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에서 -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다년간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으로 일했던 '김유경'님의 글과 사진작가 '하지권'님의 사진이 멋스럽게 어우려진 책이 바로 '서울, 북촌에서'이다. 흔히 '북촌'하면 삼청동과 가회동 일대를 일컫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에서는 그곳에만 한정지어서 '북촌'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의 옛조상들의 멋과 전통이 있는 강북지역의 한옥촌을 비롯한 궁궐터와 옛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많은 곳들의 골목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옛스러운 모습과 풍취가 좋은 곳들, 성벽에 둘러싸여 있던 곳들,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들을 모두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이 책에서 '친근한 숨은 힘같은 것이 느껴지는 서울 생활의 한 전형으로 붙여진 이름'(p5)이 북촌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2003년이래 사진작가인 하지권씨와 동행하면서 심도있는 취재를 시작하였으니, 이 책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품을 팔아서 얻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북촌'에 대한 기억은 인사동 쌈지길 정도가 기억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북촌에 대한 기억이 아주 많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안국동에 있는 안동별궁에 위치한 풍문여자중고등학교를 다녔으니, 그 일대가 나의 젊은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강남으로 이전을 한 많은 학교들이 그곳에 상당수가 있었다. 이화여고, 배재, 진명, 숙명, 창덕, 경기여고, 경기고, 중앙, 휘문, 중동 등이 그 일대의 중고등학교였다. 버스노선도 많지가 않아서 그 당시에는 종로2가, 광화문, 무교동, 광교에서 부터 걸어 다녔으니, 봄부터 가을에는 여학생의 하얀 교복과 남학생의 파란색, 회색 교복의 물결이 그 일대를 수놓았다. 어려서 부터 안국동에서 인사동에 이르는 등하교길에 골동품상이며, 고가구점을, 조계사에서 관훈동에 이르는 길에는 서예용구점, 탱화와 불상, 그리고 세밀하게 목련, 목단, 국화 등을 수놓은 고수예품을 파는 상점들을 끼고 등하교를 했으니, 자연스럽게 학창시절부터 북촌의 멋스러움을 느끼면서 자랐다고 생각된다. 그당시에는 골동품상들의 주인들도 친절해서 하교길에 학생들이 기웃거리면서 이것 저것 신기한듯 살펴보아도 잔소리 한마디하지 않고 반겨 주었었다. 거기에 학교의 사생대회와 미술대회는 항상 그당시 비원이라고 불리던 창덕궁의 깊은 궁궐에서, 아니면 경복궁의 경회루에서 하였으니, 고궁과의 인연도 깊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경회루를 맘대로 걸어 다니고, 창덕궁의 향원정도 멋대로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특히, 학교 뒷담을 따라 가회동에 이르는 길에 전 대통령인 윤보선의 저택은 담길이만도 끝이 없었으며, 그 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위을 따라 나즈막한 한옥들이 꽤 있었다. 이런 시절을 추억을 되새기면서 읽는 '서울, 북촌에서'는 정말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책임에 한 눈 팔시간도 없이 책에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에는 마지막 남은 900여 채의 한옥들이 있다고 한다. '600년 봉건 사회의 핵심을 형성한 서울 사람들의 조용한 자신감이 서려 있는 마지막 모습' (p37)을 작가는 골목 골목을 따라 다니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전해 준다. 경복궁 서쪽 통의동에는 대궐 환관들의 집들이 있었는데,안채와의 연결이 비밀스러운 구조로 지어져 미로같던 건축물들이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거의 보호되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체코의 프라하에 가면 '황금소로'가 있는데, 길지도 않은 좁은 골목들이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살았고, 소설가 카프카의 작업실이 있었다고 관광객이 발디딜 틈없이 북새통을 이루고, 유럽 광장의 중세 시대의 보도블럭은 닿고 닿아서 빤질빤질할 정도로 오래되었는데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경박한 인식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같다. 개발보다는 보존을 해야 되는데, 그대로 두면 아름다운 골목길들도 소방도로 확장이라는 미명하에 넓은 차도로 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있어야 운치가 있는 길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구태여 개발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왜 인위적인 모습의 이상한 기형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키는지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행정담당관들의 무지를 한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또 아쉬운 것은 한옥을 비롯한 옛모습의 건물에 시멘트 범벅을 해 놓은 모습은 아예 얼굴을 들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가 수치스러웠던 경우도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을 일깨워준다.

 
전 총리이자 고대 총장일 지내셨던 김상협 총장의 개성음식 이야기는 우리의 마지막 남은 옛 음식에 대한 정갈함과 깔끔함과 함께 맛깔스러운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집의 안방 문짝에 쓰여진 예서체나 산수화, 그리고 민화에서 엿볼 수 있는 전통의 멋이 그대로 나타난다. 옛 조상들은 정원의 담에도 화초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화초담은 정원의 대용 역할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삼청동에 관한 글이다.
'이 곳을 지나는 인파는 단순히 가게들이 호화로워서 쳐다보는 것이 아닌 듯하다. 옷이나 음식이나 국적불명에 소위 퓨전이 범람하지만 삶의 어떤 정수라고 할 배경으로 쌀가게 옆에 보석 가게가 나란한 동네길이 태연해서 좋다.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박물관과 화랑과 대궐, 신구가 엇갈리는 건축과 진열장의 눈요깃거리, 다양한 음식점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천천히 떼고 여기저기 눈길을 주며 한가롭게 지난다. 오랜 골목길과 새 건물, 미술품과 진열장의 상품, 먹을 것과 가게 꾸민새, 예술과 자본 등을 만나는 길이다. 보도 폭이 좁고 오르락내리락 불편해도 삼청동 길의 생명력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골목을 들어섰다. 나갔다. 절벽위 맹현으로 올랐다 내려왔다 하는 시간은 전통으로 회귀하는 휴식이 된다. 더 좋은 점은 어슬렁거리는 산책이 무한하면서도 언제든지 바로 도심 속 업무로 복귀가 가응하다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삼청동은 불과 한 발짝 떨어져 있다. '(102~103) 바로 삼청동의 진정한 매력은 주택가의 천연한 분위기인데, 이미 그 매력은 반감되고 있다고 한다. 그냥 보존할 곳은 그대로 놓아두면 좋으련만....
유명한 삼청각은 1973년 남북회담을 위해서 지어졌는데, 지금도 이처럼 잘 지은 한옥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혜화동에서 성북동 올라가는 길목에 기념물 또는 민속자료로 지정된 예쁜 한 옥 세 채, 바로 한용운의 심우장, 이태준의 집, 이재(또는 이종상)의 별장이 있는데, 이 한옥들도 제대로 돌보지를 못하고 있다.
내가 어릴적엔 세검정이란 곳이 물놀이가던 곳이고, 이곳의 자두가 맛나기로 유명했었는데,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은 안평대군의 별장, 이항복의 별장, 흥선대원군의 석파정이 있다. 그런데, 이곳들도 세검정 바위아래까지 차가 드나들고, 생활하수가 흐르고 세검정 높은 바위벽에는 시멘트범벅이 되어 있다고 한다.  도시계획도 중요하지만 역사와 미학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가로 정비로 옛 정취를 찾아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노라.... 이렇게 서울, 북촌을 누비면서, 맛집도 둘러 보고, 연주회가 열리는 곳도 소개해 주고, 전시회와 박물관도 알려주니 꽃피는 따뜻한 봄날에는 서울의 북촌 나들이를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골동품하면 인사동이 본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곳도 인사동 개발로 아기자기한 맛을 잃은지 오래되었다. 여기에서 청진동쪽으로 나와서 낙지골목에서 낙지볶음과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을~~~ 대학시절 이코스도 대학생의 낭만이 깃들었던 추억의 장소들이지만, 언젠가 한 번 가보니, 옛 모습을 찾기 힘들었고, 남아 있는 낙지 골목도 너무 지저분하고 퇴락해서 마음만 상하고 온 기억이 난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개발과 보존을 왜 조화롭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서울의 상징은 무엇일까? 저자는 보신각, 광화문(익살스러운 해태상까지, 그런데 해태를 언제부터 해치라고 했을까? 해태의 원말이 해치이고 서울의 상징이라고 한다.), 세종문화회관, 성돌이(서울 성곽돌기, 서울 도심을 둘러싸고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에 이르는 성곽 18.2km에 이르는 길) 등을 들고 있다.



재동에 있는 백송부근, 조선말기의 역사적 사실들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 살았고, 그곳에서 역사적 모의가 이루어 지기도 했던 곳들, 그리고, 대궐여인들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들이 역사속 뒷이야기들로 재미를 더한다. 그밖에 성균관, 5월의 종묘대제, 불교 영산재, 각종 굿판이 일어나는 국사당의 이야기...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서울, 북촌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로 우리가 알고 싶었던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나처럼 인생을 한참 살아온 사람들은 옛 추억이 깃든 골목 골목이 눈에 선하면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만들어 준다.
이야기가 있어서 재미있는 서울의 북촌....
그러나, 개발에 밀려서 옛 모습이 허물어지고, 허술한 문화재청의 관리에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야기들이 흘러간 역사속 이야기처럼 들려 온다. 그러나,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친근한 힘처럼 서울, 북촌의 이야기가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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