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무소유'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주목하게 된 사실이 있었다. 법정 스님은 '어린 왕자'를 너무너무 사랑하셨던 분이라는 거... 살아생전 가까운 지인들에게 기꺼이 책을 사서 나눠주기도 하셨고, 심지어 이 책을 읽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당신 자신과는 결이 맞지않는 사람이라고까지 단호하게 말씀하셨을 정도로 사람의 성품을 판단하는 본인만의 척도이자 관문의 역할로 활용하셨던 것 같다.



나야 법정 스님이 지금 살아계신다 해도 각자 살아가는 세계가 달라서 굳이 그 분께 좋은 이미지로 비춰져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 입장임에도 그 구절을 읽었을 때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살짝 찔리는 느낌을 받긴 했다. 사실 내게 있어 어린 왕자는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된 책이라는 핑계가 있다고 해도 겨우 초반부 보아뱀 모자 그림에 관한 에피소드 부분만 기억에 남아있는 정도의 솔직히 그렇게 특별하고 강렬한 감동이 있었던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님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감흥을 간직하지 못한 것이 무슨 죄는 아니겠지만 이게 뭐라고... 나 자신에 대한 약간의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무소유' 덕분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려고 마음먹게 되었는데, 이번 기회에 마음에 드는 번역본을 딱 한 권만 골라서 책장에 나란히 함께 소장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국내 인터넷 서점에서 어린 왕자를 검색하면 거의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출판사의 다양한 번역본이 나온다. 외국소설들 중에 이만큼 많은 번역본이 존재하는 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이고 심지어는 경상도 사투리 버전의 '애린 왕자'라는 희한한 번역도 나와있는 상태다. 그래도 출판사의 지명도와 번역가의 명성에 의한 독자들의 선호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판매량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나는 인기도와 판매량에서 종합 10위권 이내에 올라있는 번역본들 중에서 미리보기 서비스의 도움도 받으면서 심사숙고한 끝에 총 4권을 최종 선택하여 구매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어린 왕자'하면 가장 먼저 거론이 되고 압도적인 선호도로 제일 높은 판매량을 자랑하는 판본은 황현산 번역의 열린책들 버전이라고 판단이 되고, 그 다음은 문학동네의 김화영 번역판이 많이 팔리는 것 같다. 열린책들과 문학동네 이 두 버전이 전통있는 빅2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별 고민없이 이 2권은 제일 먼저 골랐고... 오리지널 초판본의 표지디자인을 사용한 더스토리 버전은 최근 KBS 방송프로그램에 노출되면서 갑자기 판매량이 급증한 것 같은데 어쨌든 검증해볼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그 다음으로 포함을 시켰다.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문예출판사의 전성자 번역판이다. 이 책은 부동의 1위를 지키고있는 황현산 번역가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번역이라는 추천사에 이끌려서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 외에 새움출판사의 이정서 번역판도 구매여부를 살짝 고민했었는데 미리보기 서비스로 앞부분을 읽어보니까 바로 판단이 되어서 제외시켰다. 이정서씨는 카뮈의 '이방인' 논란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번역가인데 기존의 번역이 심각한 오역이니 뭐니 하면서 온갖 어그로를 끄는 것에 비해 그에 걸맞는 결과물은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사람 번역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리뷰에서 하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비록 판매량이 높다고 해도 이번 시간에는 포함시킬 가치가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몇년 전에 애들 보라고 별 생각없이 골라서 급하게 샀던 책이 있는데 더클래식에서 나온 한글 영문 합본판이다. 이미 가지고있던 책이라 이번 번역비교에 당연히 포함시키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번역가가 베스트트랜스라는 번역팀이라서 번역가 개인의 개성과 특징을 논할 수 없기에 역시 제외시켰다. 그래도 내친 김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읽기는 다 읽었고 함께 포함된 영문판도 이번 기회에 의외로 아주 요긴하게 활용을 했다.



일단 책의 제본 스타일은 문예출판사를 제외한 나머지 3권 모두 하드커버 양장본이며, 열린책들의 판형만 어린이용으로 좀 큼직하게 제작한 신국판 사이즈이고 나머지는 4X6판의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이다. 작품설명이나 후기, 작가연표를 제외한 본문 페이지는 각각 열린책들 120페이지, 문학동네 140페이지, 더스토리 140페이지, 문예출판사 123페이지로 거의 비슷한데 삽화의 크기와 배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원작자인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중간중간 적절한 타이밍에 삽입되어 내용을 구체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 다른건 몰라도 초반부 1장의 보아뱀 그림과 2장의 양 그림 만큼은 이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서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그림배치에 신경을 쓴 쪽에 좀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1장에서 '나의 제1호 그림은 이것이다' '제2호 그림은 이것이다' 하는 장면에서 각각의 그림으로 딱 끝내는 페이지 구성을 보여주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한데 이 부분에서 의외로 더스토리 버전만이 아주 정확하게 편집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머지 책들은 모두 페이지 구분없이 그림을 배치해서 극적 효과가 떨어진다.



2장에서도 마지막에 아무렇게나 그려서 툭 던져주었다는 문장을 끝으로 페이지가 바뀌면서 상자 그림이 딱 나와야 극적 효과가 가장 극대화된다. 역시 이 부분도 더스토리의 버전만 정확하게 살려주고 있고 나머지 책들은 신경을 전혀 쓰지않은 모습이다.



나는 원작자 역시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그림이 삽입되길 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시나해서 영문판도 살펴봤는데 페이지에 여백이 생기는 것에 상관없이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극적 효과를 살리는 구성으로 삽화를 배치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삽화의 배치 만큼은 뜻밖에도 더스토리 출판사의 완승이다.


본격적으로 번역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보면...


지난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비교편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나는 번역을 평가할 때 외국어 원문과 대조하면서 분석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차피 외국어 실력이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 할 능력도 없고... 그래서 오로지 한국어로 번역된 최종 결과물만 놓고 판단을 한다. 나는 번역가의 능력을 가늠하는데 있어서 외국어보다 한글 구사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 쪽이기 때문에 단어의 적절한 선택과 어휘의 기교, 문장의 문학적 감성 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흐름, 그리고 작가의 의도를 잘 구현하고 있는 지에 집중한다.


이번 어린 왕자 역시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과 정서에 포인트를 두고 읽었다. 이 작품은 총 27장의 단락으로 구성된 100여페이지 분량의 중편소설 수준인데 페이지당 활자의 수가 적고 삽입된 삽화들이 많아서 실제 내용은 훨씬 더 짧다. 그만큼 문장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독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기때문에 사소한 단어 선택 하나에도 번역가의 고심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판매량에서 부동의 1위인 열린책들의 황현산 번역가는 1945년생으로 2018년에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으며 고려대 불문과를 나오셨고 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셨던 분으로 나온다. 보들레르를 비롯한 프랑스 문학의 번역서들이 꽤 많다. 이 책은 2015년에 처음 나왔으니까 돌아가시기 3년전인 70세에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학동네의 김화영 번역가는 1941년생이니까 현재 80세로 가장 원로이시다. 서울대 불문과 출신이고 알베르 카뮈의 독보적인 권위자로 명성이 자자하신 분이다. 번역가의 경력과 지명도에서 거의 넘사벽 수준이라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이다. 2007년에 처음 발매되었으니까 역시 60대 중후반에 번역을 하신 걸로 보인다.



더스토리의 김미정 번역가는 이화여대 불문과 출신이란 점 이외에는 출판사의 소개란에도 별다른 정보가 없고 인터넷 검색을 해도 나오는게 없다. TV 노출을 통해 버프를 받는 이런 책들은 그냥 직접 읽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문예출판사의 전성자 번역가 역시 서울대 불문과 출신인 점을 제외하면 별다른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몇몇 기사를 통해 겨우 짐작할 수 있었던 점은 현재 이 분도 70대 이상의 원로 번역가란 점이었다.



이 작품은 분량이 짧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고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본적인 의미전달에 있어 번역에 따른 변별력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리 개떡같이 번역한다 해도 정말 심각한 오역이 아닌 이상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오직 마음으로 봐야한다는 여우의 입을 통해 아예 대놓고 얘기해주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메세지를 비롯하여 중간중간 마음을 울리는 굵직굵직한 포인트들은 절대로 놓칠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어떤 번역판을 읽어도 별로 큰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는 것인데 막상 따지고보면 또 그런 의견에 일견 수긍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따뜻한 느낌을 준다고 해도 그 따뜻함에는 엄연히 온도차이가 존재하듯이 4권의 똑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번역에 따른 각각의 느낌은 미묘하게 달랐다. 지구 외딴 곳에서 절대순수를 상징하는 미지의 아이와 조우하는 설정이기 때문에 작품 전반에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항상 은은하게 깔려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이유로 어린 왕자의 말투는 기본적으로 반말을 쓰는게 어울린다. 중간에 다른 별에 사는 왕을 만나서 얘기할 때 등 몇몇 장면은 어쩔 수 없지만 사람들과 전혀 어울린 적이 없는 순진무구함은 반말로 표현해야 느낌이 산다. 그런 면에서 앞서 언급했던 더클래식의 베스트트랜스 번역판은 어린 왕자가 시종일관 높임말을 쓰고있기 때문에 어차피 탈락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4장에 보면 화자인 내가 이 이야기를 동화처럼 쓰지않은 것은 내 글이 가볍게 읽히는게 싫어서였다고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스토리 진행에 사용되는 문체도 경어체보다 평어체가 어울린다. 잠깐 고민했던 새움출판사의 이정서 번역을 바로 탈락시켰던 이유도 이것이다. 이정서씨는 어른이 아이에게 동화책 읽어주듯 경어체로 번역하고 있는데 원작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이번 번역비교에 선택된 4종류의 책들은 모두 평어체를 쓰면서 어린 왕자의 말투도 반말을 기본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합격이다.



이 작품은 어린 왕자가 양을 그려달라고 하는 첫 대사와 함께 화자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설렘 가득한 여정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먼저 비교해보겠다.



황현산은 뭔가 모르게 좀 무뚝뚝한 느낌이 들고 너무 간결해서 삭막한 느낌도 살짝 드는 반면, 김화영의 번역은 가장 따뜻한 느낌이 강한 번역이고 기대감과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더스토리의 김미정은 역시 너무 불쑥 들어오는 듯한 느낌에 표현이 딱딱하고, 전성자는 유일하게 양 한마리'만'이 아니고 양 한마리'를'이라고 했는데 어감상 '를'보다는 '만'이 더 낫고 역시나 좀 삭막한 느낌이다. 사실 여기에서 벌써 김화영의 번역에 개인적으로 호감도가 많이 올라가버렸다.


4장에서 터키의 천문학자가 어린 왕자가 사는 별을 발견했는데 그가 입은 옷 때문에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도 문학동네의 김화영만 유일하게 그냥 옷이 아니라 '민속의상'이라고 표기해서 바로 이해되도록 번역하고 있다. 이런 작은 디테일들이 쌓여서 번역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5장 초반부에는 어린 왕자가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느냐고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작은 나무를 황현산과 김미정은 '작은 떨기나무'라고 번역했고 김화영과 전성자는 그냥 '작은 나무'라고만 표현했다. 떨기나무라는 명칭이 생소해서 사전을 찾아보기까지 했는데 특정 나무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역시나 작은 관목류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이 부분은 굳이 떨기나무라는 고유명사로 표현해서 불필요하게 주목을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에는 장미꽃과 바오바브나무에 대한 이야기만 있으면 된다. 참고로 바오바브와 바오밥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마치 자장면과 짜장면 정도의 차이라서...



어쨌든 별 의미없는 단어를 떨기나무라고 특정지으니까 괜한 혼란을 불러온다. 떨기나무는 성경에서 모세와 하나님이 만나는 장면에 등장해서 제법 알려졌을 뿐 일반인들은 대부분 모르고 실생활에서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명칭이다. 영문판에서도 little bushes라고 되어있고 bush는 그냥 덤불이나 관목을 의미한다. 황현산씨가 그냥 잡목을 왜 굳이 떨기나무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이 단어 때문에 어린 왕자를 괜히 성경과 연관지어서 확대해석하거나 상징 운운하며 엉터리 의미부여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떨기나무가 결코 좋은 번역이 아님에도 김미정씨가 똑같이 번역한 것이 재미있는데, 내 생각에는 황현산의 번역이 1등이니까 별 생각없이 그냥 따라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bush를 무난한 선택지인 덤불, 관목, 잡목 다 놔두고 굳이 떨기나무로 번역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화자가 독자를 향해 경험담을 얘기해주는 형식인데 유일하게 독자가 아닌 어린 왕자에게 직접 편지하듯이 말하는 단락이 있다. 바로 6장인데 화자가 회상을 하면서 혼잣말을 하는 느낌이 강하다.


어린 왕자가 지금 지구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착각해서 말한 부분에 대해서 황현산은 '그렇다' 하면서 문장을 이어간다. 어린 왕자가 아닌 화자 스스로를 향한 독백에 가깝고 역시나 톤이 좀 딱딱하다.



김화영은 '그럴 수 있겠지'라고 또 한번 가장 매끄러운 흐름을 보여준다. 어린 왕자를 향한 독백으로 6장 전체의 서술 형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김미정은 '그 말은 사실이었다'로 여전히 독자에게 말하는 화법 그대로여서 6장 전체가 화자가 얘기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걸 아예 인지하지 못한 느낌이다. 김미정의 번역은 여기서 점수를 굉장히 많이 깍아먹었다.



전성자도 '실제로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로 번역했는데 역시나 독자를 향한 말이고 그 전까지 어린 왕자를 향해 잘 말해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선회하니 일관성이 무너지면서 다소 매끄럽지 못한 연결을 보인다.



7장에서는 반복되는 질문에 대답이 귀찮다는 반응에 어린 왕자가 대응하는 장면인데 중요한 일을 하느라 바쁘다고 하자 그 말을 한번 따라한다.



황현산은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서 느낌표를 넣었는데 여기서는 분위기상 되묻는 식으로 물음표를 넣는게 훨씬 깔끔하고 자연스럽다. 김미정과 전성자의 번역은 모두 물음표로 처리했다. 하지만 김화영은 갑자기 '심각한 일이라고!' 하면서 이상한 번역을 했다. 되묻는 물음표도 아닌 느낌표를 쓰면서 상대방 대사와 전혀 호응이 안되는 엉뚱한 단어를 사용한 대답인데 아마도 착각이나 실수를 심각하게 한 것 같다.


10장에서 13장에 걸쳐서 어린 왕자는 어른들과 헤어지면서 한 마다씩 던진다. 어른들은 이상하다는 식의 푸념인데 반복되면서 표현의 강도도 점점 강해지고 미묘하게 조금씩 강해지는 표현에서 잔잔한 유머가 느껴진다. 



황현산은 뭔가 일관성이나 점진적인 느낌이 좀 떨어지는데 반해, 김화영은 비슷한 느낌으로 점차 강도를 올려준다. 이 부분의 포인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센스있게 살려내려는 시도를 했다고 느꼈다. 김미정은 역시나 점진적 반복 따위에는 별로 신경 안 쓴 모습이고 전성자는 약간 애매하면서도 가장 어색한 단어의 조합으로 처리하고 있다.


13장 사업가 에피소드에서는 숫자들이 계속 나오는데 황현산과 김미정 번역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했고 김화영과 전성자는 그냥 한글로 처리했다.



여기에서는 사업가가 그저 숫자에 집착한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숫자 자체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아라비아 숫자보다는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한글로 표현하는게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장미꽃은 어린 왕자와 8장에서 처음 만나고 9장에서는 이별을 하게된다.


황현산, 김화영, 전성자 이 3명의 번역에서는 모두 8장에서 서로 존댓말을 하지만 9장에서는 갑자기 서로 말을 놓는다. 8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린 왕자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인데, 이것을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디테일한 설정으로 처리한 점이 돋보인다. 그런데 더스토리의 김미정만 8장과 9장 모두 변화없이 서로에게 반말을 한다.



확실히 이 부분은 번역가의 연륜에 의한 관록의 차이라 느껴진다. 세 분 모두 6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 번역을 하신 거라 너무 올드하면 어쩌나 하고 처음에는 약간 우려를 했던 것도 사실인데 이 부분을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이렇게 섬세하고 노련하게 처리하신 것을 보고 과연 '프로는 프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정말 감탄을 많이 했다.


하나하나 따지자면 너무 길어지니 이쯤에서 전체적인 총평을 해보자면...


먼저 열린책들의 황현산 번역은 의외로 문장이 좀 딱딱하다는 느낌과 함께 단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확실히 약간 올드하면서도 튀는 느낌이 있다. 떨기나무도 그렇지만 해가 지는 걸 좋아하는 어린 왕자를 묘사함에 있어서도 이 분은 유일하게 '해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소설에서 해넘이라는 순우리말은 입에 잘 붙지도 않고 어색하다. 그리고 다른 번역가들은 모두 꽃을 위한 울타리나 보호막 정도로 처리한 것을 이 분은 또 굳이 '갑옷'이라는 생뚱맞고 튀는 단어로 선택했다. 여우와 길들인다는 것에 관해 얘기할 때에도 다른 번역가들은 모두 '의식'이라고 했지만 이 분만 유독 '의례'라고 한다. 바오바브나무에 관련한 에피소드에서도 '도덕 선생 같은 말투'라고 한 걸 보면 이 분의 번역은 확실히 나이가 어린 연령층를 겨냥한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완전히 어린이용 번역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해서 좀 혼란스럽다. 어쨌든 판매량과 인기도 1등이라는 점의 기대감에 비해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문학동네의 김화영 번역가는 확실히 이름값을 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의 선택이나 대사를 포함한 문장을 구성하는 테크닉에서 깊은 내공이 묻어나오고 원작자의 의도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중간중간 아쉽거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부분도 더러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가장 밸런스가 좋으면서 일관된 톤을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 작품의 분위기를 시종일관 따뜻한 느낌으로 감싸고 있는 점이 좋았다.


더스토리의 김미정 번역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무난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음식점으로 비유하자면 본인만의 노하우를 가진 수십년 전통의 맛집이 아니라 그때 그때 유행에 따라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 같은 느낌...


마지막으로 문예출판사의 전성자 번역은 역시 연륜에서 오는 내공이 느껴진다. 이번 리뷰를 위해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더스토리 버전이고 그 다음 두번째 읽은 책이 이 분 번역인데 딱 초반부 읽자마자 수준이 다르다는 걸 바로 느꼈다. 너무 미묘한 느낌적인 부분이라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고 애매하기는 한데 오랜 경력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어떤 깊이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다만 중반부 이후에는 왠지 모르게 몰입감이 떨어져서 점수를 많이 잃었다. 



이번 번역 비교를 통해 '어린 왕자'라는 너무나 훌륭한 책을 다시 알게되었고 문장 하나하나 정말 제대로 음미하고 즐기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특히 노장 번역가들의 관록이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던 점도 의미가 있었고... 각각의 번역판들은 장점과 단점들이 모두 다 골고루 들어있기 때문에 특정한 책이 월등하게 훌륭하다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이번에 읽으면서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았던 문학동네의 김화영 번역판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최종적으로 이 한 권만 소장하려고 한다. 양장본에 사이즈도 딱 맞아서 법정 스님 옆에 나란히 진열하니 보기도 좋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Bp9teHgFAck&t=151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29036919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 워낙 유명한 책이라 작품 내용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두 판본의 번역을 비교해보려고 한다.


원제목은 'ノルウェイの森', 글자 그대로 '노르웨이의 숲'이고 1987년작이다. 우리나라에는 1989년에 '상실의 시대'라는 번안제목으로 나오면서 대박이 났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문학사상사판으로 이 작품을 처음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당시 대학생때 이 책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번역가는 유유정씨라는 분이고 여자 이름같지만 사실은 남자분이라고 하며 1922년생이면 아마도 지금은 작고하셨을 것 같은데 검색을 해봐도 이 분에 대해서 더이상 자세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이었고 어느덧 고전으로 자리잡은 만큼 2013년에 스타급 번역가인 양억관씨를 내세운 민음사판이 나오면서 비로소 지금의 양강구도가 이루어졌다. 양억관씨는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너무나 친숙한 이름이고 역시 유명 번역가인 김난주씨와 부부지간이기도 하다.



현재 이 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틀림없이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와 민음사의 '노르웨이의 숲', 이 두 가지 번역본 가운데 하나의 선택을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전부터 품어왔던 개인적인 궁금증도 해소할 목적으로 겸사겸사해서 시작한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별 고민할 가치도 없는 싱거운 결과가 나와버렸다.


이번 번역 비교를 위해 거의 30년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은 다음, 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새로 구매한 '노르웨이의 숲'을 한번 더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먼저 두 출판사의 인쇄 스타일부터 체크하고 넘어가자. 번역 외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독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라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마도 본인이 중간중간 특별히 포인트를 주고싶은 단어나 문장은 다른 활자와 구분이 되도록 원서에서도 간단하게 어떤 표시를 해두었던 것 같다. '상실의 시대'에서는 이것을 글자 위에 점을 찍어서 구분이 되도록 했고, '노르웨이의 숲'은 명조체에서 고딕체로 글자체를 바꾸는 것으로 처리했다. 당연히 점을 찍은게 눈에 바로 띄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에 비해 글자체 변경은 정말 눈여겨보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무심코 그냥 지나칠 것 같다.



또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쓴 편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부분이 자주 등장하는데 '상실의 시대'에서는 글자체와 굵기를 모두 다르게 해서 확실히 구분이 된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은 글자 크기만 살짝 줄인 정도라서 역시나 뚜렷하게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주석 부분도 확실히 '상실의 시대' 쪽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필요한 부분을 잘 찾아서 과하거나 부족함없이 적절하게 들어가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쯤되면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감이 왔을 지도 모르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본문 번역에 대한 비교에 들어가면...



각각 굵은 글씨와 글자체의 변경으로 특별히 강조를 하고있을 정도로 화자인 주인공의 심정을 표현한 초반부의 중요한 문장이다. 한눈에 봐도 '삶의 반대편'이라고 풀어서 해석한 유유정씨의 번역이 월등히 매끄러운 가독성과 함께 그 의미심장한 느낌까지 즉각적으로 다가온다. 양억관씨가 사용한 '대극'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원문에 쓰여진 '対極'라는 일본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일본에서는 '반대편에 위치하다'라는 뜻의 이 단어를 흔하게 쓰는 지는 몰라도 우리는 살면서 거의 쓰지않는 단어라 어색하고 입에 잘 붙지를 않는다.


아무리 직역이 원본에 가장 충실한 번역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해도, 원작자가 특별히 강조까지 한 문장인데 이렇게 딱딱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작가가 원래 의도했던 느낌에서 오히려 벗어난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물론 일부러 좀 난해한 표현방식을 구사한 책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 만큼은 매우 쉽고 대중적인 화법을 사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양억관씨도 직역보다는 의역을 많이 사용하는 스타일로 알고있는데 굳이 이렇게 딱딱하고 어색한 문장의 직역을 사용한 것은 기존의 번역과 차별성을 주기 위한 의도가 강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작가만의 섬세한 감성이 느껴져서 참 인상적으로 와닿았던 문장인데 열여덟 살 다음에는 열아홉 살, 다음에는 또 열여덟 살로 돌아가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아름답게 전달하는 유유정 번역과는 달리, 양억관 번역은 '이해가 간다'는 전혀 맥락에 맞지않는 생뚱맞은 표현으로 독자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를 허무하게 그냥 날려버리고 있다. 이것은 작품이 가진 정서를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할 문제다.



초반부 주인공이 기거하던 대학교 기숙사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다. 역시 유유정 번역의 '상실의 시대'가 노래가사와 맞물려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훨씬 매끄럽게 잘 다듬어서 번역하고 있어서 가독성이 좋다.


1인칭 화자이면서 와타나베라는 이름을 가진 이 책의 주인공은 단 몇마디로는 정의하기 힘든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작가 스스로가 자전적인 소설이라 했으니 하루키 본인의 성격과 거의 비슷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내성적이면서 조용하고 냉소적이지만 때론 따뜻함과 유머가 있고, 상대방을 충분히 배려하면서도 눈치 보지않고 할 말은 똑바로 하는 단호함도 있고... 책을 읽다보면 이런 주인공의 다양한 측면에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것은 행동보다는 주로 대사와 말투에서 대부분 표현이 되고있다.



이 대사는 주인공이 자신의 룸메이트에 대해 다른 친구들에게 하는 농담이다. 유유정에 비해 양억관의 번역이 좀더 거칠고 천박한 표현을 쓰고있다. 분명히 같은 내용의 문장임에도 인물의 성격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주인공이 좀 싸가지없는 말투를 쓴다는 느낌이다. 이렇게되면 주인공에 대한 호감도나 감정이입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오코에 대한 마음을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내가 얼마나 너를 '그리워하는지' 알게되었다는 유유정의 번역에 비해 내가 얼마나 너를 '갈구하는지' 알게되었다는 양억관의 번역은 주인공을 다소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게 특정 단어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오는게 번역의 위력이다.



나가사와라는 학교 선배와 나누는 대화인데 각각 '이상한 사람'과 '색다른 사람', 그리고 '제대로 된 인간'과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단어의 차이가 있다. 대화의 전후 맥락을 고려하면 '상실의 시대' 쪽의 티키타카가 더 자연스럽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쓴소리한 것을 들킨 장면인데 유유정의 '당연하잖아요'는 약간 미안한 마음을 섞은 능청스러움이 들어간 표현이라면 양억관의 '당연하죠'는 거리낄 것 없는 단호함과 냉정함이 묻어나온다. 주인공의 성격과 그전까지 쌓아온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역시 유유정의 번역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는 매끄러운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이 부분은 '내겐 아까운 여자'보다 '나한테 과분한 여자'가 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인 '지당하신 말씀이다'가 완전히 망쳐버렸다. 작품의 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촐싹대는 느낌인데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정말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하는 미도리는 주인공 와타나베의 특이한 말투나 유머감각에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표시한다. 말투가 험프리 보가트를 닮았다는 둥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같다는 둥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가며 얘기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그 특이하다는 말투의 느낌이 어느 정도 와닿아야 한다.



두 번역판을 가만히 비교해보면 굉장히 미묘한 차이이긴 하지만 '상실의 시대'는 주인공 말투의 특이한 느낌을 살리기위해 분명히 신경을 쓰고있으나, '노르웨이의 숲'은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일반적인 말투와 거의 차이가 없는 느낌으로 평범하게 처리하고 있다. 심지어 미도리가 주인공의 말투를 따라하는 대사라는 점도 유유정은 '되뇌었다'라고 확실하게 알려주고있는 반면, 양억관은 그냥 '말했다'로 처리해버리니 이 장면의 잔재미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여기도 역시 미도리가 주인공 말투를 따라하며 호감을 표시하는 장면이다. 미묘하지만 유유정의 번역이 말투의 특이함과 함께 두 사람의 귀여운 티키타카를 훨씬 따뜻하게 살려내고 있다.



이런 부분도 번역에 따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어서 두 사람의 성격이나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하루키가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묘사를 정말 섬세하게 그리고있기 때문에 번역이 이런 부분을 잘 살려주지 않으면 숨어있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기 힘들다.



나오코의 편지에 쓰여진 표현도 양억관이 선택한 '뒤틀림'이라는 단어보다는 유유정의 '일그러짐'이나 '비뚤어짐'이라는 단어가 더 부드럽게 다가온다.



나가사와 선배에 대해 나오코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특이한 사람인 모양이야' '이상한 사람이지' '그렇지만 좋아하는 거지?'라는 마치 상대방의 말에 호응을 안해주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듯한 다소 맥이 끊기는 느낌의 양억관 번역에 비해 '좀 이상한 사람 같네' '그래, 좀 이상한 남자야' '그래도 좋아?'라는 유유정이 번역한 대화의 흐름이 훨씬 자연스럽고 매끄럽다.



그리고 여기는 나오코와 연락이 끊겨 마음이 심란한 시기를 묘사한 부분인데 '상실의 시대'는 각각의 행동에 쉼표를 넣어서 당시 주인공의 행동 패턴이 반복적으로 줄곧 그런 식이었음을 보여주고있는데 반해 '노르웨이의 숲'은 한 문장으로 이어져있어 마치 일회성 행동처럼 느껴진다. 쉼표가 있고없음으로 인해서 그 의미가 상당히 달라지는 느낌이다. 띄어쓰기가 없는 일본어문장의 특성상 아마도 원문에는 쉼표가 없었을 거다. 바로 이런 부분이 번역가의 재량이자 센스가 발휘된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 나는 당연히 쉼표가 들어간 것이 원작의 의도와 일치하는 해석이라 생각한다.



또 선배에게 인생의 행동규범이 뭐냐고 물었을 때 신사여야 한다고 대답하자 '상실의 시대'는 '신사 숙녀 할 때의 그 신사'냐고 정확하게 이해를 돕는데 반해 '노르웨이의 숲'은 막연하게 '그 신사'라고만 하니 바로 알아듣기가 힘들다. 물론 이것도 '신사 숙녀' 부분은 원문에 없었는데 유유정 번역가가 임의로 추가한 문장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라면 양억관씨가 원래 있었던 단어를 삭제했다는 말인데 그럴 리는 없겠지... 어쨌든 결과적으로 신사 숙녀라는 말이 들어가는게 훨씬 가독성이 높다.



여기에도 양억관은 그냥 한명이라고 갑작스럽게 앞뒤 맥락없이 말을 던지지만, 유유정은 한사람 밖에 자본 적이 없다는 식으로 바로 이해가 되도록 표현하고 있다. 이것 역시 매끄러운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보강한 문장이라 짐작한다.


필요에 따라 원문에 없는 단어나 문장, 또는 쉼표나 부호를 만들어 넣는 것도 분명히 의역에 해당하고 독자의 입장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오로지 직역만이 원본에 충실한 번역이라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이렇게 직접 비교해보니 의역이 단순히 가독성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직역보다 훨씬 더 작가가 원래 의도했던 느낌에 가까운 결과물이 될 수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끝으로 이건 내가 오역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앞선 대화에서 죽은지 30년이 지난 작가만 인정하겠다는 언급이 있었기 때문에 2년 정도의 오차가 되려면 28년이 맞다. 양억관 번역의 '스물두 해'는 명백한 오역이다.



이 부분도 누구 올 사람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정황상 '고개를 저었다'가 맞는 번역일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무도 안 와'라는 부정의 대답은 이상하지 않나... 양억관씨는 '앉아도 될까?'라는 앞의 질문 때문에 끄덕였다고 한 것 같은데, 나는 이런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오역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번역판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답은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분량관계상 특정 부분만 발췌해서 비교했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봤을 때 정말 비교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양억관의 번역이 낫다고 느껴진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고, 게다가 유유정이 번역한 '상실의 시대'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아주 미묘하고 잔잔한 재미와 감동 포인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좀 충격적이었고 그만큼 답이 너무 쉽게 나와버려서 약간 허무하기도 했다.


번역에 대해서만 얘기하려고 했는데 작품에 대해서 조금만 첨언하자면... 이 작품은 읽다보면 인상깊은 문장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인생은 비스킷 통이어서 좋아하는 것만 먼저 먹어버리면 나중에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된다는 대사도 기억에 남고...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초콜릿 통에 관한 대사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참고로 이 책이 훨씬 먼저 나왔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 구분과 판단은 과연 누가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에 스스로 고민해보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봄날의 곰만큼 좋다'고 표현하는 와타나베의 유머감각도 미도리와 같은 마음으로 미소짓게 만든다.



이 작가는 또 성적인 표현에 주저함이 없다. 섹스가 젊은 날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점은 틀림없지만 의외로 작품에서 이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 편이다. 책을 읽다보면 공교롭게도 주인공의 전공과목과 관련해서 '데우스엑스마키나'라는 말도 나오는데 농담을 살짝 섞어서 표현하자면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마치 섹스를 데우스엑스마키나로 사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유일하게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기도 한데, 역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리라...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하여 하루키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과 작가들... 그리고 팝, 재즈, 클래식을 망라하는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엿볼 수 있는데 책에 나오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과 헨리 맨시니의 '디어 하트'를 한번 들어보려고 유튜브에서 검색해보다가 이 곡의 댓글들에서 '나오코가 좋아하는 곡'이라든지 무라카미 하루키와 관련해서 언급하는 서양인들이 너무나 많아서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훨씬 더 세계적인 작가였구나...하고...


어쨌거나 번역을 비교해본다는 핑계로 거의 30년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어봤는데 참 좋았다. 나이를 많이 먹어서인지 더 좋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정말 글 잘 쓴다. 명불허전이다. 잃어버린 젊은 시절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여러가지 감정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좋은 작품은 당연히 좋은 번역으로 읽어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민음사에서 명성있는 번역가와 함께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듯 해서 당연히 최신 번역이 더 낫겠지 하는 마음과 함께 개인적으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서 충격적이었고 어떻게보면 성의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여서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양억관이라는 번역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덕분에 기존의 유유정 번역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던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취향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은 사유가 한가득 들어있고 탁월한 필력으로 인물들의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아주 섬세한 터치로 그리고 있어서 대사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읽는 재미가 정말 남다른데, 결론은 그런 잔잔한 감동과 디테일한 재미를 제대로 맛보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유유정 번역의 '상실의 시대'를 선택하면 되겠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8iAO6Nxh-2Q&t=1103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28267451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TV를 통해 영화를 즐겨보았다.

 

어린 나이에도 외국의 수많은 배우와 감독의 이름을 줄줄 읊고다닐 정도였으니,
안정효의 소설에 나오는 헐리우드키드 만큼은 아니더라도 얼추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광적인 사람도 있음을 일깨워주었던 책

 

'존 웨인'의 서부극를 위시하여 당시 자주 볼 수 있었던
리처드 위드마크, 딘 마틴, 버트 랭카스터, 로버트 밋첨,
수전 헤이워드, 잉그리드 버그만, 리즈 테일러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배우들이 나왔던 수많은 영화들을
그 어린 나이에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구분했다.

 

가끔 주위 어른들이 영화얘기할 때면,
끼어들어 아는체 하고싶어 안달났던 기억들...

 

주로 TV를 통해 더빙된 영화를 보다보니,
그 당시에는 배우들이 정말로 한국말을 하는 줄 알았던 시절도 있었다. 

 

언제나 넉넉한 웃음을 잃지않았던 서부극의 대명사 존 웨인

 

유독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 기억이 많았던 어린시절...

'태권V'를 비롯한 만화영화들, 존 보이트의 '챔프',
'슈퍼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

 

국민학교 들어갈 때 쯤이었나,
어머니 손붙잡고 극장에 가서 '죠스'를 보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딴딴~딴딴~'하던 저 유명한 존 윌리엄스의 주제음악이
한동안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던 추억들...

 

성룡의 '사형도수'를 보고난 뒤에는
코브라 권법을 흉내내며 동네 아이들과 장난치던 추억들...

 

그가 지금 이렇게 세계적인 스타가 될 줄은 그당시엔 상상도 못했다

 

당시 TBC(지금의 KBS2)의 '토요명화', MBC의 '주말의명화',
그리고 KBS의 '명화극장'은
나의 주말 밤을 설레게했던 장본인들이었다.

 

명화극장이야 일요일이니 문제가 없었지만,
토요일은 두 방송사의 시간대가 겹쳐 곤란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토요일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신문의 편성표에서
그날 방영될 두 영화의 제목과 배우, 감독을 체크하고
그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TBC 쪽이 성우들도 좋았고 훨씬 재미있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간혹 두군데 모두 놓치기 싫은 영화를 방영할 때에는,
채널을 돌려가며 두 영화를 몇분씩 번갈아가면서 보다가
결국 죽도밥도 안되었던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일요일을 책임지던 KBS의 명화극장...
여기에는 항상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뿔테안경과 터틀넥의
영화평론가 정영일씨의 오프닝이 있었다.

 

간단한 소개와 함께

 

'놓치면 후회합니다...'

 

좋은 영화를 방영할 때면 어김없이 날려주시던 저 멘트...
그를 보며 영화평론가를 꿈꾸기도 했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고서 남몰래 가슴아파했던 기억도
이젠 까마득한 추억의 파편이 되어버렸다.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라 불렸던 정영일

 

그리고...

 

그렇게 좋아했던 배우들 역시 지금은 거의 다 고인이 되었다.
TV에서 더빙영화가 사라진 지도 이미 오래전이다.

 

누군가와 흘러간 추억의 영화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소중한 기억들을 되살려보고 싶어도,
그러기엔 이미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가끔씩은...

 

그때 그 시절이 정말 그리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국출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작가 

'켄 폴레트(Ken Follet)'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이며,

최고의 작품 '바늘구멍'...



그의 작품을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건 '물위의 하룻밤(Night Over Water)'이었다.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이 광고문구만 보고 구입했던 책인데,

상당이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말 밤을 꼬박 새며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사람의 글쓰는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어, 

일부러 찾게된 다음 책은 '사나운 새벽(The Pillars of the Earth)'이었다.

(현재 '대지의 기둥'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어있다.)

번안된 제목만 봐선 레지스탕스가 등장하는 첩보물같은 느낌인데, 

예상과 달리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장대한 서사극이었다.

소재에 관한 그의 방대한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며, 

도합 4권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이 증명하듯,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그의 최전성기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발표한 역작이 아닐까 싶다.

(그의 최근작 'World Without End'는 바로 사나운 새벽의 속편이라고 한다.)

이 책은 직접 구입하지는 않았고,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위치한 '김성종 추리문학관'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여담이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추리소설가 김성종씨가 

사재를 털어 건립한 추리문학관이 개관했을 때,

가장 관심갖고 기뻐한 사람 중에 하나였음도 밝히고 싶다.

부산사람 99%가 모르고, 달맞이고개에 사는 사람 역시 90%도 모르는 추리문학관...

 

초창기에 정말 출근도장 찍다시피 했더랬다.

시간많은 대학시절이었으니 가능했겠지만, 

커피한잔 주문하고 희귀한 추리소설들 느긋하게 찾아읽는 재미란 

매니아 아니면 절대 맛볼 수 없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손님이라곤 거의 나혼자뿐인 경우가 많아서 괜히 눈치를 보며 읽었던 기억도 난다.

 

언젠가 MBC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히트칠 때였다.

어느날 오후 독서삼매경에 빠져있을 즈음,

갑자기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채시라씨와 박상원씨가 김성종 작가에게 인사차 오기도 했었다.

 

그 추억많던 추리문학관도 자금난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중고등학생들의 독서실로 변질되어버리는 바람에,

서서히 발길을 끊고 말았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일이 되었다...

지금은 어떻게 운영하는지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위치한 추리문학관


이 작품 바늘구멍은 1978년작인데,

아마도 1971년 '프레데릭 포사이드(Frederick Forsyth)'가 발표한

'자칼의 날(The Day of the Jackal)'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나 싶다.

자칼의 날은 첩보스릴러소설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전설적인 작품으로,

이후 수많은 아류작을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잭 히긴스'의 75년작 '독수리는 내리다(The Eagle has Landed)',

그리고 '토머스 해리스'의 같은해 데뷔작 '블랙 선데이(Black Sunday)' 역시

그 그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첩보스릴러의 대부 프레데릭 포사이드


비록 독창적인 플롯은 아닐지라도, 

바늘구멍은 켄 폴레트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한 매력넘치는 소설이다.

작품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성격파배우 '도널드 서덜랜드(Donald Sutherland)'가 주연을 맡아 

흥행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고있다.


1981년작 바늘구멍(Eye of the Needle)


캐나다 출신의 명배우 도날드 서덜랜드는 개성넘치는 외모와 연기로 유명하며,

80세를 바라보는 아직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다.

외모를 보면 바로 짐작하겠지만,

미국 FOX사의 인기드라마 24시의 주인공 

잭 바우어 '키퍼 서덜랜드(Kiefer Sutherland)'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도널드 서덜랜드와 키퍼 서덜랜드


바늘구멍 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도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 기억나는게 있다면 오래전 TV 미니시리즈로 방영했던 

'레베카의 열쇠(The Key to Rebecca)'이다.

당시 국내 제목은 '카이로 울프'였던가 해서 좀 달랐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데이빗 소울(David Soul)'이 주연을 맡아서 더욱 인상깊었던 영화다.

암살무기로 쓰였던 끝이 2개로 갈라진 특이한 형태의 나이프도 기억에 남는다.


데이빗 소울은 그 시절 국내최고의 인기드라마였던 

'스타스키와 허치(Starsky and Hutch)'에서 허치 역을 맡았던 배우이다.

그들의 목소리더빙을 맡았던 성우 배한성, 양지운의 환상콤비는 

국내 더빙역사상 전무후무한 레전드급이라 할 수 있으며,

아직까지도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데이빗 소울


냉전시대 이후에 출생한 젊은세대들에게는 

케케묵은 2차대전 배경의 그렇고그런 스파이물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한 명작은 언제까지나 명작으로 남는다.

 

솔직히 요즘 해외 유명 추리스릴러물이라고 출간되는 소설들의 대부분은

10년도 더 지난 왕년의 잊혀진 작품들 슬며시 새로 번역해서 재출간 한다는거 

눈여겨보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1950~60년대에 발표되었던 일본추리소설들이 

지금 새삼스럽게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요즘 작가들이 소재의 고갈과 아이디어의 빈곤에 정체되어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이러다가 몇년 후엔 '쥬라기 공원'도 초특급 테크노 바이오 스릴러 어쩌고 하면서, 

최신 작품인양 재등장 할지도 모르겠다.


켄 폴레트


켄 폴레트는 영국 웨일즈 출신으로 1949년생이다.

아직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기에 충분한 나이니 만큼,

앞으로도 좋은 작품 계속 발표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