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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누가 '에세이'를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붓가는대로 쓰는 것이라고 했는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래서 책의 첫부분에도 자신의 친필 편지를 실어 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같다. 친필 편지의글씨체를 보니 그의 성격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고 꼼꼼한 필체이다.
그리고, 이 책의 중간에도 몇 번 대한민국이라는 활자가 보이고, 사진에는 '삼성'의 쇼윈도가 비치고, 2007년 당시 인기있던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활자도 보인다. 크게 부각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간간히 보이는 그런 낱말이 친근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의 유머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독자들이 자신의 집을 장만하는데 어느 정도의 힘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독자와의 관계는 작가에게는 글을 통한 상상의 우정이라는 글을 적고 있다. 나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동물원가기', '행복의 건축'등의 에세이나 소설이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주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도 읽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작가의 글 스타일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의 저서를 읽을 때마다. 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아무리 에세이라고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안된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정도는 중무장을 하고 글을 읽어야 끝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나 할까? 어쨋든 같은 소재나 주제의 글도 그의 붓끝에 가면 깊은 사유와 관찰력으로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하는 느낌이다. '지식의 창고'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들같다는 생각, 또는 '갖가지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이 글을 옮긴 '정영목'님도 자신이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이라고 해석을 했으면 더 일에 대한 관점이 자연스러웠을지는 모르겠으나 '알랭 드 보통'은 평소의 글 스타일이 '한데 묶어 놓고, 서로 낯선 것들이 만나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효과를 살피며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사람 아닌가. 그런 면에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이 책의 제목을 잡을 때도 '일의 기쁨과 슬픔'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p371~372) 라고 옮긴이의 글에 쓰고 있다. 그러니까 '알랭 드 보통'은 일에 대한 한 개인의 감정만이 아닌 문명과 사회에 관한 깊고 은근한 통찰, 거기에 개인감정의 미세한 움직임과도 따로 놀지 않는 통찰을, 거기에 재치와 유머와 서글픔이 보석처럼 박혀 반짝이도록 글로 표현 한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과 이별 등에 관한 이야기들은 상당히 많으나 '일'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고한다.사랑의 영역과 일의 영역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으며,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아름다움, 권태, 기쁨, 그리고 가끔씩 느끼는 공포에 눈을 뜨게 해주는 책을 쓰고 싶었고, 일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글의 주제를 이와같이 잡았다고 한다. 그의 다른 글에서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쉽게 앉아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10개의 소제목을 중심으로 직접 자신이 문헌도 조사하고, 현장에 직접 투입되어서 같이 행동하면서 그 일에 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해서 글로 써 내려 간 것이다. 그가 주제로 삼았던 것들은 너무도 다양하다. '발트 해를 가로질러 펄프를 운반하거나, 참치 머리를 자르거나, 구역질 날 정도로 다양한 비스킷을 개발하거나,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 전직을 권유하거나, 한 세대의 일본 여학생을 매혹시킬 위성을 쏘거나, 들판에서 떡갈나무를 그리거나, 전선을 놓거나, 회계처리를 하거나, 탈취제 자동 판매기를 발명하거나, 항공사를 위해 강도가 높아진 코일 튜브를 만드는' (p368)이 모든 현장에서 그 일들을 직접해 보기도 하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보기도 하고, 인터뷰와 취재를 하기도 하면서 '일의 기쁨과 슬픔'에 관한 에세이를 쓴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에세이를 겸한 포토 르포르타주로도 기획된 것이어서 처음부터 사진작가인 '리처드 베어커'와 함께 작업을 했다. 사진은 모두 흑백사진으로 세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일의 이미지와 흑백사진이 가지는 이미지가 잘 맞아 떨어지는 감이 든다. 처음에 '알랭 드 보통'이 일에 관한 에세이를 시작하는 곳은 런던 가장자리 부두끝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곳에서 본 광경들로 부터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쓸 영감을 얻은 것이다. 부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써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특히 일이 우리에게 사랑과 더불어 삶의 의미의 주요한 원천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 쉬운 '물선의 관찰' 과정에서는 화물선의 입항을 통해서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들어오는 배인지를, 그리고 필요하다면 수치와 통계까지, 그리고 어떤 지역의 정보는 지역특색, 역사적 사실까지를 작가 특유의 예리한 관찰과 심리묘사까지를 겉들여서 써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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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이동'를 취재하기 위해 참치를 추적해 본다. 따뜻한 물에 사는 참치가 어떻게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지 그 과정을 배, 비행기등으로 이동하면서 알아 본다. 그러나 이렇게 유명한 작가도 난관에 봉착한다. 15개 식품업체에 접촉을 했지만,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혹시라도 어떤 문제가 야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어렵게 성공하여, 물류네트워트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서양 몰디브 원양어업 기지에서의 어선 승선, 그리고 50k에 달하는 참치를 잡아 몽둥이를 쳐서 죽이는 끔찍한 살생현장에서 냉동실로 옮겨 어류가공공장의 가공과정을 거쳐서 항공기 화물칸에 실려 런던 브리스톨 교외의 한 슈퍼마켓에서 팔려서 한 가정의 어린이의 스테이크로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계속 추적해 나간다. 인도양의 바닷속에서 52시간에 걸친 과정의 모든 순간을 목격하고 느끼고 글로 써 내려 가는 것이다. '어휴, 정말 보통의 작가가 아닌 알랭 드 보통만이 가능한 글쓰기이다.
10개의 소재들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친다. 세계적인 비스킷 공장도, 떡갈나무를 그리는 화가의 그림작업도, 회계사들의 업무도, 송전공학도. 항공산업도.....
직접 부딪혀서 글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여기에 깊이 있는 작가의 지식까지 첨가되니 읽기에 쉬운 에세이가 아닌, 힘들게 읽혀지는 에세이가 된다. 그의 에세이를 머리를 식히기 위한 글로 생각하면 너무도 큰 착오이다.
글 중에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그나마 6. '그림'이다, 떡갈나무를 주로 그리는 화가의 작업과정을 따라잡고, 전시회와 판매과정를 통한 '일'의 의미찾기는 그나마 많이 접해온 이야기이기에 무리없이 읽을 수 있다. 7. '송전공학'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이다. 물리적 소양이 필요한 글이라고 해야 할지, 일이라는 개념만을 봐야 할지 혼돈과 이해불가의 문장들도 섞여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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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은 어떤 거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확 달라지는 것 같다. 일 안에 완전히 묻혀 있으면, 그 의미는 커녕, 즐거움이니 괴로움이니 하는 것 조차도 아예 사라져 버린 상태가 될 것이다. (...)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말이 나오려면, 일을 원경으로 멀리서 보아야만 할 듯하다. (...) 알랭 드 보통은 타의에 의해 관찰자가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관찰자의 자리에 서게 된 경우다. (...) 자유자재로 줌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도 초점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원경, 중경, 근경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입체감을 살려 가면서 일을 명상한다는 것이 그의 진짜 장점이다. (p373)
그렇다. 알랭 드 보통은 자유자재로 그것도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일이라는 현장의 깊숙이 들어가서 직접 보고 느끼고, 관찰하면서 우리에게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 해준다. 일이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일부분이고, 진정한 삶을 위해 일을 하는 과정에서 기쁨도 느낄 수 있고, 권태로움도, 슬픔도 느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그런데, 좀 어렵기는 하다.'알랭 드 보통'의 스타일이니까.... 그래도 또 그의 작품이 나오게 되면 나는 호기심에 책을 손에 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