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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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우리나라가 굳이 단기를 사용하지않고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있는 서기를 따르는 것에 비해, 일본은 아직도 천황의 나라임을 강요하는 듯한 독특한 연호를 고집하고 있다. 히로히토 시절의 쇼와를 거쳐 오늘날 아키히토의 헤이세이 시대를 살고있는 일본을 보노라면 새삼 가까이하기 힘든 나라임을 되새기게 한다.

 

이 작품의 제목 '64'는 바로 쇼와64년을 의미하는데, 서기로는 1989년이다. 왜 하필이면 쇼와64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쇼와64년이 쇼와의 마지막해이자, 헤이세이의 원년이기도 한 그들만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있기 때문인 것 같다.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는...

 

그 오래전 '에드가 앨런 포'를 동경한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에도가와 란포'로 바꾸어버린 작가가 있을 정도로, 일본추리소설의 역사는 깊고도 방대하다. 작가들이 많은 만큼 소재와 스타일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에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이라는 고유한 색깔이 묻어있다는 공통점 또한 존재한다. 그 시절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분위기와 과하다싶을 정도로 개개인의 심리묘사에 집착하는 서술방식 등, 한눈에 일본소설임을 느끼게하는 인장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다.

 

물론 인명과 지명을 제외하면 일본색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서구적 스타일의 작품들도 적지않다. 십수년전에 읽었던 신주쿠상어(상어를 뜻하는 사메さめ가 연음처리되어 일본어로는 '신주쿠자메'로 발음한다) 시리즈는 일본추리물에 대한 선입관을 단숨에 날려버릴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거의 헐리우드 액션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플롯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국내 추리소설들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본작 64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일본적이다. 3인칭 시점을 쓰고있지만 사실상 1인칭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오직 주인공 미카미 형사의 시점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 했던가... 주인공의 모든 행동과 자질구레한 생각 하나하나까지 징그러우리만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독자의 상상에 맡겨도 될 부분도 일일이 언급하고 또 반복까지 하는 모습에 중간중간 질리기도 했지만, 덕분에 필요이상으로 분량이 많아진 듯 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지루함을 넘어설 정도로 잘 읽힌다. 그만큼 작가의 필력과 뚝심이 남다르다는 반증이리라...

 

미카미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자들과 진심으로 교감을 이루는 후반부의 극적인 클라이막스는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추리소설이라는 탈을 쓰고는 있지만, 결국 용서와 화합,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휴먼드라마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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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브레스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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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요 네스뵈

 

안녕하세요?

 

최근 당신의 작품들이 늦게나마 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인 이 곳 한국에 속속 소개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저도 '스노우맨'을 통해 당신을 처음 알게 되었고,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당신의 열렬한 팬이 되었답니다.

 

뒤늦게 소개되다보니 안타깝게도 출간되는 작품의 순서가 좀 뒤죽박죽이네요. 가장 최근에 나온 이 '레드브레스트'가 해리 홀레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라면서요? 그래서 대머리인줄 알았던 홀레 형사의 머리가 원래 금발이었다는 것도 새삼스레 알게되는군요.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 내심 높은 기대감으로 살짝 흥분했었다는 점을 미리 밝히고 싶어요. 그만큼 당신은 제게 믿음을 안겨주는 작가랍니다.

 

우리아...
저는 이 책을 거의 다 읽을 즈음에야 비로소 우리아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보같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우리아와 밧세바의 이야기 말이죠. 고등학생때까지만 하더라도 명색이 교회를 다녔던 사람인데...

 

제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칠순을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지금도 열렬한 교인이시거든요.
'저, 어머니... 혹시 다윗왕이... 그...'
라고 제가 운을 떼자마자 어머니가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아세요?
'우리아?'

 

네, 정말입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모자간에 무슨 텔레파시라도 있는건지... 그래서 저는 다윗왕은 그것때문에 어떤 벌을 받았는지 물어보았고, 어머니는 다윗이 진심으로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자식들 때문에 그 후에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사연도 들려주시더군요. 물론 솔로몬이라는 훌륭한 아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에는 우리아와 밧세바의 스토리를 2대에 걸쳐 기가막히게 녹여넣었더군요.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의 기본 골격으로 구상한 것이 맞습니까? 제가 정확히 본 건가요?

 

저는 전후세대라 2차대전 당시 북유럽의 상황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초반부에는 곧바로 와닿지않는 부분들이 좀 있었어요. 독일,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그리고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대해서...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는 유추가 가능하도록 해놓았더군요. 확인해보니 당신과 저는 정확히 10살 차이네요. (당신을 형이라 부르면 안되겠죠?) 그러니까 당신도 전후세대인 것은 마찬가지라는 사실... 아마도 아버지 세대의 경험담에서 전시상황의 묘사를 구체화시킨 것이겠죠?

 

비록 이런 조그마한 나라에 살고있는 한낱 존재감없는 독자일 뿐이지만, 저는 책이나 영화, 음악 등의 분야라면 꽤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당신도 음악과 영화, 미술 등 예술방면에 조예가 깊은 걸로 보입니다. 책만 읽어봐도 대충 감이 와요. 알죠? 고수는 고수가 알아본다는 거... 이 책에서도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에 대한 에피소드가 잠깐 나오더군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어쨌거나 저는 추리소설이나 범죄스릴러라면 정말로 많이 읽었습니다. 중학생때 이미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작품을 섭렵하고 반다인으로 넘어갔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이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려본 건 당신의 작품이 처음입니다. 바로 중반쯤에 나오는 '일곱날'이라는 파트...

 

아...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저는 그 일곱날의 페이지를 넘기며 어떻게 인간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정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가 끊겼다는 응답메세지를 끝으로 저는 한동안 책을 놓고 멍하니 있었습니다. 가슴 속의 정체모를 뜨거운 기운과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말이죠... 저도 한때 추리작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당신의 글을 보니 진작에 포기하길 잘했다 싶더군요. 만약 제가 프로작가였다면 이 작품을 읽고 아마도 절망감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아마데우스를 바라보는 살리에리처럼...

 

당신의 작품들은 앞으로도 계속 출간될 예정인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겠죠? 부푼 기대감에 다음 작품을 기다리겠지만, 혹시나 약간의 실망을 하게되더라도 전 당신을 용서할 겁니다. 이 작품으로 당신은 이미 제게 넘치는 보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먼훗날 베르겐의 아름다운 항구에서 당신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는 제 모습을 부질없이 상상해봅니다...

 

Sincerely Y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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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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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작가의 글에서는 확실히 남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는 여자의 마음속 깊은 곳의 디테일한 묘사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자의 심리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남자들도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남자의 시각이라는 한계를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여성작가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남녀의 심리묘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필력이 좋다. 상황을 집중시키는 임펙트있는 사건이 별로 없음에도 흥미진진한 몰입도를 선사한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차츰 콩깍지가 벗겨지고, 권태기에 접어드는 일련의 과정들... 그리고 아내의 갑작스런 실종이라는 설정 등이 식상하거나 익숙한 듯 하면서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중간중간 늘어지는 부분이나, 마지막장을 덮고나서도 미심쩍은 부분들이 개운하게 해소되지않는 개연성의 부족은 과연 이 작품을 미스테리나 스릴러라는 장르로 봐야 하는걸까 하는 망설임이 들게한다. 애초부터 작가가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정교한 플롯을 구사하는 스타일은 아니며, 스릴넘치는 범죄에 촛점을 맞춰 구상한 작품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자들의 자잘한 수다에 어김없이 등장할 것 같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영원한 화두에 대해 독자들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면, 아마도 작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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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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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는 독일 스릴러. 이 책도 역시 스테디셀러라 할 만큼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듯하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물은 별로 선호하지않는 개인적 취향때문에 그동안 구매를 망설였는데, 결국 궁금증을 이기기는 힘들었나 보다. 많이 팔리는 책은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스릴러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른 전형적이면서도 교과서적인 플롯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글솜씨도 평균이상이라 페이지도 잘 넘어간다. 범죄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작가의 이해와 접근방법이 정직하면서도 모범적이다. 하지만 평범함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없다는 점 또한 언제나 그러하듯 상반되는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기발한 반전따위에 승부를 걸지않는 이러한 전형적 스타일의 스릴러는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못지않게 반대편에 서있는 범죄자에 대한 캐릭터 설정이 디테일하게 준비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작가는 범인의 트라우마까지 설정했음에도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있어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범인이 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가에 대한 설득을 생략한 셈이다.

 

'백설공주...'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표지디자인이 매력적이다. 납득하기 힘든 판매량과 예쁜 표지디자인 사이에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말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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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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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서부영화였던 것 같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녘 숲속을 덩치가 큰 인디언 여자가 홀로 걸어 들어간다. 한곳에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가 쓰러져있고... 여자는 그 나무의 가지를 붙잡고 조용히 움츠려 앉는다. 잠시 후 숨막히는 적막을 깨고 울러퍼지는 아기의 울음소리... 그리고 끝까지 묵묵하게 아기를 품에 안고 걸어나오는 인디언 여자... 어릴적 TV에서 보았던 제목이 생각나지않는 이 영화의 한 장면은 아직도 내 머릿속 한곳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여자... 그 끝을 알 수 없는 강인함... 그리고 숭고함...


이 작품은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스밀라라는 이름의 여자...


한 소년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이웃에 살던 스밀라가 그 원인에 의문을 품고 사건을 파헤쳐간다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처럼 보이는데, 막상 한꺼풀 벗겨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내용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음에 놀라게 된다.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별다른 자각을 하지못했던 한 여자가 우연한 사건에 본능적으로 뛰어들면서 서서히 자신의 내면 속에 숨어있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어렵다. 상당히 어렵게 읽히는 책이다. 챕터마다 등장하는 형이상학적인 서론들은 학술논문을 읽는 것처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패턴에 조금씩 적응이 되면 등장인물들의 격조있는 대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무심하게 펼쳐지는 차가운 얼음장같은 서스펜스에 전율하게 되고, 마지막장을 덮고나면 마침내 특별하면서도 묘한 여운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수리공이 스밀라를 위해 정성스레 만들어주던 특별한 음식처럼...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인 어머니와 덴마크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스밀라는 책의 제목 그대로 눈과 얼음에 관한 특별한 감각을 가진 여자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그린란드라는 거대한 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덴마크와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해진다. 덴마크의 자치령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섬으로 분류되어있는 그린란드란 대체 어떤 곳인가... 집에 있던 지구본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캐나다와 유럽 사이에 위치한 그린란드. 저 거대한 땅이 어떻게해서 덴마크의 영토가 되었을까...


작가 피터 회는 1957년생이라 하니 1992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불과 30대 중반에 쓰여졌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을 헤아리기 힘든 학문적 깊이와, 마치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것 같은 전지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압도적인 필력은 경이롭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다. 움베르토 에코라도 30대에 이런 글을 쓰지는 못했을 것 같다. 수학과 기하학, 물리학, 지질학, 생물학, 문화인류학, 거기에 항해학과 클래식과 째즈를 망라한 음악적 깊이까지...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허튼 소리가 없고, 함축적이며, 격조가 있다. 한마디의 대사를 내뱉기위한 인물의 심리상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의 독특한 서술방식은 그야말로 지적호기심을 극대화시켜 준다. 특히 중반부 스밀라와 수리공과의 성애묘사 부분에선 여자가 남자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식의 상상을 초월하는 표현법에 깜짝 놀랐는데, 작가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고 했던가...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여자의 또다른 일면일 뿐... 피터 회가 스밀라를 통해 보여주는 여자의 모습은 강하고도, 고귀하고, 숭고하다.



1997년에 개봉된 동명의 영화는 역시 덴마크의 명장 '빌 어거스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빌 어거스트... 아카데미와 칸 영화제를 석권한 '정복자 펠레'와 '최선의 의도' 같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대학시절 부산에 살면서도 기어코 서울의 대한극장까지 찾아가서 감명깊게 보았던 '영혼의 집'이라는 영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이름만으로도 무한한 신뢰를 보낼만큼 훌륭한 감독이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 '센스 오브 스노우'는 그다지 인상깊은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한다.


소설의 방대한 내용을 세세하게 영상으로 표현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보니 사건 위주로 축약을 한 탓에, 책을 읽지않고 영화만 보아서는 스토리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만큼 이 소설은 겉으로 보여지는 사건보다 눈과 얼음으로 대변되는 자연의 본질,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 관한 심도깊은 묘사가 핵심이라는 반증이리라...


스밀라 역의 줄리아 오몬드는 '가을의 전설'과 '카멜롯의 전설' 등, 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여배우다. 이 역할에 있어 다른 여배우는 쉽게 떠오르지 않을 만큼,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소설 속 스밀라의 이미지와 비교적 잘 어울린다.


수많은 영화의 주조연으로 낯이 익은 분위기있는 배우 가브리엘 번이 수리공 역을 맡았는데,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거구의 체격에 우직스런 이미지가 아니라 그런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쥐고있는 퇴어크 역의 리처드 해리스는 언제나 그러하듯 멋진 은발을 흩날리며 영화에 무게감을 실어준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다보니 소설 속의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사족> 추리소설로 분류하기에는 턱없이 난해한 문장으로 인해, 이 작품은 번역의 완성도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는 1996년에 처음으로 번역소개 되었다가 절판된 후, 2005년에 번역자가 바뀌어 새롭게 재출간된 것으로 나온다. 이 책의 번역가인 박현주씨도 작품의 무게감을 고려하여 상당히 공들여 작업한 듯한데, 그래도 명확하게 이해되지않는 표현들이 무수하다보니 다 읽고나서도 뒷맛이 그리 개운치가 않다. 아무래도 정영목씨가 번역했다는 구판을 구해서 한번은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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