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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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가볍게, 즐겁게 읽어가지만, 뒷 맛은 달콤하지 않다.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끝까지 갈 수 없기에, 흥미를 끄는 요소는 필수라 생각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의 매력은 반전과 여운이 강한다는 점에 있다. 이제까지 읽었던 <레몬>, <호숫가 살인사건>, <붉은 손가락>, <게임의 이름은 유괴> ,<숙명>, <용의자 X의 헌신> 등은 마지막까지 흥미롭고, 장편소설이라는 점과 사건의 전개와 전혀다른 결론이 난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이라는 단편 블랙유머 소설 3부작이 나왔다. 장편과 달리, 단편이라는 점과 블랙유머라는 점이 이제까지 읽었던 소설과 판이하게 달랐다. 새로운 매력과 함께, 마지막까지 관심을 끄는 흥미로움도 여전하다. 작은 지면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진행시키고, 다른 매력까지 선보이는 히가시노 게이고!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초 너구리 이론>을 통해 과학적 증명없이 초현실적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일침도 신선했고,  <어느 할아버지 무덤에 향을>이라는 작품을 통해 시간을 초월해 젊어지고 싶은 욕망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을 때의 기분들, 세월을 비디오 테이프를 빨리 감는것처럼 실제 가능했을 때, 변하게 되는 마음에 대해서도 살펴 볼 수 있었다. 무인도에서도 내기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담긴 <무인도의 스모중계>와 이기기 위해 거래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겁기 않게 소설로 표현되었고 이기적인 가족의 모습을 동물로 표현하고, 결국 스트레스와 냉대에 견디지 못한 주인공이 괴수로 변신하는 <동물가족>도 동물의 특성을 잘 포착하여 인간의 이기심을 표현하는 부분이 신선했다.

  만원 전차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겨있는 속마음을 보여주는 <울적전차>와 절약정신이 가득했던 할머니가 스타의 공연을 보고 매력에 빠져, 골수팬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할머니 골수병> 등 총 9편의 단편소설이 괴이한 웃음을 전해준다. 가볍게 즐겁게 책장을 넘기지만, 책을 읽은 후 여운은 달콤하지 않다. 쓰디쓴 약처럼, 현대 사회의 풍경들이 떠오르는 여운까지 전해준다. 자신의 처지만 생각하고 합리화 시키는 이기적인 마음,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아버지의 마음 등의 현대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은 에둘러 보여준다. 럭비와 아파트 분양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해 상대 마을에 시체를 떠넘기는 모습(<하얀 들판 마을 VS 검은 언덕 마을>)에서, 시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집값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과 집을 잘못선택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깊게 스며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 소설만큼 더욱 흥미로운 작가 후기.

  다른 책들과는 달리, 각 단편소설의 제작과정을 소개해 주는 작가후기가 흥미로웠다. 9편의 단편소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함께, 작가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할까. 아버지의 귀금속 오는 가게에 매번 같은 금속류를 브로치, 목걸이, 반지 등 다른 모형으로 만들려 오는 할머니의 실제 경험을 듣고 만들었던 <할머니 골수병> 등 많은 작품에서 작가의 체험이 동기가 되어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교사들을 싫어하는 작가의 시선과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도 공감이 갔고, 모든 인간은 새 인간 또는 물고기 인간으로 나누는 작가의 주장도 재미있었다. 작가가 마음에 들었기에, 다른 면도 마음에 들었다고 할까. 체험을 이야기 소재로 발전시켜 하나의 소설로 만드는 그의 재능이 부러웠다.

# 독침처럼, 작지만 날카로운 시선이 가득한 블랙소설.

 
  블랙소설의 매력은 역시 풍자라고 생각한다. 들어내지 못하는 면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심리에서 속이 시원해진다고 할까. 현대사회에서 늘 안고 가야하는 이기주의, 골수팬의 극성, 자식의 미래를 아버지의 욕심으로 결정하는 마음, 초현실에 대한 믿음, 아파트 집값 등 사회적인 소재들이 작가의 특기인 반전의 묘미와 함께 거침없이 담겨있다. 짧지만 날카롭고 아픈 블랙소설의 즐거움은, 이제까지 알아왔던 히라시노 게이고의 작풍과 달랐다. 예상외의 놀라움까지 안겨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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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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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그림을 보는 새로운 방법. 마음을 담아 말하기.
 

  어렸을 때 미술에 재능이 없음을 깨달은 후, 그림은 가까이 하기에 먼 대상이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지인이 아니었으면, 미술관에 가는 일도 용기를 내지 못했겠지만, 그이 덕에 조금씩 그림에 대한 울렁증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그림을 볼 때 화가의 이름과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을 이야기 할지 많이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림에 마음을 담아 보는 일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림에 마음을 놓는다'라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았다.

  사랑의 설렘, 질투의 마음, 자꾸만 무너질 것 같은 인생의 불안감 등을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글로 전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다. 책장이 넘어갈 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미술사학을 전공한 저자의 미술에 대한 지식과 솔직함이 드러난 체험이 곁드린 이야기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힘들어하는 친구나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꼭 글을 쓰지 않더라도, 그림을 통해 마음을 전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 사랑, 관계, 자아에 관한 그림과 이야기들..
 

  크게 세 장으로 나뉘어 사랑과 관계, 자아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사랑이 전부라고 믿는 이에게는 오귀스트 로댕의 <입맞춤>이라는 작품과 사랑에 모든 걸 걸었지만, 끝이 아름답지 않았던 로댕과 클로델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해결책으로 리카르드 베리의 <북유럽의 여름 저녁>이라는 작품을 제시하며, 약간의 간격을 두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두 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이도 가끔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와 닿는다. 이외에도 자기애, 배신, 숨막히는 사랑, 슬픔, 열정에 관한 사랑에 관한 주제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고백과 용서 등을 그림과 함께 자연스럽게 제시해 준다.

  사랑을 한다면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사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게, 마그리트의 <연인>의 그림은 한 사람만 바라보는 모습이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그 상대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르누아르의 <특석>을 보여주며, 지키고 싶은 사랑을 위해 숨 쉴 공간을 만들어 놓자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저자의 생각에 공감했다. 

  그림과 글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느낌, 한 장의 그림과 글이 퍼즐의 조각처럼 잘 어우러지는 건, 글과 그림을 보는 안목 모두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의 경험과 재능이 함께 배어나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보다 먼저 인생의 경험을 겪은 친근한 누나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 권위가 없고 친근감 있게 다가오는 글에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 자신의 경험이 들어간 솔직함과 해박한 지식의 절묘한 만남.

 
  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만 있었다면, 문외한인 나의 가슴에 와 닿지 못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힘든 고백을 들어주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 낯선 이국의 땅에서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데 서툴렀던 대인기피증,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책과 영화 등이 이야기의 서두에 솔직함으로 들어서 긴장감으로 가득찬 마음을 풀리게 했다.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저자의 이야기와 함께 그림을 더욱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렵지 않게, "나두 그때 그랬었어"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책이 끝나버린다. 참는 법에 익숙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서툰 작가처럼, 나 역시 마음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못했기에 더욱 더 공감하고 즐겁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백마디 말보다 따뜻한 그림 한 점의 위로'라는 부제목 처럼, 힘들게 마음을 표현하기 힘들 때, 그림을 살짝 보여주면서, 이 작가는 이런 기분일 때 이런 그림이 생각났었데, 하는 식으로 마음을 전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마음이 힘들때 마음을 그대로 표현 해 줄 수 있는 그림을 제시했을 때, 살며시 마음을 안아주는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친구를 만나기도, 만들기도 힘들지만, 당분간은 이 책이 답답하고 힘든 마음에 작은 열쇠가 되어 줄 것 같다.

  그림을 좋아하는 지인과 답답한 일상에 힘겨워하는 지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그림을 좋아하지 않아도, 작가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어렵지 않게 그림을 접하고, 마음을 다독이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이 하나의 열쇠가 될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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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크림 러브 -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가’ 나가시마 유 첫 장편소설
나가시마 유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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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맛은 달콤하지만... 끝은 여운이 남는 슈크림..


   제과점에서 슈크림 빵을 샀다. 달콤한 크림이 들어있어 단맛이 강하다. 먹을때는 달콤하게 먹지만, 다 먹고 난 후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해서 결혼을 결심하고, 달콤한 슈크림 빵처럼 맛있는 첫맛으로 시작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달콤한 슈크림 빵은 다 먹어버리고, 달콤한 맛만 기억한 채, 아쉬움이 남기 시작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격이 만나 공존하는 결혼 생활, 그리고 부딪치게 되는 곤란한 상황들.. 결혼 했지만,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하게 된 주인공 무카이 시치로와 일과 사랑을 전부라 믿는 시치로의 친구 츠다의 두 결혼식 방문기가 펼쳐지면서 결혼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 결혼이라는 환상에 벗어난다는 건....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집세는 절반씩 내고 공동생활비는 한 통장에 입금한다, 나머지 돈의 사용에 대해서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결혼을 한 시치로는 권태로운 회사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크게 싸우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불륜으로 인해 별거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을 했지만, 서로 문자를 보내고 연락을 하는 두 사람은, 이혼 한 후 두 달이 지난 후, 자주 찾아오던 아내의 소식이 끊기던 날, 안절부절하며 큰 병이 난 건 아닌가, 고민하던 시치로가  다음날 아침 열쇠를 여는 소동을 벌이는 헤프닝이 벌어진 후, 재혼 결심을 포기하게 된다. 이혼 하였으면서도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지 않자, 끝맺음을 하지 못하는 시치로의 모습에서 결혼 생활에 빠져있는 하나가 눈에 띄었다.

    결혼이란 문화입니다. 가장 작은 문화는 부부입니다. 부부라는 문화에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서 두 사람만의 문화를 가꿔 나가라고 제자의 결혼식에 축사를 했던 츠다는 일과 사랑이 전부라 믿고, 많은 여인들과 연애를 한다. 하지만, 결혼할 거라 믿었던 상대에게는 직장으로 도피하여 도망가고, 결혼을 결심했던 자주 만나던 호스티스 사오리에게는 회사의 부도로 고민하다 청혼을 포기하고 만다. 결혼을 동경하면서도 결혼 생활에 확신을 갖지 못하던 츠다의 모습에서  책임감과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 찬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좋던지 싫던지 함께 살아야만 했던, 이혼이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거나, 거의 갈때까지 서로의 감정의 골이 바닥이 날때까지 간 후에야 이혼이 가능했던 기성 세대와는 달리, 서로의 차이가 있다면, 굳이 결혼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많이 형성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이 함께 사는 동거와 또 다른 결혼, 혼인신고서의 작성과 이혼 시, 법적인 절차를 받아야 하는 차이 외에 결혼이 지금 세대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혼을 동경하지만, 결혼에 성공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실패하는 결혼의 표본을 보았다고 할까. 두 사람에게 가장 부족했던 건 대화와 믿음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심할 것이 없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모든 것을 믿는 것. 상대한 대한 신뢰와 배려가 없이는 걸어나가기 힘든 결혼생활, 또한 양보가 필요한 결혼생활이기에 더욱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잔잔하지만,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섬세하고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등장인물을 통해, 막연하게 보이는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틈을 주었던 소설이었다. 한국 정서에는 소설과 달리, 고부갈등, 처가, 시댁과의 관계도 결혼에 많은 고려를 하겠지만, 소설에서는 개인의 가치관과 성향의 차이에 의한 흐름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가족지간이라도 서로 간섭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잘 발달된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고 바라본다면 좀 더 깊이있게 등장인물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츠다 어머니의 쓰러짐, 결혼식 선물로 받은 입욕제, 교토의 여행과 성형수술 등, 대화와 이야기 흐름에 나오는 작은 사건등은 뒷 이야기와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츠다의 직장 후임의 결혼식과 츠다의 옛 여친의 결혼식까지 두 번의 축사를 통해, 두 인물과 관계있는 여러 인물들의 사건 흐름이 잘 짜여지는 점도 보기 좋았다. 큰 울림보다, 잔잔한 물결처럼 마음에 와 닿는 소설이다.

  이혼 후 한 번도 아내의 이름을 부르지 않다가, 애인이 생긴 후에 아내의 이름을 불렀던 시치로의 모습을 보며, 관계의 시작에는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솔직한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마음을 내 생각으로 예단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조금씩 이야기 해 나간다면,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관계의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가 어떤 모습이던지, 믿고 지지해 주는 것, 결혼생활의 가장 큰 비결을 배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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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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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 청춘이기에 간직한 풋풋함, 열정이 도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꿈 하나만으로 행복한 시절, 실패와 두려움을 겪더라도 당당히 이겨낼 수 있는 건 단 하나, 스무살 청춘이기 때문이다.  투닥투닥 다투며, 속마음을 감춘 채 사랑을 감추는 것도 청춘이기 때문일 것이고, 둔하게 그녀의 마음을 모른 채 허둥지둥 하는 것도 아직 어린 청춘이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단순한 장난으로 더욱 더 깊어지기도 하고,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첫 키스의 순간에 두근두근 마음이 설레이도 하고, 경제관념 없이, 동아리에 빠져 뜨거운 정을 나누는 순간들이 오쿠다 히데오의 섬세한 필체와 함께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30년전 이야기부터 20년 전 이야기까지, 나고야에 살던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가 도쿄에 정작하게 되는 20대의 이야기가 한 편의 책에 6편의 단편으로 묶여 있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으로 평소 친하지 않던 친구도 왠지 반가워지기도 하고, 첫 대학시절 풋풋한 사랑을 경험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져 갑작스레 대학을 중퇴하게 되어 취직하게 된 광고 기획사에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와 경력이 쌓여 동년배와 후배와 부딪치게 되는 사건 들 등 청춘시기에 겪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을 한 권의 책을 통해 잔잔한 감동과 함께 느낄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글의 힘은, 작가의 체험을 보는 듯한 진정성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 굵직한 사건과 개인의 감성의 적절한 조화.

   편법으로 자이언츠와 계약했던 에가와 스구루, 그룹 캔디스의 해체, 존 레논의 사망, 나고야 올림픽의 유치 실패, 1985년 럭비 선수권 대회, 베를린 장벽의 붕괴까지... 각 단편마다 굵직한 이야기와 함께, 다무라가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이 적절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 청춘이기에 겪게 되는, 연극단 동아리의 작품 선택 투표와, 첫사랑인 나호코 선배의 장난으로 그녀의 집까지 찾아가게 되는 에피소드가 적절하게 가미되면서, 첫 연애의 두근거림과 사람들의 비난에도 당당함이 함께 섞이고,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젊음의 특권인 실패가 하나로 연결되게 된다.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가는 여러가지 감정의 충돌들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었다고 할까. 큰 사건으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과 사건의 얽힘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불안이 공감이 되었기에 더욱더 즐겁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작가가 등단하기 전에 경험했던 카피라이터, 기획자등의 경험히 잘 스며있기에 더욱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등의 섬세한 인간 심리를 잘 드러내주는 작가의 솜씨가 발휘되기 전, 등단작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겪는 마음의 충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점이 좋았다.


# 꿈꾸었던 것을 이루지 못했어도 괜찮아.

   음악평론가를 꿈꾸었던 다무라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기획사의 사장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밴드를 하고 싶어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결혼을 하는 친구와의 대화속에서, 친구는 다무라에게 소설을 써 보라고 권유한다. 음악평론가를 이루지 못하였지만, 오쿠다는 <라라피포>라는 책을 통해 음악에 수준급인 솜씨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를 꼭 닮은 듯한 작품속에서, 꿈꾸었던 것을 이루지  못했지만, 매 순간순간 성실히 살아가며 청춘을 보냈던 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꿈꾸었던 것을 이루지 못하고 청춘을 보내더라도, 괜찮다고 할까. 너무나 느려터져, 사장에게 타박을 받기만 했던모리시타씨가, 누구보다 빨리 장가를 가는 난센스를 보여주는 것처럼, 인생은 예측불가능한 삶이라 생각한다. 청춘이 가진 꿈과 열정, 그리고 풋풋함, 청춘이기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잊고 살지 않는다면, 세월이 많이 흐르더라도 늘 청춘일거라 믿는다.    서른이 되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청춘이 지난 뒤의 읽을 때의 느낌은 왠지 또 다를 것 같다. 지금 후회없는 마음처럼, 그때도 후회없이 청춘을 되새길 수 있게, 즐겁게 하루를 보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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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끽연자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8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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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츠츠이 야스타카의 단편과의 만남. 즐거운 엔돌핀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애니메이션과 소설이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책을 고르지 않는 성격에 츠츠이 야스타카를 알지 못했다. 일본에서 SF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츠츠이 야스타카, 그가 직접 선정한 단편집을 만나게 되었다. 

  특별한 SF라고 할까,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SF가 아닌, 현실세계의 한가지를 비틀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말이 되는것처럼 그려내는 작가의 글솜씨에 빠져 발버둥치다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끝나있다. 길지 않는 단편에 끊임없는 웃음의 알갱이를 뿌려놓은 그의 단편은 시작 부분의 호기심부터 마지막의 종결까지 가독성의 흥미를 잃지 않는다. 
 
# 재미와 함께 여운을 남기는 블랙유머.

   즐거운 재미와 함께 책을 읽고 나면, 뒤이어 다가오는 여운에서 일상생활에서 잊고 지내는 생각들을 다시 떠올려 보게 한다. 시간이 갑작스럽게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급류>에서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의 일상을, 금연이 사회적 가치로 흡연자를 차별하는 일이 공공연한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헤비스모커의 최후의 항거를 담은 <최후의 끽연자>에서는 절대적 가치로 공공연한 사회적 가치에 항거하는 이가 겪게되는 압박과 함께, 지나치게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인물의 모습이 보인다. 

  100개가 넘는 계단에서, 하나 하나 층마다 나와 똑같은 인물이 살고 있다는 가정아래, 아내와의 결혼 시 또다른 선택을 한 케이스를 찾아보는 <평행세계>에서는 내가 행했던 선택이 아닌, 또다른 선택의 가능성에 대해 아쉬워하고 궁금해하는 인간의 모습을 들춰낸다. 역사적 사실과 SF가 결합한 <야마자키>, <망엔 원년의 럭비>도 흥미로웠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인물이 되기 위해 곱추가 되는 것도 마다않는 사회, 그 이후를 보여주는 <혹천재>에서는 어머니의 치맛바람에서 능력의 차이로 인한 차별, 그리고 사회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노틀담의 곱추로 마무리하는 작가의 센스에 탄복하기도 했다. 

  정의로운 타잔이 어떻게 사악해 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노경의 타잔>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모든 작품 모두, 짜임새와 재미, 의미까지 세 박자를 고루 갖춘 작품이었다.

# 시간을 넘어 공감을 주는 작품들.. 돈 주고 사도, 아깝지 않은 책.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중 가장 최신의 작품은 1987년, 나머지는 70년에대 출간된 작품이다. 경제발전을 도약하는 시기에, 많은 것들이 발전하지 않았던 때에 쓴 작품들이 시간의 흐름에도 관계없이 생명력을 가지고 지금에도 빛을 발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이기도 하고, 시대에 관계없이 작가의 통찰력이 빛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만원으로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야식을 시켜먹어 배를 부르게 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영화를 볼 수 있지만, 두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볼링이나, 노래방 등의 방법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소멸하지 않고, 인간의 생애까지 남아있을 수 있는 대상은 재미있는 책을 구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SF에 문외한이지만, 작가의 재미난 글솜씨에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당분간 생일선물과 무료한 일상에 지친 이에게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으로 결정했다. 막막하고 답답한 일상, 책과 함께 삶의 피로를 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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