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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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어보는 해리 홀레 시리즈인데 이번에 나온 이 책이 어느덧 시리즈 12번째 작품이었다. 1997년에 첫작품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평균 2년에 1편 꼴로 꾸준히 발표된 셈인데, 세어보니까 나는 이 책까지 포함하면 그 중에 8편을 읽었더라... 노진선씨가 번역한 작품들은 다 사서 읽었지만 중간에 번역가가 바뀐 이후로는 읽는 재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바람에 신작이 나와도 영 땡기지가 않아서 안 샀더랬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호기심에 구매를 해봤다. 우리는 또 이런 '칼' 같은... 짧고 강하고 뭔가 느낌있는 이런 단어에 약하지 않나... 출간 기념으로 천원만 추가하면 작가의 사인이 들어간 버터나이프를 준다고 해서 또 얼른 신청해서 받았다. 천원짜리 치고는 괜찮은 것 같다. 덕분에 최근 마트에서 장볼 때 일부러 버터도 한 덩어리 사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시리즈 9탄에서 11탄에 해당하는 이 작품의 전작들을 안 읽었기 때문에 그동안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기왕이면 이 시리즈의 세계관을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읽어도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완성도와 재미를 충분히 보장하는지 또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하는 점에도 괜한 오지랖을 부려가면서 읽어보았다.


결론적으로는 전작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도 한 편의 추리 스릴러로서 이 작품을 즐기는데 있어 그다지 큰 지장은 없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작가가 이미 그런 부분 정도는 당연히 고려해가면서 쓰는 레벨이라서...


하지만 이 노련한 작가는 기존의 시리즈를 잘 알고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서도 특별하고 차별된 만족감을 주는 설정들을 확실하게 마련해 놓았다. 주인공 해리에게 라켈이라는 여성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이번 작품을 받아들이는 느낌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일 수 밖에 없다. 전작들을 읽어왔던 독자라면 당연히 해리 못지않은 충격과 상실감에 함께 아파하면서 디테일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레드브레스트'라는 작품에서 요 네스뵈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어떤 방식으로 묘사하는지 보면서 정말 탄복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라켈의 죽음을 수사하는 과정을 꿈이라 생각하면서 꿈에서 깨지 않으려 애쓰는 해리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명불허전의 필력과 함께 캐릭터를 구축하는 일관성까지도 놓치지않는 치밀함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요 네스뵈의 이 해리 홀레 시리즈는 '후더닛'과 '하우더닛', 그리고 '와이더닛'이 골고루 잘 섞여있고, 의외의 범인이라는 반전이 있으면서도 범인은 무조건 초중반부터 등장해서 독자들이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정통 추리소설의 규칙 또한 철저히 따르고 있는 등, 기본기에 충실하다는 점이 굉장히 큰 매력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주인공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피해자라는 것 자체가 허탈함마저 느껴질 정도의 워낙 충격적인 설정이어서 이 정도 비중의 피해자라면 웬만한 범인으로는 그 상실감을 채울 수가 없다는게 문제였다. 중반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범인 후보라고 해봐야 불과 서너명 뿐인데다가 그 중에 누가 범인으로 밝혀지든지 간에 아무래도 좀 미흡하고 찜찜할 것 같은 느낌이어서 작가가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를 할 생각인지 슬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이 작가는 소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는 무서운 저력을 보여준다. 피해자의 중요도에 걸맞는 범인을 만들기 위한 작가의 고뇌가 느껴질 정도로 어떻게보면 거의 막장 수준으로 억지스러운 설정의 반전이기도 해서 이 시리즈를 사랑해온 팬들이라면 충격이 상당히 클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긴 세월을 이어져 온 시리즈의 마지막을 고하는 듯 하기도 하고 어쩌면 세대교체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 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의 희생자와 범인, 그리고 주인공의 행보를 보면서 왠지 이것으로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린 듯한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마치 팬들을 위한 가슴 먹먹한 선물같은 작품이라고나 할까...


특히 '성민'이라는 한국계 형사의 등장은 사실 좀 뜬금없고 의외인데 작가가 한국 팬들에게 남다른 감사의 마음을 담은 나름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이 작가도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걸까... 어쨌든 만약 이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점점 더 비중있게 나올 것 같기는 하다.


번역은 우려했던 것에 비해서는 무난했던 것 같다. 하지만 딱히 좋다는 느낌도 없어서 번역가가 바뀐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이다.


참고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순위를 매겨본다면 '레드브레스트'와 '레오파드'가 우열을 가리기 힘든 1,2등이다. 3등으로는 '스노우맨'... 그 다음으로 이번 작품 '칼'을 넣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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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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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Eight Perfect Murders'이고 현지에서는 재작년인 2020년에 나왔던 소설이다. 이 작가는 2014년 데뷔작 이후 거의 매년 한 작품씩 발표하는 왕성한 활동과 함께 지금까지 모두 8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그러니까 이 책 이후에도 작년과 올해 각각 1편씩 벌써 2편의 신작을 순식간에 썼다는 것이고, 우리나라에는 이번에 나온 이 책까지 포함하면 그 중 5편이 번역 소개된 상태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를 좋아하는 팬도 아니고 또 실력을 그리 높게 평가하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국내에 출간된 이 작가의 책은 모두 다 사서 읽었다. 아무래도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임팩트가 컸던 모양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사람 작품 중에서는 그 책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2015년에 발표했던 작가의 2번째 작품인데 외국 사이트를 둘러봐도 피터 스완슨은 대부분 'The Kind Worth Killing'의 작가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서 현지에서도 확실히 그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인정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사람 신작을 나올때마다 읽다보니까 지금껏 꽤 많은 리뷰를 했는데, 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이 사람이 결코 필력이 뛰어난 작가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아이디어가 좋은 작가라 생각할 뿐...


그가 소설을 창작하는 패턴은 이제까지 읽거나 보았던 책과 영화 등 다른 작품들에서 소재나 플롯에 대한 영감을 얻고 거기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살짝 더해서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스타일일 것이라고 이전 리뷰에서 얘기한 바 있는데, 이번 신작은 그런 그의 창작 패턴을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매니아라면 누구나 알만한 8편의 유명한 고전 추리소설 리스트를 제시하고 각각의 작품들에서 사용한 범행수법을 모방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플롯인데, 어떻게보면 참신하지만 또 의외로 상당히 안일한 기획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리스트에 있는 작품들이 최소 30년에서 무려 100년전에 나온 책이라는 사실에서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이 작품은 범행 동기나 개연성 등에서 흥미로운 도입부에 비해 갈수록 현실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고전 속 범행수법의 결과물만 대충 가져와서 모방범죄라고 억지만 쓰고있지 작가만의 창의적 아이디어나 고민한 흔적 같은 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마주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선배 작가들이 창조한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너무 편하게 날로 먹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읽다보면 은연중에 자기도 모르게 속내를 살짝 드러낸 것 같은 문장들이 나와서 재밌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좀 황당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소설가가 직업인 등장인물을 묘사하면서 자료조사를 싫어하는 터라 최근작을 쓰기 위한 준비라고는 영화 두편을 본 것이 전부일 거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것이 내게는 마치 작가 자신의 농담 속 진담이자 자학개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언급하면서 소규모의 가정 스릴러가 유행하는 요즘 트렌드를 분석하기도 하는데, 웃기는건 이렇게 분석하고있는 작가 본인도 결국 이 부류에 해당이 된다는 거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를 통한 간접 경험을 밑천삼아 창작활동을 하는 이런 작가들은 확실히 스토리를 전개함에 있어 깊이감과 스케일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다. 취약한 전문지식을 굳이 수고스럽게 취재 등을 통해 보강하기 보다는 1인칭 시점 따위의 서술 테크닉과 같은 잔재주로 커버하는게 훨씬 편하기는 하겠지... 


그래서 등장인물도 주로 부부나 가족에 주변 이웃 또는 친구 몇명 해서 매우 단촐하고, 장소도 집과 근처 음식점, 카페 정도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수준으로 처리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로 판을 짜야하니까 스케일이 작을 수 밖에 없다. 사법시스템이나 관련 기관의 행정절차에 대해서도 전문지식이 딸리니까 경찰같은 법집행 공무원들이 나와도 딱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수준의 모습으로 겨우 등장해서는 대부분 기능적인 역할로 생색만 내다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어설픈 작품들을 읽다가 예를들어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 도입부 정도만 읽어보더라도 이제 막 FBI 신참요원이 된 스탈링과 상관이 나누는 디테일하고 수준높은 대화들과 사건을 맡음에 따라 펼쳐지는 전문적인 수사과정에서 비교 자체가 민망할 정도의 실로 엄청난 수준차이와 함께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소재로 삼고있는 8편의 고전 추리소설들 중에 나는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과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읽었다. 특히 ABC 살인사건은 내가 중학생 때 아가사 크리스티로 추리소설에 입문하면서 최초로 읽었던 작품이라 감회가 남달랐고 잠시 추억에 젖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각 작품들의 간략한 줄거리와 핵심 트릭을 모두 언급하고 있기때문에 꼭 읽고싶었던 작품이라면 스포일러를 당하기 전에 미리 읽어두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그리고 비록 8편의 리스트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크리스티의 또다른 대표작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도 스토리의 기본 뼈대로 삼고 있으니 혹시나 그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먼저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전담해온 노진선씨의 번역은 여전히 믿음직했지만 이번에는 원작의 완성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그냥 좀 쉽게 처리한 것 같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영화까지 똑같은 제목으로 이미 잘 알려져있는데 굳이 '장미의 이름으로'라고 번역한 부분은 좀 성의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포와로라는 발음이 훨씬 보편적일 터인데 또 굳이 푸아로라고 한 것도 좀... 



여담으로 많은 사람들이 벨기에 하면 와플이나 초콜릿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무조건 '엘큘 포와로'다. 스웨덴 하면 ABBA이듯이 벨기에 하면 포와로가 아니겠는가...


이 작품은 전설적인 고전 추리소설들에 대한 오마주의 컨셉으로 작가의 개인적인 덕력을 아낌없이 과시한 점에서는 흥미로웠으나 작가의 한계 또한 여실히 드러났던 시간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아마도 이변이 없는한 이 작가의 책은 더이상 찾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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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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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딱 10년전인 2012년에 발표되었던 작품이고 우리나라에는 그 다음해인 2013년에 곧바로 번역되어 나왔는데, 생소했던 작가의 지명도에 비해서는 상당히 빠르게 소개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당시 현지에서는 출간 즉시 각종 상을 휩쓸면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영화 판권까지 팔리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결국 재작년인 2020년 애플TV+의 8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 형식으로 나왔고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가 주연을 맡아서 상당히 보고싶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넷플릭스만 이용하는 나로선 그냥 책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원제가 'Defending Jacob'이다. '제이컵을 위하여'로 번역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For'가 아니라 'Defending'이라는 단어를 쓰고있다는 점에서 뉘앙스가 살짝 다르다. 아들 제이컵을 '지키기' 위한 부모의 필사적인 노력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Defending'이 주는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작가 윌리엄 랜데이는 1963년생으로 미국의 지방검사보를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매사추세츠주의 미들섹스 카운티와 지방검찰청, 그리고 지방검사라는 주인공의 직업 등이 모두 작가 자신의 경력과 그대로 일치하고 있다. 자신이 오랜기간 몸담았던 지역과 직업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이 그대로 녹아있어서 이 작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법정씬 등에서 사실감 높은 장면을 연출한다.



작가의 필력이 기대이상으로 좋아서 잔잔한 분위기임에도 몰입도가 엄청 높다. 확실히 검사나 변호사 출신 작가들의 작품은 이런 법정공방을 통해 대사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디테일을 즐기는 재미가 있다. 변호사같은 법조인들은 일단 말투에서 일반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화법을 쓴다. 예를들면 그냥 '난 싫다'라고 쉽고 간단하게 말하면 될 것을 '저라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것 같군요'라는 식으로 에둘러서 점잖게 표현한다. 어떻게보면 현학적이지만 어쨌든 뭔가 고상하고 품위있는 표현들이 많아서 대사 자체에서 오는 지적허영심이랄까 지적만족감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의혹'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법정스릴러의 걸작 '스콧 터로'의 '무죄추정'이라는 작품이 많이 생각났다. 일단 두 작품 모두 검사 출신의 작가가 썼다는 동질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겠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어가는 플롯과 설정에서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직업이 검사인 주인공이 화자로 등장하는 1인칭 시점을 택하고 있으며, 본인이 사건을 맡았다가 오히려 피고인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설정과, 전에는 적수로 만났던 유능한 변호사에게 변호를 의뢰하는 과정을 거쳐, 그동안 밥맛이었던 동료 검사에 맞서 법정공방을 펼쳐나간다는 플롯이 완전히 똑같다. 아이와 어른이라는 피해자의 차이에 따른 핵심 주제만 다를뿐 거의 동일한 구성과 방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나는 작가가 '무죄추정'을 레퍼런스로 해서 이 작품을 썼을거라고 100% 확신한다.



하지만 다루고있는 주제가 전혀 다르기때문에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매력 또한 충분히 차별적으로 다가온다. 비록 '무죄추정'에서 가져온 법정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가족에 관한 휴먼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주인공 가족이 살고있는 뉴턴이라는 도시는 책에서도 상세히 묘사하고 있듯이 하버드 대학교가 인접해있는 미국 최고의 교육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다. 바로 옆에 보스턴도 있고... 하여튼 덕분에 몰랐던 지리적 상식을 또 하나 얻게되었다.



인터넷과 SNS가 사람들의 생활 깊숙히 침투하며 발생하기 시작한 여러가지 부작용은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미스터리적 요소도 흥미를 끌지만 어느덧 주인공을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된다.


자신의 비정상적 성장과정을 되물림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낳은 기이한 집착과 함께 점점 심각해져가는 부모 자식간의 소통단절과 무너져가는 부부간의 신뢰 등, 이 책은 당시 미국 중산층 가정의 혼란과 불안을 풍자하며 파고드는 면이 있다. 또한 실제 판례를 통해 법의학 분야에서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MAOA 즉, 폭력유전자라는 요소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다루면서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



번역은 중간중간 대사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몇군데 보이기도 하고 보편적으로 잘 쓰지않는 단어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고급스러운 어휘와 법정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까다로운 작품임을 고려한다면 딱히 나무랄 데가 없는 매우 준수한 번역이라 생각한다.


가족드라마와 법정공방의 비중이 크다보니 상대적으로 범죄 행위는 거의 상징적인 요소 정도로 대충 처리된 느낌이 강해서 범죄스릴러적인 재미는 조금 약한 것도 사실이다. 후반부 다소 뜬금없는 한니발 렉터가 연상되는 아버지와 해결사의 등장 또한 너무 헐리우드식으로 안일하게 처리한 듯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몇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를 통해 급변하는 시대와 가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준다. 특히 가족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서서히 추락해가는 마지막 장면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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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살인자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 1
스테판 안헴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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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발표되었던 작품이고 원제는 'Offer Uten Ansikt', 구글번역으로 돌려보면 '얼굴 없는 희생자' 정도로 해석이 된다. 영문번역판 제목도 'Victim without a Face'로 거의 그대로 직역을 한 셈인데, 우리나라에서만 피해자를 살인자로 제목의 의미를 완전히 정반대로 바꿔놓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우리나라 제목이 내용과 훨씬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스테판 안헴은 1966년생으로 현재 50대후반에 접어드는 나이다. 2000년대에는 주로 범죄스릴러 장르의 TV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하다가, 2010년대에 와서는 책을 쓰는데 주력하면서 이 작품의 성공을 발판으로 주인공인 파비안 리스크 형사의 시리즈물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오고 있다.



거의 매년 한 작품씩 발표할 정도의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현재까지 이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는 모두 6편이 발표된 상태이고, 우리나라에는 그 중에서 초기 두 작품이 순서대로 먼저 번역되어 나왔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파비안 리스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리즈 1편이 되겠다. 북유럽 스릴러는 이제는 일본 추리물처럼 하나의 카테고리로 형성해도 좋을만큼 다양한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나름 확고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북유럽이라 하면 일단 스칸디나비아 반도, 즉, 노르웨이, 스웨덴 , 핀란드 이 세나라가 딱 떠오르는데 여기에 보통 덴마크, 그린란드, 아이슬란드까지도 포함해서 지칭하고 있다. 그린란드야 뭐 어차피 덴마크 땅이니까...



아뭏든 차가운 날씨와 백색의 눈, 투명한 얼음, 끝없는 숲... 그리고 왠지모를 적막함과 고요함이 연상되는 지역답게 북유럽 스릴러들은 특유의 고유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 '렛미인'이라는 영화만 보더라도 스웨덴판 원작과 미국판 리메이크작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짐에도 작품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천지차이다. 뭔가 살을 에는 것 같은 서늘한 느낌... 그런게 있다. 이 작품도 읽다보면 그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와 함께 수위 높은 잔인함과 선정성 등, 북유럽 스릴러만 가지고있는 특징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일단 이 작가는 필력이 아주 좋다. 프로작가다운 노련미가 있으며, 특히 '서사'를 짜나가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의외의 범인이나 기발한 반전 같은 트릭이 없다. 연쇄살인범을 추적해나간다는 큰 줄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점 보다는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다양한 캐릭터들간의 이해관계와 갈등 등, 풍성하고 디테일한 스토리의 '흐름'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작가가 쌓아올리는 치밀하고 디테일한 서사를 얼마나 즐길 수 있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난 좋았다.



각 캐릭터들의 개성도 강하고 잘 절제된 대사들도 수준이 높다. 다만 주인공 캐릭터와 관련한 사연에 관해서는 떡밥만 뿌리고 설명을 안해주는데 이것은 은근히 후속편을 염두에 둔 장치로 보여진다. 확실히 시즌제 드라마를 써왔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런 부분을 잘 활용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이 작가도 '요 네스뵈'처럼 주인공을 좀 가학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같은 경우만 봐도 어떤 편에서는 손가락이 잘리고 또 어떤 편에서는 입이 찢어지는 등 회가 거듭될수록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파비안 리스크도 처참할 정도로 거의 당하기만 한다. 혼자 멋있는건 다하는 얄미운 주인공보다야 차라리 이런 캐릭터가 낫긴 한데... 하여튼 북유럽의 주인공 형사들은 보는 사람을 좀 우울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작품의 주요배경은 스웨덴의 '헬싱보리'라는 도시다. 처음에 주인공이 스톡홀름에서 이 헬싱보리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로 옆이 덴마크라 마치 옆 동네 드나들듯 쉽게 왔다갔다 하는 장면들이 나오고, 심지어 맥주 사러 독일까지도 마실가듯 다녀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좀 신기했다. 그리고 중간에 아이들과 해수욕하러 간다는 대화 같은 걸로 추측하자면 북유럽치고는 상당히 따뜻한 지역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스웨덴 소설에서도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가 나와서 의아했는데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아래위로 길쭉해서 다양한 날씨가 존재하는 것 같다.


번역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거슬리는 부분이 거의 없는데, 외국 장르소설들 번역이 이 정도만 되어준다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은 범죄스릴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최종 빌런 즉, 범인에 관한 캐릭터 구축이 좀 부실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흡인력있는 서사와 드라마가 정말 강력해서 600페이지가 넘는 긴 분량에도 흥미를 잃지않고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아마 다음에도 이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는 한 편쯤은 더 찾아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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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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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Blacktop Wasteland'이고 Wasteland야 당연히 황무지, 불모지라는 뜻인데, Blacktop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서 찾아보니까 '아스팔트'를 뜻하는 말이었다. 도로 포장할 때 쓰는 아스팔트가 검정색이라서 현지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것 같다. 좀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배합된 재료들의 비율과 가열 온도의 차이에 따라 블랙탑과 아스팔트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도 하는 것 같던데... 어쨌든 황무지의 비포장도로와 아스팔트를 넘나드는 자동차 액션과 미국의 낙후된 지역에서 여전히 차별받는 흑인들의 삶이 주요 소재로 활용되고 있어서 아마도 작가가 중의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의미로 선택한 제목이 아닐까싶다.



작가 S.A.코스비는 미국 버지니아주 출신이고 영미권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흑인 작가다. 그런데 구글 검색을 아무리 해봐도 작가의 나이는 나오지 않는다. 트위터에서 쓰는 아이디를 겨우 힌트삼아서 아마 73년생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현재 50대로 접어드는 나이다. 



이 작품은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이고 재작년인 2020년에 발표되었다. 범죄 스릴러와 관련한 수많은 수상 이력이 눈길을 끄는데 처음 책을 펼치면 무려 8페이지에 걸쳐서 각종 언론들과 다른 유명 작가들의 찬사와 추천사가 도배되어 있다.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있나 싶을 정도여서 살짝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아뭏든 이 작품과 또 작년 21년에 연이어 발표한 최신작 'Razorblade Tears'가 모두 영화 판권이 팔렸을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도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본작 '검은 황무지'는 흑인 작가의 작품답게 주인공 및 주요인물들이 모두 흑인이다. 그리고 작품배경이 되는 지역이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버지니아주인데, 이 부분을 좀 주목할 필요는 있다. 버지니아는 미국에서 남부로 분류되는 지역이며 전통적으로 극우성향이 강하다. 책에서도 남부연합을 상징하는 '딕시 플래그'가 수차례 등장할 정도로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다.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 빌런들 거의 대부분이 백인으로 설정된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무려 2010년대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임에도 등장인물들의 대사 곳곳에서 미국에는 여전히 인종차별 문화가 뿌리깊게 배어있음을 엿볼 수가 있다.



물론 이 작품은 전형적인 하이스트 케이퍼 장르에 미국의 올드카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자동차 액션도 끼워넣고 그것을 하드보일드 느와르 스타일로 풀어가는 그야말로 극한의 재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에 훨씬 더 치중하고 있기때문에 사실 흑백갈등과 같은 요소는 스토리를 좀더 풍성하게 만드는 디테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이러한 지역정서를 미리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훨씬 재미있게 다가오는 요소들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작가의 필력은 예상외로 좋은 편이다. 스토리 자체가 이미 각종 영화들에서 수없이 다루어온 분명히 어디선가 본 듯한 너무나 익숙한 플롯으로 손쉽게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진행이 되기때문에 신선함이나 독창성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지만 그 익숙한 스토리를 재미있고 흥미롭게 풀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작가는 기발한 반전이나 충격적인 시퀀스 같은 잔재주를 쓰지않고 우직하게 정공법으로 흔한 이야기를 흡인력있게 끌고가는 능력을 보여준다.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주는 자잘한 에피소드의 흐름도 좋고 지역정서가 녹아있는 대사들도 적당한 유머와 함께 잘 짜여져 있다.


다만 마지막 클라이막스 액션시퀀스는 너무 헐리우드 스타일의 식상한 클리셰로 좀 안일하게 처리한 듯해서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중간중간 절묘한 타이밍에 마치 갱스터랩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올 것만 같은 전형적인 웰메이드 액션영화 한편을 기분좋게 감상한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안들었던 점이라면 역시나 '번역'이었다. 


주인공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기본적으로 어릴때부터 인종차별이 심한 우범지역에서 자라면서 각종 폭력과 마약, 살인 등에 끊임없이 물들어온 밑바닥 인생들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도입부 드레그 레이싱 장면부터 이미 번역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초반부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라 대사를 그 성격에 걸맞는 톤으로 번역해야하는데 전혀 고려하지를 않았다.



이 부분은 낯선 남자가 자신의 차를 보고 칭찬 한마디 툭 던지는 장면인데 주인공이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건장한 피지컬의 캐릭터와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톤이라 좀 황당하다. 그냥 '고맙소'라고 하는게 맞을거다.



그리고 연이어 가짜 경찰들과 대면하는 장면에서도 '친구 아닙니다', '돈은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번역하면서 주인공의 성격을 정말 나약하고 고분고분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도 그냥 '친구 아니오', '돈은 못 주지' 정도로 하는게 훨씬 어울린다.



'당신이 레이지입니까?' 이것도 '당신이 레이지요?' 해야 캐릭터가 살아난다.


다른 인물들의 대사톤도 역시 황당한 번역들이 많다.



이런 것도 그냥 '내가 왜 그런 걸 갖고있다고 생각해? 왜? 흑인이라서?'라고 당연히 거친 반말로 툭툭 내뱉는 톤으로 처리해야하는 장면이다. 그래야 그 다음에 나오는 약간 미안하게 생각하는 장면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흑인 갱스터 무비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거친 캐릭터들이 즐비한데,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려하지않은 대사톤들은 정말 읽다가 확 깨게 만든다.


대사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서술 문장들도 조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 '에어컨이 공기를 컨디셔닝하지 못했다'라고 순진하게 직역해버렸는데, 에어컨은 영어로 '에어 컨디셔너'다. 그래서 원문은 아마도 '컨디셔너가 컨디셔닝을 하지 못했다'라는 식의 결국 그 이름값을 하지못했다는 의미로 작가가 말장난 조크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어차피 디테일한 조크까지 살리지 못할거면 그냥 '공기를 차갑게하는 기능은 하지못했다'라고 하면 된다. 컨디셔닝하지 못했다는 말은 도대체 뭔가?



또 여기 '앞범퍼가 원래 범퍼가 있던 자리를 키스하듯 스쳤다'는 도대체 무슨 말일까? 몇번을 다시 읽어도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액션씬들은 글을 통해 상황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져야 현장감이 살아나는 것이고, 이 작가는 그런 점을 상당히 디테일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도 번역이 제대로 살리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세 명의 남자가 밴이 아니라 SUV에서 나왔다고 해야한다. 후반부 중요한 액션씬인데 밴과 SUV 두대 중에 SUV에서 나와야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명백한 번역오류에 해당한다. 이거 읽다가 인물들의 행동에 앞뒤가 안맞아서 몇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전에도 몇번 언급했지만 실력없는 번역가들이 쓸데없는 주석을 많이 단다.



여기 '존 휴스', '몰리 링월드'는 앞뒤 문맥 흐름상 정확히 누군지는 몰라도 각각 영화감독과 배우일 것이라는 점을 쉽게 유추할 수가 있다. 굳이 주석이 필요없고 '하이스트 무비'같은 대중적인 단어도 당연히 필요없다.



이렇게 '토크컨버터'처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유추되는 단어는 주석이 필요없는 것이다.



정작 주석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다. '산모기 득실대는 촌구석엔 안간다. 리치몬드로 와라. 거기는 모기가 트럭을 몬다며?' 이런 말에 '걱정마. 딕시플래그만 달고오면 별일 없을거다'라고 대꾸하고 있다. 느낌상 인종차별이 가미된 지역정서를 풍자한 조크가 들어있는 장면이다. 미국 현지인이라면 분명히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아듣고 재미있어할 대사들인 것이다. 바로 이런 부분에 주석을 달아서 유머코드를 이해하도록 해줘야 한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단어들에 쓸데없이 주석달아서 생색내는 번역가치고 실력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이 네버모어라는 출판사는 전에 리뷰했던 '고리키 파크'와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이라는 책을 펴낸 곳이기도 한데, 공교롭게도 그 두 작품도 번역이 좋지 않았다고 얘기한 바 있다.


요즘 사람들이 워낙 책을 안 사 읽으니 출판사들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또 그러다보니 비용절감을 위해 어쩔수없이 실력 좋은 번역가를 못쓰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게 결국은 고스란히 독자들의 피해로 돌아온다. 좋은 작품을 좋은 번역으로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책은 번역이 작품의 완성도를 적어도 20% 이상 깎아먹고 있다. 다행히 스토리가 워낙 단순하고 직선적인데다가 작가가 문장에 그다지 고급 스킬을 구사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나마 작품의 재미가 크게 반감되는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는 있겠다. 


참고로 작품에서 주인공이 애지중지하는 애마로 등장하는 차량인 '더스터'는 크라이슬러 산하의 브랜드였던 플리머스가 70년대초에 내놓았던 모델이다. 물론 책에서는 이에 대한 주석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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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man 2022-01-31 0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가 문제 정말 공감합니다.
번역가 때문에 읽기를 미리 포기한 시리즈도 있는 지라...

실버북 2022-01-31 12:1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아무리 읽고싶은 작품이라도 이제는 특정 번역가의 이름이 보이면 미련없이 패스해버립니다. ㅎㅎ

blackrain 2023-10-01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괄호 안에 굳이 마침표를 다 찍는 편집도 많이 거슬리더군요. 괄호가 문장에서 하는 역할이 있는데 그걸 전혀 인식을 못 하는 건지...
말씀하신 부분도 공감하는 게, 약간 오역이라도 드라마 속 인물의 대사처럼 자연스럽게 다듬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군데군데 참 어색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는 재밌어서, 아쉬움이 더 큰 듯.

실버북 2023-10-01 18:08   좋아요 0 | URL
네버모어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대부분 번역이 좋지 않았습니다. 좋은 번역가를 쓸 만한 여건이 안되는 것 같아요. 얼마전에 이 작가의 후속작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도 정말 고민 많이 하다가 구매했습니다. 엉터리 번역가거든요. 그래도 작가가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쓰는 것 같아서 번역 무시하고 그냥 제가 알아서 적당히 감 잡아서 읽으려고요. 어떤 스토리인지 궁금해서...^^;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