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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문 -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 그리고 FBI의 탄생
데이비드 그랜 지음, 김승욱 옮김 / 프시케의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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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오는 10월에 개봉할 예정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이란 영화의 원작이다. 디카프리오와 드 니로가 주연인데 두 명 모두 스콜세지 감독의 페르소나이고 이 신,구 페르소나가 함께 출연한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서 기대를 많이 하고있다. (애플에서 만든 영화라 나중에 애플TV+를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될 것 같은데 넷플릭스가 아니라서 못내 아쉽다)



작가 데이비드 그랜은 1967년생으로 현재 50대 중반이고 주로 역사 속의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나 모험담들을 발굴해서 취재하고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즈 No.1 베스트셀링 작가로 이미 유명한 모양이다. 국내에는 이 책 외에 역시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잃어버린 도시 Z', 그리고 남극 탐험가의 일대기를 담은 '궁극의 탐험'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이 책의 원제는 'Killers of the Flower Moon'이고 2017년에 발표되었으니까 나온지 이미 5년이 넘은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바로 다음해인 2018년에 빠르게 번역되어 나왔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첫페이지 도입부에 바로 설명을 해주면서 시작한다. 오클라호마의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이 커다란 달빛 아래 꽃들이 죽어가는 시기인 5월을 가리켜 '꽃을 죽이는 달 (Flower Killing Moon)'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인디언의 고유한 표현을 쓴 제목답게 미국에 남아있던 한 인디언 부족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클라호마 주는 그동안 고전 서부영화에서 참 많이도 등장했던 지역인 것 같다. 말과 소떼들... 그리고 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들판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미국 중남부에 위치하면서 아무래도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강제 이주지역이다보니 카우보이와 인디언들이 함께 등장했던 서부영화의 단골 배경지역으로 나왔던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오세이지 원주민 보호구역은 북쪽 캔자스 주와 인접한 변두리 지역이고 구글지도에는 '오시지 레저베이션'라고 표기되어 있는데(흔히 '예약'을 뜻하는 'Reservation'은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뜻도 있었다) 아뭏든 편의상 나는 '오시지'가 아니라 그냥 책에서 번역한대로 '오세이지'라고 쓰겠다.



바로 아래에는 '털사'라는 도시도 보이는데 최근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털사 킹'이라는 미국드라마 때문에 친숙해진 이름이고 책에 많이 언급되는 '포허스카'와 '그레이호스'의 위치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추적한 르포 형식의 논픽션이다보니 아무래도 오클라호마와 인디언의 역사에 관련한 기본적인 상식을 미리 습득하고 읽는다면 훨씬 재미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거 몰라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은 없고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읽어서 그런지 모든 내용들이 훨씬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어두운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흥미진진함을 제대로 즐겼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이 살고있는 보호구역에서 유전이 터지면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원주민들과 그들을 노리는 백인들의 탐욕과 잔인함으로 얼룩진 가슴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오클라호마가 석유 생산지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이 책 덕분에 새롭게 알게되었는데 어쨌든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인디언과 석유를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석유 때문에 부자가 된 인디언이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너무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사실 나는 인디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정이 비록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항상 짠하고 좀 미안한... 그런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분명히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이었음에도 항상 야만인 취급을 받아온 것도 모자라서 지금도 마치 난민처럼 척박한 변두리의 보호구역에 내몰려 있는데... 도대체 왜 저런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면서...


그래서 이 책 초반부에 석유의 수혜로 부를 누리는 인디언들의 모습이 그려질 때는 속으로 약간의 통쾌함과 함께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본의 달콤함을 누렸던 인디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보상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슴뭉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안도감은 역시나 잠깐 뿐이었고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그렇게 공정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자기보다 하등한 존재라 생각했던 인디언들이 막대한 부를 가져가는게 못마땅했던 백인들이 가만있을리 없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만큼 인간의 원초적인 면을 잘 드러내는 말도 없을 것이다. 갑자기 운좋게 큰 돈이 생긴 사람이 설령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더라도 세상이 불공평한게 아니냐며 괜한 심술을 부리는게 인간의 보편적 심리일 텐데, 하물며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한 존재라는 판단을 해버리면 기어코 숨어있던 최악의 심보가 올라와서 본능이 이성을 잡아먹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질투와 불만를 넘어 아예 뺏어서 내것으로 만들겠다는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인디언과 백인들의 역사는 바로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빚어진 어쩌면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만큼 뻔뻔하고 비열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허구가 아니라 역사에 있었던 사실 그대로 낱낱이 보여주기 때문에 충격도 충격이지만, 한편으론 그 추악함의 본질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있는 것이어서 더 고통스러웠고 또한 부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본능이 주도하는 그러한 무질서과 공포 속에서도 정의로운 신념으로 법을 수호하고 집행하려는 의로운 사람들 역시 함께 존재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왜 아직까지 세계최고로 군림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특히 톰 화이트라는 연방수사관의 강건하면서도 집념어린 수사과정은 읽는 내내 진심으로 응원하게되는 숭고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작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위해 굳이 상상을 덧붙여서 양념을 치지 않고 오로지 재판기록을 비롯한 문서화된 증언과 실제 취재를 통한 팩트만 나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순서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웬만한 추리소설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재미와 긴장감이 살아있다. 게다가 자료조사가 워낙 치밀해서 미국역사의 한 부분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느낌과 함께 그동안 몰랐던 지식과 상식을 새롭게 얻는 듯한 성취감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다른건 몰라도 '존 에드거 후버'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정도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미연방수사국 즉, FBI를 창설하고 무려 50년 가까이 국장으로 역임했던 FBI의 상징이다. (FBI 본부청사를 그의 이름을 따서 후버빌딩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이 책에서는 후버가 FBI의 초석을 다져가던 시기에 인디언 보호구역의 사건에 개입하면서 톰 화이트를 고용하여 문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초창기 연방수사국의 뒷얘기와 함께 후버의 성격도 엿볼 수 있어서 너무 흥미로웠고 덕분에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벌어지는 중범죄는 FBI 관할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윈드 리버'라는 영화를 보면 배경이 인디언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그 지역경찰이 아닌 FBI요원이 담당으로 파견된다. 확실히 어떤 상식이든 알면 알수록 그만큼 디테일을 즐길 수가 있는 것 같다.



'플라워 문'은 끔찍한 범죄와 범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스릴러적인 요소와 반전의 재미까지 갖추면서도, 진실을 밝히려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감동적인 일대기도 있고, 추악하고 잔인하거나 또는 나약한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이었던 것 같다.


특히 우리가 잘 몰랐던 미국역사의 이면을 통해 여러가지 의미있는 상식을 얻은 점도 좋았다. 엄청난 자료조사를 비롯하여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책을 직접 읽어보니까 스콜세지 감독이 욕심을 낸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나는 첫페이지 펼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쉬지않고 단숨에 다 읽었다. 몰입도가 대단하고 김승욱씨의 번역 또한 믿었던 만큼 안정적이어서 더할 나위가 없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uPJJk87QAyk&t=553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198833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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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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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인 2011년에 이스라엘에서 처음 발표되었던 책인데, 2014년에 영문판이 나오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다음해인 2015년에 번역 소개되어 당시 서점가를 휩쓸었던 책이다.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1976년생으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이다. 현재 40대 중반이니까 이 책은 겨우 30대 중반에 썼다는 얘기인데... 대단하다. 원제 역시 'Sapiens'이고 'A Brief History of Humankind'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제목에서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총균쇠의 아류작 수준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총균쇠에서 검증했던 인류의 차별적 성장이라는 역사적 흐름에 관한 통찰력이 이 책에서 다루고있는 내용을 지탱하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훨씬 폭넓은 관점에서 날카롭고 새로운 시각으로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마치 '대부1'을 뛰어넘은 '대부2'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동안 무수히 나왔던 다른 역사책들이나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진화생물학 관련 책들에서 이미 수없이 다루었던 다윈의 진화론을 기반으로 한 보편적인 이야기들의 반복에 불과할 수도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에 관한 에피소드는 벌써 몇번째 읽는 이야기인지도 모를 정도다. 하지만 최초에 인류가 생성된 이후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만큼 깔끔하고 흥미롭게 정리한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인간의 역사는 마치 '라쇼몽'처럼 특정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여러 전문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넓혀가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멀리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중간중간 필요할 때마다 살짝 깊이 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독자들이 흐름에 집중하면서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잘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일 수도 있는 저자의 주장들이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면서 강력하게 다가오는 점이 아주 큰 매력이다.


초반부에 저자가 농업혁명으로 인해 과연 인간들의 삶이 예전 수렵채집의 시절보다 나아졌는가? 라고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편하게 살아간 줄 알았는데 사실상 더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아갔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많은 베스트셀러들 중에 초반부 강한 충격요법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서술법을 쓰는 책들이 많다. 예를들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경우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는 말은 알고보니 엉터리였다...라고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은 없다'라는 책에서는 일본인들은 지하철에서도 대부분 책을 읽을 정도로 근면하다고 알고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웬걸 전부 눈감고 자고있더라... 우리랑 다를바 없더라...라고 시작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반적인 통념을 정반대로 깨면서 관심을 확 끌어들이고 그 여세를 몰아서 서서히 본인의 주장에 동조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전략은 책이든 강연이든 매우 효과적인 수법이긴 하다. 다만 그 주장에는 명확한 근거와 충분한 자료조사가 뒷바침되어야만 할 것이다. 단순히 관심을 끌기위한 목적으로 어설픈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


다행히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저자가 결코 허술하게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중간중간 기존의 통념을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설명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과학적 증거나 통계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충분히 실어주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듯한 만족감도 높다.



일단 저자가 글을 정말 재미있게 잘 쓴다.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어떻게보면 딱딱하고 지루한 내용임에도 너무나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총균쇠를 읽을 때는 그런 생각까지는 안들었는데, 이 책은 읽으면서 고등학생인 내 딸아이도 꼭 읽어봤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알기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다.


번역도 아주 좋다. 군데군데 오래된 인용문들의 말투라든지 센스있는 주석들이 가독성을 높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지금 현재 나의 삶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가치있는 삶, 그리고 행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것 말이다. 역사책을 읽었는데 마치 훌륭한 자기계발서를 읽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이 쓰여진 후 또다시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변했고 계속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저자도 결국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현 시점의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 역사를 통해 되돌아봄으로써 삶의 가치와 행복에 대해 색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던 것 같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어쩌면 근미래에는 국가라는 개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야말로 스마트폰과 인터넷, 스트리밍, 전기차의 시대가 아닌가... 구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그리고 테슬라... 이런 거대기업들이 합병을 거듭해서 나중에는 '구글 유니버스'같은 미지의 존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아뭏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을때마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정보들이 가득하며 저자가 제시하는 화두 덕분에 여러가지 생각들과 뒤늦은 깨달음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확신하면서 특히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큰 딸한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기는 할텐데 과연 읽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책 열심히 읽어도 아이들은 여가시간에 스마트폰밖에 안보니까... 어른이 모범을 보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되어버렸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 그대로 이것 또한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할 과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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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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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만화책이고 작가 역시 유태계 미국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만화책을 '코믹스'보다는 '그래픽노블'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결국은 똑같은 말이고 성인 독자들을 겨냥한 좀 더 고상한 표현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마블이나 DC의 원작만화들이 들어오면서 그래픽노블이 이젠 하나의 장르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것 같다.



작가 아트 슈피겔만은 1948년생으로 현재 70대 중반의 만화가이다. 이 쥐라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고 1992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원래는 1권 2권이 따로 나온 작품인데 지금은 합본판으로 판매되고 있다. 1권은 1986년에 2권은 1991년에 각각 발표되었던 고전 명작이라 할 수 있는데, 올해초 미국 테네시주의 모 교육위원회에서 그동안 8학년 교과과정에 있던 이 작품을 폭력과 노출의 이유로 삭제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소식이 현지에서는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이슈화되면서 그 결과로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이 책이 갑자기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진입하며 역주행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올라오면서 현재 그래픽노블이나 청소년역사 분야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만화는 확실히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있는 것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물론 캐릭터를 묘사하는 화풍에서도 제법 큰 차이가 있지만 페이지 전체를 구성하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이질감이 훨씬 크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흔히 일본만화로 대표되는 동양권의 만화는 행동과 대사의 연속성이 강하고 특히 대사들이 소설보다 훨씬 현실감있는 구어체라 그림과 완벽한 일체감을 가진다.그래서 컷과 컷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직관적으로 즉각 받아들여지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서양권의 만화는 컷분할과 대사에서 일단 기묘한 느낌이 든다. 인물들의 행동에 연속성이 별로 없어서 정적인 구도로 느껴지는 컷이 많고 대사톤도 다소 몽환적이고 철학적인 느낌이라 뭔가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릴때 이현세나 허영만, 그리고 일본의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동양스타일의 만화만 접했던 사람들에겐 그래픽노블은 처음에 좀 적응하기 힘들 가능성이 많다. 예전에 '앨런 무어'라는 작가가 그래픽노블의 거장이라는 칭송이 자자해서 '왓치맨'과 '브이 포 벤데타'라는 책을 사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처음 몇 페이지 읽다가 도통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고 재미가 없어서 찔끔찔끔 읽는둥 마는둥 하다가 결국 팔아버렸던 경험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분명히 서양스타일의 그래픽노블이면서도 의외로 전세계 누구나 쉽게 접근가능한 보편적인 화법과 구성을 취하고 있다. 덕분에 아무런 위화감이나 불편함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 만화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한 것 같다. 이 작가의 그림스타일은 엉성한 것 같으면서도 빈틈이 전혀 없다고 해야할까... 작은 컷 안에 대충 휘갈겨 그린 것 같지만 필요한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한컷 한컷 그릴 때마다 작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구도를 만들고 대사를 넣고 또한 갖가지 디테일을 깨알같이 심었는지 정말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빛과 그림자 등 흑백만화의 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명암대비가 돋보이고, 유태인은 쥐, 독일인은 고양이 라는 식의 나라별로 다른 동물로 표현하는데 폴란드인인 척하는 유태인은 간단하게 돼지가면을 쓴 모습으로 그리는 등의 만화적 상상력과 직관적 표현이 극대화된 센스가 그저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 작가가 철저한 계산하에 그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실제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증언을 토대로 가족의 실화를 만화로 옮긴 것이다. 실화라서 사실감 넘치고 생생한 현장감이 피부에 와닿는 건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나치의 잔악함이나 수용소의 참혹함에만 촛점을 두고있지는 않다. 그에 못지않게 전쟁의 휴유증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시각을 넓혀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아버지가 아이러니하게도 흑인을 차별하는 모습이라든지, 유태인을 쥐로 묘사했던 저자가 '이스라엘'의 유태인은 어떤 동물로 할거냐는 질문에 '두더지'라고 대답하는 모습 등 의외의 생각할 거리들도 많이 던져준다.



비록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에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겐 서로에 대한 사랑이 생존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용소에서 부부가 마침내 재회하는 부분에서 많이 울컥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세월을 겪어왔기때문에 유태인의 홀로코스트는 언제나 동변상련의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지옥같은 시간을 버텨내신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런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지도 새삼 깨닫게되었고 늘 옆에 있는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실화 그 자체에서 오는 생생한 간접 체험과 탁월한 만화가의 손길이 만났을 때 관연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바로 이 작품이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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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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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여기 알라딘에서 3주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재작년인 2020년에 나온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작년말에 번역되어 나왔다. 원제는 'Why Fish Don't Exist' 직역하면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고, 사실 책의 내용에 비추어 엄밀하게 번역한다면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그냥 좀 더 알기쉽고 직설적이면서도 강한 화법으로 처리를 한 것 같다. 이 제목을 보니까 갑자기 오래전에 제목만으로도 엄청난 어그로를 끌면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유튜브도 썸네일이 중요하듯이 책도 제목이 중요하긴 하다.


저자 룰루 밀러는 직업이 과학 전문 기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녀의 논픽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장르가 굉장히 특이하고 복잡하다. 기자출신답게 기본적으로 필력이 좋아서 이야기를 시종일관 흥미롭게 끌고가는데 정말 책을 딱 잡으면 중간에 끊기가 힘들 정도로 대단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번역도 흠잡을 곳이 없고 각 챕터마다 앞부분에 등장하는 삽화도 인상적이다.



이 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과 '어류', 즉 물고기다. 거기에 작가 자신의 내면적 성장과 치유의 코드를 섞어넣었다. 그리고 중반부 이후에는 각각 '우생학'과 '분류학'이라는 반전 키워드가 등장하여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야기의 흐름을 180도 뒤엎어버리는 구성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마치 한 인물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되짚어보는 전기물처럼 보이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스타일의 자기계발서인가 싶기도 하다가, 후반부에는 업계의 비리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사회고발 르포같은 느낌도 난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가 절묘하게 섞여있고 거기에 충격적인 반전까지 더해져서 색다른 재미의 책읽기와 함께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한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책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총장을 역임했던 어류학자로 생물학계에서는 대단한 업적과 함께 존경받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나면 이 낯선 인물에 대해 거의 박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되는데 작가가 그의 모든 저서와 기록물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재조명하고있는 덕분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그의 치부까지도 들여다보게 되고 알고보니 열렬한 우생학 지지자였다는 것...



초반에는 저자의 인생멘토처럼 화려하게 등장시켜 본받고싶게 만들다가 중반 이후에는 완전히 나락으로 보내면서 독자들에게 확실한 충격요법을 선사한다. 어떻게보면 이미 죽은지 한 세기가 다되어가는 사람을 거의 부관참시하는 수준인데, 이것이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저자가 최초로 밝혀낸 새로운 사실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전부터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별 관심이 없던 것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 것이겠지...


저자가 진짜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흐름 그대로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되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좌절에도 굴하지않는 긍정적 에너지에 감동받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으려고 했다가 우생학을 지지했던 그의 비뚤어진 사상을 뒤늦게 알게되어 크게 충격을 받고 실망을 하게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알려진 우생학과 관련한 그의 논란을 먼저 접하고서 이것을 이슈화시키기 위해 책을 쓰기로 하고 자료조사를 하면서 이왕이면 드라마틱한 재미가 가미된 구성이 낫겠다 싶어서 일부러 모른척 하다가 뒤늦게 알게되는 설정으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후반부에는 또 '캐럴 계숙 윤'의 'Naming Nature'라는 책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분류학을 다룬 그 책에서 발견한 '어류라는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과연 저자에게 얼마나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전세계의 물고기를 찾아서 이름 붙이는 일에 평생을 바쳤던 한 인물과 절묘하게 대칭선상에 위치하는 이 명제를 엮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어류'라는 종은 사실 하나의 종으로 분류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이 이론을 확신하기 위해 여러 학자들에게 연락해서 일일이 확인을 받는 장면도 나오기는 하는데... 글쎄... 어류, Fish, 물고기라는 이름이 의미가 없는 말이라면 벌써 학계에서 난리가 났을테고 생물학계에서 공식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당연히 교과서에도 적용이 되었겠지...


구글에서 캐럴 계숙 윤과 Naming Nature를 검색해보면 별거 안 나온다. 세계적으로 대단한 주목을 받았던 흔적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학계에서도 그냥 흥미로운 관점 정도로만 생각하고 아무도 신경 안쓰는 화두인데, 작가 혼자 너무 호들갑떠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고기를 포기하면 얻게 되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편견들을 버리면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충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계발서에서 흔하게 나오는 이런 아전인수격 궤변을 제일 싫어한다. 마지막에 저자가 무슨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듯 흥분해서 반복적으로 얘기하는데,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꺼내는 느낌이다. 한편으론 자신의 동성 배우자에 관해 필요이상으로 많이 언급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양성애적 성향에 고민하다 결국은 편견을 버리자는 결론을 통해 자기합리화와 함께 스스로 당당하고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뭏든 분명 재미있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책이기는 한데, 그 주제와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인생관을 좀 억지로 끼워맞추듯이 엮고있다는 느낌도 살짝 받았다.


이 책이 나왔던 2020년에 스탠포드 대학교에서는 결국 관계자와 학생들의 건의에 의해 '조던 홀' 등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관련한 기념관의 이름을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류'라는 명칭이 없어졌다는 얘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


그러니까 결국 이 책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과는 달리, 한 역사적 인물의 의미있는 업적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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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몇년사이 책 좀 읽는다는 사람치고 리처드 도킨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진화생물학이라는 분야를 친숙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라 할 만 한데, 놀랍게도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저 유명한 도킨스와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음을 알게된다. 자기과시인지는 모르겠으나 도킨스 외에도 수많은 스타급 학자들의 이름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있다.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시는 분이라고 소개가 되어있는데, 학문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분명 반갑고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은 그리 무겁거나 학문적이지 않다. 오히려 신문이나 잡지의 대중적 가십거리를 다룬 칼럼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다.

솔직히 별로 대수롭지않은 문화적 현상을 굳이 왜 이렇게 고상한 단어를 써가며 세세하게 학문적의미를 부여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없지않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랄까...

진화심리학이나 진화생물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글을 읽고자 한다면,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도킨스나 스티븐 핑커의 책들을 찾아보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을 너무 의식한듯한 가벼운 문체(네티즌스러운)와 내용들은 기대에 비해 실망감을 안겨준다. 솔직히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요점을 잘 모르겠다. 단지 진화심리학의 친숙화 정도만 기대했다면 그 목적은 이룬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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