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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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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토너'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5년에 발표된 이후 몇몇 호평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불과 1년 만에 절판되었으나, 약 50년의 세월이 지난 2010년대에 들어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재출간되며 재평가와 함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역주행을 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도 2015년에 번역 소개되면서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판매량을 보이다가 올해 3월에는 유튜브의 연예인 추천 등에 힘입어 뒤늦게 베스트셀러 1위를 찍기도 했다.



작가는 존 윌리엄스라는 낯선 이름인데 1922년생으로 미국에서 태어나 덴버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94년 일흔을 살짝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문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몇권의 소설과 시집을 남긴 것으로 나온다.


어쨌든 본작 '스토너'는 장편소설로서는 딱 적당한 수준인 40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실력있는 번역가인 김승욱씨가 번역을 맡고 있어서 첫인상이 호감으로 다가온다. '스토너'는 윌리엄 스토너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고, 제목에서 짐작되는 그대로 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일생을 조용히 따라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열아홉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시작해서 영문학 교수가 되고 60대 중반 정년퇴임을 앞둔 시기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45년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2차 세계대전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1910년부터 1955년까지이고 공간적 배경은 미국의 미시시피강 인근 중부지역인 미주리주인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한 공감도를 조금 더 높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이 자랑하는 대문호 마크 트웨인의 고향이자 성지를 바로 지척에 둔 지역인 만큼 책 곳곳에서 문학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존중이 묻어나오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리라...



작가가 서문에서 모든 내용이 허구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는 있지만, 그래도 평생 영문학 교수로 살아온 작가 자신의 자전적 스토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 나이와 비교하면 거의 한 세대 정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본인의 경험 일부를 부모 세대에 투영시켜 풀어간 내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이 책은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대충 어떤 느낌의 내용일지 예상이 된다. 첫 문단 속의 조교수 이상 올라기지 못했을 만큼 이렇다할 업적도 없고 강의 들은 학생들 중에 그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도 없었다는 구절만 보더라도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어떤 소시민 또는 루저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려가면서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의미 따위를 반추하게 만드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뭐 그런 부류의 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시골 변두리의 적막한 환경 속에서 스토너가 부모를 도와 농장 일을 하다가 아버지의 반강제적 권유로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책을 통해 문학에 매료되는 과정을 건조한 톤으로 빠르게 훑어나가는 초반부를 읽다보면, 아무리 봐도 그다지 드라마틱하거나 흥미진진한 상황이 펼쳐질 것 같지 않는 분위기라 작가가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 작정인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설마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스타일의 내용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는데 다행히 이 작품은 중반부부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스토너의 성격은 요즘 말로 전형적인 아싸에 왕따의 기질이 다분한 루저의 그것이다. 사교성 제로에 목표 의식이나 야망도 없어서 아버지와 지도교수의 적극적 방향 제시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혼자서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지 못했을 수동형 인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고비마다 주위의 분위기나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는 줏대라든지, 한번 결정한 일은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의외성이 스토너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있어 입체적이고 차별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


예를들어 초중반부 스토너가 파티에서 처음 본 여자에게 저돌적으로 구혼하는 장면 같은 경우 주인공의 평소 성격에 비해 너무 이질적이라 다소 뜬금없고 당황스럽게 다가오는 면이 있지만, 이것은 처음에 농과대학을 나와서 가업을 이어받길 원했던 아버지에게 자신은 문학으로 전향해 계속 공부하겠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거나, 1차대전 때 입대와 관련해서 주변 여론에 상관없이 거부 결정을 내리던 장면 등을 기억한다면 오히려 일관성이 있는 모습이라 볼 수가 있고, 후반부 로맥스 교수와 그 제자에게 보여주는 한결같은 태도 역시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아무튼 특별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무미건조한 대학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스토너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였던 문학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해서 교수가 된 이후, 마침내 강단에 서서 놀라울 정도로 기품있고 학자다운 언변으로 강의를 하는 장면은 어쩌면 이 책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은데, 마냥 물가에 내놓은 것 같았던 아이가 어느새 철들고 성숙한 청년으로 자란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은 중반부 스토너와 아내 이디스와의 결혼 생활을 묘사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것 같다. 거의 정신적 학대에 가까운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이혼숙려캠프'의 역대급 에피소드를 시청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단 한번도 억울함이나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말없이 모든 걸 본인이 감내하고 안고가는 모습은 호구와 보살의 중간 어디쯤에 해당이 될텐데, 어떻게 보면 스토너가 결혼 생활은 상대를 나에게 맞추도록 애쓰는 것 보다 그냥 나를 상대에 맞춰버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쉽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나름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다만 한가지 납득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은 이디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로맥스와 그의 제자까지도 한결같이 스토너에게 표출하고 있는 감정이 단순히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수준이 아니라 혐오와 악의까지도 넘어서 거의 증오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당신은 정말로 나를 증오하는군. 그렇지 않소?'라는 스토너의 질문에 이디스가 경멸의 코웃음을 치며 말을 돌리는 장면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하고는 있으나 거의 모든 장면이 주인공 스토너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묘사되어 사실상 1인칭 시점에 가깝다. 때문에 이디스와 로맥스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한 심리상태를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독자 입장에서는 스토너가 시종일관 이유도 없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빌런이라고 해도 이렇게 맥락도 없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나는 그 와중에 작가가 몇가지 단서를 힌트로 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스토너의 집들이 파티에 로맥스가 굳이 참석해서 이디스에게 키스를 한 점, 그리고 스토너의 불륜 사실을 이디스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인데, 나는 이런 단서들을 근거로 사실은 이디스와 로맥스가 훨씬 전부터 불륜 관계이지 않았을까 하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들이 스토너에게 보이는 적대적 태도에 대한 의문들도 자연스럽게 해소가 된다. 스토너의 불륜을 이디스가 알고 있었던 것도 학교에 떠도는 소문을 로맥스가 다 얘기해준 것이고, 어차피 똑같은 입장이니 이디스가 남편의 불륜에 대해 별다른 분노나 추궁없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설명이 된다.


물론 내 추측이 맞다고 한들 스토너의 불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작품 만큼 주인공의 불륜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자네 인생에 이런 낙이라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정말로 이런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그동안 응어리진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던 시간이었다.


따지고보면 결국 이 작품이 스토너의 삶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내용일 것이라는 예측은 그리 빗나가지 않았다. 상대방은 자신을 그다지 절친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별로 신경쓰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임종을 앞둔 순간까지도 무의식적으로 친구 이름을 언급하던 스토너의 마지막 모습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의 번역은 예상대로 작품의 분위기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맞는 대사의 톤 등을 잘 조율하여 가독성도 좋고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내가 인물들의 디테일한 심리와 연관되는 단어의 뉘앙스에 좀 민감한 편이라서 그런지 가끔씩 앞뒤 문맥의 흐름에 살짝 거슬리는 부분들이 보이는 점은 약간 아쉬웠다.   



'시기심이나 앙심없이 그를 인정했다' 같은 경우는 맥락상 원한을 품을 만한 상황이 전혀 없는데 '앙심'이란 단어를 쓰니 어색하다. 차라리 '불만' 정도가 나을 것 같고...



'그녀의 눈이 무기력하게 반짝였다'에서 '무기력하게'는 찰나의 미묘한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긴 하지만 뒷말과 호응이 잘 안된다. 나라면 '희미하게' 정도로 바꿨을 것 같다.



그리고 '처음으로 워커가 진실한 감정을 드러냈다. 분노가 그를 거의 위엄있게 만들어주었다' 역시 어색한 단어의 조합으로 문장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것도 만약 나라면 '처음으로 워커가 본색을 드러냈다. 그의 정중함 속에는 대부분 분노가 자리했다' 정도로 적당히 의역을 했을 것 같다. 


과연 행복한 삶, 불행한 삶, 또는 의미있는 삶이란 게 있기는 한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스토너와 닮은 부분이 꽤 많다는 점이 너무 슬프긴 한데, 이 작품을 통해 어차피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내 인생에 대해 미리 조그마한 위안을 받은 건 분명한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L6mp-y1QoTY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412161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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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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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작가 또는 일본문학의 신이라 부를 정도로 일본이 자랑하는 작가이고 인간실격은 그런 그의 대표작이다. 작년에 전도연 주연으로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는데 예상과 달리 이 작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냥 제목만 동일한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드라마 덕분에 갑자기 이 책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서점에서 '인간실격'이라는 책을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출판사의 다양한 번역 버전이 나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 김춘미씨 번역의 민음사판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는 것 같다.


약 130페이지 정도의 중편소설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작품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처럼 도입부의 첫 문장이 굉장히 유명하다고 한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きました。

自分には、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見当つかないのです。


라는 문장인데 이것을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라고 김춘미씨가 번역한 버전을 우리는 거의 정석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번역판들은 어떤가 궁금해서 미리보기 서비스로 이 부분만 비교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이 민음사판이 착 달라붙으면서 감기는 느낌이 강했다.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느낌이랄까... 번역가가 최대한 원문의 문장배열과 구성을 살린 직역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이질감없이 스며들 수 있는 적절한 단어의 선택에 촛점을 맞춘 듯 했다



일본 작가의 글에는 고질적인 일본 특유의 화법이 있다. 예를들면 '이중부정'같은 것인데 '~なければならない' 즉 '~하지 않으면 안된다'같은 표현법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처럼 쓸데없이 말꼬리를 길게 늘려서 표현하는 습성이 있다. 어떻게보면 일본의 국민성이 묻어있는 화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교묘하게 본인의 의지가 빠져버린 책임회피형 또는 유체이탈형 화법이다. 


그래서 번역가에 따라서는 이런 표현들이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그대로 직역하지않고 적당히 우리식으로 의역해서 현지화하는 경우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원래 일본문학이 가진 특유의 정서가 날아가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가능한 한 원문의 느낌을 해치지않기 위해 번역가가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의 필력을 있는 그대로 체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이 작품은 거의 대부분 주인공 화자의 내면을 다루고 있는데 그 섬세하고 복잡미묘한 부분들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준다.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일반적인 시각에서 공감할 수 있냐 없냐를 떠나서 그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심리 그 자체를 충분히 이해시키고 있기때문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주인공의 여정에 동참하며 따라가게 된다.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압축된 간결한 대사들과 때로는 짧게 때로는 아주 긴 호흡의 문장들을 다채롭게 구사하기도 하고 딱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보여주는데도 전혀 불친절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점 등, 이 작가가 정말 똑똑하고 글을 잘 쓴다 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느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생으로 39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나온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 修治)이고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는 필명이다. 본작 인간실격은 그가 죽은 해인 1948년작으로 거의 마지막 후기 작품에 해당한다. 부유한 집안에서의 출생과 내연녀와의 동반자살 시도라든지 정신병원 입원 등,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을 투영한 자전적인 소설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48년이면 일본이 2차대전의 패배로 인한 혼란과 침체를 겪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암울했던 시기에 젊은이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타인들에게 가면처럼 이용했던 '익살'이라는 돌파구는 보는 사람을 처연하게 만든다. 그 익살이라는 가면이 벗겨질 때마다 주인공은 끝없이 추락하게 된다.


SNS로 실시간 소통하며 거침없이 감정표현하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너무나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 작품의 첫 문장은 마치 통과의례처럼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화두가 아닐까 싶다. 다만 작가는 그러한 인간의 본질과 실존에 관한 문제에 너무 과하게 몰두했던 것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참 생각이 많아서 슬픈 짐승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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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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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쪽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장르인데, 최근에 개봉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원작소설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영화 덕분에 이 책도 뒤늦게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었고, 현재 국내에 6권짜리 전집 형식으로 전 시리즈가 모두 번역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대충 독자들의 평을 훑어보니 2~3권까지는 괜찮은데 그 이후는 지루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가장 핵심인 1권이 그 자체만으로 완결이 되는 형식이라 해서 그냥 1권만 구매했다. 하지만 이 1권의 분량만 해도 약 900페이지가 넘어가는 엄청난 대작이다.


제목 듄(Dune)의 사전적 의미는 '모래언덕'이다. 한자로 사구(沙丘)라고도 하는데, 데이빗 린치 감독의 1984년작 영화의 국내 제명이기도 하다. 어쨌든 작품의 주배경인 아라키스 행성이 거의 모래와 사막으로 이루어져있어 듄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지난번 요 네스뵈의 '킹덤' 리뷰 때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작품의 번역을 맡으신 분은 김승욱씨이다. 이미 명작의 반열에 올라있는 유명 작품들은 특히나 번역이 중요한 변수인데, 역시나 김승욱씨 특유의 깊이와 무게감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원작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작 자체가 워낙 관념적이고 사색적인 표현들이 많기 때문에 자칫하면 난해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수월하게 읽힐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는 것은 오로지 번역자의 공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SF소설이지만 기발한 장비나 환상적인 시스템 등 미래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아이템들이 생각보다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막복, 방어막, 그리고 오니솝터 정도인데, 그런 외적이고 물리적인 면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면에 치중한 소설이다. 즉, 제국을 형성하는 가문과 종족들의 권력 암투가 주된 내용인 것이다. 그냥 배경을 우주가 아닌 중세시대로 바꾸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이다. 예를 들자면 '왕좌의 게임'과 같은 중세 시대극의 우주 버전이라고나 할까...


작품의 가장 큰 핵심줄기가 주인공 폴의 정신적 각성이기 때문에, 작가는 그 과정을 설득력있게 묘사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중반부 폴과 제시카 두 모자가 도피 중에 사막 텐트 안에서 계속 대화와 사색만 하면서 내면적 성장을 이루어가는 장면이 그것인데, 진도는 안나가고 선문답 같은 뜬금없고 관념적인 대사들만 끝없이 이어져서 좀 지루한 느낌도 있지만 그만큼 작가가 무게를 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각성과 함께 권력을 쟁취하기위한 주변 인물들의 온갖 권모술수가 스파이 소설 못지않은 긴장감을 주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다. 작가가 세심하게 설계한 방대한 세계관과 함께 배신과 복수, 정보와 역정보, 속임수 속의 또다른 속임수 등 시종일관 흥미로운 요소가 펼쳐지며 계속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초반부 배신자로 나오는 유에 박사는 영화에서는 반전을 위해 늦게 밝혀지지만, 책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미리 독자에게 알려주면서 시작한다. 히치콕 때문에 유명해진 아주 고전적인 수법인데 작가가 이 방법을 쓰고있다. 즉, 독자는 배신자가 누군지 아는데 주인공은 모르고 있다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서스펜스인 것이다. 투피르에 관한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그가 제시카를 오해하고있다는 사실을 독자는 알지만, 그는 모르는 상황이 안타까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독자에게 미리 정보를 알려주면서 긴장감과 함께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만드는 서술법을 구사하고있다.


이 작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노래나 시 등 중간중간 너무나 관념적인 대사들이 다소 난해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말 쉽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무수히 떠도는 세계관 어쩌고하는 그딴 사전지식 따위 전혀 모르고 읽어도 하등의 상관이 없다. 난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 황제가 '조용히해라, 꼬마' 하는 부분이 왜 그렇게 웃기던지... 길고 길었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결말 부분도 너무나 훌륭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딱 한가지 불편했던 점은 중간중간에 자꾸 영화 장면이나 배우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집중에 방해가 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을 경우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영화는 이 책의 약 3분의2 지점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바로 폴이 제시카와 함께 사막에서 각성을 하고 프레멘과 합류하는 장면까지인데, 책을 다 읽고나니 영화가 정말 잘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원작의 무게감과 관념적인 부분까지 고스란히 담아내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감독이 얼마나 원작을 사랑하고 존중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결과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작을 거의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영화에서 바뀐 점이라면 생태학자 카인즈의 남녀 성별이 바뀌었고 하코넨의 조카가 원작에선 한 명이 더 있는데 영화에선 라반 한 명으로 몰아서 처리한 점 등이 있겠는데 나중에 2편에서 덩치 큰 라반과의 결투를 염두에 둔 설정이라 보여진다. 실제로 원작에선 라반보다 페이드 로타라는 또다른 조카의 비중이 훨씬 크다.


아뭏든 영화 듄 2편의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하니까 정말 기대가 된다. 과연 마지막에 황제가 '조용히해라, 꼬마' 하는 부분이 나올지도 궁금하고... 아... 진짜 그 부분 제대로만 나와주면 대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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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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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추천했다기에 별 생각없이 구매목록에 넣었던 책... 그의 지명도가 이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어차피 출판사에서 댓가와 함께 간단한 추천사 정도 요청한게 전부였겠지만, 광고효과로는 상당히 영리하고 괜찮은 전략을 쓴 것 같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문고본 판형은 차치하더라도 큼직한 활자와 광활한 여백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그림까지... 만약 서점에서 잠깐 펼쳐볼 수 있는 기회만 있었더라면 절대로 구매하지 않았을, 내가 가장 기피하는 형태의 책을 선택한 셈이 되어버렸다. 일반적인 제본이라면 백페이지도 채우지 못할 단편소설을 이런 식의 페이지 늘리기신공으로 장편소설처럼 둔갑시키는 출판사의 상술에는 정말 화가 난다.

 

내용은 나쁘지않다. 작가의 내공이 결코 범상한 수준이 아니므로, 색다른 글읽기의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자신이 화자와 같은 사이코패스로 빙의가 된 느낌...

 

하지만 두어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고도 남을 이 책은 분명 단편소설이며, 작가의 실험적 소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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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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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지만 몇가지 이해가 안되는 점들 때문에 원작소설을 구매했다. 그리고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도 더불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책은 내용을 이미 다 알고있는 관계로 선뜻 손이 안가서 차일피일하다 결국 최근작인 '로드'를 먼저 읽게 되었다. 

'노인을...'의 몇몇 책리뷰를 통해 그의 글에서는 대사를 표시하는 따옴표가 없어서 글읽기가 수월치 않더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있던 터라, 이 책에서도 따옴표가 없는 것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런데 책을 가만히 읽다보면 따옴표가 없다는 점이 오히려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게된다. 나레이션인지 독백인지 아님 생각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그의 짤막짤막한 대사들은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굉장히 시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앞뒤 설명없이 막연하게 펼쳐지는 배경설정과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디테일해서 활자를 읽고있음에도 마치 영상를 보고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영화 '노인을...'의 감독이자 각본을 직접 썼던 코엔형제는 원작이 너무나 완벽해서 정작 자신들은 별로 할 것이 없었노라고 소감을 말했다. 단지 책에 있는 대사와 장면들을 그대로 시나리오에 옮겨담기만 했을 뿐이라고 원작자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비로소 그들의 말이 결코 인사치레나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되었다. 책을 덮고나니 딱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 그대로였다.

솔직히 내용은 별 것이 없다. 등장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과 그들이 움직이는 공간에 대한 소름끼치도록 자세한 묘사만이 있을 뿐이다. 현재와 꿈, 그리고 생각과 대사들의 경계가 없이 뒤죽박죽 섞여있다보니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하다. 주인공 남자의 죽은 아내로 짐작되는 여자에 관한 부분에서는 뜬구름잡는 묘사가 많아 역시나 이해가 잘 안된다. 

비록 글쓴이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나에게 있어 이 책은 가슴으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굳이 거창한 메세지같은 걸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묵직하면서도 묘한 여운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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