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대한 백과사전 - 눈보라 속에 남겨진 이상한 연애노트
사라 에밀리 미아노 지음, 권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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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대한 백과사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많이 망설여지는 소설이다. '사라 에림리 미아노'의 장편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기존의 장르에서 생각하는 장편소설을 생각한다면 읽는데 많은 혼란이 생길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 지금까지 보았던 장편소설의 구성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많은 혼란을 거듭하면서 읽어야만 했다. 특히, 출판사 소개글과 추천글을 먼저 읽고 접했기에 그런 혼돈이 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눈과 관련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접한다면 독자들은 나처럼 좀 어리둥절하고 이 책속에 나오는 '눈'에 대한 백과사전적 의미들과 여기 저기에서 발췌된 내용의 글들의 연관성을 찾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을 일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사라 에밀리 미아노'는 1974년, 뉴욕 버팔로 출생이다. 2002년 첫 장편소설인 '눈에 대한 백과사전'의 발표로 '에즈라 파운드', 'T.S. 엘리웃'등과 같은 포스트 모던 계열의 작가의 전통을 잇는 작가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또한 두번 째 작품인 '렘브란트 반 라인'이라는 작품은 '눈에 대한 백과사전'보다 더 일찍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포스트 모던'계열의 문학작품이라는 사실이다.

혁신적이었으나 다소 보수적인 성향으로 대중과 유리되었던 모더니즘에서 탈피하여 20세기 후반에 개인의 개성과 자율성을 되찾고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하는 경향의 사조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에서는 기존의 소설 형태를 부정하는 앙티로망(반소설)이 나왔고, 작품 속의 주요인물이 히어로(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안티히어로가 되는 경향을 보였다. -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대한 설명(인터넷 검색 내용을 요약)
'포스트모더이즘 문학'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그 소설을 읽어나가야 이해가 더 쉽지 않을까 생각된다.
2000년 12월 12일. 폭설로 인해 고립된 뉴욕 버펄로 시 곳곳에서 사고가 이어지고, 한 남자가 교통사고로 즉사한다. 현장에서는 A부터 Z까지 알파벳순으로 눈에 대한 표제어들이 가득 수록된 노트 한 권이 발견된다. 백과사전식 노트의 내용은 Angel(천사), Blindness(설맹雪盲), Crystal(결정) 등 눈을 떠올렸을 때 자연스레 연상되는 단어들로 시작해 눈에 대한 과학적인 정의, 시詩, 희곡, 역사적인 명제나 고전에서 발췌한 눈에 관한 이야기, 환상과 신화까지를 넘나들고 있다.
그저 누군가 눈에 대해 굉장한 관심을 가진 사람의 조금은 특별한 작업으로 여겨졌을 법한 이 노트는, 한 눈 밝은 작가이자 편집자의 손에 쥐어지면서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차가운 눈에 빗댄 이 위대한 저술은 실은 노트의 주인이 차마 생전에 고백할 수 없었던 뜨겁고 절절한 사랑의 기록인 것이다.
작가인 사라 에밀리 미아노가 사라진 현장에서 발견된 노트의 목적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통해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동시에 눈처럼 희고 깨끗하며 순수한, 가슴 먹먹한 사랑의 연대기로 읽을 수 있는 매우 독특하고 실험적인 소설이다
(출판사 리뷰중에서)
 이 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출판사 리뷰를 인용했다. 이처럼 폭설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남자의 노트에 쓰여진 글들은 우리가 백과사전을 찾을 때처럼 알파벳 순으로 나열되어았다. A부터 z 까지, 모두 눈과 관련된 단어들이다. 
  

 
   
 사전의 의미를 찾아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어쩌면 그 중에는 "왜 눈과 관련이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단어들이 있을 것이다. 이 단어들과 얽힌 글은 출판사 리뷰에서처럼 '시, 노래, 전설, 연극 대본, 여러 문학작품인 고전들의 어느 한 부분을 발췌한 내용들, 크리스마스 시즌에 장식을 위한 게획, 성서의 내용, 주고 받은 편지글, 일기형식의 글.... 가장 이색적인 것은 사자(死者)검증조서도 있다.
그리고, 발췌한 문장의 끝에는 그 작품과 관련되어서 참조할 페이지가 기록되어 있고, 참조 페이지를 따라 가서 그 글의 내용에 관한 설명이나 작가의 설명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참고 문헌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네와 같은 미술가에서부터 엘리웃, 입센, 야훼.... 그리고 살인자까지 등장한다. 다소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한 눈 밝은 작가이자 편집자의 손에 쥐어지면서 조금은 다른 의밀를 가지게 된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백과사전의 어떤 부분을 써놓은 것같은 내용에서 눈과 관련이 있는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찾아 낸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작가인 사라 에밀리 미아노가 본인을 교통사고에서 사라진 작가로 설정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바로 아래와 같은 버팔로 경찰서의 사람 찾는 광고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나온 노트의 단어들을 읽어가면서 그곳에서 독자는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2월 27일
사랑하는 M
당신과 나는 얼음과 불입니다. 얼음은 환한 불꽃에 비쳐질 때 가장 멋지며, 불은 얼음의 렌즈에 반사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으면 불은 얼음을 녹이고, 그다음 물은 필연적으로 불꽃을 꺼뜨리고 맙니다. 상호 아름다움에서부터 상호 파괴성이 자라납니다. 고의적이지도 계획적이지도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왜 시계는 거꾸로 돌지 못하며 왜 미칠듯한 열망은 계속되지 못할까요? 왜 우리는 꼭 어른이 되어야 할까요? 석양이 헌드레드 에이커숲을 부드럽게 넘어갈 때 그저 당신과 나, 티거와 푸우만 있는게 더 멋지지 않을까요? 왜 당신은 그렇게도 오만해야 합니까?     버터플라이
   (P108)


7월 7일
친애하는 버터플라이
당신이 허락하든 말든. 나는 다정하면서도 불안정한 당신에게 내 행복과 당신의 행복 모두를 맡기겠습니다. 당신이 내 마음을 모른척하며 호응해주지 않아도, 나는 당신과 내가 함께 창조할 수도 있었던 인생을 반영하는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을 홀로 만들겁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신과 함께 그 작품을 창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이 당신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물론 받기 어려운 기적을 통해서 우리의 사랑을 이루리라 믿습니다.   모스
  (P123~124)


엄마는 내게 너무 많은 걸 털어놓았다. 엄마가 그녀만의 작은 세계로 나를 들어오게 허락한 지금, 나는 깨달았다.  엄마와 내가 손을 뻗어 그 모든 세월을 껴안음으로써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나는 그 진실을 일별한 다음 닫혀 있는 또 다른 문의 뒤편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가슴 속 깊은 어딘가에 숨겨진 그 문에는 내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누구에게도 말해지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우루)를 보라.       M 구에리리, 로드아일랜드
(P342참조)     (P324~325)

바로 포스트모던 계열의 문학은 이렇게 어떤 이야기 내용이나 결말을 보여주기 보다는 미완의 이야기에서 독자들 스스로 결말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한 편의 장편소설이라기 보다는 눈과 관련이 있는 짧은 글들의 모음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모음들속에서 백과사전적 지식도 덩달아 얻어 가면서....
한 번의 읽기로는 좀처럼 이야기의 가닥이 잡히지가 않아서 끝까지 읽은 후에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차근차근 다시 한 번 읽어 나가는 것이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이 쏟아지는 책들의 홍수속에서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실험적 소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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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젝스키스 4집
젝스키스 노래 / 포이보스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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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이돌 그룹의 음반을 구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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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lm - Episode 1
더 필름 (The Film) 노래 / 열린음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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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이자 작곡가인 the film의 세번 째 앨범이다. 그는 2001년 KBS가요 동상, 2001년 제 13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 템포의 발라드곡인 1번 트랙의 ’두근두근’은 2번 트랙의 ’아직도 두근두근’보다는 약간 경쾌한 느낌이 나는 곡이기도 하고 더 나중에 만든 곡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두근두근’이 좀더 진심이 담겨 있는 것같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더 반응이 좋다.

 

'아직도 두근두근’에는 (After 3years)라는 글이 함께 쓰여 있는 것처럼 그가 오랫동안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3년후에 쓴 곡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연인과의 첨 만남에서 느끼던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의 소리가 그대로 표현된 곡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이 가는 곡이다. 
제4트랙의 곡인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는 얼마전 출간된 그의 감성 에세이인 ’사랑에 다친 사람들에 대한 충고’의 ost 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오랜만에 앨범과 에세이를 들고 우리곁에 나온 ’the film’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중독성이 강한 앨범이 바로 ’두근두근’이다. 




두근두근(제1트랙곡 중에서)
두근두근 - 두근두근 -
바보처럼 내 맘을 들켜 버렸네
심장이 뛰나봐
가슴이 떨려오나봐
그대 앞에만 서면 난 두근두근

하나 (5트랙곡 중에서)
하나
너에게 원하는 게 있어
오래 전에 지나간 일이지만
함께 했던 처음이 믿어지지 않았듯이
이제 마지막 얘기를 하고 싶어.

잘 지내렴 내 인연이 아니라면
잘 지내렴 부디 행복하게 살아
혹시라도 한밤에 아프지는 말아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어울리는 사람 꼭 만나야 해

사랑후의 마음이라면 한 번 ’더 필름’의 3집을 들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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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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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심사를 맡으셨던 분들의 심사평이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도 덤덤하지만 뿌리칠 수 없는 이끌림이 있는 휴머니티가 느껴지는 따뜻하고 좋은 소설이라는 평이었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내나름대로 정리해 본 글) 특히, 작가 공지영,정이현,이순원, 김원우 그리고 번역가인 김석원,문학평론가인 김윤식 까지 각 분야의 내놓으라는 분들의 평이었다.



작품은 대필작가의 일상이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무미건조하게 전개된다. 아침과 점심 중간에 라면을 먹기도 하고, 맛있는 동태찌개집을 가기도하고, 대필을 부탁하는 사람들과 전화를 주고 받기도 하고...... 그런데, 대필작가의 일상이기에 대필작업을 통한 작품을 쓰는 과정의 이야기가 엿보인다. 단어선택의 신중성에서부터, 대필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이야기까지 대필작가의 세계가 얼핏 보인다. 대필작업을 하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그만의 인생과 가치관이 숨쉬고 있다.

'대필은 내가 만족스러운 글이 아니라 상대가 만족할 글을 써 주는 일이다.'(p11)

'세상은 하루에 두 번씩 거리의 색채를 바꾼다. 해가 뜰 때보다 질 때가 갑작스럽고, 더 슬프다. 몰락이라는 단어는 석양에서 왔을 것이다. '(p11)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복없는 담담한(정이현 작가의 표현처럼 '덤덤한'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같은 이야기들이다. 삶이 그를 어쩌면 약간은 어눌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삶의 흐름에 그저 순응하면서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한 생활인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때는 여기 저기 출판사일을 하다가 귀농까지 하기도 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결하지 말자. 나에게 있는 것만 가지고 살자.(p112)
어쩌면 '폴오스터'가 젊은 날의 자신의 자전적이야기를 담았던 '빵굽는 타자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돈벌이를 위해서 번역, 서평, 닥치는대로 글쓰기를 했던 이야기를 닮은 듯도 하지만, 또 그와는 다른 새롭고 특이한 설정들이 이 작품에는 숨어 있다.
심사위원이었던 작가 공지영의 말처럼  책장을 넘길수록 책속에 빠져드는 마력이 이 책에는 숨어있다.
그의 실제 거주지이기도 했던 동교동, 서교동, 연남동에 이르는 곳의 풍경의 섬세한 묘사는 그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섬세한 거창하게 치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섬세하게 다가오는 심리묘사가 너무 담담한 글들로 쓰여져서 읽을수록 마음이 더 아파오는 그런 이야기이다.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이야기, 진돗개라고 믿었던 태인이와의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책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작품세계로 자꾸 자꾸 빨려 들어간다. 힘있게 빨려들어 오도록 하지도 않는데,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나의 눈시울에서는 눈물 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너무도 외롭고 쓸쓸하고 어쩌면 세상을 향해 한 번도 큰소리쳐 보지 못한 힘겨운 삶의 모습이었지만 그에게는 그만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무심코 발견한 죽은 아내가 서각으로 새겨놓은 문패....
'아내의 서랍에서 문패를 발견했다. 아홉 번 째 집 두 번 째 대문. 무슨 뜻일까 (p93)
왜 아내가 이런 문패를 새겨 놓았는지 '아홉 번 째'까지는 힌트가 있지만 '두 번 째 대문'의 은유는 독자들이 찾아야 할 숙제인 것이다.
아내가 다시 말했다."주는 쪽은 자기가 주는 게 무엇인지 몰라요, 받는 이가 알아요." "준 게 없는데?" " 당신이 준 건 태인이가 알겠지요" 순간, 아내를 처음 만난 날부터 함께 살아온 날들이 눈앞에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아내는 나에게 받은 게 있을까'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어느 회사의 사보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시에는 내가 그때껏 어느 시에서도 보지 못한 놀라운 대범함이 있었다. 인생의 가장 고독한 지점에 남기는 한 마디 자기 목소리, 거기에서 오는 간결한 대범이었다. (p185)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업다고 생각되기에 더 마음이 아픈 그런 사랑.
그래서 혼자 남겨진 사람에게 더 가혹하고 외로운 것이 인생이 아닐까? 비록 먼저 다른 세상으로 떠났지만 아내의 마음은 참 예쁘다. 그래서 그의 모습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내 생각이 나면 나는 새벽에 거리로 나간다. 깊이 잠들어 있는 거리를 혼자 걷는다.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다. 그날, 모든 것이 좋았다. 꿈결같기만 한 그날 새벽거리.바람도,가로수도, 불 꺼진 창들도,모든 것이 정갈했었다. 그래서 기억은 쓸쓸하지 않다. 새벽 거리를 걷고 있으면 아내를 느낀다. (p191)
이 작품의 특징이라면, 주인공의 삶속에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공존한다. '일상과 환상'이 함께 존재한다. 꿈인듯하지만 현실일 수도 있고, 환상인듯하지만 일상일수도 있다. 대필작가의 삶이 그렇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꾸며서 의뢰인에게 써준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도 자신만의 가치관이 존재한다.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뚜렷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너무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할 정도로....
그리고, 너무 덤덤한 일상이지만, 그속에는 추억과 같은 환상이 존재한다. 일상에서는 외롭고 쓸쓸하고 힘겹지만, 환상속에서 죽은 자들을 만나고, 죽은 아내를 만나고, 명품인듯했지만 결코 진짜 진돗개가 아니었기에 더 진돗개처럼 활동하려고 했던 태인이가 있는 것이고, 대필 의뢰인이었던 장자익 노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 그 이상의 큰 힘이 되기에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또 한 가지의 첨가한다. 주인공이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넘나들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써내려간다. 현재에서본 과거의 모습들. 그속에서도 환상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과거속에서 일상의 깨달음을 느낀다.
그에게는 우연과 운명이 또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
모든 우연은 하나의 징조이다. 눈 앞에 다가온 운명이다. (...) 하지만 우연은 의식되는 순간 우연으로 그친다.(...) 우연을 운명으로 의식하는 순간 운명은 바뀐다. 안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것이 시작된다. (...) 운명도 '모르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아는 건, 안다는 그것으로 인해 운명이 아니다. (p203)
알듯 모를듯, 이렇게 그의 인생에는 우연과 운명이 드나든다.
평범한 것같지만 그렇지 않은 대필작가의 일상속의 이야기에서 대필작가의 작품구성과정을 엿볼 수도 있고, 이것이 작가 자신의 문학과 작품활동에 접근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느껴본다. 그리고, 죽은자(아내, 장자익노인, 진돗개 태인)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에 움츠리고 있는 생각들을 끌어내는 이야기의 틀이 참 특색있게 생각된다. 우연과 운명, 죽은자와 산자, 현재와 과거, 일상과 환상이 공존하는 가운데, 주인공의 일상은 가난하고 쓸쓸하지만 마음은 소박하고 따뜻한 사랑이 감추어져 있다. 그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줄 유기견 몽이의 마지막 등장이 사랑의 메신저같다는 생각이 든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작가의 말중에서)
작가의 이말이 뇌리를 스쳐간다.
사람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는 1992년에 <문화일보>를 통해서 등단하였지만 그동안 생계를 위해서 대필작가의 길을 걸어 왔는데, '아홉 번 째 집, 두번 째 대문'을 통해서 제1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이라는 큰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으니 앞으로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길이 활짝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 독자의 생각일 것이다.
아주 독특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순식간에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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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촌에서 -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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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년간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으로 일했던 '김유경'님의 글과 사진작가 '하지권'님의 사진이 멋스럽게 어우려진 책이 바로 '서울, 북촌에서'이다. 흔히 '북촌'하면 삼청동과 가회동 일대를 일컫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에서는 그곳에만 한정지어서 '북촌'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의 옛조상들의 멋과 전통이 있는 강북지역의 한옥촌을 비롯한 궁궐터와 옛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많은 곳들의 골목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옛스러운 모습과 풍취가 좋은 곳들, 성벽에 둘러싸여 있던 곳들,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들을 모두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이 책에서 '친근한 숨은 힘같은 것이 느껴지는 서울 생활의 한 전형으로 붙여진 이름'(p5)이 북촌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2003년이래 사진작가인 하지권씨와 동행하면서 심도있는 취재를 시작하였으니, 이 책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품을 팔아서 얻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북촌'에 대한 기억은 인사동 쌈지길 정도가 기억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북촌에 대한 기억이 아주 많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안국동에 있는 안동별궁에 위치한 풍문여자중고등학교를 다녔으니, 그 일대가 나의 젊은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강남으로 이전을 한 많은 학교들이 그곳에 상당수가 있었다. 이화여고, 배재, 진명, 숙명, 창덕, 경기여고, 경기고, 중앙, 휘문, 중동 등이 그 일대의 중고등학교였다. 버스노선도 많지가 않아서 그 당시에는 종로2가, 광화문, 무교동, 광교에서 부터 걸어 다녔으니, 봄부터 가을에는 여학생의 하얀 교복과 남학생의 파란색, 회색 교복의 물결이 그 일대를 수놓았다. 어려서 부터 안국동에서 인사동에 이르는 등하교길에 골동품상이며, 고가구점을, 조계사에서 관훈동에 이르는 길에는 서예용구점, 탱화와 불상, 그리고 세밀하게 목련, 목단, 국화 등을 수놓은 고수예품을 파는 상점들을 끼고 등하교를 했으니, 자연스럽게 학창시절부터 북촌의 멋스러움을 느끼면서 자랐다고 생각된다. 그당시에는 골동품상들의 주인들도 친절해서 하교길에 학생들이 기웃거리면서 이것 저것 신기한듯 살펴보아도 잔소리 한마디하지 않고 반겨 주었었다. 거기에 학교의 사생대회와 미술대회는 항상 그당시 비원이라고 불리던 창덕궁의 깊은 궁궐에서, 아니면 경복궁의 경회루에서 하였으니, 고궁과의 인연도 깊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경회루를 맘대로 걸어 다니고, 창덕궁의 향원정도 멋대로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특히, 학교 뒷담을 따라 가회동에 이르는 길에 전 대통령인 윤보선의 저택은 담길이만도 끝이 없었으며, 그 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위을 따라 나즈막한 한옥들이 꽤 있었다. 이런 시절을 추억을 되새기면서 읽는 '서울, 북촌에서'는 정말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책임에 한 눈 팔시간도 없이 책에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에는 마지막 남은 900여 채의 한옥들이 있다고 한다. '600년 봉건 사회의 핵심을 형성한 서울 사람들의 조용한 자신감이 서려 있는 마지막 모습' (p37)을 작가는 골목 골목을 따라 다니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전해 준다. 경복궁 서쪽 통의동에는 대궐 환관들의 집들이 있었는데,안채와의 연결이 비밀스러운 구조로 지어져 미로같던 건축물들이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거의 보호되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체코의 프라하에 가면 '황금소로'가 있는데, 길지도 않은 좁은 골목들이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살았고, 소설가 카프카의 작업실이 있었다고 관광객이 발디딜 틈없이 북새통을 이루고, 유럽 광장의 중세 시대의 보도블럭은 닿고 닿아서 빤질빤질할 정도로 오래되었는데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경박한 인식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같다. 개발보다는 보존을 해야 되는데, 그대로 두면 아름다운 골목길들도 소방도로 확장이라는 미명하에 넓은 차도로 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있어야 운치가 있는 길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구태여 개발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왜 인위적인 모습의 이상한 기형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키는지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행정담당관들의 무지를 한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또 아쉬운 것은 한옥을 비롯한 옛모습의 건물에 시멘트 범벅을 해 놓은 모습은 아예 얼굴을 들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가 수치스러웠던 경우도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을 일깨워준다.

 
전 총리이자 고대 총장일 지내셨던 김상협 총장의 개성음식 이야기는 우리의 마지막 남은 옛 음식에 대한 정갈함과 깔끔함과 함께 맛깔스러운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집의 안방 문짝에 쓰여진 예서체나 산수화, 그리고 민화에서 엿볼 수 있는 전통의 멋이 그대로 나타난다. 옛 조상들은 정원의 담에도 화초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화초담은 정원의 대용 역할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삼청동에 관한 글이다.
'이 곳을 지나는 인파는 단순히 가게들이 호화로워서 쳐다보는 것이 아닌 듯하다. 옷이나 음식이나 국적불명에 소위 퓨전이 범람하지만 삶의 어떤 정수라고 할 배경으로 쌀가게 옆에 보석 가게가 나란한 동네길이 태연해서 좋다.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박물관과 화랑과 대궐, 신구가 엇갈리는 건축과 진열장의 눈요깃거리, 다양한 음식점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천천히 떼고 여기저기 눈길을 주며 한가롭게 지난다. 오랜 골목길과 새 건물, 미술품과 진열장의 상품, 먹을 것과 가게 꾸민새, 예술과 자본 등을 만나는 길이다. 보도 폭이 좁고 오르락내리락 불편해도 삼청동 길의 생명력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골목을 들어섰다. 나갔다. 절벽위 맹현으로 올랐다 내려왔다 하는 시간은 전통으로 회귀하는 휴식이 된다. 더 좋은 점은 어슬렁거리는 산책이 무한하면서도 언제든지 바로 도심 속 업무로 복귀가 가응하다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삼청동은 불과 한 발짝 떨어져 있다. '(102~103) 바로 삼청동의 진정한 매력은 주택가의 천연한 분위기인데, 이미 그 매력은 반감되고 있다고 한다. 그냥 보존할 곳은 그대로 놓아두면 좋으련만....
유명한 삼청각은 1973년 남북회담을 위해서 지어졌는데, 지금도 이처럼 잘 지은 한옥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혜화동에서 성북동 올라가는 길목에 기념물 또는 민속자료로 지정된 예쁜 한 옥 세 채, 바로 한용운의 심우장, 이태준의 집, 이재(또는 이종상)의 별장이 있는데, 이 한옥들도 제대로 돌보지를 못하고 있다.
내가 어릴적엔 세검정이란 곳이 물놀이가던 곳이고, 이곳의 자두가 맛나기로 유명했었는데,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은 안평대군의 별장, 이항복의 별장, 흥선대원군의 석파정이 있다. 그런데, 이곳들도 세검정 바위아래까지 차가 드나들고, 생활하수가 흐르고 세검정 높은 바위벽에는 시멘트범벅이 되어 있다고 한다.  도시계획도 중요하지만 역사와 미학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가로 정비로 옛 정취를 찾아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노라.... 이렇게 서울, 북촌을 누비면서, 맛집도 둘러 보고, 연주회가 열리는 곳도 소개해 주고, 전시회와 박물관도 알려주니 꽃피는 따뜻한 봄날에는 서울의 북촌 나들이를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골동품하면 인사동이 본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곳도 인사동 개발로 아기자기한 맛을 잃은지 오래되었다. 여기에서 청진동쪽으로 나와서 낙지골목에서 낙지볶음과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을~~~ 대학시절 이코스도 대학생의 낭만이 깃들었던 추억의 장소들이지만, 언젠가 한 번 가보니, 옛 모습을 찾기 힘들었고, 남아 있는 낙지 골목도 너무 지저분하고 퇴락해서 마음만 상하고 온 기억이 난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개발과 보존을 왜 조화롭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서울의 상징은 무엇일까? 저자는 보신각, 광화문(익살스러운 해태상까지, 그런데 해태를 언제부터 해치라고 했을까? 해태의 원말이 해치이고 서울의 상징이라고 한다.), 세종문화회관, 성돌이(서울 성곽돌기, 서울 도심을 둘러싸고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에 이르는 성곽 18.2km에 이르는 길) 등을 들고 있다.



재동에 있는 백송부근, 조선말기의 역사적 사실들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 살았고, 그곳에서 역사적 모의가 이루어 지기도 했던 곳들, 그리고, 대궐여인들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들이 역사속 뒷이야기들로 재미를 더한다. 그밖에 성균관, 5월의 종묘대제, 불교 영산재, 각종 굿판이 일어나는 국사당의 이야기...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서울, 북촌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로 우리가 알고 싶었던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나처럼 인생을 한참 살아온 사람들은 옛 추억이 깃든 골목 골목이 눈에 선하면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만들어 준다.
이야기가 있어서 재미있는 서울의 북촌....
그러나, 개발에 밀려서 옛 모습이 허물어지고, 허술한 문화재청의 관리에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야기들이 흘러간 역사속 이야기처럼 들려 온다. 그러나,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친근한 힘처럼 서울, 북촌의 이야기가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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