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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기 ㅣ 세계신화총서 11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제목 그대로 일본 창세신화인 이자나기-이자나미 부부의 이야기를 척박한 섬의 무녀 이야기와 겹쳐 재해석한 소설이다. 이자나기는 영생을 살면서 '하루에 천 오백 명씩 생명을 생산하는' 삶에 질려 인간이 되지만, 이자나미는 '하루에 천 명씩 죽이는' 여신으로 남는다. 화자는 나마미라는 섬의 무녀지만, 진짜 주인공은 이자나미라고 생각한다. '여성성'도 '신성'도 버릴 수 없는 존재. 끔찍하게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이고, 신의 숙명에 지친 이자나기를 비웃으며 끝까지 신으로 남는 여신.
기리노 나쓰오는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이렇게 비인간적인 존재를 그릴 때 참 돋보인다.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인간적이고 다정한 '미로 형사 시리즈'는 내 취향엔 좀 약하다. 역시 아직까지 기리노의 대표작은 <그로테스크>와 <아웃>이 아닐까. 소품이지만 <여신기>도 그 계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