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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끽연자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8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 츠츠이 야스타카의 단편과의 만남. 즐거운 엔돌핀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애니메이션과 소설이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책을 고르지 않는 성격에 츠츠이 야스타카를 알지 못했다. 일본에서 SF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츠츠이 야스타카, 그가 직접 선정한 단편집을 만나게 되었다.
특별한 SF라고 할까,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SF가 아닌, 현실세계의 한가지를 비틀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말이 되는것처럼 그려내는 작가의 글솜씨에 빠져 발버둥치다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끝나있다. 길지 않는 단편에 끊임없는 웃음의 알갱이를 뿌려놓은 그의 단편은 시작 부분의 호기심부터 마지막의 종결까지 가독성의 흥미를 잃지 않는다.
# 재미와 함께 여운을 남기는 블랙유머.
즐거운 재미와 함께 책을 읽고 나면, 뒤이어 다가오는 여운에서 일상생활에서 잊고 지내는 생각들을 다시 떠올려 보게 한다. 시간이 갑작스럽게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급류>에서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의 일상을, 금연이 사회적 가치로 흡연자를 차별하는 일이 공공연한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헤비스모커의 최후의 항거를 담은 <최후의 끽연자>에서는 절대적 가치로 공공연한 사회적 가치에 항거하는 이가 겪게되는 압박과 함께, 지나치게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인물의 모습이 보인다.
100개가 넘는 계단에서, 하나 하나 층마다 나와 똑같은 인물이 살고 있다는 가정아래, 아내와의 결혼 시 또다른 선택을 한 케이스를 찾아보는 <평행세계>에서는 내가 행했던 선택이 아닌, 또다른 선택의 가능성에 대해 아쉬워하고 궁금해하는 인간의 모습을 들춰낸다. 역사적 사실과 SF가 결합한 <야마자키>, <망엔 원년의 럭비>도 흥미로웠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인물이 되기 위해 곱추가 되는 것도 마다않는 사회, 그 이후를 보여주는 <혹천재>에서는 어머니의 치맛바람에서 능력의 차이로 인한 차별, 그리고 사회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노틀담의 곱추로 마무리하는 작가의 센스에 탄복하기도 했다.
정의로운 타잔이 어떻게 사악해 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노경의 타잔>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모든 작품 모두, 짜임새와 재미, 의미까지 세 박자를 고루 갖춘 작품이었다.
# 시간을 넘어 공감을 주는 작품들.. 돈 주고 사도, 아깝지 않은 책.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중 가장 최신의 작품은 1987년, 나머지는 70년에대 출간된 작품이다. 경제발전을 도약하는 시기에, 많은 것들이 발전하지 않았던 때에 쓴 작품들이 시간의 흐름에도 관계없이 생명력을 가지고 지금에도 빛을 발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이기도 하고, 시대에 관계없이 작가의 통찰력이 빛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만원으로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야식을 시켜먹어 배를 부르게 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영화를 볼 수 있지만, 두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볼링이나, 노래방 등의 방법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소멸하지 않고, 인간의 생애까지 남아있을 수 있는 대상은 재미있는 책을 구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SF에 문외한이지만, 작가의 재미난 글솜씨에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당분간 생일선물과 무료한 일상에 지친 이에게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으로 결정했다. 막막하고 답답한 일상, 책과 함께 삶의 피로를 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