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와 앞치마 - 타인과 친구가 되는 삶의 레시피17
조선희.최현석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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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별한 날에, 멋진 식사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소득이 높아지면서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음식 사진을 찍고, 셀카를 찍고, 그건 평범한 일상이 됐다.

그래도 어떤 음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추억이 깃들어 있으며, 몸이 아플 때는 어떤 음식이 생각나기 마련이고, 위로가 필요할 때는 또 어떤 음식이 생각난다.

사진작가 조선희와 셰프 최현석이 몇 차례의 만남을 가지면서 음식을 주제로 요리를 하고, 요리를 사진으로 찍고, 그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는 행복한 에세이가 <카메라와 앞치마>이다. 

사진작가 조선희와 셰프 최현석, 얼핏 안 어울릴 것 같으나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들이 너무도 닮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조합이다.

조선희의 사진 에세이는 몇 권 읽었기에 조선희와 사진 이야기는 잘 알고 있었지만, 셰프 최현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와 음식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그 분야에서 비주류이며 비전공자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여 활동을 한 지 약 20년 정도가 된 베테랑이란 점도 공통점이다.

조선희의 최현석 셰프에 대한 생각은,

" 방송 콘셉트이지만 내겐 좀 재수 없게 보였던 거들먹거리는 듯한 행동, 좋지만은 않았던 첫 인상이 외려 묘하게 끌렸다. " (p. 8)

이런 조선희의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최현석의 이미지일 것이다. 그래서 그를 허세프, 크레이지 셰프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야기가 거듭될 수록 많은 점에서 공감을 하게 되니, 이들의 만남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서로의 생각과 인생을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음식은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기도 하고,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생각나기도 하니,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첫 번째 주제인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을 읽으면서 나도 아버지가 생각났다. 최현석의 아버지도 요리사였는데, 명란과 면을 좋아해서 그가 만든 음식은 '차가운 명란 크림 파스타'

파스타는 아니지만 잔치국수를 유난히도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나도 국수를 좋아해서 즐겨 해 먹는데... 명란과 어울려진 파스타가 먹음직스럽다.

최현석 셰프의 창의적이 돋보이는 음식은 아무래도 '핸드백 모양의 만두'가 아닐까.

너무 앙증스러운 분홍색 핸드백 만두, 핸드백 브랜드의 디자이너이자 대표가 레스토랑에 왔을 때에 그를 위해서 만든 음식, 디자이너의 핸드백 모양을 그대로 축소시켜서 만들고, 그 속에는 만두소를 넣은 만두.

핸드백 특유의 패턴과 금장까지 똑같이 만들었다고 하니, 이 요리를 마주한 사람의 표정이 궁금하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요리....

" 창의적인 요리에 공감이 스며들게 한 노력이야말로 내 요리를 차별화시킨 원동력이다. " (p. 43)

" 독창적이다. 니체가 말한 독창성의 정의가 떠오른다. 우리 눈 앞에 존재하지만 이름이 없어 불릴 수 없는 어떤 것을 보는 것이, 즉, 세상에 존재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해서 명명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명명하는 것이 바로 독창성인 것이다.  최현석 셰프는 이를 요리의 독창성 안에서 이렇게 재해석했다. " (p. 74)

조선희 작가가 한 컷을 찍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셔터를 누르는지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주로 인기 연예인이 작가의 모델들인데, 유명한 연예인을 망가트리기로도 이름이 있는데....

천 번을  찍어야 한 컷을 살릴 수 있다는 조선희.

" 허투루 찍지 말아야지, 천 번을 찍어야지. " (p. 48)

그래서 조선희와 최현석은 그들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 최 셰프의 스승이 '셰프는 접시에 얼굴을 담는다.'라고 말했단다. 그렇다. 사진가 역시 자신이 찍은 사진 속에 사진을 담은 법이다. " (p. 48)

음식에 대한 주제는 어릴 적의 추억, 위로를 받았던 음식, 직업의식, 창의성, 여자다움, 남자다움, 술이 생각나는 음식, 질리지 않는 음식, 아주 특별한 날에 대접받고 싶은 음식,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 먹는 음식, 입 보다 눈이 즐거운 음식,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음식, 여행과 관련된 음식, 파티 음식 등 17가지 주제에 따른 17가지 음식, 그리고 사진과 요리 이야기, 인생이야기가 잘 어우려졌다.

 

 

그래서 이 책은 읽으면서 눈이 즐겁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배가 고파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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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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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흥미롭다. 작가만의 특색이 나타나는 소설들은 소설마다 조금씩 다른 색깔을 나타내지만 읽다보면 책 속에 흠뻑 빠져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한 조각 한 조각을 맞춰 나가는 퍼즐 조각들처럼 전개 과정 속에서 자칫 지나쳤던 조각들이 나중에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기욤 뮈소'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허를 찌르는 반전', '예측할 수 없었던 반전'이 가져다 주는 기막힌 뒷부분의 이야기에 또 한 번 '기욤 뮈소'에게 당한 것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만큼 반전의 묘미를 느낀 작품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판타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기욤 뮈소'의 판타지는 귀엽다 못해 사랑스러운 <종이여자>와 노트북으로 연결된 로맨틱한 사랑과 스릴러가 잘 결합된 <내일>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며칠 전에 읽었던 작가의 초기작인 <완전한 죽음>(<그 후에>와 같은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뮈소'는 죽음의 세계나 그곳에서 온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 속에 자주 등장시킨다.

현실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 즉 판타지가 현실과 잘 어우려진 그런 소설들이 '뮈소' 소설의 특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 이 순간>은 판타지 심리 스릴러라는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소설이다. 이야기의 시작인 프롤로그에서는 5살 아서가 아빠인 프랑크 코스텔로와 작은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이층침대에서 아래로 뛰어 내리는 아서는 아빠가 자신을 잡아 줄 것이라고 굳게 믿지만, 결국에는 아빠가 의도적으로 살짝 비켜 나면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때의 아서의 아빠의 말,

" 아서, 인생에선 어느 누구도 믿어선 안 돼. (...) 설령 아빠라도 믿어선 안 돼" (p. 10)

물론, 이 소설의 큰 바탕이 될 문장인데, 이 책을 덮으면서 마치 작가가 독자들에게 호기롭게 던지는 메시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으니 어때? 보기좋게 속았지~~ 그러니까 어느 누구도 믿어선 안된다고 했지!! " 이렇게 독자들을 조롱하는 듯하다. 바로 그게 '기욤 뮈소'의 소설이다.

그후, 20년의 세월이 흘러 아서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레지던트가 됐고, 그의 아버지인 프랑크는 아서를 낚시를 가자면서 등대가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프랑크 코스텔로는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는 다른 유산을 줄 것이며 그들의 별장인 등대와 그에 딸린 집은 아서에게 유산으로 주겠다고 한다.

아서는 프랑크의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들이니, 자신의 진짜 자식들과 차별을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아버지는 거기에 2가지 조건을 단다. 타인에게 양도하지 말 것, 그리고 30년 전에 아버지가 막아버린 지하실의 벽면 안쪽에 있는 문을 열지 말 것.

탐탁지 않은 유산, 그런데 거기에 단서까지 달라니... 홀로 남겨진 아서는 즉시 지하실의 벽을 부셔 버린다. 그 순간 바람이 휘몰아 오면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아서는 등대의 저주를 받게 되고 긴 시간여행을 떠난다.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거의 1년만에 어딘가에서 다시 의식을 찾게 되는데...

이 등대는 할아버지가 구입했던 등대이고, 할아버지 역시 시간여행을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서는 할아버지로부터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24방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한 번씩 쐬야 하니 시간여행은 24년간 계속되며 한 번 떠나면 1년이 흘러야 다시 세상에 24시간 정도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24번의 시간여행을 다룬다. 그리고 할아버지와의 교류, 시간여행을 떠났다가 의식을 찾으면서 가장 먼저 만난 여인과의 사랑, 그리고 아들과 딸까지 두게 되는 이야기.

여기에서 많은 독자들은 등대의 저주는 왜 일어났을까? 그 저주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런 이야기가 전개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런데....

등대 지하실 금속판에는 이런 내용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 24방위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으리라." (p. 157)

아서 보다 먼저 시간여행을 떠났다가 24년만에 돌아오게 된 아서의 할아버지는 등대의 저주를 먼저 받았던 아서의 선배격이니 그가 겪었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아버지가 저주가 풀리던 날, 모든 것은 사라졌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아서의 사랑은 저주가 풀리면서 사라질 것인가? 아들과 딸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궁금증을 가져다 주지만, 그 해답은 '기욤 뮈소'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매력적인 반전 !!

<지금 이 순간>의 반전은 정말 흥미롭다. 마치 작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책 속에서 읽을 수도 있고,

" 글쓰기는 삶을 미리 살아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작가의 경험이 상상력을 더해 개성 있는 인물들을 창조해내기도 하고, 삶에 대한 성찰의 결과를 글을 통해 구현해 내기도 하죠, 글쓰기는 언어를 수단으로 하는 작업이기에 문장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고유한 리듬과 호흡을 살려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내기도 하죠, 요컨대 음악가가 새로운 작품을 작곡할 때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가치 있는 글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차유를 위한 방편이 될 수 없어요. 작가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글쓰기에 집착하죠, 미안하지만 당신과 나는 갚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 (p.p. 329~330)

소설 속의 소설, 액자소설이라고 하는,  그리고 '기욤 뮈소'라고 할 수 있는 작가. 그 이야기가 진짜 진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소설, 판타지인 듯 판타지가 아닌 소설.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시간여행.

" 내가 인생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 뭔지 말해줄까? 우리의 유일한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거야? (p. 308)

<지금 이 순간>을 통해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24년을 24일로 사는 사람, 1년을 하루로 살아야 하는 사람.

단 한 순간도 헛되게 살 수 없는 하루, 그 하루 동안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은 가장 소중한 시간, 단 1초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없는 순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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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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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하면 떠오르는 책은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이다. 처음 <끌림>을 접했을 때의 신선한 감동... 이 책은 2005년에 출간된 책인데, 그때만 해도 여행 산문집이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간결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그런 문장들이 참 좋았다. 책제목처럼 마구 끌리는 그런 느낌.

그런데 이제는 이런 여행 산문집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끌림>을 읽으면서 받았던 참신한 느낌들은 많이 퇴색했다. 그래도 여행 관련 에세이에는 한 꼭지 이상 이병률의 글들이 실려 있곤해서 간혹 작가의 글을 접하곤 한다.

'이병률'은 1995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리고 방송작가이자 여행작가이기도 하다.

시인이기에 그런지 그의 글을 읽으면 감상에 젖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다가오는 글들이 꽤 많기에 그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읽는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출간이 된지 5달이 지나서 읽게 됐다.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이라는 내용만을 갖고 펼친 책 속에는 이병률이 떠났던 여행 이야기와 사진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되는 여행 이야기는 국내 여행에서 느낀 단상들이 적혀 있고, 사진들도 꽃이나 들풀, 스쳐가는 풍경들이 주를 이룬다.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이병률이 세계 100여 개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 풍경, 단상들을 담은 책이라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이병률의 여행 국내편이다.

자신의 고향인 제천, 단양, 부산, 곰소, 진안, 제주... 뭐 국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이곳 저곳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는가 보다.

산과 바다, 섬과 육지, 도시와 촌락... 우리 주변에서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소박한 여행지.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풍경들, 스쳐 지나간 많은 것들. 그리고 옛 추억들.

그 바탕에는 여행이 있고, 사랑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여행 산문집인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의 '최갑수'의 삶과 많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러나 또 다른 색다름이 느껴지는 두 권의 책.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하는 그런 효과가 있는 여행 산문집이다. 구태여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정돈되는 그런 책들이다. 물론, 책 속에는 진한 외로움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그런 외로움 마저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 책 속의 글 중에서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것은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것은 꼭 이십대에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는 점이다. 이십대에 사랑을 해보지 않으면 골조가 약한 상태에서 집을 짓는 것처럼 불안한 그 이후를 보내게 될 것이며 살면서 안개를 맞닥뜨리는 일이 잦게 된다. 여행도 마찬가지. 이십대에 혼자 여행을 해보지 않는다면 삼십대에는 자주 허물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닮은 것은, 사랑도 여행도 하고 나면 서투르게나마 내가 누구인지 보인다는 것이다. (...)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 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 번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이다.

여행은 인생에 있어 분명한 태도를 가지게 하지

여행을 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너와, 여행을 다녀야 살아지는 나 같은 사람의 간극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래, 너는 여행의 조각이 아닌 다른 것들을 맞추면서 살아온 것일거야.

알고 있겠지만, 여행은 사람을 혼자이게 해. 모든 관계로부터. 모든 끈으로부터 떨어져 분리되는 순간, 마치 아주 미량의 전류가 몸에 흐르는 것처럼 사람을 흥분시키지,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풍성한 흡수를 기다리는 마른 종이가 돼. 그렇다면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먼 곳에서. 그 낯선 곳에서.

사람이 꽃

아름다웠던 낮과 밤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랑이라면 다른 세계로 옮겨가야 한다. 더이상 감정을 위조할 수 없다면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충격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사랑을 사려드는 이는 있지만 이별은 값이 엄청나서 감히 살 수도 없다. 그래서 이별은 사랑보다 한 발자국 더 경이에 가깝다.

◆ 내 옆에 있는 사람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 당신을 버린다는 것

그때는 내 마음이 아니었지요. 당신에게 먼저 떠나라 한 것. 내가 아니었지요. 당신 앞에다 이별을 놓은 것. 차가웠던 것. 그렇게 치워버렸던 것 모두 내가 아니었지요. 당신을 만났지요. 축제 같아서 살았고, 당신이 재 빈 괄호를 채워준 것으로 힘이 났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세상에 갚아야겠다고 믿었지요. (...) 당신과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졌다는 게 어딘가로 한없이 빨려 들어간 뒤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 것만으로 모든 게 끝일 것만 같았지요. 당신 앞에다 내 뒷모습을 놓은 것. 당신에게 받은 새장을 돌려준 것. 그렇게 끊어버리고 숨어버렸던 것, 어떡할까요. 그때는 내가 아니었는데, 바깥에 꽃이 피고 지는 것, 그 미어짐이 이토록 아픈데 어떡할까요.

'이병률' 시인의 여행 산문집만을 읽은 나, 불현듯 '이병률'의 시집이 궁금해진다. 산문집이  이토록 감성적인데, 그의 시는 얼마나 마음을 흔들어 놓을지...

◈ 이병률 시집

1.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 이병률 ㅣ 문학동네 ㅣ 2011

2. 찬란(문학과 지성 시인선 373 )/ 이병률 ㅣ 문학과지성 ㅣ 2010

3. 바람의 사생활 (창비시선 270 / 이병률 ㅣ 창비 ㅣ 2006

4. 눈사람 여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 이병률 ㅣ 문학과지성 ㅣ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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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 당신과 문장 사이를 여행할 때
최갑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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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여행작가인 '최갑수'가 또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를.

요즘에는 여행작가들의 여행 에세이가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내가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텐데>를 읽을 때만 해도 여행작가가 쓴 책들은 여행지의 풍경과 함께 저자의 단상들이 마음 속에 알알이 박혀서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국내 여행이나 해외 여행이 보편화되다 보니 책 속의 사진들은 독자들이 갔던 곳이기도 하고, 독자들이 그곳에서 자신이 멋진 컷을 찍은 곳이기도 하기에 그리 신선한 느낌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을 읽는 중간 중간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 읽는 시간도 그리 많이 걸리지 않고, 책 속의 글과 사진을 접하면서 마음이 순화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자기계발서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그리 큰 도움을 주지도 않는 책을 의뢰받아서 읽다 보니 머리만 아파오는 늦은 밤에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을 들고 처음부터 끝 페이지까지 한 번 쭈욱 펼쳐 보니 책 냄새가 정겹게 느껴진다. 책냄새, 정말 좋다.

여행 작가는 여행을 하고, 그곳의 사진을 찍고, 그곳에서 느낀 생각들을 글로 담아낸다. 때론 의뢰를 받아서 하는 여행이고 그곳에서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고 부러운 직업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그들은 여행을 즐긴다. 힘든 여정 속에서 때론 힘겨운 날들이 있을테지만 그들은 여행을 즐기기에 '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여행이 직업이다. 여행을 떠나고, 돌아와서는 그 여행에 대해 글을 쓴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떠난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부러워요. 여행이 직업이라니' 하지만 그들 역시 알고 있다. 우리의 여행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사실을,  (...) 여행지에서의 하루 하루가 마치 허들을 넘는 것과 같아서, (...) 게다가 우리가 기대했던 풍경은 출발하기 전, 우리가 상상했던 그것보다 훨씬 엉망이다. 여행이 직업이지만 그래서 참 피곤하지만, 오늘도 여행을 위해 배낭을 꾸리는 이를 보고 있으면 부럽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지만, 여행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설렌다. " (p. 264)

여행 작가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책과 음악을 좋아한다. 여행 중에 읽는 책들 그리고 음악 이야기가 그들의 책 속에는 반드시 (?)  담겨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의 내용은 작가가 읽은 책 중에서 마음에 남는 문장이 그 출처와 함께 먼저 소개된다. 그리고 그 문장을 토대로 작가의 여행 이야기,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 속에서 건져낸 작가가 사랑한 여행의 문장들을 먼저 읽어 보는데, 분명 그 책을 나도 읽었건만 그 문장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그 문장이 어떤 상황에서 왜 쓰여졌던가를 알 수 있기에 그 책에 대한 기억들이 새롭게 생각나기도 한다.

" 내게는 그 모든 글들이 여행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고 두세 번 소리 내어 읽곤 했다. 가끔 까닭 모르게 울컥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오래도록 방 안을 서성거렸다. 그동안 읽어온 글귀에서 문장을 뽑았다. 모두 생과 사랑과 여행에 관한 문장이다. 어차피 생은 사랑과 여행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니. 이 문장들이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사랑을 우리의 생을 조금씩 회복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 (프롤로그 중에서)

" 스스로를 끌어 안는 방법은 많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견뎌내는 것, 오후 다섯 시의 유치원에서 아이가 도화지에 공룡을 그리며 엄마를 기다리듯,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견뎌내고 행복해지려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내게는 여행이다. 나는 여행이라는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쓰다듬는다. " (p. 14)

여행작가 최갑수에게는 아주 힘든 일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한 해 였던 것 같다. 해결이 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 힘든 일들도 그냥 지나간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세상의 일은 내 맘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아둥바둥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니, 어쩌면 넓게 그리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 해결이 된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지나간 것  뿐이다. " (p. 30)

" 당신을 생각하지 않는 건 당신을 사랑해서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지." (p.178)

최갑수가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책 속에서 고른 문장들은 우리들에게 인생이 무엇인지, 사랑과 이별은, 슬픔과 외로움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그 문장과 함께 써내려간 여행작가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통해서 여행을 생각하게 되고, 사랑을 생각하게 되고, 그리고 내 자신의 내면 속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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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여자 스토리콜렉터 10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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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에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읽은 후에 '넬레 노이하우스'에 관심이 갔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타우누스 시리즈' 4번째 이야기에 해당되는데, 이 책이 출간되자 마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게 된다. 그만큼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답게 치밀한 구성으로 500쪽이 넘는 제법 두꺼운 책인데도 읽는내내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던 책이다.

그래서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을 차례 차례 읽으려고 했는데, 이제야 작가의 또다른 책인 <사랑받지 못한 여자>를 읽기로 했다.

 

<참고 : 타우누스 시리즈 - 1권 : 사랑받지 못한 여자, 2권 : 너무 친한 친구들

    3권 : 깊은 상처, 4권 :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5권 : 바람을 뿌리는 자, 6권 : 사악한 늑대 >

  

    

   

이 소설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첫 번째 소설로  형사 올리버 폰 보텐슈타인과 결혼하면서 형사생활을 그만두었다가 이혼 후에 다시 형사로 돌아오는 여형사 피아가 한 팀이 돼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타우누스 시리즈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읽을 때는 첫 번째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두 형사의 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는지 잘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만남을 알게 됐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의 시작은 이 도시의 저명인사인  하르덴바흐 부장검사가 포도밭에서 총을 입에 문 채로 자살한 사체로 발견되면서 부터이다. 타살 흔적이 없는 자살.

자살로 마무리질 무렵에 다른 장소에서 이자벨 케르스트너가 전망대에서 뛰어 내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의 죽음 역시 자살일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살한 여인은 신발을 한 짝만 신고 있다. 누군가 이자벨을 죽여서 그곳에 갖다 놓은 것은 아닐까? 이자벨 케르스트너의 신원을 조회하던 중에 그녀의 남편은 수의사이고, 결혼당시에 남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이자벨이 중간에 끼어 들어서 결혼을 했으며, 그당시 임신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남편인 미하엘 케르스트너와는 이미 헤어진 상태인데, 그들 사이의 딸의 행방이 묘연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자벨을 좋아하는 사람 보다는 그녀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중에 누가 이자벨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

이자벨은 이기적이고 사치와 허영 그리고 불륜으로 점철된 여자이다. 보덴슈타인 형사의 노련함과 피아 형사의 사건을 분석하는 날카로운 관찰력은 이 사건을 진실에 다가간다.

이자벨은 아름다운 자신의 외모를 수단으로 승마클럽과 제약회사 그리고 정재계 인사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진실을 밝히려다 보니 섹스 동영상과 비밀 노트까지 찾아내게 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음모와 야망, 그것을 부추기는 미모의 여인, 인간의 추악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다보니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시점에서도 이런 추악함은 가십거리로, 기사로 많이 올라오고 있음을 생각하니 인간의 민낯은 어디까지일까 그 추함을 금할 수 없다.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사건 속에서 숨겨진 이야기가 끝까지 숨겨져 있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는 감지가 된다.

왜 부장검사가 자살을 했을까 하는 의문과 이자벨의 죽음이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리소설을 몇 권만 읽어도 감지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감추어진 트릭이 그리 많지 않고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밝혀질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과정이기에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 비하면 구성의 치밀함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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