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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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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몇번이나 작가의 프로필을 재확인했다. 정말 여성작가가 쓴 글이 맞는지...

영화든 소설이든 디테일이라는게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예전에 검도를 수련했기 때문에, 액션사극에서 배우들이 칼자루를 쥐는 모습만 봐도 엉터리인지 아닌지 즉각 알아본다. 감독과 배우, 또는 작가가 사소한 부분까지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코 넘긴다고 해도 경험자와 전문가는 알아본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법정스릴러라면 변호사와 검사간의 법정공방이 얼마나 사실적인지는 현직 종사자들만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디테일은 이런 것들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법이다.

이 작품에는 스쿠버다이빙이 꽤 비중있는 소재로 등장한다. 나는 젊은 시절 스쿠버다이빙을 정말 오랜시간 경험했고,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작가가 어설프게 얼버무렸다간 딱 걸리는 장면인 것이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거슬리는 부분을 찾기가 힘들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실제로 다이빙을 체험해봤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다. 여성작가가 쓴 글인지를 재차 확인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놀랍다. 남성적인 힘과 여성의 섬세함이 모두 녹아있는 담대한 필력, 독창적인 소재와 캐릭터, 그리고 드라마틱한 대사와 디테일까지... 그 와중에 각 캐릭터의 설득력있는 트라우마 구축도 꼼꼼하게 챙겨넣었다. 액자구성에 플래시백 등, 다소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어 초반부는 집중이 힘들어도, 중반부가 넘어가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흡인력으로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장르소설 분야에서 국내 작가들의 활약이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한다. 반가운 일이다.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작가들...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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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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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정명 작가는 전작 '바람의 화원'에서 보여준 예상외의 높은 필력과 내공에 무척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따라서 본작은 자연스레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대했는데, 막상 작품을 다 읽고나니 전작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작가가 부담없이 그동안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도입해본 하나의 실험작같은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외국인인 것과 배경이 가상의 세계라는 사실 역시 어느정도 이를 뒷바침해준다.

시종일관 흐린 안개 속을 걷는 듯한 전체적인 분위기는 몽환적이면서도 독특하다. 단순한 범죄추리물이라고 하기엔 의도적으로 고급스럽고 난해한 포장을 해놓아서 생각보다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어떻게보면 '제임스 엘로이'의 스타일을 벤치마킹한 것 같기도 하다.

자의든 타의든 '바람의 화원'은 '다빈치코드'로 불어닥친 이른바 팩션스릴러 열풍에 시기적으로 분명 재미를 보았던 부분이 있다. 본작 역시 어떻게보면 신선해 보이지만, 기본골격은 '살인자들의 섬(셔터 아일랜드)'과 같은 굵직한 작품들에서 이미 시도되고 유행했던 플롯이란 점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결국 이 작가가 겉으로는 대단히 독창적이고 참신한 시도를 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오히려 그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강해보인다. 

물론 모방도 제2의 창작이요, 원작을 뛰어넘는 아류작도 분명 존재한다. 상업소설을 쓰는 작가가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흠이 될 리는 없다. 하지만 겉멋들린 기교는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이제는 흔해져버린 플롯에 느와르적인 분위기만 잔뜩 입혀 스타일리쉬한 느낌이 나도록 눈속임한 아류작이라 혹평한다고 해도, 별다른 반박거리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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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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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인 전작 '캐비닛'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만으로 김언수라는 작가의 필력을 제대로 가늠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만큼 본작 '설계자들'은 스탠스가 약간 애매한 구석이 있다.

순수문학과 장르소설을 구분짓는 경계가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말초적인 재미 이상의 어떤 깊이있는 주제의식이 있는가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글쓰기의 테크니컬적인 측면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기준이 무엇이든 희미하게나마 그 구분선은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이 작품은 킬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흥미로운 소재에 이끌려 구매목록에 넣었던 책인데, 실제로 읽어보니 액션스릴러나 하드보일드같은 장르소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문학이라는 테두리에 넣자니 군데군데 대사처리나 상황묘사 등에서 격에 맞지않는 부분 또한 눈에 제법 들어온다. 묘하다.

회색빛 책표지와 같이 온통 우울한 잿빛으로 물든 세상을 보는 듯하다. 설계자, 트래커, 푸주와 같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소재와 고민이 묻어나는 대사들... 그리고 우리가 살고있는 비정한 현실세계를 은근히 풍자하고 있는듯한 뉘앙스도 감각적이다. 하지만 B급액션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발사니 헨켈식칼이니 뭐니하는 과잉스러운 면과 세련미가 떨어지는 결말부분은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한마디로 순수문학과 장르소설의 경계지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작가가 영화화를 심각하게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신경숙 작가같은 분이 '양들의 침묵' 스타일의 서스펜스 스릴러물을 쓴다면 과연 어떨까 하는...

세월이 흐를수록 장르의 경계선은 점점 모호해질 수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문학에도 그 수준차이는 있을지언정 장르 자체의 귀천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이 그러한 흐름을 어렴풋이 예고하는 신호탄이라면 분명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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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컷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9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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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임권택 감독으로 위시되었던 한국영화는 2000년대에 들어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 등을 기점으로 영화의 만듦새가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으로 발전해왔다. 그것은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자연스런 세계화의 흐름과 함께, 헐리우드의 월등한 영화들을 보면서 높을대로 높아진 국내관객들의 눈높이에 부응하기위한 영화계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 추리소설계의 경우엔 7~80년대 김성종씨를 필두로 상당한 활약을 펼치던 시기도 있었으나, 그 이후론 정말 참담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토머스 해리스' 같은 걸출한 해외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독자들의 안목은 비약적으로 높아졌지만, 그것을 충촉시켜줄 만큼의 실력을 가진 국내작가가 없다보니 이 분야의 시장을 고스란히 외국에 내어준 꼴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사장되다시피 했던 추리문학계에 드디어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 최혁곤이란 생소한 작가의 작품을 읽고나니, 한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하다. 솔직히 유치한 수준에 불과했던 이전세대 작가들의 글과는 확연히 틀리다. 그동안 국내 추리소설가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라면 바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문학성의 결여였다. 순수문학쪽보다는 오히려 무협지쪽에 가까운 질낮은 문장력은 이 장르 자체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주범이었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저급하고 거친 표현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작가의 글에는 순수문학에 필적하는 문장력의 기본기가 분명히 살아있다. 물론 작품속 여러 상황들이 확실한 고증이나 자료조사에 의거했다기보다, 오히려 여러 영화나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듯 다소 사실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예를들어 킬러가 처음으로 살인훈련 겸 복수하는 씬에서, 위기의 순간에 스승이 단검을 던져 적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던진 단검이 이마에 박히고, 그걸 뽑자 피가 분수처럼 솓구쳤다고 나온다. 시체를 해부할 때조차 전기톱으로 절개해야만 하는 딱딱한 두개골에 과연 손으로 던진 단검이 박힐 수가 있을까? 게다가 두개골 안에는 뇌가 들어있을터인데 과연 피가 뿜어져나올까? (작가가 직접 실험해봤다면 할 말은 없다) 보는 관점에 따라선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때론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디테일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몇가지 아쉬운 부분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의 완성도로 뽑아낸 작가의 역량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작가의 소개란을 보니 나와 같은 나이다. 나역시 한 때 추리작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던 만큼,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앞으로의 행보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사족> 최근 영화계의 소재고갈과 맞물려 추리스릴러계의 인재들이 절실히 요구되고있다. 비싼 판권료를 지불해가며 철지난 일본의 추리물들을 뒤늦게 영화화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는데, 좀더 많은 실력자들이 자극받아 이 분야의 개척에 도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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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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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작가의 소설은 그동안 수많은 히트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비록 그 내용은 틀릴지언정 매 작품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에 관한 일관된 주제의식을 투영하고 있는 작가라는 점은 익히 알고있었고, 이 책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제목만 봐도 틀림없었다. 

흥행이 보증된 상업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기대치도 그만큼 높다는 핸디캡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자칭 영화매니아라면 초반 5분정도만 봐도 감독의 연출수준을 가늠하듯, 책도 초반 몇페이지만 읽으면 작가의 스타일과 필력을 대번에 알아보는 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강우석 영화감독이 생각났다. 나름 영화 좀 본다는 매니아들은 결코 인정하지 않지만,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실미도 같은 영화로 천만관객을 달성해버린... 소수 매니아보다 대다수의 일반대중들을 타겟으로 어필하는 감독말이다. 이 책도 그렇게 눈높이가 낮은 소설이다. 추리스릴러 형식을 띄고 있으면서 선생이 학생 가르치듯 너무나 친절하고 수고스럽게도 일일이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독자는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이만큼 주입식 교육을 받고도 모른다면, 딴생각 하면서 읽었다는 말밖에 안된다.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나오는 장황한 역사 브리핑은 작가가 그동한 조사한 자료들의 요약본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다보니 순수한 소설로서의 재미가 많이 반감되어 버렸다. 문장의 기교나 흡입력도 그다지 만족스럽지가 않다. 

기대를 해서일까, 아뭏든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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