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잃어버린 지혜, 듣기
서정록 지음 / 샘터사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즐거운 대화의 시작은 바른 듣기에서 시작된다.

 
  즐거운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경청하라고 한다. 내 이야기를 먼저 말하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라고 한다. 잘 듣는 건 쉽지 않다. 대화의 주제를 내가 아는 부분과 내가 주도하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욕심이라 생각한다. 지혜로운 이는 상대방이 충분히 말할 수 있게 한 후 자신의 생각을 간명하게 말한다고 한다.

  상대의 의도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에 집중해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 잘 듣기 힘든 이유는 듣는 연습을 누군가 가르쳐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내 말에 집중해서 들어준 이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경청을 넘어선 듣기라는 말에 끌렸다. 듣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이해한다면, 주의깊게 듣는 경청또한 자연스럽게 잘 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비로운 소리의 어원이 눈을 감는다라는 말이였다는 말과 옛 현인들은 눈이 없는 대신, 마음의 소리를 읽었다는 부분이 좋았다. 소리를 듣는 듣기를 넘어선 마음을 이해하는 듣기의 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첫 시작이 좋다.


# 태아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마의 소리를 다 듣는답니다.

   놀랍고 재미난 많은 사실을 알게 되다.

  
  인디언 산모는 임신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마자, 자연의 공간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가락을 넣어 아이에게 들려준다. 끊임없이 자연의 존재와 아버지와 가족등의 많은 이야기들을 아이에게 전한다. 뱃속의 아이들은 말은 못해도 어머니의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믿음도 놀라웠고, 인디언 아이들에게는 칭얼대며 우는법이 없다는 것도 새로웠다. 듣기의 소중함을 아는 그들이기에 자연과의 소통 또한 잘 할 수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모가 친어머니일 수밖에 없는 이유와 닭이 알을 품어 키운 병아리만이 유정란을 품는다는 사실, 다른 둥지에 알을 맡기는 뻐꾸기 역시 매일 같은 시간에 알에 와서 자신의 울음소리를 알려준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즐거움도 신선했다. 어머니 목소리와, 모짜르트 효과, 아버지의 존재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아이에게 인식된다는 사실 역시 새로웠다.

  2부에서는  동식물과 인디언, 아프리카 원주민 등의 다양한 듣기 방법이, 3부에서는 영혼, 신화, 행성 등 쉽게 눈에 다가오지 않지만 조화로운 소리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 도표와 그림이 잘 설명되어 있어 좋았다.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서 듣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귀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는 토마티를 알게 된 것도 좋았다. 그가 알려준 토마티 방법도 신선했고 바른 자세 등 소리를 잘 내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아닌 귀로 노래한다거나 오른쪽 귀가 더 똑똑하다는 사실등은 귀가 얼마나 인체와 활동에 많은 걸 차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  과학적이면서 마음을 끄는 이야기들.

     충분한 자료 조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영성이라고 할까. 영혼 또는 비과학적인 내용과 과학적이며 적시적인 사실들이 잘 조화되어 책을 구성하고 있다.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과 영혼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있는 부분들이 '듣기'의 중요성을 잘 뒷받침 해 주고 있다. 시중에 많이 나오는 대화법과 관련된 자기 계발서가 아닌, 인문학적으로 체계적으로 '듣기'에 대해 재조명한 내용이 좋았다. 과학적 사실과 인디언의 듣기 등 여러가지 사실을 찾아 조사하고 테마를 잡은 저자의 충분한 자료 조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차다간에 얽힌 이야기와 스페인 영화 <그녀에게>의 한 장면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게 듣기의 소중함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차다간을 울리며 마음과 정성을 다 하였기에 젊의 여인의 마음이 돌아서고, 코마상태에 있지만 그녀가 들을 것이라 믿고 끌없이 간호하는 베니뇨의 모습이 멋졌다.

   과학적 사실을 통해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감성적으로 듣기의 중요성에 빠졌다. 그리고 영혼을 통해 감명해야 하는 부분은 내겐 아직 숙제이다. 지적 만족과 감동과 숙제를 함께 안겨준 재미난 책이었다. 서툰 말솜씨와 타인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어린 나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마다 챙겨 읽어볼 계획이다. 바른 자세와 예쁜 마음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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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 대한민국 보고보고 시리즈 1
배연형.서희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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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소리에 관한 추억 하나.


  여행을 좋아합니다. 화려한 볼거리와 멋진 풍경이 넘치는 여행은 언제 떠나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깁니다. 시간이 흐른 뒤 사진을 다시 보며 추억이 서린  그 장소를 떠올립니다. 제가 좋아하는 지인이 말해준 특별한 여행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멋진 풍경과 사진을 보는 것도 멋지지만, 녹음기 하나 들고, 그곳의 풍경을 소리로 저장해 놓는 것 또한 멋진 여행의 추억이 될거라 이야기했습니다.

  소리에 관한 특별한 기억이 하나 떠오릅니다. 이제는 나뉘어버린 좋아하는 그룹의 자료를 모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산에 사는 팬클럽 누나에게 오래전 그룹의 콘서트 공연을 녹음한 테이프를 담은 기억이 납니다. 콘서트 공연을 다시 컴퓨터로 녹음한 후 마지막에 소음이 들리면서 함께 공연을 본 누나의 친구가 누나가 살짝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긴 메세지가 들렸습니다. 공연 잘 보았고, 함께 했던 우정 변치 말고, 앞으로도 잘 지내자는 부산 억양과 사투리가 섞인 말을 듣고 공연에 대해서 우정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한 기억도 납니다.

 


# 소리를 테마로 한 색다른 여행기.


  한이 서린 판소리, 창극과 남사당패, 가야금 병창, 말양 백중놀이, 천하지대본의 노래, 아라리,
소리의 명인이 몸담았던 터 등 소리를 주제로 한 색다른 여행의 책이 나왔습니다.


  광화문과 정동, 광무대, 안성 청룡사등의 소리의 터와 옛 문화가 시작된 터가 1부에, 판소리와 관련된 이동백, 송흥록, 정정렬 등의 명인과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한 신재효, 서편제와 가사문학의 본고장인 순창과 담양군을 살피고 나면 2부가 끝이 납니다. 

  남원의 이화중선, 쑥대머리로 판소리 역사를 바꾼 임방울, 소리에만 빠진 구례의 명창 박봉술 명인과 보성소리와  창극의 흔적이 담긴 보성과 고흥에서는 명인들의 에피소드와 재미난 이야기들이 나들이 떠나는 곳을 더욱 즐겁게 합니다.  

  옛음악의 흔적이 잔뜩 담긴 4부에서의 낙안읍성의 가야금 병창, 밀양의 백중놀이, 예철과 안동의 농민의 노래,  정선의 아라리를 통해 옛 소리와 현대의 소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풍부한 삽화와 재미난 이야기, 섬세한 여행정보까지 알친 구성에 빠지다.


  하나의 소리와 하나의 여행장소가 잘 짜여진 책에서는 풍부한 삽화와 재미난 이야기들의 잔뜩 담겨있습니다. 녹차로 유명했던 보성과 가사문학과 대나무만 유명한 줄 알았던 담양에 서편제의 맥이 흐르는 명인들의 숨결이 살아있고, 그 터가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색다른 주제를 통해, 고정되어 있던 주변의 지역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이미 알고 있던 장소의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어  더욱 신났습니다. 두 발로 우리 땅의 감각을 느끼는 국토대장정, 곳곳의 색다른 맛을 느끼는 맛집 기행, 눈을 즐겁게 하는  관광지 여행은 많은 사람들이 떠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그만큼 쉽게 잊을 수 있는  소리 여행을 하는 이는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소리를 찾아 떠나다 보면 독특한 그 지역의 향도 느낄 수 있고  자연스레 맛과 시각또한 즐거워 질거라 생각합니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여행을 하기 위해서라도, 소리여행을 다룬 이 책은 제게 소중합니다. 

  또한 하나의 테마가 끝날때마다 나오는 추천음반은 꼭 들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엠피쓰리나 시디피 하나를 들고 떠나는 소리여행, 여행이 더욱 즐거워 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얼과 우리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샘솟게 될 거라 믿습니다. 소리를 통해 나를 알고, 우리 문화를 알게 되는 즐거운 여행,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신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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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역사
이이화 지음 / 열림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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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기록이 아닌 역사를 읽는 방법은....

  옛 이야기를 듣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다. 전래 동화는 교훈을 주고,
판소리는 애환이 서려있으며, 설화와 야사들에는 해학이 넘친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옛 사람들의 공식적 기록인 국사는 참 재미가 없다.

  옛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국사를 공부하는 건 암기와의 싸움이라고 할까? 옛 행위의 재해석이 아닌, ...년에 ...일이 있었다 하는 편년체적 기술은 암기해야 할 대상의 압박으로 다가와 지치게 한다.

  역사는 늘 새롭게 씌어져야 하며 따라서 모든 지난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 칼 베커

  현재의 시각에 맞추어 새롭게 재조명되는 역사는 늘 현재형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체제 유지를 위한 딱딱한 기술의 역사가 아닌 다양한 시각에서의 바라본 관점을 읽고 싶었다. 한국사 이야기 22권을 출간하였으며, 뚜렸한 개성이 넘치는 이이화님의 에세이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주와 개혁, 생활사와 풍속사, 자아비판과 자기반성을 함께 담았다는 머릿글의 내용이 좋았다. 태초의 시작부터 6월항쟁까지 다루었다고 한다. 참 내용이 많고 기억해야 할 것도 많은데 어떤 내용들이 저자의 필터에 걸려져서 담겨 나왔을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  교과서와 다르다. 역사의 기록은 줄이고, 개혁과 자기반성이 늘었다.


   교과서와 달라서 좋았다. 사진이나 에피소드와 같은 편하게 다가오는 수단이 없지만, 한국사의 흐름에 맞게 기술된 이야기는 쉽게 책장을 넘어가게 했다. 유물과 전쟁, 사건이으로 기술된 이야기가 아닌, 새롭게 시작되는 국가가 기존의 나라와 다른 차이점과 융성하게 된 원인, 그리고 멸망하게 된 원인, 내부에서의 개혁의 시도와 한계등이 잘 설명되어 있어 좋았다.

'강한자만 살아남는다, 강한 나라가 되어야 해!' 하는 진화론에서 비껴나고, 반공 이데올로기에 휩싸이지도 않았다. 반쪽짜리 통일국가 신라가 통일하게 된 장점과 함께, 발해와의 원만치 못한 관계를 같이 제시하는 민족사적 한계까지 함께 제시하는 부분도 좋았다.  

  신라, 고구려, 백제는 전혀 다른 언어를 쓴 민족이라 생각했는데, 통역이 없이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이두)를 사용했다는 점은 조금 더 공부해야 할 숙제를 남겨준 것 같아 좋았다.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즐겁다. 딱딱한 역사의 지식에서 궁금한 점이 많아진 옛 조상들의 기록으로 역사가 다가온 건 500페이지를 읽고 난 두꺼운 책이 준 선물이다.


# 조금 더 부각된 '발해'와 동학농민운동을 비롯한 '민중봉기'

  학창시절에 공부했을 때 작게 소개되었던 발해에 대한 부분이 깊이 있게 다루어진 점이 가장 좋았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일하게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었다는 이야기와 살만교로 이름붙어진 샤머니즘, 탈혼, 보쌈으로 불리는 결혼방식도 흥미로웠다. 높은 문화수준이 엿보이는 작품을 알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발해의 문화들이 잘 보존되지 못하고 현재 남아있는 부분이 적었던 점은 너무 안타까웠다. 동학농민운동과 민중봉기의 부분, 일제시대와 근현대사의 부분 또한 짧기만 간명하게 핵심을 잘 짚었다고 할까. 망할 수 밖에 없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문란한 일들과 못살겠다 싶을 때 일어나는 자발적 항거들.. 자주와 개혁으로 바라 본 간명한 역사적 흐름은 살필 수 있게 되었다. 그 안의 세부적 충돌과 이해관계의 대립은  앞으로 살펴야 할 몫이다.


# 한국사를 총제적으로 정리한 책이 아닌, 한국사에 흥미를 갖게 해주는 입문서.

  지금의 삶 또한 미래의 세대에게 하나의 역사적 기록이다.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자.


  10부 나누어진 구성을 통해 관심 있는 부분이나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살필 수 있다.
알고 있던 기억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구나 하는 뿌듯함과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기쁨, 그리고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살피게 되는 즐거움이 가득 찬 시간이었다. 

   역사의 핵심만 잘 뽑아놓은 엑기스라기 보다, 현재의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자주와 개혁이란 단어로 역사를 재 구성한 입문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역사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키는 것이 저자의 목표라고 하였다. 적어도 내겐 성공했다.

  지금 나의 행동과 선택 하나하나들 또한 미래의 사람들에게 역사의 기록이 될 것이다. 옛날에는 민중봉기라는 폭력적 수단만이 정치와 현실을 심판할 수 있는 무기였다면, 지금의 나에겐 투표와 의견표출이라는 수단이 있다. 그 수단이 회의주의와 냉소주의에 의해 사장되지 않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무기가 되지 않게, 열심히 궁금해하고 물어보고, 해답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를 만드는 일은 영웅이 아닌, 모래알처럼 많지만 큰 의미가 되어 보이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의 개혁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지치지 않고, 나부터 실천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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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 전2권 세트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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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시간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만나다.

  아주 가끔은 시간을 거슬러 가 보았으면 하고 바라는 때가 있다. 물론, 내가 쓰는 언어를 사용하는 장소에서 내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시대를 경험해야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때 고백했더라면, 그 애와 잘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짝사랑하지만 용기가 적어 주춤했던 이에게, 아주 큰 실수를 했지만 용서받지 못했을 때, 그 사실 자체를 바꾸고 싶은 마음을 가진이에게 매력적인 제안이다. '다시 시작하면 잘 할 수 있을텐데...', '... 했더라면'하는 되뇌이지만 결코 돌아오지 않는 미련과 후회는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 동등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공평하다. 그리고 다시 거슬러 갈 수 없기에 소중하다.

  현명해 진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 때론 지켜봐야만 하는 일을 구분하는 판단을 잘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시간 여행자인 헨리 역시 유전자의 영향으로 인해, 뇌의 기억은 간직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자신의 생의 과거와 미래로 이동하게 된다. 처음엔 시간 여행자보다는 '시간 이동자'라는 표현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여러 시간들을 이동하면서 맺어지는 클레어와의 인연과 결혼, 임신, 그리고 헤어짐까지의 과정은 그 어떤 사랑이야기보다 달콤하고 매혹적이다.

 

# 믿는 다는 건, 믿을 수 없는 걸 믿는 거에요.

 

  냉철한 사업가가 순수한 직원과 사랑을 느끼지만, 사업가의 목적이 그 회사를 망하게 하려 왔다는 것이 알려지고, 회사를 지키려는 직원과 일과 사랑사이에서 갈등하는 사업가와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가 생각난다. 드라마의 재미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포기하였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직원에게 남긴 말은 아직도 기억난다.

  "믿음이 뭔 줄 알아요? *** 씨?"

  "믿을 수 없는 걸 믿는 게 진짜 믿음이에요!"


  6살난 꼬마아이가 시간이동을 벌거숭이의 낯선 남자의 말을 믿어주는 것에서 그들의 관계는 시작된다. 여러가지 예언적인 이야기에 솔깃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평생을 두고 매번 사라져버리는 그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만을 생각하며, 여러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는 건 사랑의 힘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나를 믿어줄 수 있겠어요?', '당신이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난 당신을 믿을래요!' 누군가에게 묻기도 어렵고,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어려운 말이다. 그래서 '멋지고 따뜻한' 그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의 여러 모습을 모두 사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은 환상이라는 소설가의 말이 생각난다. 다루기 힘든 소재를 최대한 상상가능한 범위 내에서 잘 짜맞춘 퍼즐처럼 맞춰어가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고, 서로만을 생각하는 헌신적인 그들의 사랑에 빠지다 보면, '역자후기'라는 글자가 눈에 어리어 있다.


# 식상한 '시간여행'이란 소재를, 참신한 로맨스 소설로 바꾸어 버리다.

  시간여행을 생각하면, 먼저 백튜더퓨처 시리즈가 생각난다. 그리고 타임머신이라는 영화와 'Retroactive' 등의 영화가 떠오른다. 나비효과 역시 충격적으로 보았고, 감독판과 극장판의 다른 결말도 인상적이었다.

  선과 악의 대결, 과거를 바꾸어 보아도 더 나은 미래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비슷비슷한 내용과 달리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는 시간이동을 원하지 않지만 이동할 수 밖에 없는 헨리와 그런 그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믿어주고, 지켜주려 하는 헌신적인 클레어의 사랑이야기가 담겨있다.

  모든 걸 알고 있더라도 과거를 고쳐 미래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바꾸어 내는 모습과, 로또와 주가 등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두 가지 현명한 결단의 헨리의 결정이 있었기에 그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상이었다면, 어떻게 하면 로또와 주식을 대박을 낼까 하면서 욕망이 끄는 삶을 살다가, 결국 파멸하는 이야기가 담기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 "사랑해서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사랑하자.
  

  '시간여행'은 연애하는 이에게 가장 큰 장애라고 생각한다. 서로 싸우고 화내고 다투는 것보다 연애에서 무서운 건, 서로에게 무관심해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더라도 '그'를 믿기에 기다려주고, 용서해주고, 믿어준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
사랑한다면, 불가능도 가능하다고 믿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부러웠던 건 상처도, 슬픔도, 기쁨도 서로 함께 나누었다는 것, 사랑하기 때문에 숨기고 싶은 것도 많고, 사랑하기에 밝히지 말아야 할 것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늘, 마음 속으론 내 모든 상처도 다 감싸 안아주길, 상대의 아픈 상처도 다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꿈꾼다.
 

  마음처럼 다르지 않은 현실, 이것저것 머리싸움을 하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심성의껏 사랑을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다. 그대로 하긴 힘들겠지만, 최소한 솔직해지려 노력해야 겠다. '사랑'을 시작하게 될 때 꼭 다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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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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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만에 다시 꺼내든 책.

 
  헌책방에서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많이 보이는 상처를 감싸며 책을 집으로 데려왔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이 책을 읽었다. 밀폐공포증과 "그러니 나를 좀 제발 놔주시오!", 그리고 죽음의 강으로 멈추지 않고 돌진하는 그의 모습 등, 그의 기행에 매료되었다. 속박에서 자유롭고, 결국 벗어날 수 없지만, 끊임없이 어디론가 이동하길 원하는 고등학생의 답답함에 섞여 짧지만 강한 여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10년이 지났다. 다시 이 책을 만났다. 다시 만난 좀머씨 이야기에서는 쥐스킨트 못지 않게 유명한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을 눈여겨 보게 되었고, 화자의 어린 시절에 조금 더 빠져들었다. 좀머씨와 비슷한 삶을 사는것처럼 보이는 작가의 기벽에도 조금 더 마음이 쓰였다. 다시 10년이 지나면, 난 어떤 화두로 이 책을 만나게 될까? 10년 전의 경악과, 현재의 감탄, 10년후의 내 모습을 잠시 그려보았다. 10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 쥐스킨트의 글과 짝을 이루는 상페의 멋진 그림들..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상페의 그림들에 흠뻑 빠져들었다. 글은 상상의 붓으로 뇌를 자극해서 풍경을 만들어 내지만,  그림은 색감으로 많은 걸 이야기한다. 마치 상페가 그림이 먼저 그려지고, 쥐스킨트가 그것에 영감을 받아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림과 책 내용은 잘 연결되며 이해를 더 빠르게 한다. '하늘을' 날거라 굳게 믿었던 화자의 생각에 갸우뚱 하다가도, 정말 하늘을 날 것 같은 언덕 내리막을 달리는 그림을 보게 되면 '그래, 정말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었을 꺼야' 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좋은 글은 그 자체로 많은 자극을 준다. 고등학교에 읽었을 땐 책만 읽고도 작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좋은 글에 걸맞은 그림이 함께 담겨있다면, 'Win-Win'이라고 할까? 기쁨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한 느낌이다. 
 

# 유년시절의 추억을 살피다.
 

  밀폐공포즘, 단절, 관계 등 어려운 주제로 고민했던 10년전과는 달리, 조금 더 유연하게 화자의 일상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무 위에서 다른 이와 달리 자기만의 세계를 꿈꾸는 유년시절과, 세상의 규칙과 다른 나만의 상상력이 가득찬 순수했던 마음, 짝사랑하는 아이와의 데이트 코스를 정하는 설레임과 그것이 어긋났을 때의 상실감, 세상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돌아갈 것 같았던 유년시절의 많은 모습들이, 여과없이 담겨있어 좋았다. 유년시절의 철없고 풋풋하고 순수했던 모습들을 다시 보게 된 느낌,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애틋했다.

   서툰 자전거와 매정한 노처녀 피아노선생님의 핍박 하나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그 마음과 내가 죽으면 그때서야 다들 후회하고 말꺼야 하고 상상하는 마음 등 그리고 어설픈 행위들까지 여린 마음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도 느낄 수 있었다. 잊고 있던 유년시절들이 다시 떠올랐다. 어린 마음과 대면하는 느낌, 어색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 진정한 '관심'은 무엇일까?

 
  10년후 다시 만난 좀머씨를 만나 받은 생각의 열매 안에는 '진지한 관심'이라는 씨앗이 담겨있었다. 소문이 아닌,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 할까. 마음을 주지 않을거면, 이야기도 하지 말 것이지.. 그냥 그를 단순한 소문거리로 대했던 사람들이였기에 그를 쉽게 잊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났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잊어버리는 건 멀어진 것이 아니라, 그를 호기심으로 대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만 주고 시간이 지나버려 잊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적당한 관계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게 된다. '호기심'이 아닌 '마음을 들여다 보는', 관심있는 관계를 맺고 싶어졌다. 그런 관계가 아니라면 나 역시 지나친 간섭에 '제발 날 좀 내버려 두세요!!!'라고 도망쳐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짧고 이해하기 편하다. 아직 책을 다 이해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10년 뒤 다시 꺼내어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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