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크라임 이판사판
덴도 아라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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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고 보는 북스피어의 이판사판 시리즈다. 이번엔 젠더 이슈를 다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젠더 범죄다. 우리나라는 얼마전까지 젠더 이슈가 뜨거웠다. 남자, 여자는 서로 싸워야할 대상이었고, 나아가 공존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차별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이슈는 여전히 사회를 잠식하고 있지만 국내외적으로 큰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어서 이슈는 잠자코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하다. 지금은 난데없는 극우와의 전쟁을 벌이는 형국이니...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을까? 범죄율을 보더라도 그렇고 통계적으로 그렇다. 흔히 치정극이나 가정간의 불화가 있을때도 어김없는 피해자는 여성이 압도적이다. 세간을 달궜던 온라인 성범죄 사건 등도 그러하다.

소설 [젠더 크라임]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내밷는 성차별적인 말 속에 얼마나 잠식되어 살고 있는지 여기서는 젠더 바이어스로 표현되는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요즘 아이들의 언어를 들어보면 거의 절반은 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욕설 속에 들어있는 문구를 해석해보면 지극히 성차별적인 말들 뿐이다. 아마도 태반은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고 밷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말은 곧 그의 얼굴이다. 그리고 생각을 보여준다. 자신이 알고 했건, 모르고 했건간에 그 차별적 언어는 차별적 생각에서 나온 말이고 그것은 곧 행동으로 귀결된다.

젠더 크라임을 종식시키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생각을 바꿔야하고 언어를 달리 해야한다. 소설 속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성 차별 언어를 쓰는 구라오카 경부보를 동료 형사 시바가 꼬집는 대목이 나온다.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 속에서 소설은 어느덧 결말을 향해 다가가고 그 속에서 변하는 구라오카를 보는 일은 독자로서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사토 마사타카의 죽음으로 촉발된 수사였지만 그 뒤에는 그동안 해결됐다고 믿었던 믿었던 사건이 결국은 다시 범죄를 움트게 하는 씨앗이 된 것처럼 한 사람의 피해 아니 억울한 이면 뒤에는 무수히 많은 피해자가 존재했다.

한 인간의 죽음은 우주의 종말과도 같다. 그 곁을 둘러싼 모든 세계가 이미 무너진 것이니까 말이다.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전혀 그런 일이 없어야한다고 여겨진 안전지대의 학교에서 한 아이가 희생되었다. 그 희생 이후 모든 이들은 말한다. 그런 전조가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에와서 그 전조를 말해봤자 있었던 일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자칫 안이한 생각이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한 우주를 소멸시켰다.

여자라서, 엄마라서, 아이라서 죽는 세상이 과연 온전한 세상이란 말인가? 난 지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진짜 도둑, 진짜 나쁜 놈들이 눈에 보이는 데, 다들 선과 악을 알고 있는데 모두들 양의 가면을 쓴 늑대를 진짜 양이라고 말한다. 내일도 대한민국은 아프겠다. 광화문 광장은 몸살이 나겠지. 하지만 어쩌랴... 민주주의는 아픈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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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 - 모성, 글쓰기, 그리고 다른 방식의 사랑 이야기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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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때 묻은 것에 비유하다니...처음에 이 제목이 무척 도발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동안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편협했던지...느껴졌다.

순수하고 맑고 고귀한 것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말이다.

저자는 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으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지면에 털어놓는다. 남편과는 현재 이혼소송 중이고,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리다. 경제적 활동은 글쓰기를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있다. 바로 술에 지극히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알콜 중독의 유혹에서 싸워가면서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힘겹고 버거운 일일까?

레슬리 제이미슨이 엄마이자 작가 교사로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였던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그 자리에 있는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고 솔직하게 쓴 에세이는 뭐랄까... 기존의 것과는 다르다. 한풀이나 넋두리가 아니라 왠지 친근하다. 자신의 일상(좁게 말하면 육아의 일상)을 보여주는 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저 덤덤하다.

현실이 가시밭길이라지만 그녀의 일상은 그녀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 든다. 흡사 그 아름다움이 아이의 똥기저귀를 갈면서 느끼는 아름다움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묘사한 대로 마트료시카같다. 그녀 안에 모든 것이 차곡 차곡 쌓여있는 느낌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까도 까도 나온다. 사랑할 기운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사랑을 쫒는 그 무엇처럼 말이다. 사랑에 지치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녀가 아이에게 만트라처럼 중얼거린 말은 나를 사랑하니?가 아니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니?란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작은 심장 소리를 연료처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차마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어보기 겁이 났던 것이 아닐까? 왠지 그런 마음도 든다.

아이는 살아있고 자란다.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엄마의 뱃가죽에 나있는 검붉은 자국은 아이와 엄마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뿐이다. 흔적만 남아있다. 레슬리는 말한다. 결혼 생활이 자신에게 남겨준 가장 큰 부분이 아이라고 말이다. 계속 살아간다. 햇살과 어둠을 반복하면서. 그저 그뿐이다. 흉터를 감내하고서. 그리고 우리는 안다. 그 자국조차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오래되고 낡고 거칠고 손때묻은 것들에 아름다움이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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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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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 김난주 (옮김) | 태일소담출판사 (펴냄)

어릴 적 막연히 동경만 했던 세계가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다면 기분이 어떠할까? 처음에는 신기하고 볼을 꼬집어 볼만큼 현실이 아닌 것같을 것이다. 두근 두근 거리는 세계... 하지만 막상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내가 상상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어...하게된다.

학교 졸업 후 직업을 구하게 됐을때 나의 느낌이 그러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방송국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셰계 속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좋아보였다. 어찌 어찌해서 들어간 그곳은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매일 매일 야근이 이어졌고 부당한 모습도 보이고, 무척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한 선배는 나에게 이런 말도 했다. 여기에서 일을 하려면 허영심이 필수라고 말이다. 허영심이 있어야지 이 생활을 버틸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스스로가 계속 속삭이는 와중에 그 생활을 계속 해내갈 자신이 나에게는 없었다.

여기 가오리의 소설 속에는 세명의 주인공들이 나온다. 학창시절 나란히 출석부에 적힌 이름 스와, 세노, 세이케 덕분에 쓰리 걸스로 불리우게 되어 친해진 여성들... 그들은 학창시절을 지나서 오십대의 여성의 모습이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된다. 아마도 다분히 에쿠니 가오리 스스로의 나이도 짐작하게 되는, 그녀의 모습일까도 싶은 추측을 불러들이게 하는 소설이었다.

돌싱인 세이케 리에는 자유분방한 여성의 대명사이다. 자유롭게 즐길줄 아는 그녀는 일적인 면으로도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 그녀가 돌연 영국생활을 접고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야흐로 쓰리 걸스가 삼십년만에 다시 뭉치게 되는 것이다.

리에가 싱글인 채로 여든이 된 어머니와 함께사는 스와 다미코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소소하지만 작은 회오리같은 일상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주부로 사는 세노 사키의 일상마저도 잔잔히 술렁인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첫 문장처럼 각 집에는 소소한 그 집안만의 해결해야할 고민이 있다. 겉에서 봤을때는 모르지만 속으로 찬찬히 파고 들어가면 다른 이면이 보인다.

스와, 세노, 세이케는 학창 시절에 자신들의 이런 삶을 상상했을까? 그들이 그 시절 느꼈던 셔닐 손수건의 촉감와 캔털루프 멜론 맛은 아직도 그대로 일까?

상상 속의 미래를 만지거나 볼 수 있다면 그 당시 우리는 지금 이 삶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마지막 그들이 나눴던 상상의 반전이란 이런 것이 아닐지 싶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래서 더 재미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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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 사로잡힌 영혼들의 이야기
비비언 고닉 지음, 성원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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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미국과 공산주의자라니...이런 말도 안되는 조합이 어디있을까?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자가 비비언 고닉이라고? 아니, 내가 아는 고닉이 맞아? 그 [사나운 애착]과 [멀리 오래 보기]의 작가라고? 그 두 권의 책은 여전히 내 책장에 꽂혀있지만 이 책과 나란히 하리라곤 생각할 수도 없었다. 물론 내가 고닉에 대해 철저히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다면 전작들도 모조리 챙겨 읽는 열정이 있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 책 [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는 비비언 고닉이 1970년대에 미국에서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수십 명을 인터뷰한 책이다. 무려 1977년도에 펴낸 책이라니. 그 책이 2020년에 새로운 서문을 덧붙여 재발간 된 것이다.


난 예전부터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오해를 한다고 생각했다. 공산주의가 가진 근본 철학은 모른 채 그것을 물려받았다고 자신하는 정권에 속아서 억압당하고 착취당해서 그 의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려 우리가 페미니즘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과 오해를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진짜 공산주의, 진짜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는 것과 무척 다른 것은 아닐까? 억압과 통치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굴레로서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자본의 가치에 잠식 당하거나 돈만을 위해 평생을 내쳐지는 삶을 살지 않도록 해주는 것...


비비언 고닉은 뉴욕 브롱크스 좌파 노동계급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 속에서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틈새에서 성장했다. 그녀가 친구들과 공산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때 이해할 수 없다는 그들의 표정이 상상이 되어진다.


고닉은 서문에서 이야기한다. 공산당원인 된 사람들에게 마르크스주의는 헬레네와 같은 존재라고 말이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가장 극심한 갈망이 공산당이라는 페르소나를 뒤집어쓴다. 그리하여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하는 욕망에 허기가 붙는다. 그 허기가 공산당원에게 따라붙어 떨어지지않지만 나중에는 그 허기가 그들을 살게 했다고 말이다. 모든 이데올로기의 중심에는 바로 갈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이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있다. 정의와 공정에 대한 갈망, 인간다움에 대한 갈망으로 사람들은 촛불을 그리고 응원봉을 들었다.

잘못된 것은 모두가 알지만 용기있게 지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의 안위와 영달에 대한 생각에만 사로잡혀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았을때 온 국민이 어떤 사태에 직면하게 되는가? 자칫하면 나라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더 많은 과제가 남아있지만 두 손에 불을 드는 시민들이 있는 나라에 산다는 것은 참으로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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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뇌 문학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문학적 성찰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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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방대한 양의 책을 보았을때 좀 두려웠다. 더군다나 제목이 [눈 뇌 문학] 이라니... 생물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 더 나아가 문학적 지식까지 고루 갖춰야 비로소 이해될 것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하나 하나 읽어가다보니 그동안 안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깊이있게 통찰하지 못했던 것들의 총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두고 두고 읽을 만한 철학 서적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본다는 것의 의미를 폭 넓게 독자에게 말해주고 있다. 작가에게 어느날 찾아온 안구건조증과 비문증이 본다는 것의 서막을 열었으며 러시아 문학을 바탕으로 그것은 더한 깊이로 통찰이 되었던 것이다.

시각을 상실한다는 경험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지만 보는 일이 결코 시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뇌로 본다고 생각하면 단순히 눈이라는 살덩이를 넘어서서 인간은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란 바로 제대로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하지만 보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담론은 일반화하기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는 본다는 대상이 무척 다양화되었으며 기호화를 통해 보고 인지를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볼 수 없는 것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감각과 인지가 시각이라면 본다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마저 보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시각의 위대함이라고 말이다.

정말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뇌로 본다는 것은 어떤 말일까? 더 나아가면 우리는 뇌를 넘어서 보는 것이다. 시각이 부재해도 뇌만 존재해도 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자체의 의미 설정을 달리한다.

저자는 눈의 탄생부터 윤리에 대한 문제, 환상, 창조하는 눈, 신과 마주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리에 도착에 이르기까기 각 챕터별로 일목요원하게 그 주제를 놓치지않고 한 곳을 향해 써 나갔다.

책의 내용 중 동물들도 프라이버시가 있어야 살 수 있다는 내용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감각은 각성이라는 것. 깊이 안다는 것은 종교적 행위라는 것. 진심으로 본다는 것은 각성을 의미하며 그것은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는 것 등은 미처 생각할 수 없었던 깨달음이었다.

두 눈을 갖고도 잘 못 보는 현실, 진실이 존재해도 외면하는 것. 정말 우리는 잘 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시력은 있어도 장님으로 사는 사람이 많은 현실은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다시금 오래 곁에 두고 곱씹어보고픈 책을 만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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