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케하라 마모루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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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케하라 상의 혼네가 무척 궁금해 지는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인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치레)가 같음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케하라 상은 비판하면서 은근히 한국에 대한 애정있음을 내비치고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것을 강조하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한국의 미래가 밝다면서 그 이유로 한국인은 머리가 좋고 인정이 많으며 빨리빨리 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칭찬으로 끝내는데 자꾸 이것 조차 의구심이 든다. 그 얼마전에 미즈노 교수란 양반의 일도 있고 하니 아무래도 좀 그렇다. 그만큼 비판의 강도가 강하다.

온갖 무질서와 무법천지 속에 살아가는 후한무치한 사람들이 20년 가까이 관찰해 온 일본인 이케하라 상이 이 책에서 그리는 한국인이다. 말끝 마다 일본인들은 이런데 하고 비교하는 것이 책을 쓰레기통에 쳐박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때가 많지만 저자의 지적을 굳이 부인하고 싶지 않다. 저자가 말하지 않아도 너무도 잘아는 대한민국의 실상이자 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에게 혼네와 다테마에가 있다면 한국에는 저자 말마따나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서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유일한 아시아국가라는 한국 매스컴의 자화자찬 뒤 일백달러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시민 의식의 배리가 있는 것이다. 이케하라 상의 말을 듣고 다시 한국을 돌아보니 서글프지만 도무지 질서란 찾아 볼 수가 없다란 생각이 든다. 사실 다 아는 얘기이지만 생활 습관 속에 너무 깊숙히 만성화해서 이제는 나쁜지도 모르게 되버린 그런 일들을 한 일본인이 일깨원 준 것이다. 저자 지적대로 민주주의도 가장 먼저 정착시킨 경제도 가장 압축적으로 성장시킨 한국인이기에  이렇게 일단 알게 되었을 때는 어느 다른 민족보다도 빨리 고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한다. 하물며 우리보다 몇 배 잘사는 일본 국민의 충고인데 말이다. 저자인 이께하라 상에게 할 말이 있다면 아쉽게도 충고는 받아들이지만 그럼에도 일본인은 왠지 별로 닮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께하라 상은 전쟁이전 태생이라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매우 보수적인 것 같다. "(일본에서) 친구가 장관이라는 지위에 오르면 나머지 친구들은 그날로 모두 사직서를 낸다" "동생하고 싸움을 하면 아버지는 칼 두 자루를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이왕 싸우려면 '확실하게' 칼을 들고 싸우라는 뜻이다" 아마 이께하라 상이 가끔 커피 한 잔 하면서 향수에 젖어 그려보는 가장 완전한 국가의 모습이 대동아 전쟁전의 대일본 제국이 아닐까하는 심한 장면이 내 머리 속에 오버랩되었다. 그렇더라도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아무래도 찜찜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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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21-05-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띄어쓰기나 용어를 잘 사용하신 점으로 보아선 글에 정성을 담아서 썼다는게 느껴집니다.

1. 두꺼운 얼굴에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하는건 후안무치입니다.
2. 본론인 한국인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결론을 밝게 얘기하는건 그래도 본심에서 우러나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타지살이에 익숙지도 않은 문화에 천방지축같은 일들을 자기나라보다 몇배 못사는 국가에서 26년이나 산다는건 그래도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싫어하는 사람에겐 무관심, 그다음으로 싫어하는 사람에겐 빈말, 그다음에는 양약고구입니다. 미즈노교수처럼 입발린 말을 하는사람을 멀리해야지, 가까이해야하는 사람은 쓰셨던 대로 입에 쓴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생각은 한동안 웃었습니다만 개인생각이니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이병주 전집 세트 - 전30권
이병주 지음 / 한길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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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를 생각하면 꼭 아마추어란 단어가 떠오른다. 소설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 느즈막희 언론인에서 등단하였다는 사실이 그러하겠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어째 긴박감이 떨어지는 것이 영 프로 소설가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그가 우리 사회에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1급의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병주는 문학을 사랑하고 역사를 궁구하여 모순을 제기하는 한 아마추어 역사가이자 아마추어 소설가인 셈인 것이라는 나의 소견이다.

그래서 그의 조금 서툴고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에 한편으로 애처로움이나 심하면 비웃음같은 것이 솔직히 생기지만 문제의식만은 치열하니 끝까지 읽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병주 전집 30권 세트를 당당히 추천하고 싶은 것이다.

더구나, 본인 역시 역사를 사랑하고 문학을 즐기는 아마추어로서 그의 사상들에 대해 적지 않은 공감을 느끼는 바가 큰 것도 그렇다. 나는 그러한 그와 나 사이의 "공감"이 극명히 드러나는 소설이 단편 <변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전공하는 자는 본래 역사의 사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어떤 위인의 신비가 완전히 조작된 그러한 것이라는 그에 대한 비리의 자료를 입수하는 예가 근대에도 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위세가 아직 등등한 때라면 그 반증은 묻히기 일수이며 이것이 아직 변변한 한국현대사가 작성되지 않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아마 이 소설에서 아마추어 역사가인 듯 마르크 부로크의 저서를 즐겨 인용하는 서술적 자아는, 자신이 소각한 자료에서 상해의 일본 밀정이라 알고 있었던 장병중이란 인물이 버젓이 애국자 행세를 하고 있어 어이없어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 사건의 기록을 없애버린 나자신을 뉘우쳤다. 그 기록만 있으면 그것을 복사해서 군내에 돌려 장의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 있을 것인데"

역시 이런 말에 100퍼센트 공감한다. 현실의 장병중을 친일파로 기록하지 않고 애국자로 기록했을 역사책들을 다 불사르고 싶은 마음이 많다. 과연 이런 그릇된 역사들이 얼마나 바로 잡힐 것인지 조금 더 두고 보겠지만 저자와는 달리 본인은 역사에 대한 회의감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기저에 두고 이병주의 역사 소설들을 한 번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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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덫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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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바람이 몹시 거센 어느 겨울 날, 어릴 적 품은 깊은 원한을 감추고 복수를 위해 살인할 그 세 여자들을 찾아 잠입한 마을의 거리를 서성이는 한 사나이. 실수인지 의도된 것이지 모르지만 이 사나이는 그만 수첩을 떨어뜨리는데 그 수첩에는 살인의 장소에 관한 메모가 적혀있었다. 74번가의 첫번째 살인이 달성되자 경찰은 이미 두번째 살인이 일어날 장소를 예견하고 형사를 파견한다. 과연 이 복수의 사나이는 자신의 목적을 경찰의 감시 속에 달성할 것인가?

하지만 불행중 다행인 것은  그날 밤 몹시 외진 그 하숙집은 폭설로 인해 고립된 상태가 되고 설상가상으로 전화선을 끊어 외부로 부터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 마침내 두번째 살인마저 형사의 감시를 따돌리고 유유히 달성하는 그는 세번째 표적에게 나타나서 자신이 롱리지 농장에서 학대 받아 죽은 조지의 형이라고 밝히며 동생의 구원 요청의 편지를 외면한 복수를 해야만 할 것 같다고 지껄인다. 

아마 영화 <싸이코>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으로 미루어 보건대 두 명의 인간 쓰레기를 죽인 이 유치찬란한 청년은 아마 당시 영국 법률에 의거 정신병동으로 향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크리스티의 소설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걸작인 듯하다.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스릴이 <세 마리의 눈 먼 쥐>란 전율적인 동요를 배경으로 온 몸을 소으름 끼친다. <애크로이드 살인> 등에서 보는 극적인 반전에 역시 데임 크리스티란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크리스티의 작품을 좀 더 많이 읽지 않았음이 후회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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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1 - 의협의 나날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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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보내는 편지>

작가여~ 아무리 연의(演義)를 염두해 두고 썻다고 하지만

이순신과 원균.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누가 보아도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삼척동자라도 그들의 실적이나 업적을 통해 능히 알만한 것을 가지고

글의 내용은 둘째치고

최고학부를 나와 해군사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그대가 이런 것을 쓴다는 것이 나는 더욱 충격입니다.

그래서 불초하지만 저역시 지식인임을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심히 당황스럽고 부끄러움 마음 가실 길 없습니다.

그대는 그저 단지 원균이 책상물림을 하는 문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에게 면죄부를 주시는 것인가요.

말이 나왔으니 도대체 요즘 작가들 연의라는 어정쩡한 판타지에 빠져드는 이유가 무얼까요.

그대들은 혼돈스럽기 그지없고 불공평한 세태를 한탄하여 이런 판타지를 지었다지만,

나는 오늘 날 이런 연의류만 난무하는 어딘지 미덥지 못한 문인들이 더 걱정이며

그들이 시류를 걱정하고 영웅을 대망하는 대신 자기성찰을 더 해서

"난 왜 이런 연의류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내게 딱히 적성이 맞는 것도 아닌것 같은데"고 진지한 고민을 하였으면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도 좀 좋은 책을 읽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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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삼의 피
박종화 지음 / 어문각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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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로 유명한 박종화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것이 이 <금삼의 피>라고 생각하기에 수십번씩 이를 읽고 또 읽어본다. 이 책을 통해 본 연산은 스스로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 나 온갖 황음 방탕한 짓을 실천에 옮기는 폐덕한 군주이지만 위악(僞惡)을 할 망정 위선의 역겨움은 보여주지 않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고금에 그 누구보다 효성스런 아들이지만 그 효도로 인해 폭군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그의 타고난 바 딜레머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폭군으로서 역대 어떤 왕들에게도 감히 비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그에게 있다. 요즘도 정치권에서 대통령을 정적들이 궁예나 광해군 등에 비해 공격하는 꼴은 보았어도 연산과 비교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아마 한국사에 전무후무의 대폭군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숙한 인간에게 있어도 그가 어린 나이에 모후의 사사를 어렴풋이 듣고 충격을 받고 다시 십수년 후의 외조모 신씨 부인에게서 어머니의 피묻은 금삼을 건네 받는 장면에서 안타까움의 연민어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나 같은 이의 설명보다는 저자 박종화가 직접지은 서사가 이 책을 소개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여기에 옮겨본다.

<만백성을 울리고 육충혼(六忠魂)의 피를 뿌려 천고의 긴 한을 품으신 채 영월(寧越) 청랭포에 외롭게 이슬과 같이 쓰러지신 단종대왕(端宗大王)의 험악한 풍파도 이제는 한마당 꿈, 해와 달이 동쪽 하늘과 서편 산 마루로 숨바곡질하는 동안에 세월은 흘러서 사십 년(四十年)이다.
한번 가신 왕손(王孫)은 다시 돌아올 기약이 묘연하건만, 염량세태에 흔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이야 다시 누가 있어 옛일을 생각이나 하랴.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이란, 진국명산 만장봉에 청천이삭출 금부용(鎭國名山萬丈峯靑天削出金芙蓉)이라 하던 높고 높은 왕궁(王宮)의 진산(鎭山) 북악이 우줄우줄 옛 모양 그대로요, 노들들 남쪽 조그마한 언덕에 임자 없는 육 충신(六 忠臣) 여섯 개 무덤이 천추에 억울한 한(恨)을 호소할 길이 없으매, 밤마다 밤마다 꿈틀거려 흐르는 강물을 향하여 추수한 외마디 곡성을 애처롭게 부르짓어 강변 어부한이의 가슴을 선뜻선뜻하게 할 뿐이다.
부귀영화를 뺏앗아 만년이나 누릴듯, 후세의 비평을 듣는 단종의 삼촌 세조도 겨우 열세 해 만에 호화로운 꿈도 한줌의 흙을 보태었을 뿐이요, 그의 원자(元子) 덕종(德宗)은 세조 생전에 참혹한 꼴을 본 것이매, 손도 꼽지 않으려니와, 둘째이신 예종(睿宗)이 또한 겨우 왕위에 오르신지 일 년에 이 세상을 버리시니, 나이 겨우 스무살이신 예종이 장남한 왕사(王嗣)를 두실 리 없다. 세조비 정희왕후(貞憙王后)의 명을 받들어 덕종의 둘째 아들이신 자산군(者山君)을 왕위에 모시니 곧 성종(成宗)이시며, 임금 노릇 하신지 스물 다섯 해, 춘추 서른 여덟에 승하하시니 원자 연산(燕山)이 왕위에 올랐다.
때는 바야흐로 태평성대, 영특한 임금 갸륵한 어른으로 존숭을 받으시는 성종으로도 호색이 빌미가 되어, 비빈 사이에 질투의 불길이 일어나고, 나중에 세자의 어머님이요 곤전마마이신 막중한 왕비를 폐위시키고 또 사약을 내리니, 백성의 집인들 어찌 이러한 흉변이 있으랴. 한 지어미 원한을 품으매 오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거늘, 막중한 왕비어니 종묘 사직이 어찌 위태치 아니하랴.
호곡해 울 때마다 눈물 씻은 손수건, 눈물은 다하여 피눈물로 변하니, 비단 수건에 점점히 북은 핏자국 물들고 물들어 퇴색되어 변했다.
위에서 내리신 사약을 받고 통곡할 때, 친정 어머니 신씨에게 당부하기를,
"동궁이 내내 탈 없이 자라나거든 부디부디 이 수건 전해서 주오. 철천의 이 원한을 싯겨주오." 독약을 마시고 한많은 세상을 등져 버렸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 말은 새가 듣는다. 아무리 구중 궁궐 깊은 속에 금지옥엽으로 감추어 기른 왕자인들, 당신 생모의 이 참혹하게 돌아간 정경을 눈치 채지 못하랴.
영특하다 하던 연산은 드디어 마음이 변하여 나중에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첫 정사가 당신의 어머님 원수를 갚는 일이요, 둘째 정사가 황음 방탕한 짓을 주저 없이 하는 일이다.
산천초목이 떨지 않을 수 없고, 벼슬아치 선비들의 목숨이 가을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는 낙엽과 같다. 황음방탕하니 재물이 소용되고, 재물이 소용되니 백성을 긁을 수 밖에 없다. 원성이 하늘에 까지 뻗힐 듯하니 나라이 어찌 위태치 않으랴.
뻐꾸기 울음소리에 애끊인다 노래하던 단종대왕의 영혼이, 사십 년 뒤 이때까지 그대로 계시다면, 이 어지러운 모양을 어떻게 보실 것이냐. 노들 강변에 귀곡성 울어예는 사육신의 여섯 무덤 한많은 그 울음을 이젤랑은 거두시오.
부귀영화만이 한마당 꿈자리랴. 생 백년이 모두다 공(空)인 것을, 빈손으로 태어나서 빈손으로 돌아가니, 왕후면 무엇하고 장상인들 나을거냐. 구름가 듯 물흐르 듯 천고(上千古)에 남은 것은 허무 뿐이다.
지금에 연산(燕山)이 또한 간지 사백 삼십 년이다. 백의서생이 옛 역사를 뒤져거리다가, 넘치는 정렬에 끌리어 붓대를 잡아 소설을 얽으니, 일만 일이 모두다 공인 바에야 정(情)만이 그대로 남을 이 없다. 또한 한개 부질없은 장난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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