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힘, 듣기의 힘
다치바나 다카시.가와이 하야오.다니카와 순타로 지음, 이언숙 옮김 / 열대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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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읽기의 달인, 듣기의 달인, 상상력의 달인, 세 명이 만나다!
  

  고양이 빌딩에 수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다치바나 다카시, 70-80권의 책을 썼고,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적어도 100권의 책을 읽고, 인터뷰와 논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 지성의 수준과 서점의 네트워크의 힘을 알 수 있다고 할까. 번역과 서점에 대한 인프라와 네트워크는 대한민국보다 한 수 위라는 점을 인정한다. 카운셀러이자 심리학자인 가와이 하야오는 <불교가 좋다>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 들어야 하는 듣기의 달인이라 생각한다. 다니카와 순타로는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로 만나게 되었다. 엉뚱한 질문에 깊이있지만 상상력을 뛰어넘는 대답을 한 그는 일본의 유명한 시인이다.  

  대담을 나누는 세 명 모두, 책으로 이미 접해읽었기에 그들이 대담이 기대되고 설레였다. 일본 최고의 읽기 및 질문의 달인, 깊은 듣기의 달인, 상상력의 달인이 만났다고 할까. 60대에서 80대의 지혜가 깊이 묻어나는 세 명의 지식인이 읽기와 듣기에 대해서 대담을 나누었다. 독서를 할 때 행간의 의미를 잘 읽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잘 헤아려 깊게 듣지 못하였기에, 책에 잘 읽고, 듣기 위한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책장의 페이지가 인쇄된 부분에 가운데 손가락을 대고 넘기기 시작했다.
 

# 보다 깊이있게 읽고, 듣는 법을 배우다.
  

  늘 새로운 발견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 다치바나 씨는, 지적호기심이야 말로 인간이 진화할 수 있는 힘이라는 믿음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통해 많은 책을 읽는 일과 함께, 연구자들의 논문을 찾아 읽고, 연구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듣기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는 읽고 듣는 능력 모두가 중요하다고 할까. 충분한 조사가 잘 수행되었기에 그의 책들이 큰 울림과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다치바나씨는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인공내이를 통해 귀로 소리를 듣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결국 듣는 과정은 귀로 소리를 듣는 과정이 아니라, 그 소리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알려주었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수화를 통해 언어를 표현하는 법을 처음 배웠을 때, 서광이 비치는 듯한 경험을 했다는 에피소드를 언급하면서,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이해하는 '앙당튜'의 세계로 진입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고 주장한다. 눈으로 보는 행위도 그저 망막에 상이 맺힌것이 아니라 맺힌 상을 나의 뇌에서 인지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귀로 듣는 일도 나의 뇌가 듣고 판단하고 사고하는 과정이라고 할까. 뇌가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의 상담을 들어야 하는 듣는 일이 직업인 가와이 하야오씨는 온몸으로 듣는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의 현재 생각과는 다른 측면을 주목하고 발견 하기위해 온몸의 감각을 이용해서 듣기를 행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 안정환 선수가 마지막 헤딩을 하는 그 순간이라고 할까. 골을 넣기위한 그 순간에 집중하듯 온힘을 다해 듣기를 행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수 많은 대화와 자연의 소리들을 듣고 있지만,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 깊이 듣지 못하고 마음의 번잡함에 이끌려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지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온몸을 다해서, 집중해서 듣고, 하나의 글을 읽더라도 글 뒤의 행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읽는 행위를 한다면, 보이고 들리는 그 너머의 것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담을 읽다보니, '시'야 말로 언어의 표현 그 이상의 것을 표현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한계 너머의 공간을 최소한의 언어를 통해 언어 너머의 공간으로 닿을 수 있게 해 주는 비행기라고 할까. 음악이나 예술작품에서 느끼는 감동을 언어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수단이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글자의 의미에 너무 신경을 썼기에 그 뒤의 의미를 잘 읽지 못해 시의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빙산의 일각처럼 수면 아래 더 크고 깊은 무언가들을 보지 못한채 수면 위의 얼음덩어리만 보고 너무 쉽게, 시는 난해해하며 포기했었다는 점을 대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 대담을 나누면서 쌓이는 지식과 지혜들..
  

  세 사람이 대담을 나누면서 공통점을 찾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상대가 대답할 수 있게 질문하는 법을 잘 안다고 할까.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물 흐르듯 잘 이어질 수 있는 건, 질문하는 이와 대답하는 이 모두, 뛰어난 읽기와 듣기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생각한다. 시인과 카운셀러, 논픽션작가, 접점을 찾기 힘든 세 사람이지만, 듣기와 읽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각자 자신의 전문분야를 어렵지 않게 공통적인 주제에 맞추어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이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아'라며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람을 평가하곤 했지만, 어쩌면 내가 그 사람과 잘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 사람의 말 뒤의 행간들을 잘 들어주고 보아주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기와 듣기의 달인들을 통해 행간의 의미를 헤아려야 함을 배웠다. 작지만 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노령의 세 지식인들은 새로 발전하는 IT 세계와 기계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서로 대담을 나누었다. 하나의 글을 읽고 그 키워드로 다른 글로 넘어가는, 인터넷으로 따지면 검색을 통해 링크가 계속이어지는 과정을 프랑스 혁명시대부터 주석달기를 통해 책으로 만든 과정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운송수단과 정보수단의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발전되면서 나와 다른 문화에 있는 사람과도 쉽게 교류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버렸다. 문자가 세상의 중심에 놓인 시대에, 문자 없는 세상의 감정인 감성과 지혜들이 정보보다 가치가 낮아지는 현상을 경계하면서, 그 한계도 생각해 보았음을 이야기하는 대담자들의 조언은 충분히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혜와 지식을 함께 잘 아우르는 일이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가 해결해야 할 숙제임을 알게 되었다.  

  '읽는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 배후에는 '산다는 것'이 자리하고 있다라는 말고 "우리가 사는 이 현실세계는 언제나 만남의 연속입니다"라는 말이 가슴속에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다치바나씨의 넓고 깊은 독서력과 인터뷰의 요령, 가와이 하야오씨의 온몸으로 듣는 능력, 다니카와 순타로씨의 문자와 감성 사이의 공간에서 양자를 잘 넘나들 수 있는 상상력을의 근원에는 깊이있는 듣기와 읽기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림책, 아동문학 연구센터'에서 주최한 '읽기, 듣기' 문화 세미나를 글로 옮겨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처음에는 문자로 읽고, 두 번째는 회의 공간과 그들의 문체를 생각하면서 대담을 상상해 본다. 강당에 앉아 세 명이 발표하고 대담을 나누는 상상하면서 글을 읽다보면, 더 많은 점을 느낄 수 있게된다. 읽기와 듣기의 요령을 알 수 있을까 했는데, 그보다 더 깊은 지혜를 배운 느낌이다. 지혜의 의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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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법 - 엔도 슈사쿠의 행복론
엔도 슈사쿠 지음, 한유희 옮김 / 시아출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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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 대한 이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2009년에 대학교 졸업반이 되는 지인과 통화를 하였다. 취업을 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다가,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남과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면접에 들어서게 되면, 일정 수준의 자격은 갖추었으니, 그 이후에는 남과는 다른 자기만의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무엇보다 기획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틀로 잡아내어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기획력이 있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기획 능력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자신있는 분야를 크게 발전시키는 일은 중요하다 생각한다. 꼭 취업이 아니더라도 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하다고 할까. 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고 있어야 타인을 보는 관점도 좀 더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엔도 슈사쿠는 오정희님이 추천한 책소개에서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를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책이라는 메시지가 기억에 남아,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면 제일 처음 읽어보아야 겠다고 다짐한 책이다. 『바다와 독약』, 『예수의 생애』등 종교적인 내용을 다룬 소설을 많이 쓰는 작가이기에, 외로이 혼자서 깊은 사색에 잠겨있을거라는 생각이 작가의 책을 만나기 전, 작가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었다. 그런 생각은 저자가 쓴 『전략적 편지쓰기』라는 책을 보고 많이 바뀌게 되었다. 편지쓰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의 마음에서 생각해서 글을 쓴다는 점, 상대를 배려하는 점을 가장 중요시하는 마음씨가 글 속에 잔잔히 스며 있었다. 따스한 문체를 가진 작가의 글이라면 타인과의 소통에 많은 배려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작가의 에세이집을 찾아서 읽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처음 만나는 책이 『나를 사랑하는 법』이다.

   1982년에 출간되어 오랜시간 일본에서 사랑받고 있는 책이라한다. 젠체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잔잔하게 들려주는 배려심 있는 문체에 마음이 끌렸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라는 자기계발서가 아닌, 나약하고, 질투많고, 부족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보는, 삶에 대한 시선을 바꾸어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글이 마음에 닿았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만큼 작품의 깊이가 대단해서, 큰 재능과 편한 삶을 살았을거라 생각했는데, 에세이 속에 닿아있는 저자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수학을 0점맞는 실력으로 어쩔 수 없이 문과에 갔다가 문학선생님 덕분에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삼수끝에 고생해서 대학에 간 이야기, 배우가 되고 오디션도 여러차례 보았지만 떨어진 이야기,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힘들게 4등석 선실에서 고생하면서 유학을 간 경험이 자신감을 키우게 만들어 준 에피소드 등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책의 메세지에 어울리며 글에 대한 설득감을 더 높여주었다.

 
# 강하고, 자기 주장이 세지 않은, 나약한 듯 솔직한, 인간미 넘치는 작가가 전하는 메세지.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쓴 서툰 고백같은 글이기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 어머니의 강요로 받는 세례로 인해 그리스도교를 많이 불편해 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가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에 내 몸에 맞게 고쳐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소설쓰기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결합되어 걸작 <침묵>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유명한 명성을 지닌 최고의 신실한 믿음을 가졌다고 알려진 신부가 에도 시대에 생의 마지막 순간에 결국 그리스도의 얼굴에 발을 밟으며 배신을 하게 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도리어 신의 큰 사랑을 전했다고 할까. 출간당시 기독교 단체의 판금 요청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극복하여 쓴 작품의 뒷 이야기를 알 수 있던 점도 좋았다.  

  모두에게 맞는 해법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힘들고 견디기 힘든 폭풍우가 몰아칠 때, 맞서 싸우기 보다는 조용히 폭풍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잘 맞을거라 생각하며 쓴 글이다.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이가 읽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박약함을 한탄만 하는 마음 여린 사람들이 읽다보면, 힘을 얻을 구절을 많이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 잘나지 않았지만, 자기 생에 만족하면서 사는 친근한 삼촌이 들려주는 조언 같은 책이라고 할까. 편안하게 다가서도, 방향을 제시해 주는 글이 마음을 토닥여주었다.  

  거울을 바라보며 "나는 정말 멋져,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서툰 말솜씨를 잘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다른 이의 말을 잘 맞장구치고, 주의깊게 들어주는 능력을 키우고, 나의 결점은 나의 장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꼭 기억하기로 다짐하였다. 능력이라는 것은 젊은 시절에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겨, 나를 변화시키는 작은 계기를 눈을 크게 뜨고,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기로 다짐하였다.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뻔해 보이는 말이지만, 전하는 방법이 세련되어, 마음이 훈훈해지는 책이다. 어설픈 자기계발서나 이 기술만 익히면 성공할 수 있다는 처세서들보다는 저자가 주장하는 나약한 자신, 보통의 자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시하는 일을 먼저 하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 다음은 자기 삶의 방식을 진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실천해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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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다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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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견뎌낸 95세의 노학자가 담담하게 들려주는 에세이.
 
 
  90이 넘었던 지식인을 알지 못한다. 저자가 내가 알고있는 지식인의 인물망 중에서는 최고령의 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지식인이 큰 고초를 겪었던 문화대혁명이라는 시기에, 저자는 격리조치와도 같은 '우붕'에서 삶을 견뎌내야만 했다. 감옥에서 비난받는 생을 사는 것과 차이가 없어보이는 굴욕의 순간을 저자는 방대한 양의 인도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의 번역으로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높은 단계로 승화시킨다. 긴 세월을 장수로 지내올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 삶에 대한 마음 가짐이 남달랐기 때문이라 짐작해 보았다.
 
  남아있는 생이 살아온 생보다 많지 않은 저자는 인생에대한 정답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일도 자기 뜻대로 결정하기 힘든 수동적인 삶, 어리둘정한 삶을 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야기 한다. 담담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한 작은 편린들을 들려준다. 길지 않지만, 글 하나하나에 경험을 바탕으로 한 깊은 사색의 힘이 담겨있다. 젠체하지 않은 채, 거만하지도 자신을 낮추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의 글은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
 
 
#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다시는 혼자서만 깊이 생각하지 마라.
 
 
  안분지족이라 할까. 저자의 글에는 동양적 삶의 깨달음이 잘 우러나와있다. 다른 사람과 사회의 추세에 마음이 끌려가지 않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은 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생에 대한 자신의 자세를 생각하는 깊이있는 삶에 대한 철학이 글 속에 자연스럽게 담겨있다.   노학자의 글이라 고루하고, 시대의 흐름보다는 자신이 살았던 생의 시대를 많이 보여줄거라 생각했는데, 변화하는 세대의 차, 고령화 시대 등에 생각하는 관점은 젊은이들의 철없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자유로웠다. 나이가 먹을수록 지혜가 깊어간다는 말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좋은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흔을 넘어선 고령의 나이를 '늙은 시계'라 칭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허름하고 낡아보이지만, 시계의 역할은 다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할까. 나이 들어감을 전략상으로 인정하지 않되, 전술상으로 늙었음을 인정하라는 묘한 지혜가 담겨있는 경구들은 되짚어 읽을 가치가 있다 생각한다. 어르신들보다 나이가 많지 않기에, 고령의 삶에 대한 경구에 몸으로 바로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로는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씩 몸의 기관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한탄하지 않고, 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볼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지는 마음,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치우치지 않는 마음 자세가 장수와 장시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생을 살아가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초조해 할 시간에, 짧은 시간을 쪼개어 도리에 맞게,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의 발걸음에 맞게 뚜벅뚜벅 걸어감이 좋다고 할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발걸음을 할 수 있는지 잘 헤아려 보는 일이라 생각한다. 재능과 기회는 하늘과 운으로 다가오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근면함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정진하는 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일,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일임을 잘 알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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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죽은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영미 옮김 / 창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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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 담긴 집, 그 곳에 다시 찾아갔을 때..
 
 
  이학부 물리학과의 연구조교인 난 부모님께 어렸을 때 살던 집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부모님은 철거시간을 알려주며, 찾아와 주길 바랬지만, 그 시간 난 집에 웅크리고 앉아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2년 전 한 여인과 함께 갔던 집을 떠올리며 마음이 스산해짐을 느낀다.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대학교 4학년때까지 오랜 연인이었던 구라하시 사야키를, 헤어진 후 7년만에, 고등학교 2학년 동창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자기 소개를 통해 이제는 세살 된 딸이 있는 가정주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로 그녀와 만날 약속을 하게 되고, 그녀에게서 아버지가 혼자서 종종 외박을 하셨던 장소에 함께 가달라는 부탁을 받게된다.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는 그녀는 딸 아이와 잘 지내지 못하고, 열흘 전부터 아이는 시댁에서 기르고 있다.

  생각나지 않는 기억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그녀의 부탁을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그녀의 왼쪽 손목에 그어진 붉은 자국을 보고 함께 가기로 마음을 굳힌다. 지도를 따라 찾아간 그 곳에는 현관문은 닫혀있고, 반대편에 지하실이 집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이다. 흐린 날씨와 인적이 드문 공간인 스산한 집과 마주하게 되는데...
 
 
# '아동학대'라는 사회현상과 사건의 비밀을 찾아가는 서스펜스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책.
 
 
  일본에서 1994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14년이 흘렀지만, 글의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하다. 집안에 있는 초등학교 6학년생으로 보이는 유스케의 일기장을 보면서, 소년의 기록과 사야키의 관련성을 찾기 위한 게임이 시작된다. 하나씩 사건의 비밀을 풀어가면서, 그녀가 지니고 있는 비밀, 그녀와 그의 관계, 그리고 그의 비밀, 그녀가 맞딱드려야 했던 사건들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전통추리소설의 복선이 잘 깔린 소설이다. 조금 특이하다고 한다면,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기 보다는, 기억속에 숨겨져 있던 무의식을 찾는 과정이 독특하다고 할까. 살인보다 더 공포스러운 현대인의 병인 '아동학대'를 학대를 하는 당사자, 학대를 당하는 피해자의 양쪽의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한 점이 책의 장점이다. 그냥 범인과 트림을 밝혀내는데 그치지 않고,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집중함으로써, 사회 현상에 더욱 고민을 하게 만든다.
 
  '아, 이 애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심리, 그리고 아동학대를 받은 아이가 부모가 되었을 때 다시 반복되는 폭력의 되물림,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에게 경멸당하는 것 가장 못 견대한다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사건의 전개를 통해서 밝혀진다.

  돌이켜보면, 유년시절은 성인이 되어서 좋지 않은 부분은 잊혀지면서, 아름답게 포장되는 경향이 강할 뿐이지, 누구나 감추고싶은 어두운 기억 하나는 존재하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이처럼 그 상처에서 도망치거나, 핑계되지 않고, 그러한 상처를 담담하게 인식하게 되는 마음크기가 자란 상태라 생각한다. 상황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시키지 않는 마음이 되었을 때 어른이 되는 것이라는 걸 소설을 통해 재확인하게 되었다.
 
  아이를 부모의 기대대로 키우려는 욕망이 아이와 어른 모두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군더더기가 전혀없는 묘사된 배경, 물건들 하나하나에 중의적인 복선들이 깔려있는 이 소설은 두 번 읽었을 때 그 진가가 더욱 잘 드러난다. 사건의 비밀을 몰랐을 때 한 번, 상상을 넘어서는 전개에 놀래고, 비밀을 알고나서, 저자가 짜놓은 촘촘한 논리의 그물망을 살펴보다 보면, 작가의 빼어난 역량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무의식에 전류가 닿은 듯 찌릿하면서 옛 추억속으로 잠시 빠져들게 한 소설이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빠른 독서를 할 수도 있고, 숨겨진 비밀을 찾다 마지막 페이지에 닿을 수도 있다. 곰곰히 어두운 인간의 비밀과 사회현상에도 맞닥뜨릴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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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린이들 - 이기웅 사진집
이기웅 / 열화당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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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진한 아이들이 표정을 보다보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제목에 충실한 사진집이라 할까. 1990년 한국의 어린 소녀를 찍은 사진부터 시작된 그의 사진여행은 네팔과 대만, 러시아, 헝가리, 체코, 프랑스, 영국, 미국, 이탈리아, 인도, 스페인, 모로코, 우즈베크, 카자흐스탄,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에 이르기까지 25개국 419장의 어린이들의 사진이 담겨있다. 한국의 이곳저곳, 시간의 풍경의 흐름에 따라, 아이들의 옷차림과 그들이 서 있는 곳의 배경은 달라지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순진무구하다. 연예인처럼 남들에게 보여주기에 익숙한 노련한 표정이 아닌,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어색하고 머뭇머뭇하는 그 표정과 포즈들이 오히려 정감있게 다가온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 머뭇머뭇하던 옛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 이제는 많이 찾아보기 힘든 풍경들.

 

  처음에는 아이들의 표정에 주목해서 사진집을 살펴보았다. 의도가 담기지 않은 표정들에 담긴 미소와 다양한 표정들을 보며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자연스레 아이들이 서 있는 장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허름한 시골, 이름을 알기 힘든 들꽃들과 함께 즐거운 미소를 띠고 있는 아이의 모습, 초가에 백발이 된 할머니의 등에 업혀, 손을 잡고 맑은 미소를 짓는 아이들, 청학동에서 한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 왼쪽으로 고개를 젖힌 채 카메라의 렌즈를 응시하는 아이의 뒤편에는 두 개의 구멍이 크게 난 나무가 보인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풍경, 조금씩 사라지는 풍경들, 어쩌면 이런 풍경들이 사라지면서 아이들의 미소 역시 사라져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새로운 작은 물건 하나에도 기쁘고 행복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했었다.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면서부터 즐거움보다는 세상의 아픔과 현실의 절망감이 더욱 눈에 들어오기시작했던 것 같다. 세상이 많이 바뀐것도 아닌데, 왜 내 마음이 많이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았더니, 어렸을 때 보았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많이 달라져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타인과 비교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호기심어린 눈으로 세상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던 그 시선을 잊고 살았었는데, 책은 유년시절의 내 마음의 풍경을 바라보는 자세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내일을 위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삶을 소중히하고 즐겁게 지내는 마음, 친구를 소중히 하는 마음들을 말이다.  

  사진에 이름도 없고, 따로 담긴 저자의 글도 없지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는 사진집이다. 처음엔 타임머신을 타고 어렸을 때의 내 머리 속으로 들어간 느낌에서, 그 때의 아이들 뒤의 풍경으로, 다음에는 삶을 바라보는 자세로, 많은 글을 써서 생각을 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이의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이 전쟁과 어른들의 욕심때문에 지금 이 맑은 웃음을 잃게 해 주어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념과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아이들의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위해서라도 전쟁과 폭력, 그리고 차별등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나니 마음에 큰 힘이 생긴 느낌이다. 지인의 생일선물로 꼭 정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선물을 건네는 내 마음에는 지금은 힘들어도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보며, 생을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라는, 어쩌면 이미 잊고 살고 있는 옛시절의 풍경과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다양한 문화와 우리가 지켜줘야 할 것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고 싶다. 굳이 글로 적거나 말을 하지 않아도, 사진집만 건네도 다 전해질 것 같다.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세상을 맑게 볼 수 있는 지인에게도, 현실의 괴로움이 가득해 도피하고 싶은 이에게도 모두 잘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한다. 행복해지는데는 돈도, 무언가 큰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알려준 책이다.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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