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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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일본인으로서는 두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시적 표현력으로 현대인의 아픔을 과감한 형태로 그려내어 현실과 신화가 응축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라는 헌사와 함께 그해의 선정 이유를 밝히고 있다.



1935년생으로 3년 전인 2023년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겐자부로는 장편소설은 물론 중, 단편 및 각종 평론, 수필 등... 작품 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고 우리나라에도 명성에 걸맞게 대부분의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와있는 상태다.



그동안 겐자부로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본 적 없다는 사실이 좀 부끄럽기도 한데, 어쨌든 늦었지만 이번에 그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작품 중의 하나인 '만엔 원년의 풋볼'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 작품은 장편소설로서 원제 역시 '萬延元年のフットボ-ル'이며 놀랍게도 작가 나이 32살에 쓴 1967년작이다. '만엔'은 일본 연호 중의 하나이고 '만엔 원년'은 1860년을 뜻한다. 1860년의 일본은 마지막 막부인 에도 시대가 저물어가던 시기로 개항의 압박을 거쳐 서양의 문물이 밀려오면서 격동과 혼란을 겪던 시기이기도 하다.  



제목만 보면 마치 막부 시절을 다룬 시대극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실제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당시 작가가 글을 썼던 시기과 비슷한 1960년대 초반이며 만엔 원년과는 정확히 100년이라는 세월의 격차가 있다. 1960년대의 일본 역시 2차대전 패배 이후 미국의 통제 속에 100년 전 조상들이 겪었던 격동과 혼란을 또다시 답습하던 시기라, 아마도 작가는 본인 스스로를 투영한 작중 주인공 세대와 만엔 원년 시절의 증조 할아버지 세대를 대비시키며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매몰되는 인간 군상을 묘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본문 속에서 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와 1960년의 '안보 투쟁'이라는 두 역사적 사건이 시대를 초월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언급되는데, 각각의 사건에 얽힌 가족사를 바라보는 두 주인공 형제의 시각이 마치 '라쇼몽'의 그것처럼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그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는 인간 본성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것 같기도 하다.



따라서 이 두 사건이 일본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역사적 맥락에 대해 사전지식이나 이해도가 높았더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그런 핑계가 무색하게도 내게는 전반적으로 내용이 좀 난해한 편이었고,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와닿지 않아서 책을 다 읽고나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낭패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첫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작가의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미학적으로 완벽함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축조된 예술품을 보는 듯해서 내용과 상관없이 그냥 문장을 읽어나가는 모든 순간들이 경이롭고 짜릿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첫문장만으로도 겐자부로의 스타일은 대충 다 파악이 된다고 볼 수 있겠는데, 흔히 나 같은 구세대들이 막연하게 글을 잘 쓴다는 것에 대한 기준을 정할 때 무조건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을... 어쩌면 궁극의 경지라 부를 수 있는... 바로 그런 종류의 필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설이 길면 질색하고 영상 조차도 1분 미만의 쇼츠만 찾는 요즘 시대에는 이런 만연체 스타일을 구사하는 작가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는 여전히 이렇게 긴 문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고수의 글을 만나게 되면 스토리의 재미와는 별개로 글 자체를 읽는 즐거움에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역시 초반에 나오는 문장으로 그냥 개를 안아 올렸다는 별 것 아닌 행동을 어둠을 안아 올리자 어둠 속에 개가 채워져 있다고 표현한 부분처럼 겐자부로의 글에는 순간순간 흘러가는 행동과 생각들을 묘사함에 있어 단 한군데도 대충 넘어가는 법 없이 철저한 계산과 고뇌를 거쳐 빚어낸 흔적들이 역력하다.


새벽에 친구의 자살 사건을 떠올리며 정화조 구덩이에 들어가 넋나간 행동을 하는 주인공의 심경을 정밀하게 그리면서 캐릭터 소개까지 겸하고 있는 이 도입부 제1장은 나에게 있어 오에 겐자부로와의 첫대면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그 임팩트가 실로 대단했다. 레이어가 두세겹 입혀진 긴 문장 속에 은유와 직유를 물흐르듯 섞어넣는 테크닉은 물론 의미가 또렷하게 전달되는 적확한 어휘의 선택 등... 읽는 내내 줄곧 '무시무시하다'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면서 언어와 글로 이루어진 어떤 거대한 기운에 압도당하는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렇지만 이렇게 글을 잘쓰는 작가를 만나게 되면 설령 내용이 어렵고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글 자체를 읽는 즐거움이 그 모든 것을 상쇄시켜주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나 자신을 계속 설득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이 작품은 후반부에 충격적이면서도 거북한 내용의 반전도 있고 해서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본문 속에서 만엔 원년의 봉기를 상징한다고 해서 넣었을 책표지의 대나무 그림마저도 나중에는 오히려 죽창이 떠올라 섬뜩해질 정도인데, 책을 다 읽고나면 요즘 서른살과 60년대의 서른살이 과연 같은 서른살이 맞는가 싶기도 하고... 겐자부로는 그 나이에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건가 싶기도 하다.



한편 이 작품의 지리적 배경은 시코쿠 지역이고 고치가 자주 언급되는 걸로 봐서 정확하진 않지만 고치 북쪽에 있는 어느 산골짜기 마을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도 시코쿠와 고치가 배경이라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데 나중에 정말로 고치는 꼭 한번 가보고 싶다.


https://blog.naver.com/joonjoo2/222926761125


끝으로 작가의 필력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훌륭한 번역은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하는 요소였다고 말하고 싶고, 덕분에 오에 겐자부로라는 대문호를 제대로 영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zp0b6MoS6Qc&t=5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429732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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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속의 비밀 1~2 세트 - 전2권
댄 브라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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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신작 '비밀 속의 비밀 (The Secret of Secrets)'은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고된 바와 같이 작년 9월 9일 미국 현지에서 공개되어 2주차부터 시작해 7주 연속 아마존 차트 소설 부문 종합 1위를 찍은 걸로 나오는데, 사실 이 정도면 지금의 댄 브라운으로서는 충분히 선방이고 나름 체면치레는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선 이 책이 공개된 지 3달 가까이 지난 11월 말이 되어서야 뒤늦게 별다른 홍보도 없이 조용히 번역되어 나왔다. 추리 스릴러 분야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도 발매 소식을 몰랐을 정도니 좀 충격인긴 하다. 더 충격인 건 출간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오르지도 못 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때 전세계를 호령했던 댄 브라운의 위상이 이 정도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세월이 참 무상하긴 하다.



미국이란 나라가 레전드 스타들에 대한 리스펙이라든지 예우하는 문화가 발달되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우리나라는 변화에 민감한 민족이라 그런지 빨리 적응하고 빨리 잊고... 하여튼 그런 면이 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8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댄 브라운의 이번 신작은 체코 '프라하'가 배경이다. 지난번 '오리진'을 읽었을 때 미스터리는 살짝 뒷전으로 밀리고 오히려 스페인 명소를 소개하는 데에 열을 올리는 식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어서 작가의 방향성이랄까 집필 스타일이 예전에 비해 뭔가 좀 달라진 것 같다는 의심을 했었는데, 이번 작품을 읽고나니 그 방향성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https://blog.naver.com/joonjoo2/224000392042


이 책은 정말로 한 권의 프라하 관광안내서에 가깝고 미스터리 요소는 거의 양념으로 끼얹어진 수준이다. 애초에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비롯한 스토리의 흐름 자체가 프라하의 각종 명소들을 차례로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해 짜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프라하시의 전폭적인 지원과 홍보비를 받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는데, 실제로 책 뒷부분 감사의 말을 담은 작가 후기에 프라하시 관광본부가 떡하니 있는 걸 보고 쓴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작가의 명성이나 영향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안그래도 365일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프라하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상반된 생각과 충돌하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긴 한다.



댄 브라운의 스타일을 하루이틀 겪은 바도 아니고 어느덧 로버트 랭던과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이라는 컨셉으로 굳어진 상황인 건 알지만 이번 작품은 특유의 서스펜스나 스릴감마저 대폭 줄어든 느낌이라, 그래도 어느 정도의 긴장감 속에서 유럽 명소와 유명 미술품들을 덤으로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던 이전 작품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심지어 이번 작품의 주된 소재로 선택된 인간의 뇌와 의식에 관한 첨단과학은 작가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인지는 모르겠으나, 따지고 보면 굳이 프라하에서 사건이 벌어져야 할 이유나 당위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주제와 배경 장소가 좀 따로 논다는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천사와 악마'에서의 이탈리아나 '다빈치 코드'에서의 프랑스처럼 소재와 무대가 찰떡같이 어우러졌던 전성기 대표작들을 생각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이 작품은 포시즌스 호텔에서 아침을 맞이한 랭던이 단 하루 동안 프라하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험 활극을 그리고 있다.



새벽 조깅 코스에 굳이 카를교를 건너는 동선을 넣어서 카를교에 대한 잡다한 유래와 상식을 설파하는 것을 시작으로 프라하성은 물론, 스타로마크 구시가지 광장의 천문시계도 깨알같이 등장하고,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 알뜰하게 묘사되는 조핀 궁전과 댄싱 하우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크루시픽스 바스티온, 추격 액션 장면에 활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페트르진 전망대, 거울 미로와 페트르진 푸니쿨라...



클레멘티눔과 악마의 성경이라 불리는 코덱스 기가스, 프라하의 미국 대사 관저인 페체크 빌라, 구 유대인 공동묘지, 후반부 주요 배경인 폴리만카 공원과 R2-D2 닮았다는 환기구 등...



예상했던 그대로 프라하의 핵심 명소들이 총망라되어 나온다. 이 정도면 그냥 프라하 여행은 직접 안 가봐도 충분할 것 같다. (어차피 갈 기회도 없겠지만...)


다만 프라하에도 분명히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을 터인데 폴 에번스의 조각품 '호기심 캐비닛' 정도가 비중있게 등장할 뿐, 이전 작품들에 비해 미술품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다시피 한 점은 좀 의외였다.



사실 이번 작품은 초반부터 그 똑똑한 랭던이 마치 이성을 잃은 듯이 세계적인 도시의 특급 호텔에 화재경보를 울리며 난장판을 만든다는 상황 자체가 납득하기 힘들 뿐더러 나에겐 너무 억지스럽게 느껴져서 이후 진행되는 스토리 역시 그다지 자연스럽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스토리의 기본 플롯 조차도 주인공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어떤 문서가 거대 조직에 위협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영문도 모른 채 쫓기게 된다는 식의... 지난번 '콘돌의 6일' 리뷰 때도 언급했듯이 존 그리샴의 '펠리컨 브리프' 같은 히트작에서 이미 충분히 우려먹었던 너무나 익숙한 설정이라, 아무래도 댄 브라운이 이번에는 솔직히 날로 먹으려는 속셈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좀 쉽고 편하게 글을 쓰고 싶었던 것처럼 느껴지긴 한다.


https://blog.naver.com/joonjoo2/224032833913


한편 작가 자신이 워낙 유명인사여서 그런지 책을 읽다보면 엄청난 인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전작 '오리진'에서 너무 대놓고 테슬라를 홍보하는 장면이 있어 아마도 일론 머스크와 개인적 친분이 있을 것 같다는 짐작을 한 바 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나 그의 이름과 뉴럴링크가 언급되는 걸 보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읽고 리뷰하면서 친숙해진 이름인 마이클 폴란도 작중에서 랭던의 동료로 나오는 걸 보면 실제로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싶다. 


https://blog.naver.com/joonjoo2/223645953716


이런 인맥이 사실이든 아니든 댄 브라운은 이 작품에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최신 고급정보를 바탕으로 꽤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에는 '인공 뉴런' 같은 단어를 처음 들어봤을 정도로 문외한이지만 이 책을 통해 뇌과학 기술이 현재 어디까지 발전하고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된 부분도 많아서 소설적 재미와는 별개로 나름 유익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본작 '비밀 속의 비밀'은 소장가치를 높여주는 고급스런 디자인의 박스와 함께 지금껏 국내에 출간된 댄 브라운의 작품들이 늘 그러했듯 번역도 흠잡을 데 없이 유려하고 가독성이 좋다.



결론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재미는 가장 떨어지는 축에 속한다... 그렇지만 프라하를 좋아하거나 뇌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Ye-Vqn0Ym7Q&t=4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428852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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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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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토너'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5년에 발표된 이후 몇몇 호평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불과 1년 만에 절판되었으나, 약 50년의 세월이 지난 2010년대에 들어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재출간되며 재평가와 함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역주행을 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도 2015년에 번역 소개되면서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판매량을 보이다가 올해 3월에는 유튜브의 연예인 추천 등에 힘입어 뒤늦게 베스트셀러 1위를 찍기도 했다.



작가는 존 윌리엄스라는 낯선 이름인데 1922년생으로 미국에서 태어나 덴버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94년 일흔을 살짝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문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몇권의 소설과 시집을 남긴 것으로 나온다.


어쨌든 본작 '스토너'는 장편소설로서는 딱 적당한 수준인 40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실력있는 번역가인 김승욱씨가 번역을 맡고 있어서 첫인상이 호감으로 다가온다. '스토너'는 윌리엄 스토너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고, 제목에서 짐작되는 그대로 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일생을 조용히 따라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열아홉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시작해서 영문학 교수가 되고 60대 중반 정년퇴임을 앞둔 시기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45년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2차 세계대전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1910년부터 1955년까지이고 공간적 배경은 미국의 미시시피강 인근 중부지역인 미주리주인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한 공감도를 조금 더 높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이 자랑하는 대문호 마크 트웨인의 고향이자 성지를 바로 지척에 둔 지역인 만큼 책 곳곳에서 문학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존중이 묻어나오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리라...



작가가 서문에서 모든 내용이 허구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는 있지만, 그래도 평생 영문학 교수로 살아온 작가 자신의 자전적 스토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 나이와 비교하면 거의 한 세대 정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본인의 경험 일부를 부모 세대에 투영시켜 풀어간 내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이 책은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대충 어떤 느낌의 내용일지 예상이 된다. 첫 문단 속의 조교수 이상 올라기지 못했을 만큼 이렇다할 업적도 없고 강의 들은 학생들 중에 그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도 없었다는 구절만 보더라도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어떤 소시민 또는 루저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려가면서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의미 따위를 반추하게 만드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뭐 그런 부류의 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시골 변두리의 적막한 환경 속에서 스토너가 부모를 도와 농장 일을 하다가 아버지의 반강제적 권유로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책을 통해 문학에 매료되는 과정을 건조한 톤으로 빠르게 훑어나가는 초반부를 읽다보면, 아무리 봐도 그다지 드라마틱하거나 흥미진진한 상황이 펼쳐질 것 같지 않는 분위기라 작가가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 작정인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설마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스타일의 내용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는데 다행히 이 작품은 중반부부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스토너의 성격은 요즘 말로 전형적인 아싸에 왕따의 기질이 다분한 루저의 그것이다. 사교성 제로에 목표 의식이나 야망도 없어서 아버지와 지도교수의 적극적 방향 제시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혼자서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지 못했을 수동형 인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고비마다 주위의 분위기나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는 줏대라든지, 한번 결정한 일은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의외성이 스토너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있어 입체적이고 차별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


예를들어 초중반부 스토너가 파티에서 처음 본 여자에게 저돌적으로 구혼하는 장면 같은 경우 주인공의 평소 성격에 비해 너무 이질적이라 다소 뜬금없고 당황스럽게 다가오는 면이 있지만, 이것은 처음에 농과대학을 나와서 가업을 이어받길 원했던 아버지에게 자신은 문학으로 전향해 계속 공부하겠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거나, 1차대전 때 입대와 관련해서 주변 여론에 상관없이 거부 결정을 내리던 장면 등을 기억한다면 오히려 일관성이 있는 모습이라 볼 수가 있고, 후반부 로맥스 교수와 그 제자에게 보여주는 한결같은 태도 역시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아무튼 특별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무미건조한 대학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스토너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였던 문학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해서 교수가 된 이후, 마침내 강단에 서서 놀라울 정도로 기품있고 학자다운 언변으로 강의를 하는 장면은 어쩌면 이 책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은데, 마냥 물가에 내놓은 것 같았던 아이가 어느새 철들고 성숙한 청년으로 자란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은 중반부 스토너와 아내 이디스와의 결혼 생활을 묘사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것 같다. 거의 정신적 학대에 가까운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이혼숙려캠프'의 역대급 에피소드를 시청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단 한번도 억울함이나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말없이 모든 걸 본인이 감내하고 안고가는 모습은 호구와 보살의 중간 어디쯤에 해당이 될텐데, 어떻게 보면 스토너가 결혼 생활은 상대를 나에게 맞추도록 애쓰는 것 보다 그냥 나를 상대에 맞춰버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쉽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나름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다만 한가지 납득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은 이디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로맥스와 그의 제자까지도 한결같이 스토너에게 표출하고 있는 감정이 단순히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수준이 아니라 혐오와 악의까지도 넘어서 거의 증오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당신은 정말로 나를 증오하는군. 그렇지 않소?'라는 스토너의 질문에 이디스가 경멸의 코웃음을 치며 말을 돌리는 장면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하고는 있으나 거의 모든 장면이 주인공 스토너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묘사되어 사실상 1인칭 시점에 가깝다. 때문에 이디스와 로맥스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한 심리상태를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독자 입장에서는 스토너가 시종일관 이유도 없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빌런이라고 해도 이렇게 맥락도 없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나는 그 와중에 작가가 몇가지 단서를 힌트로 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스토너의 집들이 파티에 로맥스가 굳이 참석해서 이디스에게 키스를 한 점, 그리고 스토너의 불륜 사실을 이디스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인데, 나는 이런 단서들을 근거로 사실은 이디스와 로맥스가 훨씬 전부터 불륜 관계이지 않았을까 하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들이 스토너에게 보이는 적대적 태도에 대한 의문들도 자연스럽게 해소가 된다. 스토너의 불륜을 이디스가 알고 있었던 것도 학교에 떠도는 소문을 로맥스가 다 얘기해준 것이고, 어차피 똑같은 입장이니 이디스가 남편의 불륜에 대해 별다른 분노나 추궁없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설명이 된다.


물론 내 추측이 맞다고 한들 스토너의 불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작품 만큼 주인공의 불륜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자네 인생에 이런 낙이라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정말로 이런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그동안 응어리진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던 시간이었다.


따지고보면 결국 이 작품이 스토너의 삶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내용일 것이라는 예측은 그리 빗나가지 않았다. 상대방은 자신을 그다지 절친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별로 신경쓰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임종을 앞둔 순간까지도 무의식적으로 친구 이름을 언급하던 스토너의 마지막 모습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의 번역은 예상대로 작품의 분위기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맞는 대사의 톤 등을 잘 조율하여 가독성도 좋고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내가 인물들의 디테일한 심리와 연관되는 단어의 뉘앙스에 좀 민감한 편이라서 그런지 가끔씩 앞뒤 문맥의 흐름에 살짝 거슬리는 부분들이 보이는 점은 약간 아쉬웠다.   



'시기심이나 앙심없이 그를 인정했다' 같은 경우는 맥락상 원한을 품을 만한 상황이 전혀 없는데 '앙심'이란 단어를 쓰니 어색하다. 차라리 '불만' 정도가 나을 것 같고...



'그녀의 눈이 무기력하게 반짝였다'에서 '무기력하게'는 찰나의 미묘한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긴 하지만 뒷말과 호응이 잘 안된다. 나라면 '희미하게' 정도로 바꿨을 것 같다.



그리고 '처음으로 워커가 진실한 감정을 드러냈다. 분노가 그를 거의 위엄있게 만들어주었다' 역시 어색한 단어의 조합으로 문장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것도 만약 나라면 '처음으로 워커가 본색을 드러냈다. 그의 정중함 속에는 대부분 분노가 자리했다' 정도로 적당히 의역을 했을 것 같다. 


과연 행복한 삶, 불행한 삶, 또는 의미있는 삶이란 게 있기는 한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스토너와 닮은 부분이 꽤 많다는 점이 너무 슬프긴 한데, 이 작품을 통해 어차피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내 인생에 대해 미리 조그마한 위안을 받은 건 분명한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L6mp-y1QoTY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412161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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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의 6일 버티고 시리즈
제임스 그레이디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콘돌의 6일 (Six Days of the Condor)'은 1974년에 발표된 스파이 스릴러물이며 바로 다음해인 1975년에 개봉된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 '코드네임 콘돌'의 원작소설이다. 


이 작품은 이렇게 출간과 동시에 당시 헐리우드 특급스타들이 대거 투입된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막대한 판권료와 함께 작가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정도로 거대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49년생으로 현재 70대 중반인 작가 제임스 그레이디가 대학시절에 구상을 해서 불과 20대 초중반에 발표한 데뷔작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첫 작품이 너무 큰 성공을 거둔 탓인지 이후에 이어진 꾸준한 집필활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데뷔작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원 히트 원더'로 머물고 만 듯한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하다.


이 책은 미국 현지에서의 높은 평가와 화제성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약 40년이 지난 2016년에 뒤늦게 번역 소개되었으나, 이마저도 절판된 상태라 지금은 중고책으로밖에 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 



작가 후기를 제외한 작품 본편은 약 200페이지 분량으로 거의 중편소설에 가깝지만, 제목처럼 주인공 콘돌이 급박한 상황에서 펼치는 약 1주일간의 활약상이 압축되어 담겨있기 때문에 실제로 읽어보면 내용이 빈약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즐길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작품 전반에 걸쳐 디테일하게 묘사되는 CIA라는 거대한 정보기관의 비밀스런 활동이나 미국 고위 권력층 인사들의 관용적인 화법으로 구성된 흥미로운 대사들이 주는 쾌감이 대단한데, 작가가 젊은 나이에 오로지 자료조사만으로 구현해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다.



때로는 싼마이스러운 표현들이 섞여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게감 있고 능숙한 필력을 바탕으로 한 품위있고 고급스런 문장들을 읽는 재미가 좋았고 기본적으로 작가의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사소한 장면만 보더라도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해 고개를 끄덕였다는 일차원적 서술 대신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식으로 쿠션을 한번 넣는 모습에서 작가의 위트를 엿볼 수가 있다.



무려 50년 전에 쓰여진 70년대 소설인 만큼 문장의 구성이나 플롯의 전개방식이 요즘 정서와 비교한다면 어쩔 수 없이 다소 올드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곳곳에 포진해있는 과감하고 흥미로운 액션 시퀀스들과 남녀 주인공들의 뜬금없는 정사씬 등, 다채로운 눈요깃거리에 스토리의 진행 속도도 빨라서 세월의 격차는 금새 잊혀지게 만든다.


나는 초반부에 곧바로 등장하는 학살씬을 보면서 언뜻 오래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이언 플레밍의 007시리즈 중에서 '닥터 노'라는 작품의 초반부 암살씬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별 생각없이 작성했던 문서가 거대한 권력층의 비리를 노출시키는 위협이 되면서 그 누군가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살인청부업자들에게 쫓기게 된다는 매력적인 설정은 존 그리샴의 대표작 '펠리컨 브리프'에서도 멋지게 그려진 바 있지만, 이 작품이 훨씬 전에 나온 만큼 그러한 설정의 원조를 영접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중반부 여자의 집이 노출되어 집 안에서 격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여자를 감시하던 키 큰 남자는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동안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후반부 콘돌이 정당방위가 아닌 상태에서 저지른 살인이 약물에 약간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따위의 뒷맛이 개운치 않은 몇몇 의문점들은 거슬리기도 했지만, 작품 전체의 재미와 만족도가 워낙 출중하기 때문에 사소한 옥에 티 정도로 넘어가고 싶다.



영화는 'Three Days of the Condor'로 제목을 6일에서 3일로 살짝 바꾸면서 주인공의 활약상을 좀더 스피디하게 압축한 구성을 꾀하고 있다.


책 말미에 영화와 관련한 회고를 담은 작가 후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정식으로 출판하기 전 원고 검토 과정에서 이미 헐리우드의 초거물급 제작자인 디노 드 로렌티스의 눈에 띄어 전격적인 판권계약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거물 제작자의 안목은 물론 당시 미국 출판계와 영화계 간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단 최전성기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페이 더너웨이를 캐스팅했다는 것 자체가 제작자의 파워와 함께 이 영화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다. 



거장 시드니 폴락 감독은 액션 스릴러 장르와는 매칭이 잘 안되는 면이 있지만 로버트 레드포드와 각별한 사이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 가능하고,



'프렌치 커넥션'을 찍었던 오웬 로이즈먼 촬영감독을 기용해 액션 쪽을 보완한 측면도 보인다. 음악을 맡은 데이브 그루신 역시 그의 성향과 어울리는 장르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 아낌없는 투자가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그 외에도 내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고 '정복자 펠레'에서 보여준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하는 스웨덴 출신의 명배우 막스 폰 시도우 또한 영화에 품격과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다.



이렇게 헐리우드 초A급 배우들과 제작진들을 투입한 이 영화의 제작비는 2천만달러라고 나오는데, 70년대 기준으로는 막대한 예산이라 할 수 있는 규모이고 그만큼 흥행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월드와이드 2천7백만달러라는 수익은 사실상 흥행실패로 봐야 하는 성적표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주인공 콘돌이 초반부터 CIA에 쫓기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턱없이 부족해서 긴박한 상황임에도 영문을 몰라 감정이입하기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다가온다. 한마디로 원작소설을 읽지않은 사람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서 재미가 없고, 소설을 읽은 사람은 오히려 흥미로운 디테일들이 다 빠져서 재미가 없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영화는 당대 최고의 꽃미남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스타 파워를 최대한 살려서 여주인공과의 위기 속 로맨스에 방점을 찍으려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CIA라는 거대 권력기관의 정보력과 기술력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더 컸던 원작소설과는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쨌든 기대와 달리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헐리우드의 큰 별이었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지난달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 '코드네임 콘돌'은 그래도 그의 가장 빛나던 시절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 중 하나라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고 또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영원한 '선댄스 키드' 로버트 레드포드를 추모하며...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jGAtF92vQfw&t=17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403283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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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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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은 '저주토끼'의 작가 정보라가 올해 5월에 발표한 신작 소설이다. 정보라 정도의 지명도라면 오픈빨도 있고해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노출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신작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게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가버린 느낌이 있다. 심지어 정보라의 팬이 아니라면 이 책의 존재 자체를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나 또한 운영 중인 유튜브 영상 댓글 중에 어떤 분의 요청이 없었더라면 전혀 몰랐던 책이었다. 정보라 작가가 '저주토끼'로 유명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번 신작을 읽기 전에 그녀의 스타일을 미리 파악하고자 하는 마음에 겸사겸사 함께 구매했던 것인데, 아무튼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저주토끼'를 먼저 읽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6612608


만약에 이 책만 사서 읽었더라면 아마도 '저주토끼'는 내 구매목록에서 지웠을 것 같다. 그만큼 본작 '아이들의 집'은 한마디로 좀 재미가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저주토끼'로 인해 개인적인 기대감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많이 아쉽다.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을 연상시키는 제목만 봐도 대충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되는 이 작품은 역시나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고 영유아 계층의 해외입양과 아동학대 등, 아이들의 양육과 관련한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을 중심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평소 이 부분에 대한 관심과 공감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애초부터 어필이 좀 힘들 것 같다는 태생적 한계가 느껴진다. 나 역시 아이 둘을 키워봤던 부모의 입장이지만 입양이나 아동학대 등은 또다른 문제라서 일부러 굳이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을 찾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소재와 주제가 어떻든 스토리가 모든 걸 압도할 만큼 재미있기만 하다면야 상관이 없을텐데 이 작품은 그동안 SF장르로 입지를 다져왔던 작가답게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보이는 작가적 상상력이 동원된 그럴듯한 사회 시스템과 첨단 과학 등 흥미로운 요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장편이라는 긴 호흡을 드라마틱하고 집중력있게 끌고가는 중심 서사가 약하다보니 작가가 전달하고자하는 좋은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장르소설다운 스토리의 재미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아이들의 집'이란 간단히 말해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보육원 시스템이라 보면 되겠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이라 누구나 원하면 안심하고 편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회... 



작가가 이 작품에서 제시하는 미래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만약 소설 속 '아이들의 집' 같은 시스템이 실제로 구현된다면 경제적 이유로 점점 늦어지는 결혼과 저출산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렇게 이상적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집'이란 복지 행정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들을 도구처럼 이용하는 어떤 인간집단의 만행이 드러나는 과정을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모든 비극의 원인을 제공하는 빌런의 실체를 찾아서 응징하는 스토리가 아니라, 아이들과 관련한 여러 사례들을 그저 나열하며 보여주는 선에서 정리하고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버리는 방식을 취하면서 거기에 뭔가 고차원적인 분위기를 넣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러가지 상징을 의미하는 듯한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요소들을 맥락도 없이 마구 뿌려놓고 있기 때문에 예상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나같은 경우는 다 읽고나서도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감을 못잡았을 정도로 난해하게 느껴졌었는데, 솔직히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한번 더 정독을 하고 부분적으로 반복해서 읽은 것까지 포함하면 본의아니게 이 책을 거의 3번 이상 읽은 셈인데도 놀라운건 아직도 완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거다.


당장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봐도 어떤 상징성이나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을 것만 같은데 '아이들의 집'과 관련한 아이들과 직원들의 이름이 '무정형', '정사각형', '삼각형', '색종이', '가루', '줄넘기', '솜털' 등, 모두 동심의 세계에서 가져온 듯한 명칭들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외부에 속하는 인물들은 '섬', '요', '표', '관', '란', '멱' 등의 묘한 한자들이고 '엿볼 섬', '넉넉할 요', '겉 표', '익숙할 관', '빛날 란', '찾을 멱'이라는 뜻까지 찾아봐도 도무지 의도가 파악되지 않을 뿐더러... 



사실 따지고보면 이 이름들이 내부인과 외부인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도 아니라서 뭔가를 상징한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작가가 한자 한자 신중하게 의미를 담아 선택한 글자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냥 신비스런 미래의 분위기를 내기 위한 목적에서 무작위로 가져왔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등장인물들의 낮설고 기묘한 이름 따위를 비롯하여 하얀 사마귀나 항아리, 우주선 같은 은색 차 등, 분명히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은 개체들...



그리고 우두머리 빌런으로 추정되는 더없이 평범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라는 묘사를 보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서 따온 캐릭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정부가 나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라는 구절은 자연스럽게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거기에다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비중있게 등장하는 귀신과 무속신앙은 아무래도 기술과학이 주도하는 세계와 대비되는 인간의 모순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귀신이라는 개념은 결국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집어넣은 것 같은데, 이 책을 난해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일 뿐 사실상 별다른 영향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작가의 독특한 취향이자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맥거핀으로 쓴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저주토끼'에서 보여준 작가의 내공과 범상치 않은 상상력을 미리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허세와 예술병으로 덧칠된 난잡한 책이라 치부했을 정도로 이번 신작은 정말 불친절하기 짝이 없지만, 아이들을 향한 작가의 애정어린 마음 만큼은 충분히 와닿는 것도 사실이다.



부모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거나 어떤 인격을 가졌더라도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다.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그로 인해 아이가 불행해져선 안된다.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들의 권리다. 아이들의 집은 곧 어른들의 집이다...



정보라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하고싶은 얘기는 이런 구절들에 다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선하고 좋은 의도 만큼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기는 한데, 문해력이 그다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3번을 읽고도 이해를 못한 부분이 수두룩하다면 과연 누구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Tb1AcO8Vod0&t=35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97346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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