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인간혐오자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5
몰리에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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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혐오자

시카고플랜 005 | 몰리에르 |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단숨에 읽어내려갔던 몰리에르의 인간 혐오자... 읽을수록 왜 나의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지 모를 일이다. 나도 한때는 이런 인간 혐오자였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는 남아있지만.. 하지만 이제는 약간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고, 나의 부족함을 볼 줄도 아니 남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고나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도 나 역시 인간 그 자체를 좋아하거나, 좋게 보는 성향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극중 주인공인 알세스트에 감정이 이입되면서도 동정이 갔다.

몰리에르의 희곡 [인간 혐오자]에는 뚜렷한 인물들의 성격들이 나온다. 우선 알세스트는 모든 인간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내 생각에는 유독 한 사람에게만은 예외인 듯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의 친구인 필랭트...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맞출 줄 안다. 인간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있고, 비판도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알세스트를 이해하는 내가 보기에는 극중 등장인물 중 가장 제정신 같다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 그가 연모하는 여인인 엘리앙트가 있다. 그녀는 알세스트의 성격을 좋게 보고 그를 좋아하지만 알세스트에게는 사랑에 빠진 여인 셀리맨이 있다.

시종일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희곡 [인간 혐오자]... 극중 본인들은 괴로울지라도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들에게는 묘한 풍자의 느낌이 있어서 무척 재미있었다. 특히 알세스트와 오롱트의 소네트에 대한 이야기는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생각에도 오롱트의 그 소네트는 무척이나 형편없었지만 그 형편없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이야기하는 알세스트와 누가 보기에도 아첨하는 듯한 필랭트의 평가는 웃음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알세스트의 악평에 빈정이 상한 오롱트가 후에 한 일들은 정말이지 속 좁은 남자란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었다.

아무래도 알세스트의 짝은 셀리맨이다. 셀리맨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 않지만 알고 보면 알세스트와 같은 인간 혐오자이다. 그녀에게 딱 맞는 완벽한 인물은 없다. 알세스트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는 어찌 보면 알세스트와 셀리맨이 사람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판단한다고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서 만일 누가 그런 판단을 한다면 아마도 참을 수 없어하는 성격이리라... 사람은 누구나 결점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떤 이에게는 그 결점이 유독 커 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 결점은 장점에 비하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는 후에 엘리앙트가 사랑에 빠진 연인의 특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잘 나타난다.

또 한 가지 이 희곡에서 볼 만한 장면은 바로 셀리맨의 무절제함을 친구로서 직접 충고하러 온 아르지노에의 등장이다. 셀리맨과 아르지노에는 누가 먼저라도 할 것 없이 서로에 대한 힐난한 비판을 이어나간다. 처음에는 우정으로서의 충고가 후에는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의 얼굴을 붉히게 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지는 장면... 특히나 여기서 셀리맨의 말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ㅎㅎ

아마도 최종적으로 이 극의 승자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필랭트와 엘리앙트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혐오를 견디다 못해 먼 나라로 떠나려고 하는 알세스트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자는 아마 필랭트 뿐일 것이다. 필랭트의 말처럼 세상이 변하려면 사람들이 아예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그 결점으로 인해 철학을 수행하는 방식을 깨닫게 된다는 필랭트의 말은 다시금 곰곰이 인간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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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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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장편소설 | 강초아 옮김 | 한스미디어

살면서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하고, 공론화되어야 하지만 아직도 그렇지 못한 불편한 진실들이 있다. 바로 성에 대한 문제, 특히 여성들의 성문제이다. 만일 성인 여자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 여자아이의 일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공론화되기도 쉽지 않고, 그것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미스터리는 작가 우샤오러가 스물세 살 때 본 다큐멘터리로부터 출발한다. 영화 공부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된 미국 다큐멘터리 [패밀리 어페어]... 한 아버지가 딸들을 어린 시절부터 성폭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다소 패륜적이고 끔찍한 다큐멘터리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비극적인 점은 그 딸들은 성폭행의 가해자를 오히려 걱정하고, 그중 한 명은 오히려 아빠가 밤에 찾아오길 기다렸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들의 성기는 장난감으로 치부되어왔다. 할머니들이 흔히들 고추를 보고 장난을 치면서 한번 달라 하고, 여름 내내 어떤 남아들은 집에서는 성기를 노출해놓고 다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아이의 성기에 대해서는 모두들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냥 소중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두리뭉실 이야기를 해줄 뿐이다. 여자아이의 성기는 남자아이의 성기와 다른 취급을 받는다. 남아들의 성기는 장난감이지만 여아들의 성기는 스스로가 지켜야 할 그 무엇인 것이다.

소설은 판옌중의 두번째 아내인 우신핑의 실종에서 시작한다. 판옌중에게는 상처가 있다. 전 결혼생활에서 그는 자신의 알지 못했던 면을 본다. 바로 폭력성이다. 아내에 대한 집착, 그리고 아내의 다소 잘못된 의사소통 방식에서 오는 오해 등등으로 인해 어느 날 판예중에게 아내가 물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내의 입을 닫기 위해서 그는 물건을 던지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 장면을 딸아이가 보게 된다. 이러한 상처가 있는 판옌중에게 우신핑은 어떤 구원의 존재였다. 사랑해서가 아닌 옆에 있는 존재, 외로움을 달래줄,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존재로 우신핑은 판옌중에게 딱 맞는 짝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신핑이 사라지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내에게는 그가 알지 못한 과거가 있었다. 하나 둘 아내의 과거를 풀어가면서 그녀를 둘러싼 이웃들의 다소 엇갈린 증언들을 들으면서 소설은 독자를 책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과연 피해자와 가해자란 누구인가? 그리고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일까? 왜 사회는 그것을 강요하는가? 여성은 왜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말을 못 하게 됐는가? 등등의 새로운 의문점이 들게 한다.

작가 우샤오러가 책 말미에 남긴 작가 후기는 감동적이다. 그녀는 말한다. 여자 주인공들의 얼굴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자신의 얼굴을 돌려주는 일, 소녀에게 그녀에게 일어난 사건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하고 그 감정을 끝까지 들여다보게 하는 일... 피해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피해자를 손가락질한다. 평소 옷매무새를 좋게 하지 않고 다녔다거나, 그를 좋아했다거나, 꼬리를 쳤다거나 등등 이유를 갖다 대면서 피해자가 느꼈을 수치와 고통에 찬물을 끼얹는다. 우리 사회 지도층이 생각하는 성폭력에 대한 인식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우파가 좌파보다 성에 대한 문제가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돈으로 잘 해결을 봐서 그랬다는 누구의 이야기도 있었으니 말이다.

우샤오러는 말한다. 여성들은 모두 자기만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타인이 그들을 위해 이렇다, 저렇다,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 하면서 그들만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옳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완성시켜야 한다. 모두 자신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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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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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에피쿠로스 |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쾌락이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이 나는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좋은 곳을 구경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한때 등등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러한 육체적인 쾌락은 진정한 쾌락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진정한 쾌락이란 무엇일까?

에피쿠로스가 살았던 시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해 아테네가 쇠퇴하던 시대였고, 알렉산드로스가 이끌던 마케도니아가 세계를 통일했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의 삶은 피폐했으며, 궁핍한 시절이었다. 이런 시대에 왜 그는 쾌락을 말해야 했을까? 이 책을 읽으니 에피쿠로스는 자연과학, 원자론, 우주론 등등의 철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학문을 늘리기에 열심인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으로 그에게는 적도 많았다. 감히 신과 대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인간이라면 의당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가들 등등은 아마도 에피쿠로스에게 모진 말을 하면서 그의 학파를 반대했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키케로였다. 그는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폭풍처럼 로마를 집어삼켰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철학을 비하하고 비판했다. 내 생각에 에피쿠로스의 쾌락론은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평생을 전쟁으로 고생하고, 먹을 것도 풍족하지 못한 시대에서 태어나서 고생만 하다가 죽어가는 삶은 그가 생각하기에는 선이 아니었다.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를 말했다. 그는 진정한 쾌락이란 바로 정신적 방황과 육체적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칭했다. 그것이 바로 아타락시아를 뜻한다. 그가 말하는 아타락시아는 절대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거나, 좋은 곳을 구경하거나, 행여 연인 간의 사랑을 나누는 일이 아니었다. 에피쿠로스는 평생을 작은 빵 한 조각에 물 한 모금으로 하루 식량을 대신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배고픔이 해결되니 그것으로 족하고 마음 또한 평온하다고 말이다.

얼마 전에 재벌 3세들이 대거 마약으로 적발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이 극단적인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다가 절망으로 빠진 사례이다. 육체적 쾌락이 극대화된다면 그것은 고통뿐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다 보면 질리고, 더 이상 먹기 힘든 것처럼, 마약으로 추구되는 육체적 쾌락의 결말은 고통으로 회기 된다.

에피쿠로스는 아마도 그가 살았던 당시 수많은 악플에 노출된 사람이리라... 신에게 반기를 듣다고 다들 여겼을 테니 말이다. 19세기 근대에서 에피쿠로스를 계승한 학자는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었다. 그는 자유론을 통해 남녀 불평등을 이야기했으며, 자유론의 첫 장에는 이 책은 내 것이 아니라 그녀의 것이라는 다소 애틋한 말을 남겼다. 에피쿠로스의 영향력은 후에 공리주의로까지 미쳤다. 나의 고통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을 그 속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던 사람들... 공감의 능력인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들은 정원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곳에는 [방랑자여, 여기는 그대가 머물 좋은 곳]이라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 그것은 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무서워하지 말고, 쾌락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고통을 멀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구는 이미 모든 인류가 나눠갖기에 충분한 음식과 물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곳에서 독점함으로 피가 안 돌듯 물자가 돌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곳에서 충분한 음식이 남는다면, 다른 한곳은 부족한 것이다. 제로섬 게임처럼 말이다. 스스로가 오늘날 부유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닌, 그 부유로 인해 고통받는 다른 이들을 생각하는 2023년이 되는 것은 어떠할까? 그렇다면 충분히 밥 한 공기, 따뜻한 잠자리만으로도 아타락시아 늘 느끼면서 감사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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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간 처녀 - 처음 공개되는 작품으로 상영중단까지 당한 사회고발 문제작 김승옥 작가 오리지널 시나리오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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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간 처녀

김승옥 각본 | 처음 공개되는 미발표작 | 스타북스

처음 공개되는 김승옥 작가의 시나리오 작품인 [도시로 간 처녀]이다. 그 서슬 시퍼런 시절에 한국노총의 반대로 상영 중단까지 당한 사회 고발 문제작이라는 부재도 달고 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소위 MZ 세대로는 상상도 못할 인권유린과 문제들이 시나리오 곳곳에 나오고 있다. 지금도 간혹 아재들만 쓰는 용어인 삥땅,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행상.. 버스가 멈춰섰을 때 물건을 잠깐 팔고 내리는 행상들이 등장하는 모습들이 재미있기도 한 시나리오였다.

아마 이런 작품들이 없었다면 그 시절을 어떻게 오롯이 느낄 수 있었을지... 그때를 다시금 재조명한 작품들이 다시금 많이 나왔으면 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잊히니까 말이다. 우리 시대의 흘러간 역사를 잘 기억하는 법은 아마 영상 혹은 문학작품들이리라... 영상이 만들어지려면 기초적인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고, 좋은 시나리오가 좋은 원작의 역할을 충분히 다할 때 그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리라...... . 소위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공공연하게 알리는 데 도움을 주었던 파친코... 그 작품 역시 역사적 방향성에 존재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이 작품은 내겐 어느 정도는 불편했다. 소위 정확하고 올바른 사회 지향을 위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가난한 버스 안내 양의 딴 주머니와 연관시킨다는 것은 거대한 재벌들이 일삼은 탈세와 불법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지독한 검열에 놀라서 스스로 회사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서 시위를 한 문희... (왜 그녀는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녀가 외치는 것은 몸수색 중단과 그 중단을 위해 모든 안내 양이 소위 푼돈을 챙기는 것을 포기? 하라는 것이었다. 맞다. 푼돈이다. 하지만 그 푼돈이 없어서 굶어가는 사람도 있는 시대였으니... 극 중 등장하는 성애가 그러하다. 그녀는 자신이 하루라도 벌지 않으면 식구들이 모두 굶는다고 한다. 그녀는 몰래 감춰둔 푼돈을 동생에게 전달해서 어머니께 드린다. 성애의 식구들 모두는 성애가 일명 삥땅을 한다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일(남모르게 딴 주머니를 차는 것)을 저지른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아무리 공공연한 비밀이라지만 스스로가 부끄러운 짓임을 너무나 잘 아는 탓에 심장병이 생길 지경이니까 말이다.

문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소위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사는 일... 아마 그것은 모두가 바라고 바라는 세상일 것이다. 문희는 처음부터 몸수색에 대한 지독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은 몹시도 치욕스러운 일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싸워야 할 만큼 말이다. 그리고 그 치욕을 없애는 길은 바로 모든 안내 양이 자신과 같이 정직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이 상영된 후 전국 안내 양들이 들고일어났다고 한다. 자신들을 모두 도둑 취급한 영화가 나왔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감춰져있다. 버스 회사의 횡포와 인권 문제가 더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본질을 외면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눈을 돌리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상영 중단으로 재편집되어서 다시 재상영이라는 화제를 뿌린 작품인 [도시로 간 처녀]... 처녀가 처녀로 살기 위해서 도시로 간 것은 그리 바른 선택지는 아니었다. 도시는 온갖 횡포와 훼방과 부조리와 유혹이 가득한 곳이니 말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스스로 바른 양심을 가지고 꼿꼿하게 살기로 결심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결심이 온전히 지켜지고, 훼방 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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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 영화로 읽는 ‘무진기행’,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 ‘안개’ 김승옥 작가 오리지널 시나리오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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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김승옥 각본 | 영화로 보는 무진기행 | 스타북스

오랜만이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다시금 그때의 심상에 젖는 것은 말이다. 새삼 시나리오가 이런 거였지 하는 생각이 들고, 소싯적에 끄적여 봤던 적 부끄러운 시절이 다시 떠올려졌다. [안개]는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에서 바탕을 두고 쓴 시나리오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첫 시나리오였다고 하니 그 소회는 아마 남달랐을 것이다. 김승옥 작가는 알고 보니 재주가 참 많은 분 같다. 얼마 전 그분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출판한 에세이 집을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림들이 제법 수준급이었다는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안개] 역시 소설 무진기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나리오라는 것을 감안해서 읽는다면 충분히 그 속에서도 감정의 선과 복잡 미묘한 서로 간의 거리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을 기회로 유튜브에서 무진기행에 관련된 영상을 찾아봤더니 역시 그곳에 있었다. tv 문학관에서 방영한 필름을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행운이랄까?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컸다. 박근형, 김미숙, 여운형 등의 그 시절을 호령했던 배우들은 창창한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었다. 참, 세월 무상이다.

기차에서 출발하는 시나리오... 기준은 무진으로 떠난다. 곧 장인어른과 아내의 도움으로 제약회사 전무로 승진할 위치에 있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고 거기서 역시 음악교사로 일하는 하인숙을 만나게 된다. 하인숙은 자정이 지나서 우는 무진의 개구리 소리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서울로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 무진에 있으면 금방 미칠 것 같다고 말이다. 기준은 그런 하인숙이 마음이 걸린다. 그리고 그는 방죽 비탈에서 자살한 술집 여인을 보게 된다. 어머니 산소에서 이슬비를 맞으면서 잡초를 뽑으면서 새삼 효자 행세를 한다고 자조도 해보고 말이다.

기준은 어떻게 해서 하인숙과의 연을 맺는다. 하인숙은 무진을 데려고 나갈 사람으로 기준을 선택하지만 기준은 하인숙의 손을 잡고 같이 기차에 타지는 못한다. 그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고, 탄탄한 직장이 보장된 내일이 있으니까... 하인 숙의 바램은 서울에 가고 싶다는 단 그 하나뿐이지만 그는 홀로 무진을 떠난다. 무진을 떠나면서 보이는 당신을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라는 입간판.... 기준은 하염없이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시나리오는 우리를 무진이라는 한곳으로 모여들게 하지만 결국 그곳은 여전히 안개와도 같은 곳이다. 현실에 아무런 영향도 안 미치는 세계... 기준은 무진의 안개가 적병을 연상시키고, 그것이 자신의 암울한 청춘시대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인숙에게서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것뿐이다. 그곳에서 떠나게 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결국 떠날 수 없는 자는 안개와 같이 살던지, 아니면 술집 여성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 김승옥이 살았던 1960년대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아마 이런 것이리라... 어디로 피할 수도, 갈 수도 없는 형국 같은 느낌... 사방에 적이 둘러싸여 있지만 스스로 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막막함... 그런 현실에서 스스로만 배불리 산다는 것은 아마 무척 부끄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보고도 못 본척한다는 것... 외면의 현실 속에서 1960년대는 그렇게 저물었지만 그 부끄러움이 바로 지금의 일은 아닌지 스스로 되물어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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