인간을 통해 얻어진다. 인간의 DNA 복제 기술과 유전자 기술을 활용해서 길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창자도 무한히 복제할 수 있으며, 기타 다른 장기들도 만들 수도 있고, 로봇이 고통을 느끼도록 하거나, 그렇지 않도록 조정할 수도 있었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로봇을 만들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로 숨 유니버설 로봇 공장은 오직 인간만을 위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사람들은 자신 대신 일을 해줄 똑똑한 로봇을 갖기를 원하고, 그 로봇이 과부하가 걸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가차 없이 폐기처분한다. 왜냐면 얼마든지 로봇은 다시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 무한한 로봇 공화국의 꿈은 한 여인의 실수로 인해 무너지고 만다. 로봇이 영혼을 가진 것이다. 혹은 가졌다고 행동하는 것, 그것은 바로 부당하다는 생각, 이처럼 인간보다 똑똑하고 지능 높은 로봇이 인간을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이 잘못됐다고 여기면서 그들은 인간에게 학습한 모든 것들을 그대로 답습한다. 심지어 전쟁의 모습과 적을 섬멸하는 것까지... 그들은 악한 인간의 모습을 모두 학습하고 그것을 실행했다. 오직 로봇의 세상, 노동의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결국 살아남은 이는 늙은 노인 한 명뿐이었지만... 아... 이 노인은 무엇을 확인했을까? 그 노인이 확인한 것은 희망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결국 신이 에덴동산을 만들어 아담과 이브를 두었듯이 인간 역시 마지막 보루에 자신들의 창조품들을 놓아둔 것일까? 하지만 그 세상이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인간은 신이 아닐진대... 그저 약한 피부와 고통을 느끼는 신경 조직을 지닌 유한한 생명일진대 말이다.

지구로부터 쏘아 올린 망원경 제임스 웹이 대기를 가진 행성을 찾았다고 한다. 과연 우주에 인간 외의 지능적인 생명이 존재할 것인가? 그것을 찾는 것이 더 빠른 일일까? 아니면 인간이 스스로의 복제를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더 빠른 일일까? 그것들이 가지고 올 파장은 알지 못하지만 그 미래는 그다지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무척 두려워지는 것도 아니다. 미래는 아직 닥치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 방향성, 옳은 방향성을 잃지 않아야 미래의 모습도 밝다는 것, 그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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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
노재승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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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

고전운문편 | 글 그림 노재승 | 뿌리와 이파리

세상에 이렇게 재능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글쓴이 노재승 작가는 2006년부터 창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데 이처럼 그림 솜씨와 글 솜씨까지 뛰어나다니...ㅎㅎ 나도 이제 아재? 꼰대? 뭐, 그런 류에 들어가나보다. 이제는 본질의 내용도 관심이 가지만 그 작품의 저자의 생활상이 더 궁금해지니 말이다. 요즘 같은 MZ세대라면 저자가 재능이 많다한들 이렇게 감명 받을 일도 아닐 것을...ㅎㅎ 그런데 내가 아는 국어 선생님은 다 꽉 막힌 사람인데 왠지 이 선생님은 다를 것 같다. 그리고 책 속 할아버지 같은 분에게 공부를 했다면 아마 학창 시절 나의 국어 실력은 만점이었으리라...... . 오호라 통재라...

고전 운문 편이 이렇게 재밌는 장르인 줄을 몰랐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열심히 가르치려고 하는데 그 주위에 방해꾼이 너무 많다. 할머니가 가장 최대의 방해꾼이고, 손녀 은미와 같이 수업을 듣는 독고혜성은 너무나 아는 체를 많이 한다. 할아버지 외 요원 J를 제외하곤 온통 악역들이라니...... . 그래서인지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은 것은 왜일까? 박삼술 할아버지의 국어 수업 진행 실력은 나날이 방해 공작이 더해 갈수록 노련해지니 말이다.

첫 번째 나오는 시조 구지가... 아... 세상에 사람들은 이렇게 영웅을, 지도자를 바랬구나... 그 옛날 중국 왕조가 시작할 때는 서로 돌아가면서 왕 역을 맡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목된 이 중 한명이 지도자 역할을 하기가 몹시 싫어했더란다. 이 거부를 시초로 왕이란 것이 세습되어 이어졌다고... 그 시절은 왕, 지도자라는 존재가 그저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이끌고, 온갖 어려움을 일을 다 하는 것이었고 별로 부와는 관계가 없어서였으리라... 사실 진정한 영웅이란 지금도 돈과는 관계가 없으니 말이다. 왕까지 하고, 돈도 벌고, 권력도 주고, 너무 받는 것이 많으니까 현대에는 너도 나도 권력의 끝판왕이 되려고 하는 것일지도... 가진 자가 더 가지는 사회, 힘을 얻는 자가 더 얻는 사회... 갑자기 어제 종영한 드라마 [환혼] 이 생각나려 한다. (무척이나 재밌게 봤는데, 종영이라니 ㅠㅠ)

박삼술 할아버지가 진행하는 수업이 과연 무사히 안착할 수 있을 것인가? 만화는 종잡을 수 없게 흘러간다. 좀비가 떼거지로 출몰하고, 헬기가 날아다니고,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는 자신의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꼭 지구 멸망의 순간에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누구와 닮아있다.

재미있게 고전 운문을 배우는 것, 공부가 아니라 그저 약간은 공부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 거기에서 저자의 겸손이 읽힌다. 그래, 그 속에서 한 가지라도 머릿속에 남으면 공부가 된 것이고, 한 가지라도 가슴속에 남아도 인생 공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만화로 보는 것은 왜 이렇게 재밌는 걸까?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만화 교과서로 바뀐다면 어떠할까? ㅎㅎ 그렇다면 한번 읽고, 두 번 읽고, 아마 외우는 아이들까지 많아지리라... 공부란 자고로 재밌게 하는 실력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공부, 그 방법을 이 책이 어느 정도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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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블루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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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블루

오승호 장편소설 | 이연승 옮김 | 블루홀 6

제대로 된 경찰 소설을 읽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무척 드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왠지 검사가 나오는 소재들이 더 인기가 있고, 경찰들은 어찌 된 일인지 영웅적 모습보다도 비리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니 말이다. 하지만 [범죄 도시] 같은 영화에서 보이는 경찰의 모습은 왠지 통쾌하기도 하고, 힘 있는 경찰의 모습이 약자의 편으로 등장할 때는 제법 정의감이 물씬 솟아오르기도 한다.

여기 이 책 [라이언 블루]는 경찰 집단의 입체적인 모습이 나온다. 작은 마을에서 이어지는 살인사건, 그리고 한 경찰의 부임, 총체적으로 썩어있는 비리, 한마을을 장악하고 있는 검은 손들... 이 안에서 파란색 경찰 제복은 과연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그것은 파란 귀신의 모습일까? 아니면 당당한 블루 라이언의 모습일까? 그것은 아마 자신이 어떻게 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소설은 한 작은 간사이 행정 도시 시시오이군에서 시작한다. 시시오이군에 위치한 시시오이초는 마을의 총 세 곳을 파출소 한곳에서 관할하고 있다. 그러던 중 시시오이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경찰관 나가하라가 어느 날 퇴근길에 사라진다. 실종 당시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그 권총 역시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그 어떤 단초가 없었기에 이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러한 때에 나가하라와 경찰학교 동기이자 시시오이 출신인 사와노보리 요지가 스스로 근무지 이동을 신청해 시시오이 파출소로 오게 된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이다. 친구였던 나가하라의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 하지만 왠지 모든 주변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사건의 중심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파출소 선배 경찰과 지역 권력자들 사이의 묘한 기류 또한 감지되는데... 과연 사와노보리 요지는 나가하라 사건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지역에서 터를 잡고, 조종하고 있는 지토세 집안을 위시한 시시오이를 지배하는 거대한 것들에 맞서서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요지는 경찰로서 떳떳할 수 있는 것인가?

하나의 가벼운 실종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소설은 생각보다 거칠고, 복잡했다. 그리고 덩달아 요지의 선택이 기대되기도 했다. 과연 그는 친구를 위해, 그리고 그가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위해 어떤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인가?

최근에 들었던 어떤 말이 생각이 났다. 은둔을 하려면 시골보다 도시가 낫다는 것이다. 시골에서의 생활이 은둔하기 낫다는 것은 순전히 그곳의 삶을 몰라서라고 말이다. 시골일수록, 좁은 사회일수록 서로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한다. 지나친 관심일지, 남다른 배려일지 모르겠으나 은둔을 위해서는 오히려 도시의 익명에 숨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요지가 살았던 작은 마을인 시시오이초... 이곳에서도 누군가는 삶을 위해 고개를 숙여야 하고, 상처받아야 했다. 어떤 경찰은 더 이상 당당한 라이언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어둠에 동조했다.

마지막으로 요지는 잠시 친구의 실종 사건을 파헤치려 왔던 시시오이초에 눌러 살 결심을 한다. 그에게 그런 결심을 심어준 것은 아마도 가족이리라... 알고 보면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왔던 가족... 요지의 제복은 푸른 파란색이다. 그 파란색 제복은 더 이상 밤에 숨지 않으리라... 요지가 자신의 죗값을 언젠가는 치르는 날이 오겠지만 그때까지는 그 제복이 부끄러워지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그는 파란 제복의 귀신보다 당당한 라이언으로의 삶을 택했으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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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신주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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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신주희 소설 | 자음과 모음

삶이란 것은 그저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열심히 발을 저어서 살아내야 하는 것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삶과 생존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어찌 보면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끊임없이 목표가 있다. 그리고 그 목표 설정을 이루지 못하면 게으르다고, 삶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질책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느덧 빚쟁이가 되어있다. 하루 하루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아닌 이뤄야 하는 목표들로 빼곡하다. 그 틈에서 달력에 동그라미 혹은 십자표를 한다. 매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 그 죽음의 골을 재빨리 당기고 싶어 하는 듯, 우리는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싶어 한다.

허들의 주인공인 나는 매일 유서를 쓴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뛰어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되뇐다. 어릴 적부터 아들에게만 모든 것을 쏟은 가정 내에서의 부당한 위치, 커서 스스로의 유학을 결정하지만 그것도 온전하지는 않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그녀는 조금의 돈이라도 (물론 아버지의 부탁으로) 되찾기 위해서 아버지와 채권자와 채무자의 위치로 만난다. 사촌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뿐인 집을 외숙모에게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던 형편, 스스로 같은 처지라고 여기고 동정했던 언니가 편안하고 안온한 삶을 위해 거짓을 선택하기로 했을 때의 먹먹함 등등의 소회를 그녀는 이제는 돌아가시고 없는 어머니를 향한 편지글 형식으로 풀어놓는다.

매일매일이 원치 않는 허들을 넘는 것이 일상이라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지만 일상이라는 것이 요즘은 그러한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은 해봐야 하지 않느냐면서... 각종 SNS에 올라오는 모든 것을 따라 하려는 삶... 그들이 사는 것들, 그들이 먹는 것들, 그들이 가는 것들을 답습하고 그 허들을 넘지 않으면 스스로 도태되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스스로가 만든 것일 뿐인데 말이다.

요즘 나는 배우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많은 것을 배워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이제는 배움의 종류를 좀 달리하고 싶다. 사회적 잣대와 기준에서의 배움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것들... 알고 보니 세상엔 어리석은 배움도 많았으니까... 사실상 안 배워서 좋은 것들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나, 어서 빨리 벗어나고픈 순간이 오면 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허들의 주인공처럼 매일 숨을 참고 유서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날 것을 되새긴다. 그러면 어느 정도는 마음이 편해진다. 삶이 괴로울 때는 그 생이 짧아서가 아니라 그 생이 길어서인 경우가 많으니까...... . 지금 사라질 것을 안다면 내게 높게 다가오는 삶이라는 허들도 사실상 별것이 아닌 것이 되리라... 어차피 넘어야 할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다 허상이었을 뿐... 텔레비전도 끄는 순간 모든 것이 조용해지듯이, 휴대폰 역시 끄는 순간 남의 일상 엿보기가 멈춰지는 것처럼, 오히려 그때 진짜 넘어야 할 나라는 허들이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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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처 마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윌리엄 골딩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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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처 마틴

윌리엄 골딩 | 백지민 옮김 | 민음사

오랜만이다. 이처럼 읽기 힘든 책은 말이다. ㅎㅎ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으로 읽어내려가야겠다. 한번 읽었으면 그냥 흘려보내야 했다. 그래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느낌이랄까?

소설 전체가 핀처 마틴의 주마등이라는 것은 아는 것은 꽤 뒷부분에서였다. 그만큼 소설은 그의 의식과 무의식, 상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독자에게 제정신이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독자에게 현실감각이 오는 순간은 핀처 마틴이라는 캐릭터를 벗어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온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꽤 불만을 표시했다고 들었다. 극중 진도준이라는 캐릭터를 응원하고 그의 나름대로 복수에 대한 통쾌한 결말을 바랐는데 결국 윤현우의 꿈이었다고 말이다. 사람마다 판단하기 나름이겠지만 난 드라마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윤현우의 일주일 남짓의 시간이 진도준으로 산 17년이었다는 설정은 꿈이 아니라 왠지 꿈의 현실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찌해도 진도준은 결국은 윤현우 였으니 말이다. 이는 윌리엄 골딩이 말한 핀처 마틴이 죽음에 걸리는 시간과도 유사한다. 바로 영원이라는 시간... 핀처 마틴이 죽기까지의 시간이 영원히 걸린다는 골딩의 말은 끔찍하기도 하고, 인간 정신이란 것이 무엇인지 사유하게도 한다.

골딩은 핀처 마틴을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불쾌하고 못된 인간으로 만들겠다고 했으나 후에 평론가들이 인간의 모습이 뭐 다 그렇다고 했다고 한다. 골딩은 이 말을 무척 흥미로워했다고. 골딩이 만들고자 했던 핀처 마틴은 유독 그와 닮아있다. 아마도 골딩은 핀처 마틴에게 자신의 약하고 악한 모습을 투영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그에게 영원과도 같은 주마등을 선물한 것이 아닌가? 자신이 저지른 악행과 잘못들을 그 시간들을 통해 사죄하고 반성하길 바랐던 건가? 그것이 아니라면 그 주마등 같은 순간을 통해서 살고자 하는 집착 그 자체가 오히려 삶을 방해하고 오랜 시간을 고통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소설 속 핀처 마틴의 캐릭터는 인간성에 있어서 몹시도 타락한 인물이다. 그는 강간도 서슴지 않게 저지르고 반성하지 않으며 심지어 마음을 먹는다면 살인까지 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살인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는 그것을 반성하기는커녕 아쉬워하고, 변명하기까지 한다. 핀처 마틴이 말하는 주석 상자 속의 최후의 구더기... 어쩌면 그는 다른 구더기들을 먹고 성공해서 최후의 일인이 되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세상사는 그런 거라고, 만사가 먹고 먹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살고자 했다. 최후의 구더기도 결국은 잡혀 죽고 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유독 스스로에게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고통에 그들은 관심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면 치를 떠는 그런 부류.... 그에게는 자신의 몸이 전부이다. 자신의 세상이 전부이다. 그 외에는 없다. 누구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 따위는 아마 사치일 것이다. 하지만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말 또한 있다. 살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죽는 일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핀처 마틴처럼 영원한 주마등으로 고통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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