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뒷세이아 - (영화 <오디세이> 원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평점 :
코흘리개 시절 즐겨 읽었던 세계명작 동화나 전집류에는 '이솝 이야기'도 있었지만 '호머 이야기'도 있어서 '호머'라는 이름은 어릴 때부터 늘 친숙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호머'는 서서히 '호메로스'라는 표기법으로 정착이 되어갔는데, 아무래도 거기에는 천병희 선생의 원전 번역본 등장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고 그와 더불어 '호머 이야기'는 더이상 아이들의 동화가 아닌 수준 높은 어른들의 문학이라는 인식도 심어지는 토대가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초 '일리아스'의 희랍어 첫 원전 번역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에서 '호메로스는 곧 천병희'라는 공식이 성립될 만큼, 고대 그리스 문학에 있어 천병희 선생의 업적은 가히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가깝다.

번역가 천병희는 1939년생으로 2022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 독문과 출신의 독문학자이면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섭렵한 이후, 국내에 수많은 그리스 고전과 희곡들을 번역 소개하는데 매진하며 평생을 바쳤는데 그가 작업한 번역서들은 목록만 대충 훑어봐도 절로 경외심이 생길 정도다.
천병희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그동안 각각 3차례와 2차례의 개정판을 거치며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워낙 공고한 위치를 지켜왔기 때문에, 여기에는 그 누구라도 감히 새로운 번역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최근 몇년 사이에 몇몇 출판사에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전공한 번역가들을 내세워 차별성을 강조한 새로운 원전 번역판들을 속속 출간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자 입장에선 드디어 천병희 원툴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즐거운 고민과 함께 당연히 반길 만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론 우리나라에 이런 비주류 고대 언어를 연구하는 실력자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 한국인들의 학구열과 전문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하면서 놀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병희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과 상징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기에 카뮈의 작품들을 읽는데 있어 김화영의 번역을 건너뛸 수 없듯이 호메로스는 일단 천병희 번역을 먼저 거쳐가는게 도리이자 의무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나 역시 별 고민 없이 누구나 선택하는 바로 그 번역본으로 구매를 했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호메로스가 남긴 유일한 두 작품이기도 하고 트로이 전쟁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보통은 세트로 소장하게 된다. 하지만 각각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의 일화를 다룬 두 작품 사이에 전체적인 맥락상 생략된 부분이 많고 독립적인 느낌도 강하기 때문에 '오뒷세이아'를 읽기 위해 반드시 '일리아스'를 먼저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나는 트로이 전쟁과 관련한 전체적인 인물관계도를 대충 파악하는 용도로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만 먼저 읽어두면 훨씬 편해질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이 분야에 있어 세계 최고 권위자로 손꼽는 토마스 불핀치와 이디스 해밀턴의 책을 별도 구입해 트로이 전쟁과 오뒷세우스의 모험 편만 따로 비교 참조하는 식의 사전 예습을 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하면 고 이윤기 선생의 작품이 인기가 높지만 여기에는 아쉽게도 트로이 전쟁 편이 빠져있기 때문에 선택에서 제외했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경에 태어난 걸로 추정되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란 것인데, 책 뒷부분 천병희 번역가의 해설을 보면 고대 문헌의 발굴과 관련한 세계 여러 학자들의 노고를 유추할 수가 있어서 3천년 전의 기록물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는가, 또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역사인가 허구인가... 라는 각종 의문과는 별개로 전세계가 이미 공인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편안히 읽고 즐기면 될 것 같다.

다만 호메로스는 시인이고 따라서 이 작품이 서사시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에서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예상치 못한 진입장벽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소설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시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괴상한 형태의 서술문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모양새라 그저 영웅들의 재미난 모험담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다행히 나는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니벨룽겐의 노래'라는 작품을 통해 서사시 장르를 한번 접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런 문장들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1976년도에 '지그프리드'라는 영화가 우리나라 극장에서 개봉된 적이 있었다. 지금 다시 찾아보니 1966년에 만들어진 독일 영화였고 딱히 유명한 작품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 누가 어떻게 수입을 결정한 것인지 사연이 궁금하긴 하지만, 아무튼 나는 그 영화를 어릴 적 어머니 손 붙잡고 극장에서 봤었고 어린 마음에 너무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지금도 몇몇 장면은 당시의 느낌이 생생히 떠오를 정도다.

거대한 용을 죽인 지그프리드 왕자가 불사신의 피부를 얻기 위해 핏물에 몸을 담그는데 그 순간 우연히 낙엽 한 장이 날아와 등짝에 붙는 바람에 그 부위만 치명적인 약점으로 남는 장면, 나중에 어떤 여자가 옷에 바느질로 약점이 위치한 부분에 몰래 십자 표시를 하는 장면, 빌런이었던 애꾸눈 하겐에 의해 표시된 부분이 창에 관통당하면서 지그프리드가 죽는 장면... 등은 내 기억의 한 구석에 영원히 각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대학생 시절 어릴적 추억의 그 '지그프리트'라는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바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곡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그런 인연을 거쳐 드디어 원작에 해당하는 '니벨룽겐의 노래'라는 책을 찾아내게 된 것이다. 처음엔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형태의 서사시라 상당히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러 추억들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재미있으면서도 특별한 독서의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불사신의 몸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그프리드의 어깨 아랫부분과 아킬레우스의 발목이라는... 특정 부위에 부주의로 인해 생성되는 치명적인 약점과 그로 인한 운명적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서사는 서로 다른 신화임에도 너무나 닮아있어서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넘어가기엔 흥미로운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그리스 신화든 북유럽 신화든 세계의 각종 신화들은 부분적으로 비슷비슷한 서사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한편 호메로스의 낯선 서사시 형태의 문장들에 차츰 익숙해질 즈음에는 수없이 많은 신과 영웅들의 헷갈리는 이름들과 족보라는 또다른 진입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책에는 생소한 이름이 나올 때마다 주석을 달아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사실 주석에 나오는 족보 설명이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나중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름들은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사실 이 작품은 책을 다 읽고나면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있어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실제로 몇 안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뒷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와 아들인 텔레마코스는 가족이니 일단 예외로 하고, 나머지는 오뒷세우스의 파란만장한 모험담을 들어주고 고향으로 인도하는 역할의 알키노오스 왕과 고향에서 오뒷세우스의 복수를 면밀히 도와주는 역할의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이 2명의 이름만 기억하면 작품의 장대한 여정을 따라가는데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 외에는 알키노오스 왕의 딸인 나우시카아 공주, 오뒷세우스를 흠모하여 무려 8년 동안 붙잡아두고 동거 생활을 했던 요정 칼륍소,그리고 페넬로페의 구혼자들 중 메인 빌런에 해당하는 안티노오스, 이 3명 정도가 비중이 높은 이름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밖에 신들의 경우는 제우스, 포세이돈, 헤르메스 등, 수많은 이름들이 언급되지만 실제로 작품 내내 오뒷세우스의 조력자이자 동반자로 등장하는 아테나 여신 외에는 딱히 스토리에 영향을 주는 존재감이 없기 때문에 달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다만 이 작품은 호메로스 서사시의 특성상 영웅과 신들의 이름 앞에 매번 캐릭터를 상징하는 수식어구들이 꼬박꼬박 반복해서 붙어 있는데,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라든지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가끔씩 이름을 생략하고 '아르고스의 살해자'라는 식으로 수식어구로만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 때는 그 수식어구가 가리키는 인물이 '헤르메스'라는 점을 바로 알아들어야 독서의 흐름을 유지할 수가 있다.



이렇게 반복되는 수식어구들을 접하다보니 문득 희대의 사기꾼... 어쩌고 하며 집요하게 칼자국이라는 캐릭터를 묘사하던 천명관의 '고래'가 생각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부분은 어쩌면 호메로스에 대한 오마주일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오뒷세우스 귀향길의 마지막 기착지이자 안티노오스 왕과 나우시카아 공주가 사는 '파이아케스족의 나라'라는 말은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작업실인 '파이아키아'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우시카아 공주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바로 그 주인공 나우시카 캐릭터의 원형을 이루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으면서 천병희 선생의 번역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신경을 쓰기도 했는데,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작품 전체에 걸쳐 놀라울 정도로 쉬운 단어와 어휘로 문장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려 3천년 전의 고대 서사시라면 아무래도 그 시대에 어울릴 법한 고색창연한 언어로 쓰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격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너무나 쉬운 언어와 단순한 구성의 문장들이라 어린 아이가 읽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번역에 방점을 찍고자 했던 고 천병희 선생의 개인적인 철학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가족을 만나기 위한 오뒷세우스의 험난한 모험담이 분명 드라마틱하고 흥미롭게 펼쳐지긴 하지만 의외로 마음을 울릴 만한 어떤 특별한 포인트는 없었던 것 같다. 막상 따지고보면 오뒷세우스가 한 일이라곤 아테나의 예언과 지침에 따라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임무를 잘 수행한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뒷세우스의 여정은 그저 아테나가 그를 집에 보내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걸 주도하면서 이루어졌을 뿐, 그에 대한 그녀의 개인적 호감이나 의지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오뒷세우스는 칼륍소와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작 인간들이 공물을 올리느냐 마느냐 따위의 사소한 이유 때문에 제우스나 포세이돈 같은 위엄 가득한 신들이 소심하게 삐져서 괴롭히기도 했다가 또 금새 풀어졌다가 하는 모습을 보면 신과 인간들의 관계가 참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후반부 집안에서 구혼자들을 상대로 펼쳐지는 오뒷세우스의 무시무시한 살육씬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고어해서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는데, 내 취향이 확실히 이런 쪽이어서 그런지 장대한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클라이막스로 나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본작 '오뒷세이아'는 내용의 완성도나 재미를 떠나 호메로스의 작품을 천병희 번역의 원전으로 읽어봤다는 만족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아울러 그리스 신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헐리우드 영화 제작사 중에 'TSG 엔터테인먼트'에서 사용하는 인트로는 활로 12개의 도끼자루 구멍을 통과시키는 오뒷세우스의 모습이다.

다음 달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개봉한다. 영화를 계기로 이번 기회에 호메로스의 원전 번역판에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xENMm5GLJGo&t=631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4344980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