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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굴비낚시'에 낚여 내 품에 온 '오빠가 돌아왔다'
'굴비낚시'라는 책을 만나며 김영하라는 작가가 도서관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굴비가 영화와 비슷하다며, 영화 이야기, 글을 쓰는 자신을 굴비낚시에 비유한 그 센스에 감탄한 기억이 난다. 일반적인 영화 평론과는 다른 그의 색다른 글투에 빠져, 소장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헤아린, 마음씨 고운 지인에게 선물받아 행복한 기분에 날아갈 것 같았던 추억도 있다. 다양한 영화에 각기 개성강한 그의 글투를 보며, 이 작가는 소설을 쓰면 정말 재밌겠구나 생각했었다. 소설이 나오게 되면 꼭 읽어봐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낚이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낚시대를 드리우고 굴비가 잡히기를 기다린다. 소설가가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멋진 독자(굴비)가 낚이길 기다리는 의미없는 행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내 마음도 잘 모르는 난 작가의 마음을 잘 헤아릴 틈은 없다. 굴비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의 글투를 회상하며 그가 던진 소설집이라는 책에 낚였다.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 펑펑 울리는 멜로도, 너무 재밌어서 배가 아플만큼 재미있지도, 책 보는 시간이 아까워서 던져버리고 싶은 책도 아닌,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책 뒤에 써놓은 평론가들이 써놓은 어려운 말, 그런건 난 모른다. 가볍게 읽었지만, 뭔가 아쓸한 느낌에 마음이 쓰린 책이었다.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건 내 마음이 살짝 움직였기 때문이다.
# 일상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보다.
8편의 단편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오빠가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캐럴, 너를 사랑하고도, 이사, 너의 의미, 마지막 손님, 보물선 까지 세상에 존재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캐릭터들이 현실에 가까운 모습으로 내 눈앞에 드러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라져 버린다. 슬쩍 슬쩍 보이는 현실의 어두운 모습에 마음이 쓰리고, 캐릭터들의 다양한 행동들을 보며, 나라면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좋다, 나쁘다를 쉽게 말하기 힘든 책이다. 특별한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다고 하기엔 내게 뭔가 부족했고, 재미없고 읽을 가치도 없는 책이라 하기엔 이야기가 재미있다. 김영하의 책은 재미있다라는 편견에 빠져 있어서였을까? 책을 읽기전에 미리 기대하지 말아야지라고 되뇌이며 책을 읽어도, 내심 기대하는 마음은 머리의 간결한 판단처럼 단칼에 잘라지지 않는다.
<짐 싸는것부터 안전 배송까지 맡겨주시면 신속, 정확, 안전하게 해 드리겠습니다>라는 광고와 주변의 말에 쉽게 속는 진수의 모습이 담긴 <이사>와 난 알바라며 이번이 끝이라며 물건을 함부로 하고, 배짱을 부리고, 이사의 기분을 깨버리는 모습, 각자의 필요와 이해에 따라 쉽게 가족을 만들어 버리는 아버지부터 딸까지 모두 속물이 등장하는 <오빠가 돌아왔다>,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 소설이니까 가능한 거겠지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와 <크리스마스 캐럴>도 개연성이 충분히 드러나는 모습에 진짜 실화인 듯 빠져들었다.
#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책
글을 쓰다 막막해져 버렸다. 서평을 생활화 하는 지인에게 소설은 서평을 어떻게 쓰는지 물어보았다. 전체적인 맥락을 말하고, 괜찮았던 것 한 두개를 골라 말해도 되고, 단편집이니 전체적인 문체나 이야기의 분위기를 봐야한다고 했다. 안개속에서 길을 헤매는 느낌이라고 했더니, 느낀대로 솔직하게, 그게 좋다며 그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했다. 꾸밈없이 마음에서 나오는대로 글을 적기에, 그의 글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김영하의 이번 소설집 역시, 그의 글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젠체함이 없이 다가오며 읽다보면 어느새 끝이 나 버린다. 옅은 안개속을 거니는 느낌이다. 꾸준히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모든게 뿌였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구별할 수 없다.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는 모호한 느낌의 책, 나의 지적수준과 감수성이 자라난다면 책의 재미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재밌지도, 재미없지도 않아 새롭게 다가왔던 소설집이었다.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발라당 까진' 경선이가 가족에게 하는 거침없는 말투를 보며,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발라당 까졌다는 말이 속어인 줄 알았는데, 사전에 등재되고 속어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자주 쓰진 못할 것 같다. 소설집이 몇 권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더위를 인식하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 시간을 멈추어 버리게 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더위와 결별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