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병률' 하면 떠오르는 책은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이다. 처음 <끌림>을 접했을 때의 신선한 감동... 이 책은 2005년에 출간된 책인데, 그때만 해도 여행 산문집이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간결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그런 문장들이 참 좋았다. 책제목처럼 마구 끌리는 그런 느낌.

그런데 이제는 이런 여행 산문집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끌림>을 읽으면서 받았던 참신한 느낌들은 많이 퇴색했다. 그래도 여행 관련 에세이에는 한 꼭지 이상 이병률의 글들이 실려 있곤해서 간혹 작가의 글을 접하곤 한다.

'이병률'은 1995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리고 방송작가이자 여행작가이기도 하다.

시인이기에 그런지 그의 글을 읽으면 감상에 젖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다가오는 글들이 꽤 많기에 그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읽는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출간이 된지 5달이 지나서 읽게 됐다.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이라는 내용만을 갖고 펼친 책 속에는 이병률이 떠났던 여행 이야기와 사진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되는 여행 이야기는 국내 여행에서 느낀 단상들이 적혀 있고, 사진들도 꽃이나 들풀, 스쳐가는 풍경들이 주를 이룬다.

<끌림>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이병률이 세계 100여 개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 풍경, 단상들을 담은 책이라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이병률의 여행 국내편이다.

자신의 고향인 제천, 단양, 부산, 곰소, 진안, 제주... 뭐 국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이곳 저곳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는가 보다.

산과 바다, 섬과 육지, 도시와 촌락... 우리 주변에서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소박한 여행지.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풍경들, 스쳐 지나간 많은 것들. 그리고 옛 추억들.

그 바탕에는 여행이 있고, 사랑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여행 산문집인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의 '최갑수'의 삶과 많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러나 또 다른 색다름이 느껴지는 두 권의 책.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하는 그런 효과가 있는 여행 산문집이다. 구태여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정돈되는 그런 책들이다. 물론, 책 속에는 진한 외로움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그런 외로움 마저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 책 속의 글 중에서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것은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것은 꼭 이십대에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는 점이다. 이십대에 사랑을 해보지 않으면 골조가 약한 상태에서 집을 짓는 것처럼 불안한 그 이후를 보내게 될 것이며 살면서 안개를 맞닥뜨리는 일이 잦게 된다. 여행도 마찬가지. 이십대에 혼자 여행을 해보지 않는다면 삼십대에는 자주 허물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닮은 것은, 사랑도 여행도 하고 나면 서투르게나마 내가 누구인지 보인다는 것이다. (...)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 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 번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이다.

여행은 인생에 있어 분명한 태도를 가지게 하지

여행을 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너와, 여행을 다녀야 살아지는 나 같은 사람의 간극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래, 너는 여행의 조각이 아닌 다른 것들을 맞추면서 살아온 것일거야.

알고 있겠지만, 여행은 사람을 혼자이게 해. 모든 관계로부터. 모든 끈으로부터 떨어져 분리되는 순간, 마치 아주 미량의 전류가 몸에 흐르는 것처럼 사람을 흥분시키지,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풍성한 흡수를 기다리는 마른 종이가 돼. 그렇다면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먼 곳에서. 그 낯선 곳에서.

사람이 꽃

아름다웠던 낮과 밤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랑이라면 다른 세계로 옮겨가야 한다. 더이상 감정을 위조할 수 없다면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충격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사랑을 사려드는 이는 있지만 이별은 값이 엄청나서 감히 살 수도 없다. 그래서 이별은 사랑보다 한 발자국 더 경이에 가깝다.

◆ 내 옆에 있는 사람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 당신을 버린다는 것

그때는 내 마음이 아니었지요. 당신에게 먼저 떠나라 한 것. 내가 아니었지요. 당신 앞에다 이별을 놓은 것. 차가웠던 것. 그렇게 치워버렸던 것 모두 내가 아니었지요. 당신을 만났지요. 축제 같아서 살았고, 당신이 재 빈 괄호를 채워준 것으로 힘이 났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세상에 갚아야겠다고 믿었지요. (...) 당신과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졌다는 게 어딘가로 한없이 빨려 들어간 뒤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 것만으로 모든 게 끝일 것만 같았지요. 당신 앞에다 내 뒷모습을 놓은 것. 당신에게 받은 새장을 돌려준 것. 그렇게 끊어버리고 숨어버렸던 것, 어떡할까요. 그때는 내가 아니었는데, 바깥에 꽃이 피고 지는 것, 그 미어짐이 이토록 아픈데 어떡할까요.

'이병률' 시인의 여행 산문집만을 읽은 나, 불현듯 '이병률'의 시집이 궁금해진다. 산문집이  이토록 감성적인데, 그의 시는 얼마나 마음을 흔들어 놓을지...

◈ 이병률 시집

1.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 이병률 ㅣ 문학동네 ㅣ 2011

2. 찬란(문학과 지성 시인선 373 )/ 이병률 ㅣ 문학과지성 ㅣ 2010

3. 바람의 사생활 (창비시선 270 / 이병률 ㅣ 창비 ㅣ 2006

4. 눈사람 여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 이병률 ㅣ 문학과지성 ㅣ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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