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Medusa Collection 3
아이라 레빈 지음, 김효설 옮김 / 시작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아이라 레빈의 작품은 오래전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죽음의 키스(A Kiss Before Dying,1953)'를 통해 처음 접한바 있다. 대학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니까 얼추 20년은 지난듯 싶다. 이색적인 소재와 재미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얼마후 동네 비디오샵에서 당시 청춘미남스타로 손꼽히던 '맷 딜런'과 '숀 영'이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도 빌려서 다시 한번 감상하기도 했다. 훗날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같은 소설을 두번째로 영화화한 리메이크작이었다.

첫만남 이후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본작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은 그의 5번째 작품이며 1976년작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대가들의 작품을 뒤늦게나마 찾아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묘한 설레임을 일으킨다. 긴장감 넘치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줄곧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스토리라인과 살아있는 캐릭터들은 과연 레빈의 진면목을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2차대전당시 유태인학살을 자행했던 나치전범들과 종전후 나치사냥꾼으로 활약했던 유태인학자와의 대립을 그린 작품인 만큼, 역사에 관한 사전지식이 있다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다. '죽음의 천사'로 악명을 떨쳤던 멩겔레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라는 대명사로 불리는 유태인학살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아이히만과 슈탕글 같은 실존인물들의 이름이 수차례 언급되기도 한다. (특히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의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화두를 이끌어낸 장본인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 작품은 우리에게 불미스러운 일로 친숙해져버린 줄기세포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놀라운 반전을 펼쳐보이는데, 작가가 치밀하게 구축한 주인공 멩겔레의 탁월한 캐릭터성과 맞물려 결코 잊을 수 없는 기막힌 마지막 장면을 연출한다. 이러한 독창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소재는 아마도 1994년 발표된 역작 '모레(The Day After Tomorrow)'를 탄생시킨 앨런 폴섬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무색케하는 감각적인 구성과 스릴감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며, 특히 한 천재의 광기어린 집착이 초래하는 아이러니한 비극은 슬픔과 연민이 느껴질만큼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 역시 1978년 영화화되었는데, '그레고리 펙', '로렌스 올리비에', 그리고 '제임스 메이슨' 같은 명배우들이 출연하고 '혹성탈출', '패튼 대전차군단', '빠삐용' 등으로 유명한 '프랭클린 J. 샤프너'가 감독을 맡았다. 국내에는 '잔혹한 음모'라는 제명으로 소개되었지만, 탄탄한 출연진과 감독의 결과물치고 영화의 완성도는 생각보다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다.  


'로마의 휴일'의 영원한 훈남배우 그레고리 펙이 멩겔레역을 맡았다. 젠틀한 이미지의 그가 의외의 연기변신을 펼치는 모습은 훗날 '백경'에서 보여주던 집념의 사나이 에이하브 선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리베르만역을 맡은 로렌스 올리비에는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최고의 햄릿이자 불세출의 셰익스피어 전문배우이다. 한때 '비비안 리'와의 결혼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책에서는 비중이 적었던 자이베르트 대령역으로 제임스 메이슨이 가세해 영화에서는 좀더 무게감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고있다. 


아이라 레빈(Ira Levin,1929-2007)은 미국 뉴욕출신으로 모두 7편의 소설을 남겼으며, 그 중 5편이 영화화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력의 이동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2 미치 랩 시리즈 1
빈스 플린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빈스 플린의 글은 전작 '임기종료'에서도 충분히 감지한 바 있지만, 이미 10년이나 지난 1999년작임을 감안하더라도 전혀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들지않고 여전히 무시무시한 속도감을 자랑한다.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FBI, CIA, 그리고 대통령경호실 등, 미국 특수기관들의 시스템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사실감넘치는 상황묘사와, 영화 시나리오를 방불케하는 드라마틱하고 직선적인 대사들은 이 작가의 독보적이면서도 차별화된 특징이자 장점이다.

하지만 그와 아울러 전작에서 느꼈던 사소한 문제점이 이 작품에 와서는 심각한 수준으로 부각되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가 없다. 부패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적인 살인을 자행하던 주인공을 영웅화시켰던 전작에 비해 이 작품에서는 적어도 그런 순진(?)하고 위험천만한 발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너무나 도식적으로 굳어져버린 선악구도와 미국최고를 부르짖는 노골적인 우월주의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있다.

액션영화를 보다보면 당연히 주인공의 편에 서서 감정이입이 되어야함에도, 오히려 악인의 편을 들게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주인공이 부상을 당한다거나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는 정도의 진부한 장치 따위로는 무마되기 힘든 보다 근원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데, 바로 캐릭터와 전체적인 상황을 바라보는 작가의 편향적인 시각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처음에 악의 무리들이 상황을 장악하는 듯 보이지만, 남은 것은 결국 듬직한 미국의 초강력 주인공 무리들에 의해 무참하게 괴멸될 장면일 뿐이며, 그러한 영웅만들기에 집중하는 작가의 사고방식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부통령과의 갈등 등 곁가지를 치긴 했지만 이미 예상된 결말에는 전혀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 마치 미국국민들에게 델타포스니 대테러 특수요원이니 하는 세계최고의 인재들이 있으니 안심하시라는 홍보영화를 보는 듯하다. 스릴러라는 장르가 별로 긴장이 되지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작품은 전작에 비해 발전한 점도 있지만, 오히려 퇴보하거나 작가의 한계가 보이는 아쉬움도 분명 존재한다. 단순하고 시원한 액션만을 원한다면 충분한 만족감을 얻겠지만, 작가의 스타일상 그 이상을 기대하긴 힘들 듯 하다. 앞으로 이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굳이 찾아 읽을것 같지는 않다. 

<사족> 이 작가가 FOX사의 인기드라마 '24'시리즈에 자문역할을 맡은 것으로도 알려져있는데, 24의 전시즌을 이미 감상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몇몇 시즌에서 차용한 듯한 설정도 보인다. 백악관 공격은 시즌7, 부통령의 도발은 시즌6에서 비슷하게 다루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반의 자화상
제프리 아처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제프리 아처'라는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데도 왠지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작가 프로필을 보면 영국출신으로 상원의원까지 거친 이색적이면서도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로 소개되어 있다.

다소 심심한 책표지 디자인과는 달리 초반 몇페이지를 읽는 순간 작가의 필력이 심상치않음을 느꼈다. 캐릭터 구축력과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이 좋고, 또한 대단히 스피디하다. 내용에 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미술품에 관한 고풍스런 스토리를 예상하다가, 초반부 9.11테러사건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이 작가의 글은 자연스럽게 '시드니 셀던'을 떠올리게 한다. 글쓰는 스타일이 너무나 흡사하다. 7~80년대를 주름잡았던 셀던의 작품들은 이후 수많은 소설가와 지망생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한데, 이 작가도 예외는 아닌듯 하다.

문제는 이미 셀던류의 스타일은 흘러간 트렌드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초중반부까지 짧게 끊어치는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와 드라마틱한 대사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하지만 마치 드라마의 하일라이트만 계속해서 보는 듯한 숨가쁜 전개에 오히려 감정이입이 안되고 점점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단점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유불급이란 느낌이 떠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사전조사가 동반되었을 작가의 미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또한 그것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은 감탄을 자아낼만 하다.  


이 작품의 모티프라 할 수 있는 붕대를 감은 반고흐의 두 가지 자화상

이 책에서는 특히 왼쪽에 있는 일본그림을 배경으로 둔 자화상을 둘러싼 암투를 그리고 있는데, 개인소장품이라고 한다. 덕분에 미술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면, 이 작품이 선사하는 자그마한 미덕이라 생각해도 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 에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992년작이며 데뷔작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 작품이라는 얘기다. LA형사인 주인공을 비롯하여 FBI요원 등 모든 등장인물들은 호출기(일명 삐삐)를 사용하고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격세지감이라 해야 하나...

이미 다른 작품들을 통해 작가에 대한 믿음을 충분히 확보한 터라, 그의 첫작품은 조금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시대적인 배경도 그렇고 왠지 추억을 회상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고난 필력이야 데뷔작이라고 크게 다를바 없지만, 아무래도 노련함이 쌓이기 전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살짝 아쉬운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은 낭만적인 매력이 있다. 소니 롤린스와 웨인 쇼터 같은 연주자들의 째즈음악이 있고 화가들의 그림도 있다. 주인공 해리 보슈는 본명이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라고 하는데, 15세기 네델란드 화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화가를 좋아했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으로, 실제 발음이 '히에로니무스'인지 '히로니뮈스'인지, 또 '보스'인지 '보슈'인지, 아니면 '보쉬'인지 도무지 알 길은 없다. 어쨌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런 소재들은 작가 본인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 분명한 만큼, 한층 더 친근해진 느낌도 든다.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1503)


해리 보슈의 집에 걸려있는 그림으로, 파트너인 위시요원과의 정서적 교감을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화가의 대표작으로 각각 천국, 연옥, 지옥을 표현한 세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나이트호크(Nighthawks,1942)


반대로 위시요원의 집에 있던 있던 그림으로 보슈와의 로맨스를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두 주인공은 이 그림에 대해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마이클 코넬리 본인의 남다른 애착과 추억이 실려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시카고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2008년도 작품으로, 최근 국내에 출간되고있는 장르소설치고는 꽤 최근작에 속한다. 그런데 작품의 배경이 구 소련 스탈린 치하의 1950년대로 설정되어 있다. 놀랍게도 작가의 나이를 보니 약 30세에 집필한 것으로 나온다. 믿을 수가 없다. 냉전시대를 전혀 경험해본적도 없는 신세대가 어떻게 이런 소재를 택할 생각을 했단 말인가...

반신반의한 상태로 페이지를 넘기는데, 초반 프롤로그 부분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이 책이 결코 얼치기 작가가 쓴 글이 아님을 직감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독자의 호흡을 쥐락펴락하는 글솜씨가 경이로울 정도다. 게다가 일말의 의문도 품기 힘들만큼 자신감있게 펼쳐보이는 시대상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는, 놀라움을 넘어 작가의 나이를 몇번이고 재차 확인하게 만들었다.

특히 주인공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묘사는 국가와 개인, 그리고 역사와 이데올로기 같은 여러 외부 요소들까지 복잡하게 녹여넣었음에도,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무게감이 넘친다. 활자에서 곧바로 영상으로 투영될 듯이 생생한 캐릭터 구축력과 군더더기없는 대사들 또한 나무랄 데가 없다.

정말 오랜만에 입맛에 꼭 맞는 작품을 접하니, 더할 수 없는 포만감에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기분좋은 여운에 취해있었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너무나 기대가 되고 하루빨리 번역되기를 기다린다.

<사족>
1. 리들리 스콧 감독이 판권을 가져갔다고 하는데, IMDb의 검색결과로는 아직 이렇다할 정보가 없다. 언제쯤 영화로 나오게 될지...

2. 스티븐 킹과 히가시노 게이고 팬이 동시에 열광한 경이적인 걸작이라... 본인도 아니고 '팬'이 열광했다라... 이건 뭐 출판광고계의 새로운 유머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