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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어째서 이 사람들이 한 권의 책에 다 이름을 올린단 말입니까.
거의 친숙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솔제니친부터 첫 문장을 자꾸 읊고 싶게 만드는 그 소설 <롤리타>를 지은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물론이고 나딘 고디머나 조지 소로스까지 이 대단한 스펙트럼의 인물들이 등장해야 했던 이유가 이 사람, '리모노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100% 납득되지는 않습니다만...
500쪽이 넘는 두툼한 이야기로 이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쫓아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유독 이 책이 읽기 힘들었던 이유는 '대체 이 사람은 뭐냐...' 하는 생각이 자꾸 발목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목차에서부터 그렇죠. 우크라이나 → 모스크바 → 뉴욕 → 파리 → (다시)모스크바 → 하리코프 → 부코바르 → 사라예보 → (또)모스크바 → (다시)파리 → 크라이나세르비아공화국(이름 깁니다;;) → (또다시)모스크바 → 알타이 → 레포르토보 → 사라토프 → 엥겔스(이 무시무시한 곳들) → (마침내)모스크바 로 이어지는 이 다채로운 궤적이라니요.
하찮은 조연이 되기를 극도로 거부했던 사람, 질투심으로 자신을 성장시킨 사람, 프롤레타리아의 정체성을 늘 염두에 두었던 사람(굳건히 지킨 사람, 이라고 적었다 지운다), 리모노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보노라면 그저 세상은 넓고, 사람은 제각각이다, 라는 생각만 맴도는 것입니다.
도무지 어려운 이름들과 낯선 풍경에서 헤매던 저는 책을 포기할 수 없어 '러시아 근현대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자 다짐했지요. 그러니 좀 읽혔습니다. 국가 폭력과 독재, 반독재 시위나 지하 조직의 이야기, 또는 가난한 민중들의 삶과 유리된 정책들은 만국 공통이로구나 생각도 했고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 책, 『리모노프』는 너무했습니다.
자신들의 아버지뻘, 아주 어린 처년들한테는 할아버지뻘이 되는 남자, 스무 살에는 누구나 한 번씩 꿈꾸는 모험적인 삶을 살아온 리모노프, 그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리고 이 전설의 요체, 청년들 모두에게 리모노프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가 수감 생활에서 보여 준 쿨한 영웅주의다. (35쪽)
이렇게 호감 가는 인물로 주인공을 소개해놓고는 막상 열어보니
뭐, 암으로 죽으라 그래, 그 꼬맹이, 엿 먹어! 그래, 잘생겼어, 그래, 불쌍해, 그래도 난 마찬가지야, 엿 먹어! 차라리 잘됐어. 죽어라, 부자 애비를 둔 녀석아, 난 덩실덩실 춤을 출 거다. 진지하고 개성적인 내 인생이 하나같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한테 짓밟히는 이 마당에, 내가 왜 연민과 동정을 가장해야 하냐고? (220쪽)
이런 생각이나 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보여주었으니까요.
리모노프의 초특급울트라슈퍼대서사시에는 많은 젊은 러시아인들이 추종하는 영웅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의 과격함과 이중잣대는 그야말로 '단 하나의 규칙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명제로 수렴되기 때문이죠.
물론 누군가를 미화시키지 않고, 단순한 위인전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를 찾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살아남은 자는 누구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낭만적이거나 웅장한 결말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다양한 삶은 의미가 있겠지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토록 자신에 대한 신념으로 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이 책을 낮게 평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책은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한 인간이 (스스로 믿는)시대적 사명을 따라 가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은 범인의 눈에는 그저 낯설고 불편하긴 하지만요. 어쩌면 모든 영웅이 이렇게 태어나고, 혹은 사라지고, 좌절하고, 이야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런 미시적인 부분을 감수한다면, 그렇다면 리모노프는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만한 인물이라는 겁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살아온 데에는 그 자신의 기질뿐 아니라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자본주의로 사회가 개편되면서 겪어야 했던 동포(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지 고민이 됩니다만)들에 대한 연민과 소명의식도 분명 큰 역할을 했잖아요. 그는 서방세계에서 충분히 편안한 삶에 편입되어 살 기회가 있었지만 거부했죠. 민족볼셰비키당이라는 당을 창당하고, 청년들을 조직하고, 총을 들기도 한 데에는 그 나름의 애국심이 분연히 발현되었던 것이죠.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리모노프의 이야기는 끝까지 아찔합니다.
세상이 이토록 작은 어긋남으로 직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함을 거둘 수가 없어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