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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 (영화 <오디세이> 원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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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흘리개 시절 즐겨 읽었던 세계명작 동화나 전집류에는 '이솝 이야기'도 있었지만 '호머 이야기'도 있어서 '호머'라는 이름은 어릴 때부터 늘 친숙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호머'는 서서히 '호메로스'라는 표기법으로 정착이 되어갔는데, 아무래도 거기에는 천병희 선생의 원전 번역본 등장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고 그와 더불어 '호머 이야기'는 더이상 아이들의 동화가 아닌 수준 높은 어른들의 문학이라는 인식도 심어지는 토대가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초 '일리아스'의 희랍어 첫 원전 번역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에서 '호메로스는 곧 천병희'라는 공식이 성립될 만큼, 고대 그리스 문학에 있어 천병희 선생의 업적은 가히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가깝다. 



번역가 천병희는 1939년생으로 2022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 독문과 출신의 독문학자이면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섭렵한 이후, 국내에 수많은 그리스 고전과 희곡들을 번역 소개하는데 매진하며 평생을 바쳤는데 그가 작업한 번역서들은 목록만 대충 훑어봐도 절로 경외심이 생길 정도다. 


천병희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그동안 각각 3차례와 2차례의 개정판을 거치며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워낙 공고한 위치를 지켜왔기 때문에, 여기에는 그 누구라도 감히 새로운 번역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최근 몇년 사이에 몇몇 출판사에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공한 번역가들을 내세워 차별성을 강조한 새로운 원전 번역판들을 속속 출간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자 입장에선 드디어 천병희 원툴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즐거운 고민과 함께 당연히 반길 만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론 우리나라에 이런 비주류 고대 언어를 연구하는 실력자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 한국인들의 학구열과 전문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하면서 놀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병희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과 상징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기에 카뮈의 작품들을 읽는데 있어 김화영의 번역을 건너뛸 수 없듯이 호메로스는 일단 천병희 번역을 먼저 거쳐가는게 도리이자 의무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나 역시 별 고민 없이 누구나 선택하는 바로 그 번역본으로 구매를 했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호메로스가 남긴 유일한 두 작품이기도 하고 트로이 전쟁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보통은 세트로 소장하게 된다. 하지만 각각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의 일화를 다룬 두 작품 사이에 전체적인 맥락상 생략된 부분이 많고 독립적인 느낌도 강하기 때문에 '오뒷세이아'를 읽기 위해 반드시 '일리아스'를 먼저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나는 트로이 전쟁과 관련한 전체적인 인물관계도를 대충 파악하는 용도로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만 먼저 읽어두면 훨씬 편해질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이 분야에 있어 세계 최고 권위자로 손꼽는 토마스 불핀치와 이디스 해밀턴의 책을 별도 구입해 트로이 전쟁과 오뒷세우스의 모험 편만 따로 비교 참조하는 식의 사전 예습을 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하면 고 이윤기 선생의 작품이 인기가 높지만 여기에는 아쉽게도 트로이 전쟁 편이 빠져있기 때문에 선택에서 제외했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경에 태어난 걸로 추정되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란 것인데, 책 뒷부분 천병희 번역가의 해설을 보면 고대 문헌의 발굴과 관련한 세계 여러 학자들의 노고를 유추할 수가 있어서 3천년 전의 기록물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는가, 또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역사인가 허구인가... 라는 각종 의문과는 별개로 전세계가 이미 공인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편안히 읽고 즐기면 될 것 같다.



다만 호메로스는 시인이고 따라서 이 작품이 서사시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에서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예상치 못한 진입장벽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소설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시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괴상한 형태의 서술문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모양새라 그저 영웅들의 재미난 모험담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다행히 나는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니벨룽겐의 노래'라는 작품을 통해 서사시 장르를 한번 접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런 문장들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1976년도에 '지그프리드'라는 영화가 우리나라 극장에서 개봉된 적이 있었다. 지금 다시 찾아보니 1966년에 만들어진 독일 영화였고 딱히 유명한 작품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 누가 어떻게 수입을 결정한 것인지 사연이 궁금하긴 하지만, 아무튼 나는 그 영화를 어릴 적 어머니 손 붙잡고 극장에서 봤었고 어린 마음에 너무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지금도 몇몇 장면은 당시의 느낌이 생생히 떠오를 정도다.



거대한 용을 죽인 지그프리드 왕자가 불사신의 피부를 얻기 위해 핏물에 몸을 담그는데 그 순간 우연히 낙엽 한 장이 날아와 등짝에 붙는 바람에 그 부위만 치명적인 약점으로 남는 장면, 나중에 어떤 여자가 옷에 바느질로 약점이 위치한 부분에 몰래 십자 표시를 하는 장면, 빌런이었던 애꾸눈 하겐에 의해 표시된 부분이 창에 관통당하면서 지그프리드가 죽는 장면... 등은 내 기억의 한 구석에 영원히 각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대학생 시절 어릴적 추억의 그 '지그프리트'라는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바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곡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그런 인연을 거쳐 드디어 원작에 해당하는 '니벨룽겐의 노래'라는 책을 찾아내게 된 것이다. 처음엔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형태의 서사시라 상당히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러 추억들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재미있으면서도 특별한 독서의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불사신의 몸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그프리드의 어깨 아랫부분과 아킬레우스의 발목이라는... 특정 부위에 부주의로 인해 생성되는 치명적인 약점과 그로 인한 운명적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서사는 서로 다른 신화임에도 너무나 닮아있어서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넘어가기엔 흥미로운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그리스 신화든 북유럽 신화든 세계의 각종 신화들은 부분적으로 비슷비슷한 서사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한편 호메로스의 낯선 서사시 형태의 문장들에 차츰 익숙해질 즈음에는 수없이 많은 신과 영웅들의 헷갈리는 이름들과 족보라는 또다른 진입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책에는 생소한 이름이 나올 때마다 주석을 달아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사실 주석에 나오는 족보 설명이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나중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름들은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사실 이 작품은 책을 다 읽고나면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있어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실제로 몇 안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뒷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와 아들인 텔레마코스는 가족이니 일단 예외로 하고, 나머지는 오뒷세우스의 파란만장한 모험담을 들어주고 고향으로 인도하는 역할의 알키노오스 왕과 고향에서 오뒷세우스의 복수를 면밀히 도와주는 역할의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이 2명의 이름만 기억하면 작품의 장대한 여정을 따라가는데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 외에는 알키노오스 왕의 딸인 나우시카아 공주, 오뒷세우스를 흠모하여 무려 8년 동안 붙잡아두고 동거 생활을 했던 요정 칼륍소,그리고 페넬로페의 구혼자들 중 메인 빌런에 해당하는 안티노오스, 이 3명 정도가 비중이 높은 이름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밖에 신들의 경우는 제우스, 포세이돈, 헤르메스 등, 수많은 이름들이 언급되지만 실제로 작품 내내 오뒷세우스의 조력자이자 동반자로 등장하는 아테나 여신 외에는 딱히 스토리에 영향을 주는 존재감이 없기 때문에 달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다만 이 작품은 호메로스 서사시의 특성상 영웅과 신들의 이름 앞에 매번 캐릭터를 상징하는 수식어구들이 꼬박꼬박 반복해서 붙어 있는데,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라든지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가끔씩 이름을 생략하고 '아르고스의 살해자'라는 식으로 수식어구로만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 때는 그 수식어구가 가리키는 인물이 '헤르메스'라는 점을 바로 알아들어야 독서의 흐름을 유지할 수가 있다. 



이렇게 반복되는 수식어구들을 접하다보니 문득 희대의 사기꾼... 어쩌고 하며 집요하게 칼자국이라는 캐릭터를 묘사하던 천명관의 '고래'가 생각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부분은 어쩌면 호메로스에 대한 오마주일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오뒷세우스 귀향길의 마지막 기착지이자 알키노오스 왕과 나우시카아 공주가 사는 '파이아케스족의 나라'라는 말은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작업실인 '파이아키아'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우시카아 공주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바로 그 주인공 나우시카 캐릭터의 원형을 이루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으면서 천병희 선생의 번역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신경을 쓰기도 했는데,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작품 전체에 걸쳐 놀라울 정도로 쉬운 단어와 어휘로 문장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려 3천년 전의 고대 서사시라면 아무래도 그 시대에 어울릴 법한 고색창연한 언어로 쓰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격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너무나 쉬운 언어와 단순한 구성의 문장들이라 어린 아이가 읽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번역에 방점을 찍고자 했던 고 천병희 선생의 개인적인 철학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가족을 만나기 위한 오뒷세우스의 험난한 모험담이 분명 드라마틱하고 흥미롭게 펼쳐지긴 하지만 의외로 마음을 울릴 만한 어떤 특별한 포인트는 없었던 것 같다. 막상 따지고보면 오뒷세우스가 한 일이라곤 아테나의 예언과 지침에 따라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임무를 잘 수행한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뒷세우스의 여정은 그저 아테나가 그를 집에 보내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걸 주도하면서 이루어졌을 뿐, 그에 대한 그녀의 개인적 호감이나 의지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오뒷세우스는 칼륍소와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작 인간들이 공물을 올리느냐 마느냐 따위의 사소한 이유 때문에 제우스나 포세이돈 같은 위엄 가득한 신들이 소심하게 삐져서 괴롭히기도 했다가 또 금새 풀어졌다가 하는 모습을 보면 신과 인간들의 관계가 참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후반부 집안에서 구혼자들을 상대로 펼쳐지는 오뒷세우스의 무시무시한 살육씬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고어해서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는데, 내 취향이 확실히 이런 쪽이어서 그런지 장대한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클라이막스로 나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본작 '오뒷세이아'는 내용의 완성도나 재미를 떠나 호메로스의 작품을 천병희 번역의 원전으로 읽어봤다는 만족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아울러 그리스 신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헐리우드 영화 제작사 중에 'TSG 엔터테인먼트'에서 사용하는 인트로는 활로 12개의 도끼자루 구멍을 통과시키는 오뒷세우스의 모습이다.



다음 달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개봉한다. 영화를 계기로 이번 기회에 호메로스의 원전 번역판에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xENMm5GLJGo&t=631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4344980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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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adic1 2026-08-1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티노오스 왕과 나우시카아 공주가 사는 ‘파이아케스족의 나라‘˝ 부분에서 ‘안티노오스‘는 ‘알키노오스‘의 오기誤記로 보입니다. ‘안티노오스‘는 오디세우스의 집에 기생하며 페넬로페와 결혼하려던 구혼자 중 가장 오만한 인물로 나오는 사람입니다.

실버북 2026-08-16 19:36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덕분에 수정했습니다.
 
태어났음의 불편함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란 옮김 / 현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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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밀 시오랑은 1911년에 태어나서 1995년에 사망한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자다. 대충 살펴보니 20대에는 베를린에서 칸트, 헤겔, 니체, 쇼펜하우어 등의 독일 철학을 탐구했고 30대부터는 파리에 살면서 프랑스어로 쓴 책들을 발표하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으로 나온다. 



이 작가의 글은 대부분 아포리즘에 기반을 둔 스타일로 쓰여지는 특징이 있는데 아포리즘(Aphorism)은 격언, 잠언, 경구 등으로 해석되는 짧은 글귀를 뜻한다.



본작 '태어났음의 불편함'은 1973년에 발표되었고 역시나 아포리즘으로 채워진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막연하고 추상적인 글귀는 취향이 아니라서 심지어 시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본의 아니게 이런 스타일의 글을 접하게 되니 첫대면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주 오래전 우리나라에 칼릴 지브란의 책들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 책을 처음 펼치면서 문득 지브란이나 혹은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작가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극이라는 뉘앙스로 시작하는 이 책은 가면 갈수록 작가의 특이한 사고방식에 도무지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어떤 통찰에 압도당하는 듯한 특별한 느낌도 있었다.


일단 이 작가는 독일 철학은 물론 바흐의 음악과 도스토옙스키와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학, 그리고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교 등의 각종 종교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축적된 자신의 가치관이나 일상적 상념들을 다소 현란한 스킬의 함축적인 언어로 담아내기 때문에, 한번은 고사하고 두번 세번 읽어도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난해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지만 신중하고도 오랜 담금질 끝에 뽑아낸 언어 조합의 결과물이란 점 또한 충분히 느껴진다.



책 초반에 나오는 글귀 중 하나로 언뜻 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현학적인 말장난인가 싶기도 한데 천천히 반복해서 읽다보면 그 '진실'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만큼 이 작가는 태어났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살아있음 그 자체를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심지어 사산아를 부러워하기까지 하는 작가의 성향을 마주하다보면 그 극단적인 염세주의적 또는 회의주의적 또는 허무주의적 사고방식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솔직히 이 정도면 작가가 일찌감치 자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신기한데 자살은 너무 늦은 선택이기 때문에 소용없는 짓이라는 알쏭달쏭한 견해를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는 젊은 시절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하며 이 책에서도 잠과 밤에 대한 언급이 많은 편이다. 깨어있을 때 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으므로 차라리 잠들어 있는게 훨씬 낫다고 여기는 작가에게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증상 또한 정말 치명적인 고통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살면 살수록 살아있다는 것이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뭔가를 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 낫다... 나는 모든 것이 덧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 탁월한 능력이 있고, 그래서 나의 장점은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만일 내게 아이들이 있다면 당장 목 졸라 죽일 것이다... 태어남이 실패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때, 삶은 견딜 만해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나를 견딘다...



아뭏든 이 시오랑의 염세주의는 거의 인간혐오 수준으로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정말이지 쇼펜하우어도 울고 갈 듯 하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이 책에서 얼핏얼핏 감지되는 작가의 정치적 성향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보가 정치를 넘어 훨씬 광범위한 의미를 포함했을 것이라 애써 부정해봐도 히틀러에 대해 다소 후한 평가를 내리는 견해를 보노라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이문열 작가가 꼴보기 싫은 극우 인사라 해도 그의 찬란했던 문학적 성취까지 폄하하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비록 동의할 순 없어도 그냥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 성향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보다는 오히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언급된 부분 등에 더 눈길이 사로잡혔는데, 이렇게 극단적이고 까다로운 시오랑을 매료시킨 포인트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서 다음에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보는 진부한 명제가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시대에 가진 것이 많고 매일매일이 행복해서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삶이 고달파서 죽지 못해 살거나 천국같은 다음 생을 기약하며 매일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이라는 나훈아의 노래가사도 있듯이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조금씩 비워내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거다.


사실 나도 어지간히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마치 비관주의의 끝판왕 같은 이 시오랑 작가 덕분에 거울치료를 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접근으로 시야가 넓어지면서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등 잘 살았냐 못 살았냐 따위를 구분짓는 온갖 기준들은 어차피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허상일 뿐이라는 위안과 함께 뭔가 치유를 받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작가의 생각과는 대척점일 수 있는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이란 말이 자꾸만 머리에 맴돌았는데, 편견없이 마음을 비우고 읽다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철학적 명제에 대해 각자 여러 방향으로 활발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제공하는 책이란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작가가 특히 프랑스어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정제된 언어로 글을 쓰는 스타일로 알려져있는 만큼 이 책의 번역도 그 뉘앙스가 온전히 전달되는 명징한 문장으로 다듬어져 가독성이 높고 이해를 돕는 꼼꼼한 주석 등 대단히 훌륭한 완성도로 처리된 느낌이다.


나는 그가 생전에 한번이라도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생겨서 구글 검색으로 웃는 모습이라도 한번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 정도가 가장 밝은 표정이더라...



아무리 염세주의를 연구하고 그런 사상에 동화되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영역일 뿐 시오랑의 실제 삶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희로애락을 골고루 겪으며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본 경험도 많았으리라 믿고 싶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jR7mvl9IPKg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80605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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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문 -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 그리고 FBI의 탄생
데이비드 그랜 지음, 김승욱 옮김 / 프시케의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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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오는 10월에 개봉할 예정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이란 영화의 원작이다. 디카프리오와 드 니로가 주연인데 두 명 모두 스콜세지 감독의 페르소나이고 이 신,구 페르소나가 함께 출연한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서 기대를 많이 하고있다. (애플에서 만든 영화라 나중에 애플TV+를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될 것 같은데 넷플릭스가 아니라서 못내 아쉽다)



작가 데이비드 그랜은 1967년생으로 현재 50대 중반이고 주로 역사 속의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나 모험담들을 발굴해서 취재하고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즈 No.1 베스트셀링 작가로 이미 유명한 모양이다. 국내에는 이 책 외에 역시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잃어버린 도시 Z', 그리고 남극 탐험가의 일대기를 담은 '궁극의 탐험'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이 책의 원제는 'Killers of the Flower Moon'이고 2017년에 발표되었으니까 나온지 이미 5년이 넘은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바로 다음해인 2018년에 빠르게 번역되어 나왔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첫페이지 도입부에 바로 설명을 해주면서 시작한다. 오클라호마의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이 커다란 달빛 아래 꽃들이 죽어가는 시기인 5월을 가리켜 '꽃을 죽이는 달 (Flower Killing Moon)'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인디언의 고유한 표현을 쓴 제목답게 미국에 남아있던 한 인디언 부족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클라호마 주는 그동안 고전 서부영화에서 참 많이도 등장했던 지역인 것 같다. 말과 소떼들... 그리고 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들판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미국 중남부에 위치하면서 아무래도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강제 이주지역이다보니 카우보이와 인디언들이 함께 등장했던 서부영화의 단골 배경지역으로 나왔던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오세이지 원주민 보호구역은 북쪽 캔자스 주와 인접한 변두리 지역이고 구글지도에는 '오시지 레저베이션'라고 표기되어 있는데(흔히 '예약'을 뜻하는 'Reservation'은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뜻도 있었다) 아뭏든 편의상 나는 '오시지'가 아니라 그냥 책에서 번역한대로 '오세이지'라고 쓰겠다.



바로 아래에는 '털사'라는 도시도 보이는데 최근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털사 킹'이라는 미국드라마 때문에 친숙해진 이름이고 책에 많이 언급되는 '포허스카'와 '그레이호스'의 위치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추적한 르포 형식의 논픽션이다보니 아무래도 오클라호마와 인디언의 역사에 관련한 기본적인 상식을 미리 습득하고 읽는다면 훨씬 재미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거 몰라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은 없고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읽어서 그런지 모든 내용들이 훨씬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어두운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흥미진진함을 제대로 즐겼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이 살고있는 보호구역에서 유전이 터지면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원주민들과 그들을 노리는 백인들의 탐욕과 잔인함으로 얼룩진 가슴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오클라호마가 석유 생산지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이 책 덕분에 새롭게 알게되었는데 어쨌든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인디언과 석유를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석유 때문에 부자가 된 인디언이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너무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사실 나는 인디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정이 비록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항상 짠하고 좀 미안한... 그런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분명히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이었음에도 항상 야만인 취급을 받아온 것도 모자라서 지금도 마치 난민처럼 척박한 변두리의 보호구역에 내몰려 있는데... 도대체 왜 저런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면서...


그래서 이 책 초반부에 석유의 수혜로 부를 누리는 인디언들의 모습이 그려질 때는 속으로 약간의 통쾌함과 함께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본의 달콤함을 누렸던 인디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보상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슴뭉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안도감은 역시나 잠깐 뿐이었고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그렇게 공정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자기보다 하등한 존재라 생각했던 인디언들이 막대한 부를 가져가는게 못마땅했던 백인들이 가만있을리 없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만큼 인간의 원초적인 면을 잘 드러내는 말도 없을 것이다. 갑자기 운좋게 큰 돈이 생긴 사람이 설령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더라도 세상이 불공평한게 아니냐며 괜한 심술을 부리는게 인간의 보편적 심리일 텐데, 하물며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한 존재라는 판단을 해버리면 기어코 숨어있던 최악의 심보가 올라와서 본능이 이성을 잡아먹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질투와 불만를 넘어 아예 뺏어서 내것으로 만들겠다는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인디언과 백인들의 역사는 바로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빚어진 어쩌면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만큼 뻔뻔하고 비열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허구가 아니라 역사에 있었던 사실 그대로 낱낱이 보여주기 때문에 충격도 충격이지만, 한편으론 그 추악함의 본질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있는 것이어서 더 고통스러웠고 또한 부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본능이 주도하는 그러한 무질서과 공포 속에서도 정의로운 신념으로 법을 수호하고 집행하려는 의로운 사람들 역시 함께 존재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왜 아직까지 세계최고로 군림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특히 톰 화이트라는 연방수사관의 강건하면서도 집념어린 수사과정은 읽는 내내 진심으로 응원하게되는 숭고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작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위해 굳이 상상을 덧붙여서 양념을 치지 않고 오로지 재판기록을 비롯한 문서화된 증언과 실제 취재를 통한 팩트만 나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순서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웬만한 추리소설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재미와 긴장감이 살아있다. 게다가 자료조사가 워낙 치밀해서 미국역사의 한 부분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느낌과 함께 그동안 몰랐던 지식과 상식을 새롭게 얻는 듯한 성취감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다른건 몰라도 '존 에드거 후버'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정도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미연방수사국 즉, FBI를 창설하고 무려 50년 가까이 국장으로 역임했던 FBI의 상징이다. (FBI 본부청사를 그의 이름을 따서 후버빌딩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이 책에서는 후버가 FBI의 초석을 다져가던 시기에 인디언 보호구역의 사건에 개입하면서 톰 화이트를 고용하여 문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초창기 연방수사국의 뒷얘기와 함께 후버의 성격도 엿볼 수 있어서 너무 흥미로웠고 덕분에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벌어지는 중범죄는 FBI 관할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윈드 리버'라는 영화를 보면 배경이 인디언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그 지역경찰이 아닌 FBI요원이 담당으로 파견된다. 확실히 어떤 상식이든 알면 알수록 그만큼 디테일을 즐길 수가 있는 것 같다.



'플라워 문'은 끔찍한 범죄와 범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스릴러적인 요소와 반전의 재미까지 갖추면서도, 진실을 밝히려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감동적인 일대기도 있고, 추악하고 잔인하거나 또는 나약한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이었던 것 같다.


특히 우리가 잘 몰랐던 미국역사의 이면을 통해 여러가지 의미있는 상식을 얻은 점도 좋았다. 엄청난 자료조사를 비롯하여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책을 직접 읽어보니까 스콜세지 감독이 욕심을 낸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나는 첫페이지 펼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쉬지않고 단숨에 다 읽었다. 몰입도가 대단하고 김승욱씨의 번역 또한 믿었던 만큼 안정적이어서 더할 나위가 없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uPJJk87QAyk&t=553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198833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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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ㅣ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인 2011년에 이스라엘에서 처음 발표되었던 책인데, 2014년에 영문판이 나오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다음해인 2015년에 번역 소개되어 당시 서점가를 휩쓸었던 책이다.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1976년생으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이다. 현재 40대 중반이니까 이 책은 겨우 30대 중반에 썼다는 얘기인데... 대단하다. 원제 역시 'Sapiens'이고 'A Brief History of Humankind'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제목에서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총균쇠의 아류작 수준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총균쇠에서 검증했던 인류의 차별적 성장이라는 역사적 흐름에 관한 통찰력이 이 책에서 다루고있는 내용을 지탱하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훨씬 폭넓은 관점에서 날카롭고 새로운 시각으로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마치 '대부1'을 뛰어넘은 '대부2'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동안 무수히 나왔던 다른 역사책들이나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진화생물학 관련 책들에서 이미 수없이 다루었던 다윈의 진화론을 기반으로 한 보편적인 이야기들의 반복에 불과할 수도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에 관한 에피소드는 벌써 몇번째 읽는 이야기인지도 모를 정도다. 하지만 최초에 인류가 생성된 이후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만큼 깔끔하고 흥미롭게 정리한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인간의 역사는 마치 '라쇼몽'처럼 특정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여러 전문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넓혀가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멀리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중간중간 필요할 때마다 살짝 깊이 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독자들이 흐름에 집중하면서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잘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일 수도 있는 저자의 주장들이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면서 강력하게 다가오는 점이 아주 큰 매력이다.


초반부에 저자가 농업혁명으로 인해 과연 인간들의 삶이 예전 수렵채집의 시절보다 나아졌는가? 라고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편하게 살아간 줄 알았는데 사실상 더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아갔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많은 베스트셀러들 중에 초반부 강한 충격요법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서술법을 쓰는 책들이 많다. 예를들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경우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는 말은 알고보니 엉터리였다...라고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은 없다'라는 책에서는 일본인들은 지하철에서도 대부분 책을 읽을 정도로 근면하다고 알고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웬걸 전부 눈감고 자고있더라... 우리랑 다를바 없더라...라고 시작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반적인 통념을 정반대로 깨면서 관심을 확 끌어들이고 그 여세를 몰아서 서서히 본인의 주장에 동조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전략은 책이든 강연이든 매우 효과적인 수법이긴 하다. 다만 그 주장에는 명확한 근거와 충분한 자료조사가 뒷바침되어야만 할 것이다. 단순히 관심을 끌기위한 목적으로 어설픈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


다행히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저자가 결코 허술하게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중간중간 기존의 통념을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설명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과학적 증거나 통계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충분히 실어주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듯한 만족감도 높다.



일단 저자가 글을 정말 재미있게 잘 쓴다.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어떻게보면 딱딱하고 지루한 내용임에도 너무나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총균쇠를 읽을 때는 그런 생각까지는 안들었는데, 이 책은 읽으면서 고등학생인 내 딸아이도 꼭 읽어봤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알기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다.


번역도 아주 좋다. 군데군데 오래된 인용문들의 말투라든지 센스있는 주석들이 가독성을 높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지금 현재 나의 삶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가치있는 삶, 그리고 행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것 말이다. 역사책을 읽었는데 마치 훌륭한 자기계발서를 읽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이 쓰여진 후 또다시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변했고 계속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저자도 결국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현 시점의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 역사를 통해 되돌아봄으로써 삶의 가치와 행복에 대해 색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던 것 같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어쩌면 근미래에는 국가라는 개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야말로 스마트폰과 인터넷, 스트리밍, 전기차의 시대가 아닌가... 구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그리고 테슬라... 이런 거대기업들이 합병을 거듭해서 나중에는 '구글 유니버스'같은 미지의 존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아뭏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을때마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정보들이 가득하며 저자가 제시하는 화두 덕분에 여러가지 생각들과 뒤늦은 깨달음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확신하면서 특히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큰 딸한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기는 할텐데 과연 읽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책 열심히 읽어도 아이들은 여가시간에 스마트폰밖에 안보니까... 어른이 모범을 보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되어버렸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 그대로 이것 또한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할 과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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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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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만화책이고 작가 역시 유태계 미국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만화책을 '코믹스'보다는 '그래픽노블'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결국은 똑같은 말이고 성인 독자들을 겨냥한 좀 더 고상한 표현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마블이나 DC의 원작만화들이 들어오면서 그래픽노블이 이젠 하나의 장르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것 같다.



작가 아트 슈피겔만은 1948년생으로 현재 70대 중반의 만화가이다. 이 쥐라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고 1992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원래는 1권 2권이 따로 나온 작품인데 지금은 합본판으로 판매되고 있다. 1권은 1986년에 2권은 1991년에 각각 발표되었던 고전 명작이라 할 수 있는데, 올해초 미국 테네시주의 모 교육위원회에서 그동안 8학년 교과과정에 있던 이 작품을 폭력과 노출의 이유로 삭제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소식이 현지에서는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이슈화되면서 그 결과로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이 책이 갑자기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진입하며 역주행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올라오면서 현재 그래픽노블이나 청소년역사 분야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만화는 확실히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있는 것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물론 캐릭터를 묘사하는 화풍에서도 제법 큰 차이가 있지만 페이지 전체를 구성하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이질감이 훨씬 크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흔히 일본만화로 대표되는 동양권의 만화는 행동과 대사의 연속성이 강하고 특히 대사들이 소설보다 훨씬 현실감있는 구어체라 그림과 완벽한 일체감을 가진다.그래서 컷과 컷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직관적으로 즉각 받아들여지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서양권의 만화는 컷분할과 대사에서 일단 기묘한 느낌이 든다. 인물들의 행동에 연속성이 별로 없어서 정적인 구도로 느껴지는 컷이 많고 대사톤도 다소 몽환적이고 철학적인 느낌이라 뭔가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릴때 이현세나 허영만, 그리고 일본의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동양스타일의 만화만 접했던 사람들에겐 그래픽노블은 처음에 좀 적응하기 힘들 가능성이 많다. 예전에 '앨런 무어'라는 작가가 그래픽노블의 거장이라는 칭송이 자자해서 '왓치맨'과 '브이 포 벤데타'라는 책을 사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처음 몇 페이지 읽다가 도통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고 재미가 없어서 찔끔찔끔 읽는둥 마는둥 하다가 결국 팔아버렸던 경험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분명히 서양스타일의 그래픽노블이면서도 의외로 전세계 누구나 쉽게 접근가능한 보편적인 화법과 구성을 취하고 있다. 덕분에 아무런 위화감이나 불편함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 만화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한 것 같다. 이 작가의 그림스타일은 엉성한 것 같으면서도 빈틈이 전혀 없다고 해야할까... 작은 컷 안에 대충 휘갈겨 그린 것 같지만 필요한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한컷 한컷 그릴 때마다 작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구도를 만들고 대사를 넣고 또한 갖가지 디테일을 깨알같이 심었는지 정말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빛과 그림자 등 흑백만화의 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명암대비가 돋보이고, 유태인은 쥐, 독일인은 고양이 라는 식의 나라별로 다른 동물로 표현하는데 폴란드인인 척하는 유태인은 간단하게 돼지가면을 쓴 모습으로 그리는 등의 만화적 상상력과 직관적 표현이 극대화된 센스가 그저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 작가가 철저한 계산하에 그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실제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증언을 토대로 가족의 실화를 만화로 옮긴 것이다. 실화라서 사실감 넘치고 생생한 현장감이 피부에 와닿는 건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나치의 잔악함이나 수용소의 참혹함에만 촛점을 두고있지는 않다. 그에 못지않게 전쟁의 휴유증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시각을 넓혀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아버지가 아이러니하게도 흑인을 차별하는 모습이라든지, 유태인을 쥐로 묘사했던 저자가 '이스라엘'의 유태인은 어떤 동물로 할거냐는 질문에 '두더지'라고 대답하는 모습 등 의외의 생각할 거리들도 많이 던져준다.



비록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에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겐 서로에 대한 사랑이 생존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용소에서 부부가 마침내 재회하는 부분에서 많이 울컥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세월을 겪어왔기때문에 유태인의 홀로코스트는 언제나 동변상련의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지옥같은 시간을 버텨내신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런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지도 새삼 깨닫게되었고 늘 옆에 있는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실화 그 자체에서 오는 생생한 간접 체험과 탁월한 만화가의 손길이 만났을 때 관연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바로 이 작품이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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