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처 마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윌리엄 골딩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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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처 마틴

윌리엄 골딩 | 백지민 옮김 | 민음사

오랜만이다. 이처럼 읽기 힘든 책은 말이다. ㅎㅎ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으로 읽어내려가야겠다. 한번 읽었으면 그냥 흘려보내야 했다. 그래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느낌이랄까?

소설 전체가 핀처 마틴의 주마등이라는 것은 아는 것은 꽤 뒷부분에서였다. 그만큼 소설은 그의 의식과 무의식, 상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독자에게 제정신이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독자에게 현실감각이 오는 순간은 핀처 마틴이라는 캐릭터를 벗어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온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꽤 불만을 표시했다고 들었다. 극중 진도준이라는 캐릭터를 응원하고 그의 나름대로 복수에 대한 통쾌한 결말을 바랐는데 결국 윤현우의 꿈이었다고 말이다. 사람마다 판단하기 나름이겠지만 난 드라마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윤현우의 일주일 남짓의 시간이 진도준으로 산 17년이었다는 설정은 꿈이 아니라 왠지 꿈의 현실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찌해도 진도준은 결국은 윤현우 였으니 말이다. 이는 윌리엄 골딩이 말한 핀처 마틴이 죽음에 걸리는 시간과도 유사한다. 바로 영원이라는 시간... 핀처 마틴이 죽기까지의 시간이 영원히 걸린다는 골딩의 말은 끔찍하기도 하고, 인간 정신이란 것이 무엇인지 사유하게도 한다.

골딩은 핀처 마틴을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불쾌하고 못된 인간으로 만들겠다고 했으나 후에 평론가들이 인간의 모습이 뭐 다 그렇다고 했다고 한다. 골딩은 이 말을 무척 흥미로워했다고. 골딩이 만들고자 했던 핀처 마틴은 유독 그와 닮아있다. 아마도 골딩은 핀처 마틴에게 자신의 약하고 악한 모습을 투영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그에게 영원과도 같은 주마등을 선물한 것이 아닌가? 자신이 저지른 악행과 잘못들을 그 시간들을 통해 사죄하고 반성하길 바랐던 건가? 그것이 아니라면 그 주마등 같은 순간을 통해서 살고자 하는 집착 그 자체가 오히려 삶을 방해하고 오랜 시간을 고통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소설 속 핀처 마틴의 캐릭터는 인간성에 있어서 몹시도 타락한 인물이다. 그는 강간도 서슴지 않게 저지르고 반성하지 않으며 심지어 마음을 먹는다면 살인까지 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살인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는 그것을 반성하기는커녕 아쉬워하고, 변명하기까지 한다. 핀처 마틴이 말하는 주석 상자 속의 최후의 구더기... 어쩌면 그는 다른 구더기들을 먹고 성공해서 최후의 일인이 되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세상사는 그런 거라고, 만사가 먹고 먹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살고자 했다. 최후의 구더기도 결국은 잡혀 죽고 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유독 스스로에게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고통에 그들은 관심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면 치를 떠는 그런 부류.... 그에게는 자신의 몸이 전부이다. 자신의 세상이 전부이다. 그 외에는 없다. 누구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 따위는 아마 사치일 것이다. 하지만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말 또한 있다. 살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죽는 일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핀처 마틴처럼 영원한 주마등으로 고통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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