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심사를 맡으셨던 분들의 심사평이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도 덤덤하지만 뿌리칠 수 없는 이끌림이 있는 휴머니티가 느껴지는 따뜻하고 좋은 소설이라는 평이었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내나름대로 정리해 본 글) 특히, 작가 공지영,정이현,이순원, 김원우 그리고 번역가인 김석원,문학평론가인 김윤식 까지 각 분야의 내놓으라는 분들의 평이었다.



작품은 대필작가의 일상이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무미건조하게 전개된다. 아침과 점심 중간에 라면을 먹기도 하고, 맛있는 동태찌개집을 가기도하고, 대필을 부탁하는 사람들과 전화를 주고 받기도 하고...... 그런데, 대필작가의 일상이기에 대필작업을 통한 작품을 쓰는 과정의 이야기가 엿보인다. 단어선택의 신중성에서부터, 대필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이야기까지 대필작가의 세계가 얼핏 보인다. 대필작업을 하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그만의 인생과 가치관이 숨쉬고 있다.

'대필은 내가 만족스러운 글이 아니라 상대가 만족할 글을 써 주는 일이다.'(p11)

'세상은 하루에 두 번씩 거리의 색채를 바꾼다. 해가 뜰 때보다 질 때가 갑작스럽고, 더 슬프다. 몰락이라는 단어는 석양에서 왔을 것이다. '(p11)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복없는 담담한(정이현 작가의 표현처럼 '덤덤한'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같은 이야기들이다. 삶이 그를 어쩌면 약간은 어눌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삶의 흐름에 그저 순응하면서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한 생활인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때는 여기 저기 출판사일을 하다가 귀농까지 하기도 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결하지 말자. 나에게 있는 것만 가지고 살자.(p112)
어쩌면 '폴오스터'가 젊은 날의 자신의 자전적이야기를 담았던 '빵굽는 타자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돈벌이를 위해서 번역, 서평, 닥치는대로 글쓰기를 했던 이야기를 닮은 듯도 하지만, 또 그와는 다른 새롭고 특이한 설정들이 이 작품에는 숨어 있다.
심사위원이었던 작가 공지영의 말처럼  책장을 넘길수록 책속에 빠져드는 마력이 이 책에는 숨어있다.
그의 실제 거주지이기도 했던 동교동, 서교동, 연남동에 이르는 곳의 풍경의 섬세한 묘사는 그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섬세한 거창하게 치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섬세하게 다가오는 심리묘사가 너무 담담한 글들로 쓰여져서 읽을수록 마음이 더 아파오는 그런 이야기이다.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이야기, 진돗개라고 믿었던 태인이와의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책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작품세계로 자꾸 자꾸 빨려 들어간다. 힘있게 빨려들어 오도록 하지도 않는데,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나의 눈시울에서는 눈물 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너무도 외롭고 쓸쓸하고 어쩌면 세상을 향해 한 번도 큰소리쳐 보지 못한 힘겨운 삶의 모습이었지만 그에게는 그만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무심코 발견한 죽은 아내가 서각으로 새겨놓은 문패....
'아내의 서랍에서 문패를 발견했다. 아홉 번 째 집 두 번 째 대문. 무슨 뜻일까 (p93)
왜 아내가 이런 문패를 새겨 놓았는지 '아홉 번 째'까지는 힌트가 있지만 '두 번 째 대문'의 은유는 독자들이 찾아야 할 숙제인 것이다.
아내가 다시 말했다."주는 쪽은 자기가 주는 게 무엇인지 몰라요, 받는 이가 알아요." "준 게 없는데?" " 당신이 준 건 태인이가 알겠지요" 순간, 아내를 처음 만난 날부터 함께 살아온 날들이 눈앞에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아내는 나에게 받은 게 있을까'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어느 회사의 사보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시에는 내가 그때껏 어느 시에서도 보지 못한 놀라운 대범함이 있었다. 인생의 가장 고독한 지점에 남기는 한 마디 자기 목소리, 거기에서 오는 간결한 대범이었다. (p185)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업다고 생각되기에 더 마음이 아픈 그런 사랑.
그래서 혼자 남겨진 사람에게 더 가혹하고 외로운 것이 인생이 아닐까? 비록 먼저 다른 세상으로 떠났지만 아내의 마음은 참 예쁘다. 그래서 그의 모습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내 생각이 나면 나는 새벽에 거리로 나간다. 깊이 잠들어 있는 거리를 혼자 걷는다.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다. 그날, 모든 것이 좋았다. 꿈결같기만 한 그날 새벽거리.바람도,가로수도, 불 꺼진 창들도,모든 것이 정갈했었다. 그래서 기억은 쓸쓸하지 않다. 새벽 거리를 걷고 있으면 아내를 느낀다. (p191)
이 작품의 특징이라면, 주인공의 삶속에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공존한다. '일상과 환상'이 함께 존재한다. 꿈인듯하지만 현실일 수도 있고, 환상인듯하지만 일상일수도 있다. 대필작가의 삶이 그렇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꾸며서 의뢰인에게 써준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도 자신만의 가치관이 존재한다.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뚜렷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너무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할 정도로....
그리고, 너무 덤덤한 일상이지만, 그속에는 추억과 같은 환상이 존재한다. 일상에서는 외롭고 쓸쓸하고 힘겹지만, 환상속에서 죽은 자들을 만나고, 죽은 아내를 만나고, 명품인듯했지만 결코 진짜 진돗개가 아니었기에 더 진돗개처럼 활동하려고 했던 태인이가 있는 것이고, 대필 의뢰인이었던 장자익 노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 그 이상의 큰 힘이 되기에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또 한 가지의 첨가한다. 주인공이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넘나들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써내려간다. 현재에서본 과거의 모습들. 그속에서도 환상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과거속에서 일상의 깨달음을 느낀다.
그에게는 우연과 운명이 또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
모든 우연은 하나의 징조이다. 눈 앞에 다가온 운명이다. (...) 하지만 우연은 의식되는 순간 우연으로 그친다.(...) 우연을 운명으로 의식하는 순간 운명은 바뀐다. 안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것이 시작된다. (...) 운명도 '모르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아는 건, 안다는 그것으로 인해 운명이 아니다. (p203)
알듯 모를듯, 이렇게 그의 인생에는 우연과 운명이 드나든다.
평범한 것같지만 그렇지 않은 대필작가의 일상속의 이야기에서 대필작가의 작품구성과정을 엿볼 수도 있고, 이것이 작가 자신의 문학과 작품활동에 접근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느껴본다. 그리고, 죽은자(아내, 장자익노인, 진돗개 태인)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에 움츠리고 있는 생각들을 끌어내는 이야기의 틀이 참 특색있게 생각된다. 우연과 운명, 죽은자와 산자, 현재와 과거, 일상과 환상이 공존하는 가운데, 주인공의 일상은 가난하고 쓸쓸하지만 마음은 소박하고 따뜻한 사랑이 감추어져 있다. 그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줄 유기견 몽이의 마지막 등장이 사랑의 메신저같다는 생각이 든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작가의 말중에서)
작가의 이말이 뇌리를 스쳐간다.
사람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는 1992년에 <문화일보>를 통해서 등단하였지만 그동안 생계를 위해서 대필작가의 길을 걸어 왔는데, '아홉 번 째 집, 두번 째 대문'을 통해서 제1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이라는 큰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으니 앞으로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길이 활짝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 독자의 생각일 것이다.
아주 독특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순식간에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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